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알랭 드 보통] 불안

by manga0713 2014. 8. 29.

 

 

 

 

불안.

걱정으로 마음이 편치 않음. 안정되지 않고 뒤숭숭한 상태.

 

저자는 항상 뒤숭숭한 상태로 묶어 끌고 다니는 불안의 원인은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으로 규정하고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사슬을 끊고 자유로운 삶을 있는 해법으로 제시한다.

 

다음은 책의 밑줄 부분이다.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 결과에는 자원, 자유, 공간, 안락, 시간이 포함되며, 남들에게 먼저 배려 받고 귀중하게 여겨 진다는 느낌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의 초대, 아첨, 웃음(농담이 썰렁할 때도), 경의, 관심을 통해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질투(불안도 감정과 관련이 있다)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드러내는 역시 사회적으로 경솔한 행동이다. 따라서 내적인 드라마의 증거는 흔치 않다. 보통 어디에 몰두한 듯한 눈길, 부서질 같은 미소, 다른 사람의 성공 소식을 들은 이어지는 유난히 침묵 등으로만 간간이 나타날 뿐이다.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지위에 대한 갈망은 다른 모든 욕구와 마찬가지로 쓸모가 있다. 이것은 자신의 재능을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자극하며, 남들보다 나아지도록 고무하며, 남에게 해를 주는 괴팍한 행동을 못하게 억제하며, 공동의 가치 체계를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결합한다. 그러나 모든 욕구가 그렇듯이, 갈망도 지나치면 사람을 잡는다.

 

, 명성, 영향력은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 - 그리고 사랑을 얻을 있는 수단으로서 -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혹시 남의 애정 덕분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인격을 따라 수도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속물은 시대에 따라 여러 특정한 집단에 영합했다.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속물의 존경 대상도 바뀌기 때문이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받는 느낌 -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불평등을 고려할 질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가 모두를 질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우리의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만 선망한다는 것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예외가 규칙이 수는 없었다.

 

우리가 무엇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젊거나 늘씬해지려고 애쓰기를 포기하는 날은 얼마나 즐거운가. 우리는 말한다. '다행이야! 그런 환상들은 이제 사라졌어.' 자아에 더해지는 모든 것은 자랑거리일 뿐만 아니라 부담이기도 하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대한다.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혹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에서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다. 실패의 물질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세상이 실패를 바라보는 냉정한 태도,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 지목하는 집요한 경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심각해진다.

 

'패배자'라는 말은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냉혹한 말이다.

 

농담은 비판의 방법이다. 이것은 오만, 잔혹, 허세에 대하여, 미덕과 양식으로부터 이탈한 것에 대하여 불평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당화할 없고 어울리지 않는 것은 조롱한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 능력이 권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왕을 조롱한다. 인간적 본성을 잊고 특권을 남용하는 높은 지위의 권력자들은 조롱한다. 우리는 조롱을 하고, 웃음을 통하여 불의와 과잉을 비판한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이반 일리치가(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주인공) 가장 괴로웠던 것은 아무도 그에게 그가 바라는 동정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우리 자신의 소멸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