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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이지웅] 말씀을 읽다

by manga0713 2015. 3. 6.

 

 

 

 

"(해석에 대한 충분한 상식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을 읽을 당시의 느낌이나 감정에 많이 의존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동일한 본문임에도 아침에 해석한 내용과 깊은 밤에 해석한 내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나의 모습, (특히 학생들을 가르칠 깊은 준비는 외면하고 (영발) 의존해 시간을 때우고 인기를 위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그러한 나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부끄럽고, 학생들에게 미안한) 나의 마음에 저자는 '전하려면 제대로 익혀야 한다는 근본적이며 중대한 사실, 그것이 하나님의 ' 것을 정면으로 도전해 주었습니다.

 

또한, 적절한 사례와 지혜로운 해석을 통하여 성경 속에 숨겨 놓은 하나님의 보물을 찾아내 삶의 원동력 삼아 제대로 앞을 향해 있도록 권면합니다.

 

책을 읽고 밑줄을 그으며 계속 드는 생각은 "나는 여전히 모르는구나!"입니다.

사람의 말을 경청을 넘어 정청하려고 하면서도 나의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정청은 근처에도 못가고 경청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여전히 알량한 지식에 조종을 받는 마음의 판단에 휘둘리는 나지만, 그것이 나의 문제였음을 깨달아 가는 때에 만난 책이네요.

 

여러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책의 밑줄 부분입니다.

 

 

성경에 다가가는 올바른 태도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번째 물맷돌은 믿음입니다. 번째 물맷돌은 사랑입니다. 번째 물맷돌은 소망, 번째 물맷돌은 은사, 다섯 번째 물맷돌은 능력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역사와 문화(사회), 종교, 언어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경의 기자가 본문을 통해 시대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했는가'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대할 필요한 가지 원칙: ①일관성의 원칙 ②객관성의 원칙

 

성경 본문관 관련된 여러 가지 배경을 무시하고 자기의 이해와 입장에서만 해석하게 되면, 성경 저자가 단어와 표현을 통해 전달하기 원하는 의미, 하나님이 본문을 통해 말씀하기 원하시는 바를 온전히 이해할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처음 기록되었을 때의 원독자가 누구인지,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구체적인 역사와 문화(사회), 종교, 언어적 배경은 무엇인지 함께 연구해야 합니다.

 

(충분한 상식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을 읽을 당시의 느낌이나 감정에 많이 의존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동일한 본문임에도 아침에 해석한 내용과 깊은 밤에 해석한 내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고 상고하는 목적' '설교를 위한 ' 되어서는 됩니다. ~ 성경을 읽고 상고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영원한 진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문자 그대로가 아닌 뒤에 숨은 영원한 진리를 발견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해야 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절대 진리와 상대 진리가 함께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절대 진리: 모든 장소, 시간, 문화, 사람에게 적용되는

상대 진리: 특정한 장소, 시간, 문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절대 진리는 절대 진리로 해석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상대 진리는 상대적으로 해석하되, 말씀 뒤에 숨은 절대 진리를 발견하여 영원한 진리를 자신에게 적용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을 바른 진리로 무장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로 자유케 되는 것을 경험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과 지혜, 방법과 전략은 교회에 덕을 끼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용해야 합니다.

 

 

귀납적으로 성경을 바라보다

 

성경을 연구하는 가지 방법론: 주관적 방법( 손안의 성경, 마음대로 읽는다.), 연역적 방법( 결론, 증명), 귀납적 방법(관찰하고, 관찰하고, 관찰하라)

 

주관적 방법은 원독자의 상황, 역사와 문화(사회), 종교, 언어적 배경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한 성경 본문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에 가져오는

 

연역적 방법은 어떤 것에 대해 먼저 결론을 내린 사실이 맞는지를 확인하며 접근하는

 

귀납적 방법으로 성경에 다가갈 때는, 본문에 대한 모든 선입견과 고정관념, 결론들을 내려놓고 본문에서 발견되는 단서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관찰하면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귀납적 방법론은 '열린 마음' (open heart)으로 본문에 다가가, '증명' 아닌 '발견' 목적으로 성경을 보는 방법

 

성경에 다가가는 개의 서로 다른 방법론을 정확히 이해하고 각각의 목적과 상황에 맞게 사용할 , 개의 방법론의 유익을 모두 얻게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있어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귀납적으로 연구하여 연역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귀납적 성경 연구의 5단계: ①기도 ②성경 읽기 ③성경 본문 관찰 ④해석 ⑤적용

 

성경을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성(지혜) 함께 성령 하나님의 깨닫게 하는 조명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 가지가 새의 날개처럼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만 올바른 성경 연구를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일은 기도입니다.

 

효과적인 귀납적 성경 연구를 위한 개의 도구: BRI(Basic Required Information), 성경을 해석하기 전에 성경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정보들을 먼저 살펴보는 ②수평차트, 지도와 같이, 성경을 공부할 책의 전체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지금 내가 공부하는 장이 어느 주제에 위치해 있으며 주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한눈에 파악할 있는 도구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성경 본문들

 

성경은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과 정반대의 삶을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이고, 율법의 정신은 바로 '사랑'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그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 행동이 예수님 같은 사람'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희락은 우리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 상황과 상관없이 항상 기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은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은사는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순기능을 있고,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용납할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영광과 위엄이 어떠한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모습으로 재림하실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분의 나라는 절대 쇠하거나 멈추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과 믿음을 취하도록 격려하고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을 주신 이유입니다.

 

묵시 문학의 다른 표현은 '박해 문학'입니다. 박해 가운데 놓여 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묵시 문학(박해 문학)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상징은 반드시 말하는 시점에서의 역사와 문화(사회), 종교, 언어적 배경에서 해석해야만 합니다.

 

 

해석하기 어려운 성경 본문들

 

비록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과 비전이 지금 나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고,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비전을 절대로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기 때문입니다(벧전 1:24-25). 그러니 상황과 환경, 느낌과 감정이 아닌 오직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비전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본문의 숨은 의미들

 

요한계시록 22 제일 마지막 구절로 '그러므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결론 맺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시작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선언하는 것을 통해, 성경이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근거로 하고 있음을 있습니다.

 

삶을 향한 창조자의 목적을 발견할 , 비로소 삶의 존재 목적과 방향,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있습니다. 인생이 공허하고 혼란스럽고 어둠에 갇혀 있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향한 창조자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이삭은 야곱이 아닌 에서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분명하게 들었음에도 이삭이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무언가 하는 ' '순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구름 기둥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움직이지 않는 '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심과 헌신 그리고 충성을 요구하실 때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구름이 멈추면 여러분도 함께 멈추시길 바랍니다. 이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 믿음'입니다.

 

'증명된 믿음'에는 분명한 확신이 있으며 역사하는 힘이 있지만, '암기된 믿음'에는 확신도 없고 누가 옆에서 조금만 목에 힘줘서 말하거나 약간의 어려움만 오면 뿌리채 흔들려 뽑히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라는 말씀을 단지 문자로만 접하지 마시고 이제는 실제로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고백이 단지 다윗만의 고백이 아니라, 오늘날 나의 고백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우리의 인생도 넉넉한 웃음과 평안함으로 이겨 있을 것입니다.

 

매우 아이러니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향해 '우리 조상, 우리 조상'이라고 부르는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헤브론'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가나안의 족속이었던 그니스 사람 갈렙만이 땅을 구했습니다. 그러므로 갈렙이 헤브론을 구할 ,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정말 갈렙이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 여러분이 구하고 싶은 여러분의 헤브론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에스더가 왕후가 것과 같이) 하나님의 손길은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매우 분명하고 확실하게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편집된 문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종주권 조약'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순종할 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몰아넣으시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