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하고 싶은 말들

[이한규 목사] 가장 지혜로운 삶

by manga0713 2017. 3. 20.

본문말씀 : 시편 111편 9-10절

9.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10.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가장 지혜로운 삶 (시편 111편 1-10절)

< 하나님의 뜻을 행하십시오 >

 어느 날, A 목사가 부목사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A 목사는 인격과 성품이 훌륭하고 부목사를 인격적으로 잘 대우하는 것으로 소문나서 많은 사역자가 지원했습니다. 많은 지원 서류들을 보면서 A 목사는 ‘장래 목회 계획서’란 두툼한 서류뭉치를 지원 서류에 첨부한 지원자를 일순위로 제했습니다. 그 서류를 만들려고 많이 노력하고 계획했겠지만 A 목사는 ‘순종하는 마음’을 더 중시했기에 자기 계획이 앞선 그 지원자를 일순위로 제한 것입니다.

 마침내 좋은 부목사를 뽑았습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에게 철저히 순종하면서도 가끔 창의적인 의견을 냈습니다. 순종이란 리더의 지침을 무조건 생각 없이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리더도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부목사가 철저히 순종하면서 창의적인 제안을 내니까 담임목사는 그 제안을 무조건 수용하지는 않아도 늘 긍정적으로 검토했습니다. 반대로 부목사는 담임목사가 자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고 기쁘게 담임목사의 결정을 따랐습니다. 얼마나 복된 관계입니까?

 그렇게 관계가 좋으니까 부목사는 순종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사역으로 담임목사를 기쁘게 했고 담임목사는 충성스런 부목사에게 길을 힘써 열어주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A 목사는 교계에 신망이 높아서 그가 추천하면 복된 길이 잘 열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교회 출신 부목사들은 대부분 좋은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사람에게 힘써 순종해도 복된 길이 열리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뜻에 힘써 순종하면 얼마나 복된 길이 열리겠습니까?

 자신의 꿈과 비전과 목표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펼쳐지도록 힘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순종할 때 성공과 축복과 행복이 뚜렷해지고 견고해집니다. 윗사람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것은 물론 법과 규칙과 사회 시스템과 공동체의 시스템을 잘 따르는 것도 일종의 순종입니다. 또한 지시한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기쁘게 즉각적으로 따르려는 것도 순종입니다. 순종하고 충성할 때 승진도 하고 축복도 받습니다.

 사장이 어떤 일을 시켰을 때 사원이 그 일을 미루고 안 하면 세상 사장은 해고하지만 믿는 사장은 “어떻게 상처 없이 그 일을 시킬까?” 하고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런 일이 잦으면 그 사원의 존재는 힘이 되기보다 짐이 됩니다. 시킨 일은 되지 않아 성과가 제로인 상태에서 인격적으로 상처가 되지 않게 일을 시키려고 신경을 쓰고 방법을 생각해내느라 그만큼 다른 일까지 못하면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을 시키기 힘든 ‘불순종하는 마이너스 인생’이 되지 말고 일을 시키기 쉬운 ‘순종하는 플러스 인생’이 되십시오.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에서 즉시 기쁘게 순종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시킨 일을 미루면 승진도 미뤄집니다. 반대로 시킨 일을 우선순위로 시행하면 승진에도 우선순위가 되고 좋은 인맥과 자리도 얻습니다. 순종도 없이 승진이 없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 마십시오. 일 관계에서 짐이 되면 윗사람의 마음도 얻기 힘들고 축복의 대열에서도 앞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미루지 않고 힘써 순종하면 신뢰를 얻고 전진과 승진의 때가 조만간 찾아옵니다.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일은 무보수지만 회사 일만큼 책임적으로 해야 합니다. 맡은 직분을 소홀히 해서 교회 리더십이 “어떻게 상처 없이 저 일을 하게 할까?” 하고 신경을 쓰면서 일을 시키기 힘든 성도가 되면 교회에서 권위와 질서와 순종의 흐름을 막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일을 회사 일만큼 책임적으로 하고 회사 일을 교회 일만큼 책임적으로 하는 사람은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점차 좋은 인맥과 자리를 얻습니다.

 더 나아가 순종 훈련이 잘된 성도는 고난과 아픔과 실패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기에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성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으로 여기십시오. 요새 예수님을 길이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외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배 때 손들고 정열적으로 찬양해도 십자가의 희생이 없다면 하나님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커질 것입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발행 기간은 십자가의 기간이었습니다. 요즘도 많은 분들이 “왜 그렇게 힘들게 무리해서 사역을 지속시키느냐?”고 진심으로 염려해줍니다. 그러나 월새기를 통해 구원받고 변화 받는 수많은 영혼들을 보면서 도저히 이 문서선교 사역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은혜 받은 무리들이 일어나 지금의 마이너스가 플러스로 극적인 전환을 이루고 안정적으로 사역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올 줄 믿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남에게도 전달되도록 해야 진짜 은혜가 될 것입니다.

 선택은 선교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채움만 좋아하지 말고 나눔도 좋아하십시오. 하나님이 내 편이 되기만 바라지 말고 내가 하나님 편이 되어 하나님을 위로해드리십시오.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을 위로하는 길이고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살면 자신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이 됩니다. 자신만 생각하면 공허해지고 하나님을 만나면 공허가 사라집니다. 희생하고 나누는 자신을 하나님께 선물하면 하나님은 그 영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가장 지혜로운 삶 >

 시편을 보면 고통 중에 부르짖는다는 시인들의 고백이 많이 나옵니다. 신실한 시인들에게도 고통의 순간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변함없이 믿고 승리했습니다. 경기의 챔피언은 되지 못해도 믿음의 챔피언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도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시면서도 그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더 나은 믿음과 성품을 통해 복된 내일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삶은 성도의 평생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시인은 하나님을 거룩하고 지존하신 분으로 언급합니다(9절).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속량하시고 언약을 지키시며 어떤 경우에도 성도를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가장 지혜로운 삶은 어떤 삶일까요? 본문 10절은 지혜의 근본이 되는 3가지 삶은 언급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란 하나님을 지극히 존경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의 어떤 조치에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거기서 극적인 반전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 명령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죽이려고 하자 하나님이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겠다(창 22:1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란 하나님을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하기에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칠 각오를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가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펼치시고 이해가 안 되는 명령을 주셔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이해가 되는 수준의 순종과 헌신만 하면 하나님도 이해가 되는 수준의 축복만 하심으로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은 믿음의 그릇만큼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은 사실상 자기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 되길 원하십니다. 자신의 물질과 사업과 재능과 시간 등을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쓰면 그것은 썩어 없어질 것으로 끝나지만 자기의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은 그것을 축복의 문을 여는 씨앗으로 삼아 더 많은 축복의 열매로 되돌려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말씀에 힘써 순종하려는 삶이 성공과 행복의 비결입니다. 물론 연약한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다 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하려는 마음의 의지입니다. 땀 흘려 일하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더 좋은 것은 자기 운전대를 창조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기계를 잘 작동시키려면 발명자의 설명대로 해야 하듯이 복된 인생을 만들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삶이 힘들고 방향을 찾지 못할 때마다 성경은 빛과 내비게이션이 됩니다. 마음이 어둡고 슬플 때 성경을 보면 마음에 따뜻한 햇살이 비쳐듭니다. 성경은 암호와 같이 인생의 신비한 인생 문제들을 큰 틀에서 풀어주는 영적인 판독 책입니다. 살다보면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지만 그 모든 일이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집니다. 영원히 남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사 40:8).

 시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필수요소는 말씀을 즐거워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연약해 보이는 들꽃 인생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조율되면 자유롭고 당당하고 즐겁고 의미 있게 살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

 시인은 시를 끝내면서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고백했습니다(10절). 그 고백은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겠다는 다짐이 담긴 고백입니다. 왜 그는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한 통속입니다. 그런 깊은 감사가 있었기에 시인은 시의 첫 구절부터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1절).

 신실한 사람들이 모이면 말씀을 들을 때도 더 은혜가 되고 감사한 마음도 더 커집니다. 자신이 감사하는 삶을 살면 주변인들도 힘을 얻고 리더도 힘을 얻지만 누구보다 자신이 힘을 얻습니다. 전도는 남의 영혼도 살리지만 자기 영혼도 살리는 것입니다. 전도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면 얼마나 기쁩니까?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함께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의 은혜도 더 주어지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마음도 더 커집니다.

 목회하다 보면 인간적인 의리가 탁월한 성도를 가끔 만납니다. 그들은 대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은혜를 받은 존재로서 이 모임이나 이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교우들이 힘이 빠질 거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제 자리를 꾸준히 지키며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합니다. 길이 멀어도 상관없고 비바람이 쳐도 상관없이 제 자리를 지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감사가 넘치는 마음에 하나님의 축복도 넘치게 됩니다.

<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십시오 >

 때로 고통스런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으십시오. 신실한 성도에게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크신 뜻을 사람은 다 알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왜 하나님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야고보가 붙잡혔을 때는 순교하게 하셨고 베드로가 붙잡혔을 때는 기적적으로 풀어주셨습니까? 더 나아가 왜 하나님은 악인을 형통하게 하십니까? 그처럼 인생은 수많은 신비로 가득 차 있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쾌락이 고통보다 나은 것이 아닙니다. 쾌락과 동행하면 육체적인 만족은 얻지만 참된 관계와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반면에 고통과 동행하면 육체적인 만족은 없지만 참된 관계와 지혜를 얻습니다. 고통과 상처와 실패와 슬픔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잘 맞이하면 그들의 감춰진 손을 통해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배달됩니다.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 의문을 품고 더 멀어지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더 가까이 오십시오.

 이틀 전에 교회에서 말씀 준비를 하다가 잠깐 잠든 사이에 꿈을 꿨습니다. 꿈에서 오랫동안 기도했던 문서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이 현실이 되어 하나님께서 대형 건물의 한 개 층에 약 50명 정도 일할 수 있는 몇 백 평의 장소 2곳을 기적적으로 주셨습니다. 그때 들뜬 마음으로 한 공간은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사무실과 선교센터 사무실>로 사용하고 또 한 공간은 <월새기 영어판 사무실과 네트영어 사무실>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어디에 갔다 온 사이에 누가 서류 조작으로 사기 쳐서 그 장소를 빼앗아 갔습니다.

 꿈속에서 그 소유권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사방이 꼭 막힌 것 같은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곳은 소중한 비전을 위해 쓸 공간인데....”라고 탄식하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그때 즉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제가 아무 것도 아님을 꿈을 통해서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악몽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계기로 삼으면 길몽이 되고 악몽과 같은 삶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계기로 삼으면 내일의 희망으로 인도하는 삶이 됩니다.

 인생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과제’입니다. 인생의 의문을 푸는데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몰라야 할 것은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숨겨진 뜻과 섭리와 손길을 다 알겠다고 하지 말고 그저 존중하십시오. 사람이 하는 일도 그가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를 때가 많은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만드신 상황을 사람의 머리로 어떻게 잘 이해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다 망쳤습니다.” 망치긴 뭘 망칩니까? 그가 하나님의 크신 뜻을 얼마나 잘 알겠습니까? 사람에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컴퓨터의 한 장면이 보일 때는 수많은 공식과 알고리즘이 빛의 속도로 연산 처리되어 그 한 장면이 보이는 것입니다. 컴퓨터 한 장면도 사람은 그 장면이 어떻게 연출되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컴퓨터를 불신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성도의 실패는 일시적인 실패입니다. 그때 믿음으로 새롭게 일어서면 그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됩니다. 영원한 성공으로 이끄는 일시적인 실패가 영원한 실패로 이끄는 일시적인 성공보다 낫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