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앤더슨 쿠퍼, 글로리아 밴더빌트]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마지막 수업

by manga0713 2016. 12. 3.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책의 마지막에 엄마와 아들이 하는 .

 

앤더슨, ~ 정말 최고란다.

 

나는 어머니를 안다. 어머니도 나를 안다.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고,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무지개는 피었다가 진다.

 

부러웠다.

내게는 무지개가 피고 숱한 날들의 엄마 인생에 대한 앎이 전혀 없다.

내게는 무지개가 때와 때의 마음을 엄마에게 전해 기억 또한 없다.

그래서 아쉽고 아프다.

 

아직은 엄마의 삶을 듣고 나눌 있는 기회가 있는 분들에게

책을 권한다.

 

 

다음은 책의 밑줄 부분이다.

 

시간이 우리를 어디로 안내해 가는지는 신비한 수수께끼가 아니란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비밀이 아니야. 손에 손을 잡고 혹은 서로 싸우면서, 우리는 달팽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오로지 방향으로만, 누구나 똑같은 지점을 향해서, 종점을 향해서….. 죽음.

 

죽음 말고는 달리 의지할 진리는 아무것도 없고, 죽음 말고 달리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죽음은 탄생만큼이나 필연적인 것이니까. 죽음은 탄생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거든.

 

사람은 번도 가져 적이 없는 것을 그리워하면서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번도 가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피할 없는 갈망은 사는 동안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수전 손택]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편지를 통….아니면 여러 남기셨을 거라는 상상을 하곤 했단다. ~ 아버지의 편지가 언젠가 통은 나에게 불쑥 전달될 것이라는 희망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단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리워하지 않은 날은 지금까지 하루도 없었습니다. 상실감은 너무도 예리한 아픔으로 남아서,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분노의 통증을 느낍니다. 그렇게 일찍 버리셨는냐는 원망의 통증이고, 어떤 일도 일어날 있으며 안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갑작스럽게 깨달아야만 했던 소년이 느꼈던, 합리적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없는 분노의 예리한 통증 말입니다.

 

모든 사람을 언제나 즐겁게 주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하지. 그런 시도는 자기를 증오하는 일로 이어진단다. 그리고 나중에 사람이 자기 권위를 주장하려 때는 한층 강력하게 자기를 증오하게 되지.

 

나에게 실제 롤모델이 되었던 존재는 영화나 책이나 라디오에 나오는 인물들이었지.

 

누군가의 부모가 되려면 자기 자신을 확장할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그걸 없었던 분이셨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계발하고, 그것으로 크든 작든 간에 세상에 기여하는 것을 모든 사람은 자기 권리로 생각해야 한다. 부자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달라야 이유는 없어. 누구도 자기가 태어날 집안을 선택해서 태어나지는 않지. 부잣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나는 도저히 용납할 없구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서서히 퍼지는 질병과도 같단다.

 

건설적인 비판에 마음을 연다는 것과 질투심으로 잔인한 말을 하도록, 특히 자기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도록 하는 말을 하게 내버려 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자기와 친하다고 해도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과연 있을까? 걸음 나아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있을까? 오늘의 우리는 어제의 우리와 다른데 말이다.

 

나이를 먹으면 마치 망원경으로 멀리 바라볼 있는 것처럼 시야가 넓어진단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거나 보려고 하지 않았던 누에 보이지. 나는 지금 나의 수많은 결점을 보고 있단다.

 

번도 가진 적이 없는 어떤 것에 대한 피할 없는 동경 [수전 손택]

 

살아가기 위한 분노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망치는 일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충분한 만족을 있는 ' 많은' 어떤 것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

 

나중에 언젠가는 분명 이때의 기억조차 즐거울 것이다. [베르길리우스]

 

누군가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상실감이 어떤 것인지 , 상실감을 견디는 일이 훨씬 쉽지 않을까 싶구나. 상실감은 대적해야 적이 아니라 친구니까 말이야.

 

돈이 연관되면 사람들 사이에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너도 명심하거라. 가족이 갈라설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토대까지 무너질 있단다. 이런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된다. 자기의 관심과 목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시간을 들여서 확인하고 사람들을 믿어야 하지.

 

나는 용서라는 것을 믿는다. 용서가 없다면 사람의 정신은 결코 자유로울 없거든. 하지만 배신을 이겨 내려면 많은 시간과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단다.

 

(자식을 잃는) 이런 경험을 사람은 누구든 예전의 자기 모습으로 절대로 돌아갈 없단다. 경험은 당사자를 변화시키는 아니라 파괴해 버려.

 

이제야 용서라는 것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었지. 네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무슨 문제를 느끼고 있든 간에 사람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되는 거야.

 

선과 악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과 동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 비로소 용서를 하고 현상을 인정할 있단다.

 

'분노의 악마' 예전에 어머니가 쓰셨던 '살아가기 위한 분노' 아니라 남편과 아들을 먼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야 했던 불공정한 일에 대한 분노입니다. 살아가기 위한 분노는 배가 대양을 건널 있도록 연료를 공급하는 뜨거운 용광로와 같은 것이지만, 분노의 악마는 어떤 보살핌도 필요로 하지 않죠. 석탄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불타서 평온한 바다든 거친 바다든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주니까요.

 

"나는 자신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하나 가지고 있단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는 어떤 것도 닿을 없고 어떤 것도 깨뜨릴 없는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하나 있어. 그게 바로 이미지야."

 

지금 나는 나의 내면 깊은 비밀의 장소에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상상을 더는 하지 않는단다. 대신 달빛이 평온한 바다에 어른거리는 바라보지. 그러면 바다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단다. "나를 용서해 주세요." 그건 바로 목소리란다.

 

세월의 흐름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자유롭게 준단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있게 되었고, 덕분에 자신을 용서 있게 되었지.

 

나이가 살이든 상관없이 죽음은 미래에 있지 않아. 현재의 바로 순간에 있어. 생생하게 살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지.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죽음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있단다.

 

사람은 늙어 갈수록 나이를 보다 선명하게 깨닫기 시작한단다.

 

무지개는 피었다가 진다. The Rainbow comes and goes.

 

무지개는 피었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피지. 무지개가 피어 있을 무지개를 즐겨라. 무지개가 사라진다고 해서 놀라지 말고, 다시 찾아올 반기고 마음껏 즐겨라.

 

(파랑새) 어쩌면 그들은 그것을 결코 찾지 못할지도 모르고 결코 그곳에 다다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찾는다는 , 자체가 바로 인생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단다.

 

어떤 일을 향한 의지를 다짐으로써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게 있단다. 일종의 기도와 같은 거야. 희망은 에너지란다. 꿈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생명력이지.

 

저도 의지의 힘을 전적으로 믿기는 하지만, 의지가 사람으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도록 자극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앤더슨, ~ 정말 최고란다.

 

나는 어머니를 안다. 어머니도 나를 안다.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고,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무지개는 피었다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