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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리더가 버려야 할 6가지

by manga0713 2021. 3. 22.

[ 빈센트 반 고흐 : 선한 사마리아인 ]

 

 

본문말씀 : 누가복음 11장 42-52절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8)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 리더가 버려야 할 6가지 >

 본문에는 “화 있을진저”라는 표현이 6번 나온다. 예수님은 화가 있다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3번 말씀하셨고(42-44절), 율법 교사들을 향해 3번 말씀하셨다(46-52절). 그 말씀을 통해 배우는 교훈으로서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6가지가 무엇인가?

1. 형식주의

 어느 날 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겉모습만 깨끗하게 보이는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를 강하게 질책하셨다. 그리고 겉과 속을 다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내면에서 우러난 진실한 구제로 깨끗해지는 삶을 추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42절).”

 박하는 박하 향기 식물이고 운향은 향료 원료 식물인데 당시 바리새인들이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렸다는 말은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했다는 암시다. 그러나 공의와 사랑은 버렸기에 예수님은 형식도 행하면서 공의와 사랑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율법 형식만 중시하지 말고 율법 정신도 중시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율법 형식만 중시하고 율법 정신을 외면하는 율법주의를 반대하셨다.

 율법주의와 형식주의에 매이면 과거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내용이 준비된 상태에서 창조적인 시각을 가지면 변화를 선도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겉으로만 사물을 보고 판단하지 말라.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발견해 내라. 겉모습만 보고 파노라마 인생 영상을 만들려고 하면 삶의 혼란만 초래되지만 내면을 보는 시각도 가지고 파노라마 인생 영상을 만들려고 하면 점차 발전적인 작품 인생이 된다.

2. 명예 과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명예욕도 질책하셨다(43절).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이 사회적인 법 역할을 한 고대 사회에서 법을 수호하는 존재로서 오늘날의 개념으로 법조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사회는 약속으로 지탱된다. 그 사회적 약속의 기초 틀이 법이기에 법조인들이 돈과 권력을 목적으로 불의와 거짓을 행하지 않는다면 힘써 존중받아야 한다. 공부를 잘해 고시에 통과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약속인 법을 수호해 사회를 지탱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법조인을 존중하고 법조인은 존중받을수록 겸손해야 한다. 특히 율법의 수호자인 바리새인은 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했지만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그런 겸손함이 없었기에 예수님이 심하게 질책하셨다. 그 질책을 말씀 수호자인 목회자도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요즘은 법조인보다 목회자가 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바른 교회 및 목회자가 존중되어야 사회적 약속의 뿌리가 튼튼해진다. 다만 목회자는 스스로 명예욕을 잘 버려야 한다.

 명예를 얻으려고 너무 안달하지 말라. 내게 자리나 직분이나 명예가 생각만큼 주어지지 않고 어떤 의견 결정 과정에서 혹시 배제되어도 차별감이나 소외감을 품지 말라. 그런 감정을 가진 것 자체가 자기 내면에 명예욕이 있음을 반증한다. 나의 명예를 높이기보다 남의 명예를 높여 주는 것이 더 명예로운 일이다.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마음과 생각을 겸손하게 가짐으로 진짜 명예로운 인물이 되라.

3. 위선주의

 본문 44절을 보라.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평토장한 무덤이란 무덤을 둥그렇게 만들지 않고 평평하게 만들어 무덤인 줄 모르게 한 무덤이다. 유대 율법에 의하면 무덤에 닿으면 7일간 부정한데 무덤인 줄 몰라서 평토장한 무덤에 닿으면 자기도 모르게 부정해진다. 즉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에 썩은 시체가 있는 무덤처럼 접촉자를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리더는 위선을 버리고 참된 믿음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느 날 연애를 못해본 친구가 연애 고수라는 떠버리 친구의 코치대로 용기 있게 연모하던 처녀를 으슥한 골목으로 데려가 사랑을 고백했다. 즉시 퇴짜를 맞았다. 실망한 그에게 또 떠버리 친구가 코치했다. 그 코치대로 그 처녀에게 선물을 건네주며 집에 가서 풀어보라고 했다. 선물을 풀어 보자 손수건과 이런 편지가 있었다. “제가 이 손수건이 되어 늘 당신의 땀을 닦아주겠습니다.” 여성이 오글거리는 느낌을 받고 더 그를 멀리했다.

 사랑 고백을 연극과 연습이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하라. 진실한 마음과 삶이 뒷받침되지 않은 고백은 상대를 감동시킬 수 없다. 성도의 믿음 고백도 삶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시는 사랑 고백을 했다면 그 고백대로 살려고 하고 남을 위해 낮아지고 희생함으로 나의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 되게 하라. 사람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거짓과 위선을 힘써 멀리하고 진실을 추구해야 선한 영향력도 넘치게 된다.

4. 영성 자랑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 대해 질책하실 때 한 율법교사가 말했다.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45절).” 율법교사는 율법을 필사하고 해석하는 서기관을 뜻한다. 당시 서기관은 대부분 바리새인이었다. 그 율법교사가 “우리까지도 모욕하시는 말입니다.”라고 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46절).”

 ‘지기 어려운 짐’은 과도한 율법 굴레를 뜻한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모세의 율법 외에 세세한 613가지 규범을 추가로 세웠다. 왜 그런 세세한 추가 규정을 세우는가? 자기 영성 과시를 위해서다. 어떤 규정을 지킴으로 영성을 과시하면서 더 중요한 의와 신과 인을 버리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사람이 가장 주의해야 할 자랑이 영성 자랑이다. 영성은 자랑과 반비례한다. 꿈과 희망을 도전하기 위한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자랑 외의 자랑은 삼가라.

 가끔 보면 기도 많이 하고 영성이 충만하다는 사람이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본다. 식당 등에서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내 가족처럼 대하지 않고 종처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내세우는 영성은 헛된 영성이며 그저 영성 자랑일 뿐이다. 자랑하면서 자랑한다는 것을 자각하면 그나마 낫다. 어떤 경우에는 자랑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자랑이 몸에 배인 경우도 많다. 자랑을 주의해야 복된 리더가 될 수 있다.

5. 시기 질투

 본문 47절을 보라.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서기관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면서 선지자들을 기념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그들이 선지자들을 죽인 그룹들이란 뜻이다. 그들은 정통을 고수한다는 명목으로 선지자들을 죽였지만 실제로는 시기심 때문에 죽였다. 바른 리더가 되려면 시기 질투를 잘 극복하라. 시기 질투를 버리지 않으면 공동체도 공멸한다. 시기 질투는 욕심보다 더 파멸적인 것이다.

 어느 날 신이 욕심쟁이와 시기쟁이에게 소원을 말하라면서 먼저 청구한 자보다 나중에 청구한 자에게 청구한 것의 2배를 주겠다고 했다. 욕심쟁이가 더 받으려고 먼저 청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시기쟁이는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쟁이의 의도를 읽고 얄미운 생각이 들어 참고 참다가 마침내 신에게 청구했다. “저의 눈 하나를 뽑아주십시오.” 그 청구는 욕심쟁이의 두 눈을 뽑게 하려는 청구였다. 시기 질투의 결과는 공멸이다. 남이 잘 될 때 시기하지 않고 축하해 주고 더 나아가 배우면 나는 그 이상으로 잘 된다.

 교회에서도 교우가 잘 되면 질투하기보다 축복해 주라. 내 가정에 불행이 있어도 남의 가정이 행복하게 살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라. 그 마음을 하나님이 기억해서 그의 삶에도 축복과 행복을 가져다주신다.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연계된 줄 알아야 행복도 얻고 공동체도 건강해진다. 목회자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고 더 힘써야 한다. 목회자가 불행하면 불행이 투영된 말씀이 주어지고 그 말씀을 성도가 먹으면 영혼에 배탈이 난다. 시기 질투를 버리면서 행복을 만들어가야 내 주변 사람에게도 행복을 전해줄 수 있다.

6. 진리 왜곡

 본문 52절을 보라.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지식의 열쇠는 구원과 진리의 문을 여는 말씀 지식의 열쇠를 뜻한다. 율법 교사들은 그런 말씀 지식을 왜곡해서 자기도 구원과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고 남도 그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외식이나 위선도 나쁜 것이지만 성경 말씀의 왜곡은 가장 나쁜 것이다.

 바른 리더가 되려면 무엇보다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힘쓰라. 잘못된 리더의 악한 영향력이 염려되면 내가 말씀 안에 있으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 리더가 되라. 나태함을 버리고 나의 사명을 인식하면서 물질적인 영향력도 갖추고 높은 지위도 추구하라. 사명감을 가지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를 악인에게 다 빼앗기지 말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해서 좋은 영향력을 미침으로 세상의 빛 역할을 감당하라.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좋은 여론 형성에도 일조하라.

 요새는 이단도 혹세무민을 정당화하는 홍보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심지어 이단 청년들이 유력한 언론사에 입사해서 자기 정체를 숨기고 교회를 공격하고 반사회적인 일을 합리화하는 여론을 만들고 있다. 그런 여론을 잘 걸러내도록 잘못된 가짜 뉴스에 넘어가지 말고 늘 말씀과 기도를 앞세워 진리 가운데 살라. 교회의 허물이 보이면 교회를 더 사랑하고 교회를 바르게 만들려고 나 자신부터 나의 현실에서 일조함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 리더로 더욱 잘 준비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