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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멸망에서 건짐 받는 길

by manga0713 2019. 11. 27.

 

 

 

 

본문말씀 : 아모스 3장 12-15절

1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13.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14.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15.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멸망에서 건짐 받는 길 (아모스 3장 12-15절)

1. 말씀을 듣고 회개하라

 아모스 당시에 이스라엘의 죄악상은 명백했다. 그때 그들은 심판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했다(13절). 사람은 잘 말하고 들으면서 점차 사람다움이 생긴다. 특히 말씀은 영혼 변화의 초석과도 같다. 말씀을 들으면 내면에 생기는 변화를 통해 외적인 능력과 열매도 나타난다. 더 나아가 자기를 변화시킨 말씀을 주변에 전하고 싶어진다. 자기 안에서 일어난 뚜렷한 변화를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배고플 때 음식을 먹듯이 영혼이 배고플 때는 말씀의 양식이 필요하다. 한 성현은 하루라도 독서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다. 더 나아가 하루라도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혼에 가시가 돋친다.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으라. 하나님의 뜻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말씀대로 살 때 알 수 있다. 말씀을 통해 영혼이 풍성해지고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중독에서 해방되고 이탈된 길에서 제 길을 찾는다.

 하나님이 가끔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육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의 문제보다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의 문제가 더 중요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려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지 말라. 아무리 잘 살아도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못하면 영혼은 피폐해지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 가까이하면 멸망에서 건짐 받고 희망도 넘치게 된다.

2. 우상숭배를 멀리하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계속 참다가 마침내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심판의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해서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린다고 하셨다(14절).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무엇보다 싫어하신다. 헛된 이방신이나 자연을 숭배하는 것도 우상숭배이고 사람을 하나님보다 높이는 것도 우상숭배다. 종교생활에서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이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는 태도다. 사람을 지나치게 높일수록 진리에서 멀어진다.

 우상으로 영혼의 허전함을 채우려는 것은 물질로 영혼의 허전함을 채우려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도 하나님보다 높이지 말라. 종교가 영웅 만들기에 열심인 할리우드 영화처럼 되면 안 된다. 기독교는 더욱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만들어진 영웅에 감정을 이입해 대리만족에 빠지는 삶은 불신앙적인 태도다. 억지 영웅 신화에 사로잡히는 것도 우상숭배의 일종이다. 좋은 의도로 기획된 우상숭배도 멀리하라.

 왜 하나님은 모세의 매장지를 감추셨는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대리인처럼 여겨졌던 모세의 무덤은 우상숭배의 핵심 근거지가 될 수 있었다. 결국 우상숭배의 본능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그의 매장지를 감추셨을 것이다. 누구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위대한 인물은 초월적인 모습으로 되기보다 연약함 중에도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는 모습으로 된다.

3. 사치와 허영을 멀리하라

 당시 이스라엘 상류층 사람들은 상아로 된 겨울 궁과 여름 궁을 만들어 계절에 따라 오가며 사치와 허영 가운데 살았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보응의 벌을 내리실 때는 모든 화려한 시설물들도 다 파멸될 것이다(15절). 그것은 사치와 허영을 멀리하라는 도전의 말씀이다.

 가끔 낙엽이 뒹구는 모습을 보면 사치와 허영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인생은 나그네 인생도 되지만 낙엽 인생도 된다. 낙엽은 겨울을 견뎌내려고 자기 일부를 끊어낸 생명활동의 흔적으로서 절망의 흔적보다는 희망의 흔적이다. 낙엽을 통해 가버린 과거의 삶만 연상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의 삶도 연상하라. 멸망 중에도 건짐을 받고 낙엽과 같은 인생의 모습을 통해서도 희망을 발견하려면 사치와 허영을 멀리하라.

 인생이 낙엽 인생이란 사실은 언뜻 보면 절망적이다. 그러나 인생이 낙엽 인생임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희망적인 사실이다. 사람은 죽는 생명체지만 무의미하거나 허무한 존재는 아니다. 죽는 생명체이면서 죽음을 인식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죽을 때를 인식하고 사치와 허영을 멀리하고 시간과 땀을 소중히 여기며 내일을 준비하면 멸망의 때가 와도 건짐 받는 소수가 될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