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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인간성 회복에 앞서라

by manga0713 2021. 6. 9.

[ 렘브란트 : 예수의 초상 ]

 

 

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4장 16-19절

 

16 그런즉 2)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 이단을 조심하라 >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다른 복음을 용납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처럼 단호하게 말한다고 해서 원수처럼 대하지 말라고 했다(16절). 또한 바울은 다른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는 사람의 의도가 영혼을 미혹하기 위한 것으로서 선하지 않다고 했다(17절). 이단이 열심을 내고 기존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좋은 의도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목사와 교인을 이간시키고 자기들에게 이끌어서 열심을 내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마지막 때는 미혹의 때이기에 이단을 지극히 조심하라. 누가 이상한 말을 하면 그 말의 의도를 잘 살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분별하라. 이단은 처음에는 자기의 정체를 숨기고 말한다. “어디 성경공부 하는데 가볼까요? 어디 병 고치는데 한번 가볼까요? 어디 예언하는데 한번 가볼까요? 어디 통변하는데 한번 가볼까요?” 그러므로 이단을 피하려면 일단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단체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예수님이 아닌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는 곳도 찾아가지 않는 것이 좋다. ‘능력의 주’를 내세우는 곳에 가면 영혼이 힘을 얻지만 ‘능력의 종’을 내세우는 곳에 가면 영혼이 탈취된다. 위대한 능력의 종을 찾아 한번 잘못된 곳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코가 쑥 꿰여서 영혼이 탈취되고 가정적인 삶이 해체되고 죽도록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갈라디아 교인들 중 일부도 그런 이단에 빠졌다. 그 잘못된 모습을 바로 잡으려고 바울은 때로 단호하고 때로 호소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책망했다.

 바울도 얼마나 좋은 말만 하고 싶었겠는가? 그러나 다른 복음에 빠지면 구원을 잃을 수 있기에 할 수 없이 강력하게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비판했다. 그 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마음의 갈등과 고통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의 바른 양육을 해산의 수고에 비유했다(19절). 참된 교육은 한 사람을 통해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도록 그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이다.

< 인간성 회복에 앞서라 >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게 하려면 삶 자체에 대해 경축하면서 삶의 신비와 놀라움을 느끼도록 해 주라. 가장 중요한 교육은 생명 감수성과 타인 감수성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한 끼의 식탁을 대할 때 그것이 차려지기까지 온 우주가 참여해 마련된 것임을 알면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커지는가? 감사를 막는 것은 내게 주어진 것이 당연히 주어졌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어떤 것도 당연히 주어진 것은 없다.

 깊이 묵상해보면 삶 자체가 매우 신비로운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 생을 경축하며 살라. 예수님의 첫째 기적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이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삶이 축제로 변한다. 축제는 혼자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남들을 내 삶 속에 맞아들이고 나도 기꺼이 남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해줄 때 축제가 펼쳐진다. 바울처럼 누군가를 위해 해산의 고통을 겪을 때 절망의 기운은 사라지고 희망의 기운이 펼쳐진다.

 요즘 지나친 경쟁으로 점차 인간성이 황폐화되고 있다. 경쟁은 생산성을 높이는 인간적인 열정도 낳지만 창조성을 죽이는 인간성의 황폐도 낳는다. 이런 황폐화된 세상에 참 사람됨의 씨를 뿌리는 성도가 필요하다. 경쟁은 “너 죽고 나 죽자.”라는 것이고 섬김은 “너 살고 나 살자.”라는 것이다. 경쟁과 출세에 관한 얘기가 압도적으로 많은 세상에서 사랑과 섬김과 돌봄과 기도를 통해 천국을 확장시키는 한 사람이 되라. 그런 사람이 있는 한 언제나 희망은 있다.

 경쟁심을 버리라는 것은 경쟁에서의 패배가 낫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경쟁에서 패배한 약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란 뜻도 아니다.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도 돌봐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존재로서 인간성이 회복된다는 뜻이다. 약자의 존재는 인간성 회복과 성도다움의 회복을 도전하는 자극제다. 예수님이 성육신하고 완벽한 인성을 가지신 것은 성도가 인간성 회복에 앞서야 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