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준 연주자 "Leon Fleisher 레온 플라이셔"

manga0713 2010. 10. 2. 03:27



레온 플라이셔 Leon Fleisher의 연주 앨범 "Two Hands"의 재킷 사진 입니다.
레온 플라이셔 Leon Fleisher가 누구며 위 사진의 앨범이 주는 의미와 그의 삶이 주는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레온 플라이셔 Leon Fleisher의 연주를 한 곡 들으시겠습니다.
연주 곡명은 라벨 Ravel의 "Left Hand Concerto" 입니다.




레온 플라이셔는 1928년 7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음악 신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4살부터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6살때 최초의 공개연주회를 했다네요..^^

10살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손꼽히는 아르투르 슈나벨 Artur Schnabel에게 사사를 했는데요, 이 분은 당시 "16세 이하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었는데도 그 철칙을 꺾고 자신의 집으로 플라이셔를 데려다가 가르쳤답니다.

한국 공연 당시 플라이셔는 스승인 슈나벨에 대해서 "내가 그에게 배운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열정(passion)이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스승과 제자가 가르치는 기쁨과 배우는 열정이 하나가 되었었나 봅니다.

플라이셔가 얼마나 대단한 연주자인가 하면 플라이셔가 15살때 함께 연주한 명지휘자 피에르 몽퇴가 "1세기에 한 번 나올만한 피아노 신동"이라고 감탄할 정도의 연주자였습니다.

결국,
1952년, 플라이셔는 벨기에에서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미국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콩쿨의 우승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미국에 안겨주었는데요, 이 우승은 "미국 클래식 연주자들은 깊이가 부족하고 기술만 능란하다"는 유럽의 편견을 불식 시키는 또 하나의 결과를 낳습니다.

이후 휘황찬란한 연주자로서의 영광의 마차를 달리던 그를 운명의 여신은 가만 놔두질 않습니다.

한참 전성기때인 그의 나이 34살(1962) 그의 오른 손이 이상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른 손의 네번째와 다섯째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피아노라는 건반 악기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러야 소리를 내고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인데 건반을 눌러야 할 손가락에 힘을 줄 수 없으니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지요.

더군다나 증상은 더욱 악화되어 문제의 두 손가락은 점점 안으로 말려들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무대를 떠나고(1965) 맙니다. 평생을 피아노와 함께 무대를 누비던 그의 삶이 송두리채 날아가버린 것이지요. 그 충격과 상실감, 미래에 대한 절망이 얼마나 컷겠습니까. 이혼까지 겹친 그의 삶은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막막한 어둠이 된 것이지요. (왜 꼭 이럴 때 여자들은 떠나가는지 남자로서 편협한 안타까움도 생깁니다..ㅋㅋㅋ)

어느 날, 그에게 천재적 재능을 부어 준 신이 그를 찾아 왔습니다. 플라이셔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불현듯 저는 양 손으로 연주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 그 자체인 것이지요."

2년 후 플라이셔는 다시 일어섭니다. 절망의 바다와 같았던 음악이 눈을 들어 멀리보니 더 넓은 바다가 있는 것을 깨닫게 해 준것이지요.

1967년 케네디 센터에 "Theater chamber players"라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지휘자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이후 세계의 유명 오케스트라들을 두루 지휘하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함과 동시에 연주자로서 왼손만을 위한 연주곡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플라이셔의 위대함이라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영광을 주었던 손, 마치 배반한 듯 영광을 파괴한 손을 외면하거나 포기하거나 불쌍히 여기지 않은 점 말입니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이라면 보통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위에서 들으신 곡입니다.) 정도를 생각할 뿐이지만, 놀랍게도 1천 곡이 넘는 곡들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차 대전 당시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비트켄쉬타인 Ludwig Wittgenstein을 위해 헌정된 곡들이 그중 다수였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여러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플라이셔를 위해 새로운 왼손 연주용 음악을 작곡해 헌정하였다는 사실이지요. 참 부럽습니다.

뿐만 아니라 플라이셔는 손의 치료에도 포기함이 없었습니다. 보통 장애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살 법도 한데 플라이셔는 결코 굴하지 않고 메달렸습니다.

그의 노력은 1990년대에 들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는데요. 자신의 정확한 병명(국소적 긴장 이상증 focal task-specific dystonia : FTSD)을 알게되고 그 병의 치료제로 소개되기 시작한 보톡스 주사 치료를 받게됩니다. 이 치료를 통해 수 십년 동안 말려 있었던 그의 손가락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고, 물리치료 또한 크게 효과를 주어 그는 다시 양 손 연주가 가능해져, 1995년부터 제2의 연주 생활을 재개 하였답니다.

<Two Hands>는 2004년에 녹음 발매 됐습니다. 40년만에 플라이셔의 양손 연주를 녹음한 음반입니다. 은퇴한지 30년 만에 다시 양손으로 연주를 할 수 있게되고 또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녹음된 <Two Hands>는 플라이셔 개인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큰 귀감입니다.


[Sheep May Safely Graze : Johann Sebastian Bach]


플라이셔의 재기는 삶이 주는 고통을 "다르게 바라 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짓눌려 고개를 숙였을 때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뿐이었는데 고개를 들고 멀리 바라보니 어둠 저편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 입니다.

플라이셔의 재기는 빛을 향해 달려가는 "열정"으로 채워졌습니다. 수 많은 실망과 세월의 아픔을 저 빛에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열정으로 이겨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친구와 같은 삶이 배반의 칼을 들이댄 듯 고통이 밀려올 때, 한 발 비켜서 현재를 다르게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개 들어 멀리 바라보며 희망의 목적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열정의 발걸음을 띄어 놓기만하면 됩니다. 소망의 열매가 우리를 맞이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