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Paprika パプリカ'곤 사토시 감독의 2006년 작으로 원작은 츠츠이 야스타카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만 곤 사토시만의 색깔을 아주 잘 입힌 작품입니다.





영화는 '꿈'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위 그림의 'DC 미니'라는 '싸이코테라피 머신'의 도난 사건을 시작으로 이끌어 갑니다.


코믹하고 천진한 모습의 한 천재가 이 기계를 만들었는데요.

아주 단순한 발상, 그렇지만 누구나 한번 쯤은 상상했을 '남의 꿈을 들여다 보는 것' 과 '함께 같은 꿈을 꾸는 것'을 이루고 싶다는 발상으로 만들게 되지요. 다음같은 대사처럼요.


"멋지지 않아요? 친구의 꿈을 자기 꿈처럼 볼 수 있다는 건..."

"같은 꿈을 함께..."


영화는 꿈을 잠자면서 꾸는, 바로 그 꿈으로 풀어 가지만, 관객들을 잠자면서 꾸는 꿈에 붙들어 놓지 않고 '꿈'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모습, 즉 '이상'이라든가, '소망', '신념' 등등 관객이 받아 들이는 그대로를 투영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해 갑니다.





파프리카는 꿈 속의 여인입니다. 오직 꿈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꿈 속에서만 활약하며 현실의 나와 타인을 치유로 인도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다음의 대사처럼


"요즘 나 자신의 꿈은 꾸지 못했어"

"혼은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무한의 자유를 얻는다"





현실의 '나'가 '멈춰 있는지', '너무 벗어나 있는지', '섞여진 꿈에 매몰되어 구속되어 있는지'를 진단하고 그 상태에 이르도록 인식하지 못했거나 외면했던 '내면의 욕구' 앞에 솔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상태인가요?


멈추어 있는 듯 답답한 상태인가요?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불안한가요? 뒤죽박죽 혼잡한 상태인가요?

그 판단, 그 압력의 단초인 '내면의 욕구'는 무엇인가요?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이루고 싶고,

확인하고 싶고,

다시 일어나 재기하고 싶고

...

...


우리들의 모습도 이들 중의 하나겠지요.

그럼 우리들에게도 '싸이코테라피'가 필요할까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파프리카를 고용해야 하는건가요? "아니오!! 절대 그럴 필요없습니다." 파프리카는 바로 내 자신이니까요.


다만,


멈추어 있는 듯 답답한 나를 만든 내면의 욕구

너무 벗어나 불안한 나를 만든 내면의 욕구

섞여진 꿈에 매몰된 나를 만든 내면의 욕구를


따스한 눈 빛으로 '조망' 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그래야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이 '내'가 힘을 낼 수 있고 그래야만이 현실의 '나'와 꿈 속의 '내'가 공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이 각자 다른 '내면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우리네들과 '맞울림(공명)'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역시나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또, 곤 사토시가 바라보는 인간관과 대인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 점수는 요..."★★★★★"...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별을 쫓는 아이 星を追う子ども Children who Chase Lost Voices from Deep Below'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11년 작품입니다.


영화는 전설 속의 지하 세상인 '아가르타'를 중심으로 그리움과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 합니다. 또한 주인공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저 멀리 반짝이는 별이 과거의 별이 아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별임을 잊지 말자고 노래 합니다.





아픔을 모를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소녀는 그 슬픔과 아픔이 가슴 한 켠에 뿌리 내린 채 함께 자라가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혼자 있는 시간, 아빠의 유품을 통해 먼 곳으로부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낮을 밤으로 인도하고 밤이 아침을 기대케하는 일이었습니다.


햇볕이 다가오면 햇볕으로 채우고,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으로 빈 곳을 채워가던 소녀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 온 만남과 이별은 지난 날의 아픔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그저 시간과 함께 채워왔던 시간들이 '상실'의 외면이었음을 깨달은 소녀는 다시 '상실'의 두려움에 빠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달려 갔습니다. 전설의 세계, 산 자의 땅이 아닌 사자의 땅, 아가르타로....


한 남자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 남자는 아내의 죽음이 자기 탓 같습니다. 무언가 할 말, 아니 해야 할 말이 남아 꼭 해 주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를 살리는 이야기를 연구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전설의 세계를 찾고 또 찾았습니다.


이제 그 길이 보입니다. 만남을 위해 이제껏 준비했던 모든 것을 실현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달려 갔습니다. 전설의 세계, 산 자의 땅이 아닌 사자의 땅, 아가르타로....


소년은 이 땅의 사람이 아닙니다. 아가르타의 사람입니다. 소년의 가족은 형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을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형제를 살린 고마운 마을은 형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형만큼은 아닌 것을 알지만 소년은 인정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형을 사랑하고 형을 의지하기에 그것이 항상 아프답니다.


형은 죽음을 준비하는 마지막 노래를 남긴 채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상실의 시간 속에 젖어 있던 소녀에게 축복이라는 낱말을 남긴 채 떠나갔습니다.


소년은 형의 크라비스(라틴어: 열쇠) 회수를 위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싫었지만, 의무보다는 형의 채취를 열심히 찾고자 했습니다.


소녀와 한 남자와 소년은 아가르타로 함께 들어 갑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세계의 모든 신화를 참고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이야기 (일본전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티케 이야기 (로마신화)', 이 두 이야기 모두 죽은 사람을 찾아 저승까지 가는 이야기 입니다. 온갖 어려움 끝에 그리움의 대상을 만나지만 행복한 결말은 아닙니다. 두 이야기 모두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긴 것이지요.


케찰코아틀은 잉카와 아즈텍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입니다. 바람의 신, 태양의 신, 풍요와 평화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즈텍에서는 신성한 식물인 카카오 나무를 지키는 신이면서 인간에게 옥수수를 선물한 신입니다. 모습은 깃털/날개 달린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케찰코아틀은 인간에게 배신당한 후 무서운 수호신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만 인간에게 옥수수를 선물한 것처럼 영화에서 마지막을 이끌어 낼 기회를 세 사람의 주인공에게 선물하는 역할을 합니다.


샤쿠나 비마나는 북유럽 신화의 영혼을 나르는 배인데요. 그대로 나옵니다. 마지막 변신의 모습에서는 샤크라로 가득하더군요.





살아 있는 이별과, 죽음이라는 이별은 분명 차이가 있겠지요.

살아 있는 이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이 땅의 어느 곳에서든지 한 하늘 아래 있다는 위로와 언젠가 한번쯤은 만날 수 있겠지라는 먼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겁니다.


죽음이라는 이별은. 너무 멀지요. 막막한 마지막...


영화는 이야기 합니다.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라!

그게 사람이 받은 저주야.


뒤를 돌아다보면 아픔만 돌아 옵니다. 먼 그날 그때의 나는 너무나 어리고 연약했습니다. 무언가, 아니 한 마디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하지 못한 미안함이 그날 그 시간을 더욱 뚜렷하게 투영하며 아프게 합니다.

문득 잠깨어 돌아다보면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귓가를 간지르는 바람에도 눈물이 날 뿐입니다.


그때마다 들려오는 소리가 있지요?

"산 사람을 살아야지!"


맞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합니다. 그 말이 진저리치게 듣기 싫고 그렇게 되어가는 내 자신이 싫도록 밉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합니다. 산 사람은 과거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향한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분명 그건 축복이기도 할거야!


참 잘 만든 영화라고 말씀드립니다.

이야기, 그림, 대사, 신화, 죽음과 그리움의 재료들이 각각의 향기와 맛을 내면서도 하나의 훌륭한 향취로 보는 이의 가슴을 붙들어 놓습니다.


죽음과 그리움과 살아감은 그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제이니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반딧불이의 숲으로 蛍火の杜へ'미도리카와 유키가 2002년 연재, 2003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작품오오모리 타카히로 감독의 손으로 2011년 영화화한 것입니다.


영화는 '닿을 수 없는 사랑' 그러나 '닿아 있어 더욱 아픈 사랑'을 어린 아이가 소녀가 되고 만남의 날들이 사랑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 녹여 놓았습니다.


사랑은 만남의 어느 순간에 자라나는 것이며, '닿는다'는 것은 사랑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요?


소녀는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납니다.

한 사람도 그렇게 소녀를 만났습니다.


소녀는 우연을 항상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한 사람도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소녀는 항상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도 소녀와 같습니다.


소녀는 눈 높이가 점점 가까워져 가는 날 동안 기다림이 애닯픈 것을 알아갑니다.

한 사람도 기다림이 무서워져 갔습니다.


소녀는 기다림이 클수록 더욱 닿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도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닿으면 사라지는 두 사람의 벽은

그렇게 간절함을 키워 갑니다.


닿으면 사라지는 무서움은

사랑이 주는 벌인가 봅니다.





영화, 참 예쁘네요.


사랑, 그림, 음악, 이야기, 모든 것이 잘 자라난 한 송이 꽃 같습니다.





소녀의 감성이라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소녀의 이야기이든, 여성의 이야기이든, 소년이든 남성이든, 할아버지, 할머니이든 간에 가슴에 반딧불처럼 남아 차가운 것 같지만 따뜻하게 삶을 지탱해내는 것은 '사랑'만이 주는 힘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날아와 아쉽게 날아가버린 날들의 추억을 떠 오르게 합니다.

가슴 한 켠에 닿지만 않을 정도의 거리로 함께 삶을 살아 온 그 어느 날의 사랑, 그 사랑이 여러분에게도 있지요?


잠시 꺼내어 한 장 한 장 넘겨 보시지요.

직접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서 말입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집 The House'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연구과정 3기인 박미선, 박은영, 반주영, 이현진, 이재호. 이 다섯 분이 감독 및 각본을 담당했고요, 2011년 안시애니메이션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입니다. 안시애니메이션 영화제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의 칸 영화제라고 불리우지요.





영화는 재개발을 위한 철거대상인 '희망상가'를 주무대로 합니다.

기존의 재개발, 철거 등의 주제를 다루는 영화나 애니메이션들은 '희망상가' 위 옥탑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데, 이 영화는 '집'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갑니다.


'집'이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집신(神)'을 등장시킨 것이고요. 즉 집과 집신은 동일한 주인공 입니다.


영화중의 대사를 살펴보면,


"이런데서 어떻게 살아~~"

"자~~알~~~"


"집은 사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져"


집을 표현하는 '이런데'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겠지요.

하나는 '우와~~', 다른 하나는 '에혀~~'


결국 이것은 사람이 집을 바라보는 시각과 집에 대한 가치 기준이 집이 주는 본래의 의미가 아닌 화려함과 부유함의 기준으로 변화 되어 우리네 마음 속에 고정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는 이렇게 고정화된 우리네 마음에 대한 아쉬움과 지금까지의 재개발 사업의 방식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 합니다.


집신과 지신, 우리 어릴 적에 한번 쯤은 들어본 적 있는 신들이지요.

영화에 적용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는 반면에 성우들의 연기는 많이 아쉽습니다.


이상입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TAG The House,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 영화는 김주호 감독이 연출한 2012년 신작입니다. 출연진들이 굉장히 화려하지요. 물론 더 화려한 모 영화에 조금 눌린 듯 한 느낌을 주지만, 찾아보니...BOX Office 9월 9일 기록이 자그마치 4백 8십 3만 명 입니다. 400만 명 이상의 흥행을 한 것이지요.


무척 재미납니다. (물론 울집 케이블 방송의 VOD 값이 너무 비싼 게 흠...자그만치 만원...-,.-)


위 포스터를 함 보십시오.

보기만 해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절로 웃음이 나오고 엄지 손가락이 세워지는 배우들이 열연을 합니다.


서빙고에 보관되어 있는 '얼음을 훔친다'는 다소 엉뚱하고 기발한 발상에 역사의 소재들, 휴머니즘, 정의, 사랑, 정 등을 잘 버무려, 영화가 시종일관 보여주는 "OK, 만사형통"이란 잘차려진 밥상을 관객들에게 선물합니다.


좋은 영화이고, 우량 영화입니다.

차태현의 연기 변신 또한 잘 이루어져 가고 있고 오지호의 다소 덜떨어진 우직한 사내 연기도 호감이 가고 다른 연기자들의 맛과 향기도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아마도 김주호 감독이 인복이 좋은가 봅니다.


웃을 일이 없으신가요?

패턴화된 TV 개그 프로가 지루해지셨나요?


웃으세요. ^^

웃으시면, OK 만사형통 입니다.


이 영화를 보시면 깨끗하게 웃으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증오 La Haine'는 마티외 카소비츠 감독의 1995년 작품입니다. 프랑스 영화지요. ^^ 그 해의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감독 마티외 카소비츠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부르조아들을 놀라게 하자!"라는 것이라고 하고요, 배우로서도 출중하여 '세자르 영화상 신인배우상'에 지명됐지만 상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니, 부르조아 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에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류의 영화를 '교외(방리유 Banlieue)영화'라고 한답니다.


교외, 도심과 밖,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 관심을 두지 않으려 애쓰는 곳, 관광객들의 안전이 염려되는 곳 등등의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감독은 이런 일반적인 생각들에 대한 일침과 관심을 두지 않으려 애쓰며 방치하는 부르조아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영화적이 아닌 미국 영화적입니다.


영화의 도입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50층에서 추락하는 남자의 얘길 들어봤는가?

밑으로 떨어지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아직까진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

 

추락하는 건 중요한 게 아냐

어떻게 착륙하느냐지!


아! 저는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민도 많이 했고요. 뭔가 철학적으로 풀어내야 할 것 만 같은 부담을 스스로 가진 것이지요. 역시나 저는 머리에 똥만 찬 것 같습니다.


이 대사는 사회, 즉 영화의 주인공들이 머물고 있는 교외(방리유) 사람들의 현실을 축약한 것입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영화의 주인공들인 3명의 친구는 감독이 걸어 놓은 타이머 앞에서 눈을 떠 아침을 맞이한 그 순간부터 어떻게 착륙이 방해받는지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착륙은 이들 탓이 아니라는 보여 주기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다닙니다. 잘 착륙할지 그렇지 못할지 궁금해 하는 관객들의 눈을 끌고 다니면서 말입니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도구는 '권총'입니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우연히 얻게 된 '권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낸 영화가 있지요. 그것보다는 훨씬 어둡고 훨씬 정확하게 심리를 이끌어 냅니다.


권총은 공권력의 상징이고 힘의 상징입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근원이고 최고를 만들어 줄 것 같은 우상 입니다.

과연 그것을 손에 쥐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과 태도는 어떨까요? 그 마음과 태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또 얼마나 될까요?


재미있는 대사가 영화 중의 우연한 만남 속에서 나오는데요.


"역시! 시원한 똥만큼 좋은 건 없어!!" 정말 공감가는 대사지요. ^^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비춰본다면 이것만큼 뻥 뚫어주는 대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이어서 계속 이야기 합니다.


"너흰 신을 믿냐? 그건 틀린 질문이야."

"신이 우릴 믿냐? 고 그래야지."


어려움 속에서 우린 신을 찾습니다. 답을 구하고 길을 구하며 살려 달라고 애원 합니다.

왜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냐고 땡깡도 부려보고, 만드셨으니 책임지라고 달려들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우리가 못 믿을 신일까요, 우리를 못 믿는 신일까요?

정말이지 살아 간다는 것은 힘든 건가 봅니다. 그것도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은 삶을 산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곳에서 "아직까진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라는 주문으로 절박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면..못 믿을 신인지, 못 믿는 신인지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라면 어찌해야 할까요....답하기 무지 어렵네요.


전체적으로 영화는 지루 합니다. 삶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몽롱 합니다. 자꾸 마리화나를 피우거든요. 그래서인지 젖소가 보입니다. ^^


그래도 꼭 한번 보세요.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신비의 바다 나디아 ふしぎの海のナディア Nadia, The Secret Blue Water'는 국내에서도 TV 시리즈물로 방영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던 그 '나디아'의 극장판으로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한 1990년 작품 입니다.


TV의 영향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나디아와 그녀의 친구들 아래와 같죠...^^





극장판은 이 아이들이 자라 아래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나디아와 쟝, 많이들 컷지요? ^^

그래도 서로를 향한 애틋함과 알콩달콩한 모습은 변함 없습니다.


또, 영화에서는 아래의 얼굴을 가진 등장인물이 있는데요.





'기가'라는 인물입니다.


'세계지배'의 야욕을 지닌 인물이지요.

기대하시고 예상하시는 것과 같이, 이자가 나쁜나라, 즉 악이고요. 나디아와 장과 친구들은 좋은나라, 즉 선입니다.



영화는 뒤죽박죽, 우왕좌왕, 급마무리의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별로 추천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바람은 본 소년 風を見た少年 The Boy Who Saw The Wind''오오모리 카즈키' 감독의 작품으로 2000년도에 선을 보인 애니메이션입니다.


오오모리 카즈키 감독은 1980년 '히포크라테스들'이라는 청춘 영화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요 '고질라 vs 모수라' 등 여러 작품의 영화를 감독한 분이시기에 정통 애니메이션 감독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바람은 본 소년 風を見た少年 The Boy Who Saw The Wind'은 'C. W 니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의 '최우수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경력의 작품입니다. 영화 속의 음악들은 '체코 필하모닉 실내 관현악단'이 연주 했다고 합니다.


영화의 평들이 대체로 '짜깁기'한 느낌이 든다라는 건데요.

신화의 내용을 끌어오는 것, 전쟁을 통해 선과 악을 대별하는 것, 사람을 포함한 모든 자연 만물들은 동등하다는 것, 절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소년/소녀가 주인공인 것, 첨단과 레가시가 섞여 있는 것 등등등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공통된 모습이지요.


저는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욕심이라는 것이 인간 세상을 어떻게 변화 시켜 가는지,

사람의 상처가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 조금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인공 소년은 '바람의 부족' 후손 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능력이 어디에서 온 것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폭력의 소용돌이에 떠 밀려 부족의 발원지에까지 오게 됩니다.


그 곳에서 수만 년을 '후손을 기다림'으로 생을 이어오던 수호신 곰을 만나게 됩니다. 다음은 수호신 곰의 이야기입니다. 다툼과 폭력 더 나아가 전쟁과 죽음으로 인도해가는 '욕심'의 힘을 담담하게 전해 줍니다.


"하늘을 난다는 건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는 증거야
바람의 부족들은 그 날 하루 먹는 것에 만족하며
욕심을 내거나 집착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느 날...
나무열매를 탐내는 사람이 생겼어
그는 주머니에 가득 찬 열매 때문에
날 수 없을 정도가 됐지
어느새 모두들 그를 따라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더 이상 날 수 없게 돼 버렸지"


"나는 것을 포기한 그들은 이렇게 비참하게 끝이 났어
자기가 가진 열매에 만족하지 못한 그들은
서로 약탈하기 시작했지
그들 중에 스스로를 황금용의 부족이라며 무기를 가진 자가 나타났어

기가 없는 바람의 부족과 우리는 저항도 못하고 죽어만 갔다"


"그들은 이 땅에 왕국을 세우고 전 세계를 손에 넣기 위해 전쟁을 계속했지
그러나 힘으로 흥한 자는 힘으로 망하는 법!
왕국이 번성하자 이번엔 활을 가진 무리가 나타났다.
황금용 부족들은 죽임을 당하고 동굴에 숨겨둔 보물도 모두 빼앗겼지"

[꼬마주인공] "무서운 얘기네요"

"그게 우리가 걸어온 삶이지"

[꼬마주인공] "만약 모두가 욕심 없이 살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죠?"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느냐?"


영화 속에는 소년과 소녀 주인공과 그녀의 엄마 세 사람이 바다의 신을 향 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고, 그 은혜 속에서 우리 모두의 안녕을 지켜 주소서.."


감사함과 욕심의 차이는 자족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자족을 갈등에 빠트리는 것은 발전이라는 거울 앞에 오늘과 내일인 것 같습니다.


진정한 자유 속에 일용할 양식이 약속되어지고 평화가 가득한 속에서 나타난 '내일'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 사람은 영화 속, 악의 정점 입니다. 일명 나쁜나라 대장이지요.

이 사람의 욕심이 모든 소용돌이의 힘인 것으로 영화는 이야기 합니다.


위 화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이 사람의 속 고백 전과 고백 후의 모습입니다. 아래의 얼굴은 뭔가 편안해 보이지 않나요?


이 사람의 마지막 독백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어릴 적 난 항상 외톨이었다
그건 이상한 체험이었지
전쟁의 신의 목소리가 나에게 들려온 것이다

나를 삼켜 보렴!
이제 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란다

아무리 악하더라도 강한 자에게는 사람이 모여든다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 그게 훨씬 좋았다
혼자라는 사실이 나는 너무나 무서웠다."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사람도 어릴 적에 홀로 남게 되었나 봅니다.

어린 눈과 몸에 비쳐지고 달려드는 세상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알 수 있겠지요?


무서웠답니다.

외로웠답니다.

그래서 사랑을 가지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사랑의 주인공인 사람을 소유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 훨씬 좋았답니다.

그렇게 자기 좋은 것만 찾다보니 죽음의 순간까지 놓을 수 없었던 겁니다.


영화는 욕심으로 채워져 가는 세상의 모습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은 역시 '관심과 배려와 이해로 융합된 사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바람의 부족은 다시 사라져 버리나요?"

"아니, 사라지는 게 아니란다
너의 모든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게 되는거지
그건 영원한거야"


꼭 한 번 보시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과 배려와 이해로 비쳐지는 '사랑'을 실천 합시다.

아자~~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는 짐 자무쉬 감독의 2003년 작 입니다.

영화는 마치 연극과 같이 11편의 단편을 막 구성으로 묶어 놓은 옴니버스입니다. 각 편마다 흑백의 영상, 커피와 차, 담배, 테이블, 대화자, 그들이 던지고 받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지만 귀를 쫑긋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전부인 영화입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각 편마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도 대단한데요. 그들의 동작, 몸짓, 목소리의 고저장단 등이 그들이 왜 칭송받고 왜 이 영화에 출연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각 편마다 대화의 경계 및 매개 역할을 하는 테이블의 모습입니다.

각 편마다 테이블의 바로 위에서 촬영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얼핏 어지럽고 지저분한 모습이지만 제겐 그 모습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보이시죠?

테이블의 모습.


대사도 참 재미난 것이 많은데요. 이를테면,


"자기 전에 그걸(커피) 마시면 더 빨리 꿈을 꿀 수 있거든요..."

"담배와 커피, 실로 오묘한 조화"

"적당한 온도에 적당한 색깔"

"잔디는 항상 더 파래지려고 해"

"니콜라 테슬라, 그는 지구를 음향공명의 거대한 양도체로 인지했다."


어쩌면 뜬금없기도 하고 일상적인 것 같기도 하며 뭔가 있는 것처럼 깊게 들리는 대화들이 어지럽지만 경계와 매개를 나타내는 저 위의 테이블들과 같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어 표현 됩니다.


저는, 문득 '음향공명'이란 말의 뜻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검색해보니 '공명'에 다음과 같은 우리말 표현이 있더군요.


'맞울림'


자무쉬 감독은 이 '맞울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테이블과 같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우리네의 일상은 시공을 넘어 '음향공명'의 효과를 증폭 시켜 서로의 제대로 된 맛을 높여 주는 '커피와 담배'처럼, '맞울림'의 에너지 전달만이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 밤, 별과의 공명을 위한 커피 한 잔....


옥상 위의 별이 더 없이 정답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anga0713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