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요한복음 16장 1-7절

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 (요한복음 16장 1-7절)

<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 >

 한 학생이 사춘기 때부터 이성에 대해 눈을 떴다. 이성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점점 강해졌는데 외모가 떨어져 이성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외모를 포기하고 싸움 기술을 길러 동급 남학생들을 힘으로 무릎 꿇렸다. 또한 또 다른 힘의 표식인 폭넓은 친구관계를 쌓았다. 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많으냐가 힘의 표식이기에 그도 힘 있고 싸움을 잘하는 친구를 많이 사귀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친구 관계는 다 끊어졌다.

 점점 성숙해지면서 그는 ‘삶의 넓이’보다 ‘삶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삶뿐만 아니라 신앙에서도 ‘넓이’보다 ‘깊이’가 중요하다. 성숙이란 ‘넓이’보다 ‘깊이’가 중요함을 아는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예수님 말씀은 ‘넓은 삶’보다 ‘깊은 삶’을 도전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성령으로 다시 오신 것도 ‘깊은 삶’과 더불어 ‘깊은 위로’를 주시려는 깊은 뜻이 있다.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님의 사역은 결국은 같아도 굳이 차이를 둔다면 예수님의 사역은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선교사 사역이고 성령님의 사역은 위로와 평안과 능력을 주시려는 목회자 사역이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불안에 떨던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성령님의 임재는 하나님 아버지가 성도 안에 임재하시고 거하시는 것과 같은 것이지만 아직도 많은 성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현존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아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가끔 큰 문제를 만나고 삶이 힘들면 고아처럼 버려진 느낌이 든다. 그런 약한 감정에 빠지지 말라.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성령충만한 삶으로 나를 부르시고 성령의 임재를 통해 상상을 초월한 은혜를 주려고 내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살면서 힘들고 피곤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다. 문제는 참된 위로자가 별로 없다는 현실이고 그 현실이 더 사람을 낙담시킨다. 자기도 약한데 남을 어떻게 위로하는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서로 위로자가 되어주라. 남을 위로하는 것은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위로가 없어도 실망하지 말라. 가장 든든한 위로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한 후부터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느끼든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상관없이 성령님은 늘 나와 함께 하셔서 놀라운 평강과 위로를 주신다.

< 성도의 근심거리는 감사거리다 >

 예수님의 유언 설교인 다락방 강화에는 위로의 말씀이 많다. 왜 그런 위로의 말씀을 하셨는가?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1절). 왜 당시 사람들이 제자들을 핍박하는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2-3절).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간다고 했을 때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했다(5-6절). 그때 예수님이 실상을 말씀하셨다. 본문 7절 전반부를 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제자들이 근심하는 것은 실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 어떤 근심이 있다면 그 근심이 실상이 아니다. 사랑 받는 성도의 근심거리는 사실상 유익거리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했다. 어떻게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유익이 되는가? 언뜻 보면 이해되지 않는다. 한 엄마가 어린 자녀에게 “얘야! 내가 죽는 것이 너에게 좋은 일이야.”라고 하는 말이 자녀에게 어떻게 이해되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 좋다고 말씀했다.

 살아서 재림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 얼마나 좋은가?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나누고 싶은 사랑의 밀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먹기와 신앙의 깊이에 따라서는 재림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좋은 것이 있다고 예수님을 말씀했다. 그것은 본문 7절 말씀처럼 ‘보혜사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으로 가능하다. 예수님은 ‘성령을 주신 것’이 ‘예수님이 친히 이 땅에 계신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 말씀은 성령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한다. 왜 ‘성령의 오심’이 ‘주님의 현존하심’보다 더 좋은가?  

 첫째, ‘주님과의 만남’에서 공간적 제약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주님과의 만남’에서 내면적 깊이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현존하면 성도의 마음과 영혼에 직접 임함으로 보다 깊고 차원 높은 방식의 대화가 이뤄진다. 그 대화는 실제적인 언어와 생각뿐만 아니라 언어로 완전히 전달할 수 없는 신비한 기름부음과 영적 감각으로 이뤄진다. 성령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깊은 차원에서 받아 누리는 은혜를 생각할 때 예수님이 ‘무소부재하시고 현존하시는 능력’을 지닌 성령으로 다시 오신 것은 무엇보다 깊은 감사거리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Posted by manga0713

 

 

 

 

 

 

 

120. Father, Your Holy Spirit reminds us to pray first. Today, we commit to doing so as your Spirit prompts us.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께서 먼저 기도하라고 깨우쳐주십니다. 오늘도 성령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대로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소서.

 

 

119. Healer and Redeemer, thank You for holding us and healing us with Your endless love. Help us find in Your love the courage to follow You and share Your love with those around us.

치유자와 구원자가 되시는 주님, 주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치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도와주소서.

 

 

118. Abba, Father, I praise You for carrying me through life. Please give me faith to trust that You are always with me.

아바 아버지, 저를 평생토록 인도해주셔서 찬양드립니다. 주님께서 늘 저와 함께 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117. Dear Lord, open our eyes to see and learn more about You from Your creation.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당신의 창조물을 통해 당신에 대하여 더욱 많이 보고 알게 하여 주옵소서.

 

 

116. Lord, sometimes our guilt and shame can feel so heavy. Help us to release our past and its pain to You and experience Your peace, knowing You have carried it all and have set us free.

주님, 가끔은 저희의 죄와 부끄러움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담당하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서, 우리의 과거와 그 고통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평안을 누리게 도와주소서.

 

 

115. Father, in a world where we are sometimes threatened, we are comforted because of Your gracious care for us—in and through the Lord Jesus Christ.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위협적인 세상에서 살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보살펴주시니 우리가 평안을 누립니다.

 

 

114. To write the love of God above would drain the ocean dry. Nor could the scroll contain the whole, though stretched from sky to sky. [F.M. Lehman]

하늘은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113. God, strengthen our faith in You so that when we face trials, or even approach death, we can sing with confidence about Your love.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셔서 우리가 시련을 만나거나 죽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담대히 노래할 수 있게 해주소서.

 

 

112. Thank You, Lord, for understanding my language and innermost longings. When my prayers are weak and dry, please bear me up through Your Spirit who helps me.

주님, 나의 말과 마음속 깊은 소원을 다 아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기도가 연약하고 메마를 때 성령님의 힘으로 이겨내게 하소서.

 

 

111. Father, thank You for delighting in us, so much so that You even sing over us! Help us to embrace Your tender love and “hear” the songs You sing.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노래를 “귀로 들을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소서.

 

 

110. Dear God, may Your light shine out of the very cracks of our beings as we hold out the Word of life to others.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가 생명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드러낼 때 당신의 빛이 우리 인생의 깨어진 틈으로 새어나가 빛을 비추게 해주소서.

 

 

109. Lord, I’ve failed You again. Please forgive me again. Change me. Turn me around. Teach me to follow Your ways.

주님 제가 주님을 또 실망시켰습니다. 다시 한 번 저를 용서해주소서. 변화시키시고 회복시켜 주소서.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가르쳐주소서.

 

 

108. Loving Father, there is so much wrong in the world. Help us to have the courage to respond with Your heart to the struggles of our day. Thank You for enabling us, in Jesus’s name, to stand firm in difficult times.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는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많습니다. 오늘의 어려움에 당신의 마음으로 반응 할 수있는 용기를 얻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려운시기에 굳건히 서 있게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107. Lord, I am needy. I want to share my heart with You now. Help me to humbly receive the help of others also.

주님, 나는 궁핍합니다. 나의 마음을 주님과 지금 나누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겸손히 받을 수 있게 하소서.

 

 

106. Father, we give You our thanks for rescuing us and making us right with You. We humbly ask for Your Spirit’s guidance as we serve You today.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섬길 때 겸손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합니다.

 

 

105. Lord, thank You for showing us what it means to love. Help us to love like You.

주님, 우리에게 사랑의 본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104. Thank You, Jesus, for the unity all believers can enjoy in You. Help us to serve together as equal members of Your body.

예수님, 주님 안에서 믿는 자 모두가 하나 되어 즐거워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같은 주님의 지체로서 함께 섬기게 도와주소서.

 

 

103. Jesus, You desire that no one would go hungry. Open our eyes to the ways we can help those in need. May we share Your love, for Your glory.

예수님, 주님은 아무도 굶주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볼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102. Teach me, O God, to put You first in everything I do. Show me how to take delight in You, that my heart will be transformed to be like Yours.

하나님, 제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우선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소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길을 보여주셔서 제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하소서.

 

 

101. Dear God, thank You for the encouragement we receive from Your Word. Help us to persevere in doing good.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인내하며 선을 행하게 도와주소서.

 

 

100. Loving heavenly Father, we are so prone to look at what other people “deserve” and so quick to miss the fact that we need Your love as much as everyone else. Help us live in Your love and to tell others about it.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다른 이들이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잘 보면서 우리도 그만큼 주님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은 잊어버립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살면서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소서.

 

 

99. Dear Father, help me express my love to You in beautiful ways.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 나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게 하소서.

 

 

98. Father, we praise You for placing us in Your spiritual family. Help us to learn and grow through the wise words and godly behavior of mature believers.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영적인 가족 안에 속하게 해주셔서 찬양드립니다. 성숙한 신앙인들의 지혜로운 말과 경건한 행동을 통해 서로 배우고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97. Lord Jesus, thank You for the people You’ve put in my life to encourage me. Help me to also encourage others.

주 예수님 저를 격려하기 위하여 나의 삶 속에 많은 사람들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많은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96. Father in heaven, please help us to find courage in Your whisper—and in the ways of Your Son. Have mercy on us for not seeing beyond Your power to a love we’ve barely begun to know.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속삭임과 예수님이 가신 길에서 용기를 얻게 하소서. 하나님의 능력 너머 저희가 알지 못했던 그 사랑을 보지 못한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95. I’m grateful, God, for the love You lavishly pour on me. Please bring me contentment in You and confidence in what You are doing in me.

하나님, 제게 넘치도록 부어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며, 제 안에서 행하시는 일에 확신을 갖게 해주소서.

 

 

94. Father, You have permitted this season in my life. Help me to be content in the midst of it, and to recognize Your power and might are at work.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내 인생에 이 시기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시기에 만족하며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능으로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소서.

 

 

93. Lord God, how vast is Your love for me! You keep me ever before You. I know You’ll never leave me, and I’m grateful.

주 하나님,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요! 저를 항상 주님 앞에 지켜주시고 저를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92. Thank You for those who shared Your love with me, Father. Please help me to point others to Your salvation today.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사랑을 저에게 나누어준 사람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주님의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91. Lord, thank You for reminding us You hear every prayer.

주님, 주께서 모든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90. God, thank You for leaving us Your inspired Word. Help us to read it carefully, interpret it correctly, and apply it enthusiastically in our lives.

하나님, 우리에게 주님의 영감으로 쓰인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 깊게 읽고, 바르게 해석하여, 삶 속에서 열심히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89. Father, I long to know You more. Only You can satisfy my deepest desires.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오직 당신만이 제 깊은 곳의 간구를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88. Thank You, Father, for providing salvation through Your Son, Jesus. I love You.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87. God, help me to use my time well and to fill my mind with what is pure.

하나님, 제가 시간을 잘 사용하고 정결한 것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86. Father in heaven, thank You for calling us by name and surrounding us with Your love, today and forever.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오늘, 그리고 영원히 사랑으로 감싸주시니 감사합니다.

 


85. Father, thank You for Your constant care for our souls.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영혼을 언제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84. Faithful Father, thank You for Your love that never changes! Help me to love You by serving You faithfully today.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결코 변치 않는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신실하게 섬김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도와주소서.

 

 

83. Lord, help me to seek Your strength instead of my own. May I be willing to recognize what looks like weakness so Your power may show through my life.

주님, 내 힘이 아닌 당신의 힘을 찾도록 도와주십시오. 나의 약함이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임을 나의 전인생을 통해 증거되기를 원합니다.

 

 

82. Lord, thank You for teaching me not to discriminate among people. Help me to see people through Your eyes so that I may honor You.

주님,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눈을 통해 사람들을 바라봄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81. Loving Creator of the universe, thank You for being mindful of us.

우주의 창조자이신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생각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80. Lord God, I want to build my house on a rock. Help me to know that my solid foundation rests in You, with Your Word giving me wisdom and strength.

주 하나님,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싶습니다. 나의 든든한 기초는 주님 안에 있으며 주의 말씀이 제게 지혜와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79. Lord, You have shown tender care for me over the course of my life. You’ve been present with me in difficult seasons. Help me to always remember Your love.

주님, 주님은 제 삶의 모든 과정을 언제나 다정하게 보살펴주시고 힘든 시절에는 제 곁에 계셔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언제나 잊지 않게 도와주소서.

 

 

78. Loving Lord, please help me to trust You to take care of me today, tomorrow, and forever!

사랑의 주님, 주님께서 오늘도 내일도 또 영원히 나를 돌보아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77. Father, I thank You for the privilege of serving You. Help me to spend regular time with You in order to grow in my knowledge of You.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자랄 수 있도록 주님과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소서.

 

 

76. Lord, please help us remember You own it all as we commit to giving You our all, willingly and selflessly.

주님, 우리의 모든 것을 기꺼이 아낌없이 주께 드릴 때 모든 것이 주님 것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75. Lord Jesus Christ, I am humbled and amazed that You would come and live in me. Help me to share this amazing gift with those I meet today.

주 예수님, 주님이 오셔서 제 안에 사신다니 너무나 과분하고 놀랍습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과 이 놀라운 선물을 나눌 수 있게 도와주소서.

 

 

74. Lord, sometimes we must simply pray: “I believe. Help my unbelief.” Help us trust You by doing what You have given us to do today.

주님, 때로는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는 짧은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일들을 행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73. Dear Lord, thank You for loving us, despite our sin, and for making a way for us to be with You forever!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72. Lord Jesus, I receive the gift of forgiveness You offer me through the cross. Help me to turn from my sins and follow You, all the way home.

주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 주님이 주시는 용서의 선물을 받습니다. 본향에 이르기까지 늘 죄에서 돌이켜 주님을 따를 수 있게 도와주소서.

 

 

71. Jesus, thank You for giving Your life for us. Help us trust You as we grow into followers whose lives look more and more like Yours, knowing that You are the one who makes us complete.

예수님,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이 우리를 완전하게 하시는 분임을 알고 주님을 닮아가는 제자로 자라가게 하소서.

 

 

70. Father, sometimes my perspective is so flawed and limited that it can derail me. It can drive me to look only at the moment and its challenges, rather than looking to You. Help me to have the long view, trusting You for the things I can’t see and Your heart for the provision I need to face whatever comes.

아버지, 결함 많고 좁은 나의 시각은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그 순간과 도전만을 보도록 나를 몰아 탈선 시킬 수 있습니다. 내게 넓고 깊고 넓은 시각을 주셔서 믿음으로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당면해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69. Lord, help me to turn to You in the midst of my busyness and life’s distractions. Thank You for always being here, ready to catch me.

주님, 바쁜 생활과 혼란 속에서도 주를 향하게 하소서. 언제나 바로 옆에서 저를 붙잡을 준비를 하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68. Dear God, remind me of my need for Your daily bread of presence.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 제게 매일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소서.

 

 

67. Lord, we have so many questions about life and its unfairness. You have shown Yourself good to us. Help us to trust You for what we cannot understand.

주님, 우리는 인생과 삶의 불공평함에 대해 많은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선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주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66. Thank You, Lord, for being my guide through troubled waters. Help me to trust You even when the journey is wild and scary.

주님, 거친 풍파 속에서도 저를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여정이 험하고 두려워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65. Heavenly Father, all of the time I have is in Your hands, a gift from You.

Please show me how to use it to bring glory and honor to You.

하나님 아버지, 제게 있는 모든 시간이 주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영화를 돌리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소서.

 

 

64. Thank You, Father, for walking with me on this difficult journey and hearing me when I cry out to You.

하나님 아버지, 이 힘든 여정에 저와 동행해주시고 저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63. Lord, help me to tackle everything on my plate today with grace, enthusiasm, and joy, knowing that my attitude may affect others in ways I’m not even aware of.

주님, 저의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저도 모르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제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은혜와 열정과 기쁨으로 해낼 수 있게 도와주소서.

 

 

62. Lord, thanks for demonstrating Your endless love to Your people, in our lives and through the words You preserved in Scripture.

주님, 우리의 삶과 성경에 보존하신 말씀을 통해 주님의 백성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61. Father, we ask You to fill our hearts with Your love for others. We hold up to You and beg for them to see the truth about Your Son Jesus.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들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주소서. _________를 주님께 올려드리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있게 하소서.

 

 

60. When life overwhelms me, Father, help me to remember that You are powerful and You care. May I, like Elijah, cling to You in faith, knowing that You work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You.

삶이 나를 억누를때, 아버지의 강하심과 도우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심을 기억하며 엘리아와 같은 믿음으로 당신에게 굳건히 붙어 있게 하옵소서.

 

 

59. Father, You have made me to give to others just as You have given to me.

Teach me to give so that I can truly reflect Your character and be more like You today.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처럼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베풂으로 주님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더 주님을 닮을 수 있게 해주소서.

 

 

58. Dear God, help me to explore the depths of Your love. I want to give to others what You have given to me.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의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게 도와주소서. 주님께서 제게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57.

Lord, help us know how to encourage others who need a spiritual boost from us.

주님, 영적인 활기를 찾아야 할 사람들을 어떻게 격려할 수 있을지 가르쳐 주소서.

 

56. Father, help us not to remain trapped in our sin and despair. Help us turn to You with our burdens, trusting Your love and power to write a new story of healing and transformation.

하나님 아버지, 죄와 절망에서 우리를 나오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으며 우리의 짐을 주님께 내려놓고 치유와 변화의 새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도와주소서.

 

 

55. Father in heaven, we are awed by Your love for us that never changes, never fails, and never ends. We praise You for demonstrating Your limitless love for us through Jesus our Savior and Lord.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변함없고 그침 없고 끝도 없는 사랑은 놀라울 뿐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을 보여주심을 찬양합니다.

 

 

54. Heavenly Father, we can’t thank You enough for the radical love of Your Son, who drew all of us outcasts and moral failures to Him, and made the way for us to come to You in joy and boldness.

하나님 아버지, 버려진 자들이요 도덕으로는 실패한 우리 모두를 당신께로 가까이 불러주시고, 기쁨과 담대함으로 당신께 나아갈 길을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에 다함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53. Lord, please equip me with Your strength to persevere and finish the tasks You’ve given me. May my labors bring You glory.

주님,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인내로 계속하며 끝마칠 수 있도록 주님의 능력을 주소서. 저의 수고가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52. Lord God, thank You for being the light in the darkness. Bring hope when I’m sad and confused, and help me to see Your glory.

사랑하는 하나님, 어둠에서 빛이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슬프거나 혼란스러울 때 소망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51. Father, thank You for loving us so much more than even the best father here ever could. Help us to do as Jesus said with everything that’s on our hearts; to ask, seek, and knock in our relationship with You.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서 최고의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과의 관계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소서.


 

 

50. Lord, please help us trust Your abundant love and generosity, so we can give to others as You so faithfully give to us.

주님, 주님의 넘치는 사랑과 너그러움에 의지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신실하게 베푸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베풀게 하소서.

 

 

49. hank You, Father, for the acts of others You use to lift us up, and for calling us to do the same.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이 하는 일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또 우리에게 같은 일을 하라 하시니 감사합니다.

 

 

48. Lord, so often we exchange the joy and freedom of life with You for the burden of relying on ourselves. Help us to humbly rely on You instead. Help us to grow ever-deeper roots in Your love.

주님,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는 삶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자신을 의지하다 고생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겸손히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47. Dear Lord, thank You for knowing us so well and for providing what we need most. Give us eyes to see You and a heart to understand Your Word.

사랑하는 주님,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고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볼 수 있는 눈과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46. Lord Jesus, thank You that there is nowhere I can go that is outside of Your loving gaze. Knowing You see me, help me to honor You with my words and actions.

주 예수님, 제가 어디를 가든 당신의 사랑의 눈길이 머물지 않는 곳이 없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저의 말과 행동으로 주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45. Lord Jesus, You conquered sin and death forever through Your cross and empty tomb! Help me to live and thrive in the forgiveness only You can give.

주 예수님,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을 영원히 이기셨습니다!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용서 안에 거하며 자라가게 도우소서.

 

 

44. Dear Lord, I thank You for heaven, my eternal home.

사랑하는 주님, 나의 영원한 집인 천국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43. Father, teach us who You are. Increase our trust in You. Fill our minds with Your perspective.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가르쳐주소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주소서.

 

 

42. Lord, thank You for being so trustworthy. I need no other promises but Your word. Help me to trust You more and more each day.

주님, 당신의 신실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말씀 외에는 그 어떤 약속도 필요 없습니다. 매일 매일 주님을 더욱 더 신뢰하게 하소서.

 

 

41. Thank You, Lord, that You always know where I am and how I am doing. You know me inside and out. I’m thankful I can count on You to care.

제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항상 아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저의 안과 밖을 다 아십니다. 돌보시는 주님을 의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40. Lord, sometimes the struggles we face in life seem so big. But You are bigger. Help us to cling to Your promise of comfort in fearful moments and to experience Your loving provision as we trust You.

주님, 삶에서 부딪치는 일들이 때로는 너무 커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크십니다. 두려울 때에 평안 주시는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주님을 의지할 때에 사랑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하소서.

 

 

39. God, thank You for welcoming us into Your family and the community of faith. Give us hearts and homes that welcome others too.


하나님, 우리를 당신의 가족으로 신앙의 공동체로 맞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38. Father, when things change in my life, help me not to be anxious but to trust You and find contentment in You alone.

하나님 아버지,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 걱정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찾게 하소서.

 

 

37. Heavenly Father, thank You for not valuing people based on outward appearances but instead by looking at our hearts. Help me to take the time to see beyond simply what my eyes can see in order to discover true and lasting beauty.

하나님 아버지,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보시고 사람을 평가하시니 감사합니다. 진실하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찾아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것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게 하소서.

 

 

36. Praise God! Praise You, Lord, for the wonder of the earth You created.

하나님을 송축하라! 주님, 주께서 창조하신 이 땅의 경이로움을 인하여 찬양 드립니다.

 

 

35. Lord, thank You that You are making all things new. Help us to live in the hope of the day we will live with You, pure and blameless, on a new earth in Your presence forever and ever.

주님,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새 땅에서 영원히 주님 앞에 순결하고 흠이 없이 함께 살게 될 그날을 소망하며 살게 하소서.

 

 

34. Thank You for watching over our loved ones and us, Lord.

주님, 우리와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33. Father in heaven, may we honor You today by loving others and speaking gently and respectfully to them when they ask about the hope we have in You.

다른 사람들이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게 하소서.

 

 

32. Lord, thank You for the gift of salvation and Your promise to enter when we open the door. Please help me to respond to this gift and open the door for You today.

주님, 구원의 선물을 주시고 우리가 문을 열면 들어오신다는 약속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이 선물을 받고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도록 도와주소서.

 

 

31. Lord, let us not love just in words, but in actions and in truth. Teach us to be obedient to Your call to love.

주님, 우리가 말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게 도와주소서. 사랑하라는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도록 가르쳐주소서.

 

 

30. 주님, 제가 전심으로 주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Lord, help me to seek You with all my heart.

 

 

29. Lord God, You have released us from our chains of unbelief and given us words to praise You. May we share this freedom with others for Your glory.

주 하나님, 주님은 우리를 불신의 멍에에서 풀어주시고 주님을 찬양할 말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른 이들과 이 자유를 나누게 하소서.

 

 

28. Lord, forgive me for sometimes revisiting my past and forgetting that You have washed away my sins. Thank You for taking my burden and setting me free to enjoy living for You.

주님, 때로 과거로 돌아가 주님께서 제 죄를 깨끗게 하신 것을 잊어버리는 저를 용서해주소서. 저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고 주님 위한 삶을 자유롭게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27. Thank You for Your gift of life eternal. May we acknowledge and honor You throughout this day.

주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 내내 주님께 감사하며 경외하게 하소서.

 

 

26. Heavenly Father, we all come from families that are broken in one way or another. Thank You for loving us in that brokenness and for showing us what real love looks like.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는 모두 여러 모양으로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런 깨어짐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참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25. Lord, forgive me for chasing after things that matter far less than my fellowship with You. Thank You that You stand ready to enrich my life with Your presence and power.

주님, 주님과 교제하는 것보다 훨씬 덜 중요한 일들을 쫓아다녔던 저를 용서해 주소서. 당신의 임재와 능력으로 언제나 제 삶을 풍성케 해주시려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4. Father, You have given us all the time we need to accomplish what You have given us to do. May we use our time in ways that honor You.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성취하도록 모든 시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우리 시간을 사용하게 하소서.

 

 

23. Lord, grant me the strength to serve You with every breath I take, so that every moment of my remaining days matters to Your Kingdom.

주님, 살아 숨 쉬는 매순간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남은 모든 순간이 주의 나라에 의미 있게 하소서.

 

 

22. Heavenly Father, please help me be quicker to console or encourage, and slower to judge someone else.

하나님 아버지,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은 속히 하고, 판단은 더디 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21. Lord, so often we feel trapped by our mistakes, thinking there’s no future left for us. Remind us that you are the God of Jacob, the God who will never give up on Your purposes for us.

주님, 우리는 자신의 실수에 발목 잡혀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은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목적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분이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20. Dear Father, thank You for being my Rock and my safe place.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19. Lord, thank You for the promises in Your Word that assure us You’ve planned our path and remain with us and for us, no matter what comes our way.

주님,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주님이 우리의 길을 계획하셨고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18. Lord, hard things in our lives can tempt us to believe we are unlovable. But You say otherwise. Please help us to receive the life-transforming gift of Your everlasting love for us.

주님,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가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영원한 사랑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소서.

 

 

17. Thank You, Lord, for hearing my discouragement and being my defender. Help me to evaluate the good and bad in the criticism, to trust You, and to continue in my work wholeheartedly.

주님, 저의 낙담을 들으시고 제 보호자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판 속에서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잘 가려서 듣고 주님을 의지하여 온 마음으로 일을 계속해 나가게 도와주소서.

 

 

16. Beautiful Savior, I am Your servant. Please help me to live in Your love and be a blessing to someone today.

아름다우신 구주여,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오늘도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게 하소서.

 

 

15. Loving Father, living Jesus, comforting Holy Spirit, thank You that You know me completely, and that You love me unceasingly.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살아계신 예수님, 위로의 성령님, 나를 완전히 아시고 끊임없이 사랑하심을 감사드립니다.

 

 

14. Lord, thank You for guiding and caring for us every step of the way. Help us to trust in You daily.

주님, 우리의 발걸음마다 인도하시고 돌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하루하루 신뢰하게 도와주소서.

 

 

13. Lord, help us to represent You to others. Guide us to show hospitality in a way that will show others Your love.

주님,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드러내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도록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게 하소서.

 

 

12. Lord, thank You for being a Father we can always count on.

주님, 우리가 항상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11. Lord Jesus, I want to be more like You each day. Help me to cooperate with the work You want to do in my heart.

주 예수님, 매일 주님을 더 닮기 원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 안에 역사하실 때 나도 함께 힘쓸 수 있게 하소서.

 

 

10. Dear Lord, help me to work with others, side by side, by showing love and pointing others to Jesus.

사랑하는 주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때 사랑을 보여주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게 하소서.

 

 

9. Father, open the eyes of my heart to clearly see who Jesus is and what He can do.

하나님 아버지, 제 마음의 눈을 열어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잘 볼 수 있게 하소서.

 

 

8. Dear Lord, as I read Your Word, open my eyes that I may discover the wonders of Your revelation.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의 놀라운 계시를 발견하게 하소서.

 

 

7. Dear God, help me to find my rest in You.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6. Jesus, we again stand in awe at Your sacrifice. We kneel in Your presence and with gratitude acknowledge what You did for us on the cross. Thank You for making it possible to have fellowship with the Father forever.

 

예수님, 우리는 주님의 희생에 다시 한 번 경외감을 표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감사를 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토록 교제가 가능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 Abba, Father, thank You that I can come to You without fear of having to get my words just right. Help me to keep company with You today.

하나님 아버지, 말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Father, in the midst of troubles, help me to focus on Your promises.

하나님 아버지, 환난 때에 주님의 약속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3. Lord, we thank You for those who serve their communities as First Responders. We humbly ask You for their safety.

주님, 응급요원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는 분들을 보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시기를 주님께 겸손히 간구합니다.

 

 

2.

Lord, You are my friend when I feel alone. Thank You for being with me in the dark caves of life.

주님, 내가 외롭다고 느낄 때 주님은 나의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삶의 어두운 동굴에서 나와 함께 계시니 감사합니다.

 

1. Father, open our eyes today to what’s beautiful. Teach us to meditate on You.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름다운 것들에 우리의 눈을 열게 하소서. 주님을 묵상하도록 가르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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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prayer, 기도

 

 

 

 

본문말씀 : 요한복음 14장 14-27절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의 3가지 약속 (요한복음 14장 14-27절)

1.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약속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다(14절). 진실한 기도는 평범한 사람도 위대한 능력자로 만든다. 엘리야가 기적의 선지자가 된 비결은 특별한 능력과 성정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도 실수했고 낙심했고 방황했다. 그래도 기적의 선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간절한 믿음의 기도 때문이었다(약 5:17). 간절한 기도는 환경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나를 변화시킨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끝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억울합니다. 복수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 기도에는 응답이 없다. 그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응답하신다고 했잖아요.”라고 항의할 수 없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만 빌려 기도한 것이지 예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을 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복권을 산 후 기도했다. “하나님! 복권에 당첨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 기도도 응답이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원리를 모르면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말씀이 부도가 잘 난다고 여긴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과 원리에 합당한 기도를 드려야 하기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기도응답의 필수조건이다(21절).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에 합당한 것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그 기도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되어 하나님을 일하시게 만든다.

2.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

 예수님은 떠나시면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16절). 만약 예수님의 뒤를 이어 성령님이 오지 않았다면 영혼의 위로자와 상담자인 보혜사도 없었을 것이고 참된 위로도 사라지면서 수많은 축복을 상실했을 것이다. 즉 죄에 대한 인식과 회개, 죄 사함의 확신, 양심의 평화, 성결의 은총, 기도를 돕는 중보의 영, 능력 있는 사역을 위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 성도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능력 등을 상실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떠나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처음에 제자들은 극도로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 한 분만 믿고 고향과 일터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예수님이 떠나면 이제 누구를 믿고 사나?” 그들의 근심 어린 표정과 마음의 눈물을 보시고 예수님은 신속히 확신을 심어주려고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절).” 예수님이 떠난 후 어떻게 다시 오는가? 그러나 곧 예수님은 자신의 뒤를 이어 오실 성령님에 대해 말씀했다.

 예수님을 대신해 제자들과 영원히 거할 성령님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난 예수님의 실상으로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행하셨을 때와 똑같으면서도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더 나은 방식으로 존재하실 분임을 말씀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지만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다(20절). 즉 ‘위로자 성령님이 다시 오신 것’은 예수님을 이전보다 더 실제적인 위로자로 만든 사건이었다.

3. 평안을 내려주시겠다는 약속

 예수님이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질이 다르다. 세상적인 평안은 문제에서 해방되는 것으로서 ‘해결’보다는 ‘도피’에 가깝기에 근본적인 평안 대신 일시적인 평안만 줄 수 있다. 반면에 예수님이 주는 평안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초자연적이고 지속적이고 부작용이 없는 평안이기에 위대한 영혼의 안정제다. 그 평안이 근심과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든다.

 예수님이 주신 평안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야 한다. 참 평안은 외부에서 주어지기보다 거듭난 사람의 마음에서 주어진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란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해야 할 분명한 일을 찾아 하면 그것만으로도 행복과 평안이 넘친다. 그때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신다. 참 평안은 소속이 분명할 때 주어지기에 스스로 자원해서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 매이면 행복과 평안도 넘치게 된다.

 또한 참된 평안을 얻으려면 천국입성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자기 종말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 천하를 가져도 평안이 없다. 천국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게 살라. 주어진 시간을 선용하고 재물을 선용하고 남은 인생도 선용하라. 자기만을 위해 살면 불안이 끊이지 않고 결국 후회한다. 반대로 선교하는 마음을 가지고 힘써 선을 베풀면 신비한 기쁨과 평안이 내면에 차오르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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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신명기 26장 1-11절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5.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라 (신명기 26장 1-11절)

<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라 >

 며칠 전 미국 역사상 3번째로 강력했던 허리케인 마이클이 미국 남부를 휩쓸어 하루 종일 재난 방송을 했다. 다음 날 리포터가 태풍으로 폐허가 된 4층 건물 소유주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무너진 건물 잔해를 가리키며 “너무 태풍이 강력해서 어쩔 수 없지요. 다시 일어서야지요.”라고 하면서 전혀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도에게도 믿는 구석이 있다. ‘믿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 바로 믿는 구석이다. 믿음을 언어와 표정과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고난 중에도 감사를 잃지 않으면 하나님은 놀라운 반전의 역사를 허락하신다. 감사하는 삶의 축복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감사는 인간관계를 견고하게 만들고 삶과 사람과 사물과 사건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든다. 감사가 넘치면 사고와 가치관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도 커진다. 나쁜 일이 있어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감사하고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좋아하지 말고 감사하라.

 좋은 환경에서도 욕구불만이 생길 수 있다. 경기에 이기거나 무엇을 가져서 크게 기뻤어도 며칠 지나면 다시 보통의 삶이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창조하셨기에 천하의 것만으로는 용량이 너무 큰 영혼 탱크를 채울 수 없다. 가장 어리석은 일은 세상 것으로 영혼을 채워 만족시키려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가난한 심령이란 감사가 넘치는 심령이다. 감사하면 하나님은 더 감사거리를 주신다.

 약점 때문에 콤플렉스에 빠지지 말라. 내가 우습게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실제로 남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내 약점을 너무 확대해서 보거나 확대해서 생각하지 말라. 내 장점을 보는 눈을 길러야 습관이 되어 남의 장점도 보는 눈이 길러지면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하나님은 나의 복된 운명을 위해 내게 가장 알맞은 것을 주셨음을 믿고 감사하라. 감사는 행복을 지속시키는 최상의 원료 중 하나다.

<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가? >

 본문의 규례는 가나안의 첫 소산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감사 고백을 하라고 명령한 규례다. 본문 2절에 표현된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은 대개 가장 품질이 좋은 ‘토지의 첫 소산물’이란 뜻이다. 그것을 광주리에 담아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인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로 가지고 가서 드리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우선적인 감사를 드리라는 뜻이었다. 그때 무엇에 대해 감사하라고 했는가?

1. 약속을 이루신 것

 모세는 토지의 첫 소산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나아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이루신 것에 대해 감사하라고 했다(3절).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향한 약속을 이루셨고 앞으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위한 약속이 주어졌다는 객관적인 인식보다 그 약속이 이뤄졌다는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깊어진다. 내가 약속의 자녀가 되기에 부족해도 나를 향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 고백이 저절로 나온다.

 가장 복된 고백 중 하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다. 그런 감사 고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그가 가진 비전은 하나님의 비전으로 변한다. 누군가의 언약 대상이 되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다. 사람과의 약속 대상이 되어도 기쁜데 하나님과의 언약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기쁜가? 내가 하나님의 언약 대상임을 믿으면 영혼에 만족감과 행복감이 넘치고 삶에 거룩한 유쾌함과 상쾌함과 통쾌함도 넘친다. 그것이 성령충만한 삶이다.

 내가 언약 대상임을 굳게 믿으라. 남을 깎아내며 나를 드러내기보다 남을 올려주며 나를 감추라. 그러면 하나님이 신비하게 나를 올려주신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찬란한 계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진흙처럼 보잘것없어도 나를 빚어 가시는 위대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나를 훌륭한 작품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구원받고 감사하는 내가 사람에게는 별 볼일 없게 보여도 하나님께는 가장 사랑스럽게 보인다.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은 나보다 큰 그림을 그리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2. 기도를 들으신 것

 가나안에서 첫 소산물을 바칠 때 고난의 과거를 고백하게 한 이유는 출애굽을 통해 자유롭게 가나안의 소산물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오래 기억하라는 뜻이었다. 그 은혜가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심으로 주어졌다고 했다(6-7절). 기도는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행복의 보고를 열어주는 천국 열쇠와 같다.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고 잠자리에서 감사기도로 하루의 삶을 마무리하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처음에는 혼자 그 문제와 씨름하다가 결국 자기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많다. 문제와 씨름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하라. “내가 오랫동안 무엇을 해서 이만큼 안다”고 하면서 자기 지식과 경험을 너무 믿지 말라.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보다 자기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는 자를 도우신다.

 기도는 내일을 결정짓는 지상 최대의 힘이다. 10년 염려보다 10분 기도가 더 낫다. 기도의 강자가 되라. 혼자 일하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 다른 해결사나 영적인 스타를 찾아 의지하지도 말라. 진실하게 기도하는 내가 해결사다. 다른 것에서는 실패해도 기도에서는 실패하지 말라. 기도하면 응답 이전에 내면에 힘이 생기고 평안과 지혜와 명철도 생긴다. 그것은 기도 응답만큼 중요하다. 기도하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기도하는 일에 실패하는 것이 문제지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하면 궁극적인 실패는 없다.

3. 복을 나누려는 것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기도할 때 하나님은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셨는데 그런 복을 주신 하나님께 토지의 첫 번째 소산물을 드리면서 경배하게 했다(8-10절). 왜 감사 고백과 함께 물질을 드리며 경배하게 했는가? 감사하는 마음의 훈련 목적도 있지만 레위인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과 함께 복을 나누며 즐거워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11절).

 하나님은 감사 예물이 가난한 사역자 및 소외된 이방인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용도로도 사용되기를 원하셨다. 교회 헌금도 교회의 운영이나 목회자의 생활뿐만 아니라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복을 받으면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지만 받은 복을 나누면 감사하는 마음이 더 넘친다. 복은 나눔의 재료가 되어야 영혼을 만족시키는 참된 복이 된다. 나눌 복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나눌 마음을 주신 것도 감사하고 각 사람에게 합당한 복을 나눠주신 것도 감사하라.

 하나님은 내게도 가장 합당한 복을 주셨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면 고난도 복이다. 내게 필요하다고 여기고 주셨기 때문이다. 세균도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 장 속에 가장 많은 ‘박테로이데스’란 세균은 장내 미생물의 16%를 차지하는데 탄수화물과 지방을 분해해 소화를 돕는다. 너무 증식하면 염증을 일으키지만 너무 적으면 비만증, 자폐증, 우울증, 정신분열증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식이섬유를 분해하는 프레보텔라균이 13%,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뇨를 막아주는 페칼리균이 8%가 있다.

 사람 몸에는 적절한 양의 세균도 필요하다. 현미, 조, 견과류, 양파, 마늘 등이 건강에 좋다는 것도 세균의 세력 균형을 돕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왜 항생제 남용을 주의해야 하는가? 좋은 세균도 죽이기 때문이다. 나쁜 세균은 물론 좋은 세균도 너무 많아지면 병을 일으키니까 적절한 항생제 복용은 필요해도 지나친 항생제 복용으로 모든 세균을 다 죽이면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적절한 세균도 몸에 꼭 필요하듯이 하나님은 적절한 기도제목, 고민거리, 고난도 필요해서 있게 하셨다. 그것을 생각하면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다.

< 범사에 감사하는 진짜 부자 >

 가끔 삶의 무게가 무거운 것을 느낀다. 할 일이 많아서 골치가 아프고 스트레스가 되면 일이 더 안 될 때가 많다. 그때 우선순위를 분별해 일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차근차근 하나씩 일을 처리하게 해주신다. 하나를 끝내고 다른 일을 하고 그 일을 끝내고 또 다른 일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해도 결과가 나쁘면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늘 성공적으로 일처리를 할 수는 없다. 일의 결과가 좋지 못해서 체면이 깎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다음번에 잘해서 체면을 살리면 된다.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다만 충성스럽고 진실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을 통해 먼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게 더 많은 것을 맡기리라.”는 칭찬을 들으려고 하라. 선진국을 꿈꾸기 전에 선진국민이 되어야 하듯이 복을 꿈꾸기 전에 먼저 복된 성도가 되라. 그런 복된 성도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삶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다.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기에 사실상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불평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축복은 대개 과거에 뿌린 헌신의 씨앗이 자라난 결과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며 현재 헌신의 씨를 많이 뿌리라. 그에 대한 보상이 이 땅에서는 없고 천국에 가서만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보상이 없다면 천국의 보상이 크다는 말이지 이 땅의 보상과 축복 자체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현재 나보다 누군가가 더 누릴 때 그의 누림만 보지 말고 이전의 땀과 헌신은 물론 그의 선대의 땀과 헌신도 살피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

 감사는 인상을 좋게 하는 최고의 영적 화장품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최대의 영적 자본이며, 병의 치유와 건강의 회복을 돕고 노화를 방지하는 최고의 영적 보약과 치료제다. 또한 암 세포도 꼼짝 못하게 하는 최고의 영적 항암제이고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최고의 영적 진통제다. 범사에 감사하면 불면증도 사라지고 마귀와 두려움과 영혼의 부패도 틈타지 못한다. 복을 예비하는 최고 훈련은 감사 훈련이다.

 한 목회자가 꿈속에서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 어느 집에 갔다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펐지만 스스로 놀랄 정도로 침착하게 대처했다. 그러다가 꿈에서 깼다. 깊은 안도감이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때 꿈속에서 진짜 현실처럼 느꼈는데 왜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평소에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그때도 감사를 잃지 말자.”라고 설교하면서 그런 삶이 습관화되어 꿈에서도 실천된 것이었다. 훈련을 통해 선의 습관화를 이루면 흔들리지 않는 평안과 행복을 얻는다.

 감사는 꿈의 해석도 좌우한다.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면 좋은 꿈은 그대로 펼쳐지고 나쁜 꿈은 반대로 펼쳐진다. 꿈의 내용보다 감사하는 태도가 미래를 좌우한다. 진짜 부자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다. 부자도 불평이 많으면 가난한 자이고 가난해도 감사가 넘치면 부자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도 감사다. 아무리 어려워도 성도는 감사할 조건이 충분하다. 이미 구원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구원에는 사실상 거의 모든 축복이 다 담겨 있다. 그러므로 힘든 일이 있어도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을 잃지 말라.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믿음을 볼 때 가장 감격하신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감사하는 시점부터 그 문제는 해결되는 방향으로 급속히 혹은 서서히 흘러간다. 하나님은 감사 신앙을 무엇보다 기뻐하신다. 성 프랜시스는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최종적으로 죽음을 주신 것도 감사했다. 죽음까지도 감사의 노래로 만드는 사람이 진짜 성령충만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 돌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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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14장 16-17절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의의 말씀을 경험하라 (요한복음 14장 16-17절)

< 성경과 관련된 성령님의 역할 >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다. 성경을 보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은 성령님의 도움 때문이다. 우주는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하다. 귀를 기울이면 수많은 하나님의 음성을 접할 수 있다. 글과 그림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듯이 하나님의 창조물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담겨있다. 그 음성 중에 지상 최대의 음성이 성경이다. 성령님은 말씀과 모순된 입장을 취하지 않기에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늘 성경 말씀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며 성경의 원리와 가르침을 철저히 따른다. 성경과 관련된 성령님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성경 말씀에 대한 해석을 준다. 빛을 보려면 빛을 볼 수 있는 시각기관이 있어야 한다. 눈이란 시각기관이 없으면 빛은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그처럼 말씀을 깨달으려면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시각기관이 있어야 한다. 그 영적 시각기관 역할을 하는 분이 성령님이다. 누가 말씀을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가? 말씀을 주신 분이다. 성령님은 말씀을 그림처럼 생생하고 실제적으로 만든다. 성령님은 말씀에 대한 가장 위대한 주석과도 같다.

 둘째, 말씀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준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마음눈을 밝게 해주셔서 우리의 부름의 소망이 무엇인지, 예수 안에서 받아 누려야 할 기업의 영광과 풍성함이 무엇인지, 우리를 위한 주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려준다(엡 1:17-19). 그처럼 계시의 성령이 찾아오면 마음의 눈이 열려 미래에 대한 넘치는 소망이 있게 되고, 시련 중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셋째, 말씀을 잘 적용하도록 도와준다. 말씀의 실제적 적용을 위해 2가지가 필요하다. ‘말씀을 기억하는 머리’와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이 2가지를 얻으려면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성령님은 필요한 때 필요한 말씀을 기억나게 한다. 선택의 때는 ‘인도하는 빛’으로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유혹의 때는 ‘방어하는 칼’로 말씀을 기억나게 한다. 말씀을 기억해도 마음이 돌밭이면 말씀이 적용되어 열매가 생길 수 없기에 성령님은 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결실하도록 마음을 옥토 밭으로 만들어 말씀이 잘 적용되게 하신다.

< 의의 말씀을 경험하라 >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다(히 5:13). 어떻게 말씀을 경험하는가? 성령님이 믿음을 주셔야 한다. 남의 기적과 치유 얘기를 듣고 똑같이 따라해도 기적과 치유는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믿음이 다 똑같지 않다. 성령님이 주신 믿음과 자기 믿음은 천지차이이다. 아무리 “믿습니다.”라고 침까지 튀면서 소리쳐도 자기 믿음은 소용없다.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체험보다 말씀에 더욱 집중하라. 꿈과 환상 체험만 좇지 말고 꿈과 환상과 비교해 말씀의 상대적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이해해야 한다.

 꿈과 말씀을 비교할 때 꿈은 겨와 같고 말씀은 알곡과 같다(렘 23:28-29). 말씀은 알곡과 같아서 영적 영양가가 있어서 말씀을 먹으면 영혼이 자라지만 꿈은 겨와 같아 말씀이 없이 꿈만 따라 살면 곧 그 영혼은 영적으로 굶어죽는다. 특이한 현상이 없어도 꾸준히 말씀 붙들고 나가면 기적은 일어나지만 특이한 체험을 추구하면 오히려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영혼은 피폐해지고 가정과 교회는 건강을 잃는다.

 한때 아이들 사이에 기절놀이가 유행했다. 사람의 목을 몇 분간 조르면 머리로 피가 전달되지 못해 저산소증으로 정신이 몽롱해지는 쾌락적인 기절 체험을 한다. 기절놀이를 체험한 한 아이는 이런 글을 썼다. “주위의 소리는 점점 들리지 않고, 눈앞에 모든 사물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사물들이 점점 빛나더니 환상적인 광채를 뿌렸다. 몸이 나른해져서 꿈꾸는 듯 했다. 5분 안에 이런 체험을 했다. 친구는 의식이 없는 나를 놔주었고 나는 쓰러졌다. 몽롱한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몇 분 후 다시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입신과 비슷한 그런 체험을 하겠다고 영적 기절놀이를 추구하며 집회를 다니는 교인이 꽤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요새 많은 교인이 ‘더 소중한 것’을 ‘덜 소중한 것’과 바꾸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연약한 인간의 본능을 생각하면 꿈과 환상에 이끌리는 모습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성도는 그런 인간의 본능을 극복하고 말씀의 참된 가치를 깨닫고 말씀 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

 말씀을 멀리하면서 꿈을 추구하지 말라. 말씀을 경험하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다. 그때 기적도 일어나고 회복과 변화의 역사도 일어난다. 누가 말씀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하는가?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다. 성령님은 성도가 말씀을 통해 진정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길을 따라가게 함으로 인생길에 승리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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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빛.소금 공동체 "내안에 거하라!"]

 

 

 

 

본문말씀 : 요한복음 14장 10-12절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믿음이 가져다주는 능력 (요한복음 14장 10-12절)

< 믿음이 가져다주는 능력 >  

 본문은 주님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과 권세와 관련해 2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체험보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어떤 체험을 하면 믿음이 견고해질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체험이 주는 감격은 지속성이 짧다. 하나님은 감정을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체험 중심적인 신앙을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 체험 중심적인 신앙은 외적인 것에 관심이 많기에 미혹되기도 쉽다. 체험 중심적인 신앙에 너무 치우치지 말라. 신비한 체험이 없어도 구원받은 성도는 이미 보이지 않은 많은 기적을 체험한 존재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직접 뵈면 얼마나 믿음이 강해지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까?” 그러나 체험이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도 소수만이 믿음을 가졌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철저히 받은 12제자 중에도 1명이 배반했고 본문에서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굳게 신뢰하며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십자가가 최고의 능력이라는 교훈이다. 본문 12절을 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이 말씀을 체험 중심적인 교주는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보다 더 놀라운 기적적인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곡해한다. 과연 그런 말씀인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얘기다. 어떻게 전능하신 예수님보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더욱 큰 기적적인 능력을 행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본문 12절에서 ‘그보다’란 말은 문맥에 의하면 ‘내가 하는 일보다’라는 뜻이다. 그때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시려고 했는가? 십자가를 지시려고 했다. 결국 본문 12절에 나오는 ‘내가 하는 일’은 ‘신기한 기적적인 능력’을 뜻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뜻한다. 예수님이 하신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일은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었다. 예수님의 관점 및 사역에서 ‘기적을 행하는 것’은 부분적인 일이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근원적인 일이었다. 십자가의 대속의 피만이 구원의 길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십자가가 능력의 원천이다 >

 사람들은 ‘능력’이라고 하면 ‘신기하고 기적적인 능력’을 연상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능력은 기적이나 표적과 같은 것만은 아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성도에게 있는 진짜 위대한 능력은 십자가를 지는 능력이다. 결국 본문 12절에 나오는 ‘내가 하는 일’에 십자가를 대입하면 이런 말씀이 된다. “나를 믿는 자는 십자가를 그도 질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십자가도 지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달렸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본문 12절 말씀처럼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신 후 보내주신 성령의 감동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베드로의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가 진짜 능력이다. 믿음은 기적적인 축복을 선사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믿음이 주는 가장 위대한 능력은 ‘기적’이 아닌 ‘십자가’다. 물론 기적적인 능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참된 믿음은 기적적인 능력의 가능성도 크게 높여준다.

 말씀 중심적인 믿음을 인본적인 믿음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능력을 추구하는 믿음을 무조건 미신적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치유와 기적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 사실상 모든 성도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 지금도 사탄은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때로는 극성스럽게 때로는 은밀하게 활동한다. 자기 힘만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 없다. 사탄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마르틴 루터가 말했다. “이 세상에 사탄과 비견될 자는 없다.”

 사탄도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능력을 무력화시켰다는 사실이다(골 2:15). 그런데 사탄은 왜 아직도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신학적으로 신약시대는 ‘이미 그러나 아직’이란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미 승리했지만 아직 완전히 승리한 것은 아니다. 사탄은 화살이 몸에 박혔지만 아직은 죽지 않은 사자와 같기에 오히려 더 흉포하고 파괴적이며 분노로 날뛰고 있다.

 지금 세상이 크게 혼란한 것은 사탄이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분노로 날뛰는 강력한 사탄을 이기려면 능력을 받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무속적인 방법으로 능력을 추구하지 말라. 능력의 원천은 십자가에 있다. 능력을 신기한 기적으로만 여기지 말고 십자가로 여기는 성숙한 믿음을 가지라. 십자가의 능력을 가지면 어떤 현실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자가 된다. 십자가의 참된 능력을 가지고 문제 속에서도 행복을 노래하고 시련을 축복의 재료로 만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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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14장 1-6절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근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요한복음 14장 1-6절)

1.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러 가는 상황에서 제자들은 그 상황을 느끼고 불안에 싸여 있었다. 그때 주님은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다(1절). 근심과 믿음은 반비례한다. 믿음이 작아지면 근심은 커지고 믿음이 커지면 근심은 작아진다. 믿음은 큰 힘을 준다. 자신을 믿는 신념도 큰 힘이 되는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믿음은 소유나 학력이나 재주나 인간관계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누가 성공했다고 하지만 하나의 성공이 열 가지 근심을 만들 때도 많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유가 많으면 행복할 줄 안다. 그러나 감옥보다 별장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다. 물질에 집착하면 삶의 본질과 핵심을 잃는다. 소유가 적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박하고 순수한 모습을 통해 오히려 믿음도 쑥쑥 잘 자랐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밥술 좀 먹고 돈을 좀 만지는 민족이 되니까 타락하고 교만하고 믿음이 잘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소유 자체를 정죄하지 말라. 문제는 소유가 많은 것이 아니라 드림과 나눔과 베풂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가 많아질수록 근심과 불행지수도 더 높아진 것이다.

 요새 영성(靈性)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영성(靈性)이 무엇인가? 예언하고, 방언을 하고, 영서(靈書)를 쓰는 것이 영성의 표시인가? 그런 영성에는 자기 과시가 느껴진다. 진짜 영성(靈性)은 영(零)이라는 숫자의 영성(零性)이다. 자신을 제로(zero)로 알고 주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사는 것이 진짜 영성이다. 살면서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잘 되고 잘못되고 하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2. 미래는 보장되었기 때문

 예수님은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다(2절). 그 생각이 머리에 확고히 자리 잡으면 마음의 모든 근심은 사라질 것이다. 한 의료 보고서에 의하면 낮의 해가 짧아질수록 우울증 환자가 늘고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 즈음에 가장 우울증 환자가 많아진다고 했다. 육신조차 햇빛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영혼에도 영적 햇빛이 필요하다. 그 영적 햇빛이 천국 소망이다. 천국 소망이 확고해서 미래가 천국의 기쁜 삶으로 보장되어 있다면 그 소망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으면 오늘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없다. 반면에 현재가 없어도 미래가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다. 현재 가진 것이 부족해도 반드시 미래를 가진 자가 되라. 그 미래에 대한 소망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소망은 천국 소망이다. 그 소망이 확고하면 어떤 고난 중에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죽음은 순교이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의식이 될 것이다.

 천국이 예비된 존재는 근심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리고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성도는 죽으면 천국에 가지만 더 중요한 삶의 자세는 천국에 가기 전에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쫓고 쫓기는 삶’보다는 ‘부름에 응하는 삶’을 살라. 아파트 평수를 쫓아가는 삶보다 항상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아야 삶이 밝아지고 얼굴도 밝아지고 마음도 밝아진다.

3. 예수님이 길이 되기 때문

 예수님을 섬기는 길은 좁은 길이기에 처음에는 믿음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믿어도 길이 열리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오하고 그 길을 고수하면 점차 길이 넓어진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처음만 좁고 점차 넓어지다가 나중에 온 천지가 길인 곳에 도달한다. 그곳이 천국이다. 하나님을 위해 포기한 것에 다시 눈을 돌리지 말라. 예수님만 길인 줄 알고 만족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시고 넓혀주신다.

 인생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고 위를 향해 가야 한다. 그때도 정상에서 다시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안내로 무사히 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인생에 안내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I am the way).”라고 하셨다(6절). 하나의 길(a way)은 많다. 그러나 유일한 길(the way)은 주님뿐이다.

 성도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다. 어떤 일을 만나고 고난 속에서 죽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길이 막힌 것 같아도 염려하지 말라. 미래는 예수님을 믿는 자의 것이다. 예수님을 붙잡고 믿고 따르는 발걸음은 결코 헛된 발걸음이 되지 않는다. 가끔 삶에 길이 막힌 것과 같은 상황이 생겨도 너무 근심하지 말라. 그때 예수님이 길임을 의지하고 더욱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리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축복된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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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네이버 포스트 "흔적 생명, 영적 생명 / 제씨 펜 주이스 "십자가의 도"]

 

 

 

 

본문말씀 : 요한복음 12장 20-24절

20.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는 길이 사는 길이다 (요한복음 12장 20-24절)

<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라 >

 이틀 전 남양주 수락산에서 55세 여성이 산악회원들과 정상에서 하강하던 중 등반용 안전벨트에 걸었던 로프를 풀었다. 그때 동료들은 무모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그녀는 줄도 없이 맨몸으로 50cm 옆 바윗길로 발을 내딛었다가 실족해 3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그녀는 8년 경력의 클라이머로 평소 등반기구 없이 맨몸으로 바위를 오르는 볼더링(bouldering)을 즐겼는데 지나친 자기 과신이 화를 불렀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운동능력, 인지능력, 기억력, 판단력이 점차 떨어진다. 문제는 긴 세월에 걸쳐서 조금씩 떨어지기에 자신의 능력 저하를 잘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자기 몸을 너무 믿지 말라. 쉽게 할 것 같은 일도 막상 해보면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 한 아빠는 딸 운동회 때 옛날 실력을 믿고 학부모 달리기에서 1등 하려고 사력을 다해 뛰었는데 생각대로 몸이 안 움직여 답답하고 창피했다고 했다. 사람의 능력은 40대와 50대가 크게 다르고, 50대와 60대가 크게 다르고, 60대와 70대가 크게 다르다.

 어르신들이 가끔 “내 몸 같지 않아.”라고 했던 말이 나이가 들면서 점차 자신에게도 실감된다. 젊을 때 운동 신경이 탁월했어도 나이가 들면 계단 하나 내려올 때도 조심해야 한다. 평형감각, 인지능력, 공간지각력 등이 옛날 같지 않아서 점차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것 같다. 기억력과 판단력도 점차 떨어진다. 다만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눈치나 지혜로 떨어진 능력을 커버해 사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외면하면 무지한 자기 과신으로 인해 남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소통능력 저하로 고집불통 이미지를 줄 수도 있다.

 또한 나이 든 사람끼리도 옛날 같지 않아서 서로 답답할 수 있다. 그때는 서로의 능력 저하를 불쌍히 여기고 이해심을 높여야 한다. 들을 때는 옛날보다 상대의 설명 능력이 떨어진 것을 이해해야 하고 말할 때는 옛날보다 상대의 이해 능력이 떨어진 것을 이해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들수록 나의 능력 저하를 인정하고 남의 의견을 지혜롭게 경청하고 수용하려는 자세다. 그래야 더 존중받고 존경받는다.

 한 목회자는 총회에 가기 전에 늘 다짐한다. “이번에도 예년처럼 발언을 힘써 자제하자.” 총회에 갈 때마다 그런 다짐을 하는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말하고 듣고 이해하고 반응하고 변화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떨어짐을 인정하고 후배들의 기를 살려주고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나이가 들어서 회의 때 소리가 커지고 남의 말을 중간에 끊어 반박하는 이유도 이해력과 기억력과 판단력의 저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선배 목회자가 총회에서의 발언을 자제하면 후배 목회자들이 더 존중한다.

 카페에 가면 젊은이 그룹보다 어르신 그룹의 소리가 큰 편이다. 자기 청력이 약해져서 남도 그런 줄 알고 저절로 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카페에서 저도 의도적으로 말소리를 낮추려고 한다. 어르신은 자기가 크게 말하는 것을 잘 모를 때가 많고 젊은이들도 왜 저렇게 어르신들이 큰 소리를 내느냐고 의아하게 반응할 때가 많다. 결국 인정과 이해가 동시에 필요하다. 남이 이해해주기만 바라지 말고 내 부족함도 인정해야 갈등도 쉽게 풀린다.

 나이가 들어 지각력 저하를 인정해서 이전보다 조금 더 소리를 낮추려고 하고 판단력 저하도 인정해서 이전보다 덜 판단하려고 하라. 또한 기억력 저하도 인정해서 남의 말을 이전보다 더 경청하라. 나이가 들어 약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을 인정해야 인생 후반기를 고귀하게 맞을 수 있다. 또한 그런 마음으로 어디서든지 남을 인정해주고 내 부족함을 인정해야 공동체에서도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다.

< 고난은 축복의 기회다 >

 본문은 하나 됨을 위해 필요한 중요한 원리를 교훈한다. 예수님이 백성들의 환호 가운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어미 나귀 대신 어린 나귀를 탔다. 약하고 경험이 없는 어린 나귀도 예수님의 쓰임을 받았다.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면 쓰실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순수한 성도를 기뻐하신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하고 연약해도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얼마든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삽자기를 지신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셨다. 당시 상황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이유가 없었다.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하자 유대 교권주의자들이 낙담해서 말했다. “아무리 예수를 죽이려고 해도 소용없다. 온 세상이 저를 따른다(19절).”

 게다가 당시 상황을 목격한 헬라인 몇이 빌립을 통해 예수님께 면담을 요청했다(20-21절). 왜 면담을 요청했는가? 예수님을 헬라 지역으로 모셔서 최고 스승으로 삼고 명예와 부귀영화를 약속하려는 면담이었을 수도 있다. 그 면담 요청 사실을 듣고 예수님이 말씀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절).” 출세 기회가 왔으니까 헬라 지역으로 가서 이름을 널리 날리자는 말인가? 아니다. 그때 예수님은 십자가를 각오하셨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십자가를 지고 죽을 생각을 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일부 제자들이 오해해서 “이제 주님이 뜨시면 내게도 한 자리가 생기겠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제자들 사이에 높은 자리에 대한 다툼도 있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광을 얻을 때는 십자가를 질 때였다. 그처럼 큰 축복 전에는 대개 고통의 순간이 있다. 고난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라. 그 십자가가 영광으로 가는 통로와 다리다. 영광과 축복을 오해하지 말라.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과 축복도 없다. 죽어야 살고 헌신해야 복 받는다.

 어떤 교인은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죽어도 상황은 더 어려워지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완전히 죽지 않고 죽은 척 하는 것이 문제다. 때로 반전의 역사를 기대하며 선한 결심을 한다. “내가 죽자.” 그래도 상황과 인간관계가 나아지지 않으면 금방 자기가 살아나 하나님께 따진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헌신하고 죽었는데 왜 아직도 문제가 그대로인가요?” 사람에게도 따진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그렇게 나오느냐?”

 죽은 줄 알았더니 벌써 살아나 있다. 알고 보니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척 한 것이다. 죽은 곳에서는 많은 선한 열매가 맺어지지만 죽은 척 한 곳에서는 선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선거 때 후보자들은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죽은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어느새 허리는 펴지고 머리는 꼿꼿해지고 어깨는 뻣뻣해진다.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척 한 것’이다. 그런 정치인의 모습이 신앙생활에는 없게 하라.

 십자가가 없는 행복은 없다. 축복의 핵심 요소도 십자가의 헌신이다. 학생이 노력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거나 선수가 연습하지 않고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십자가를 회피하면 하나님의 축복도 그를 회피하지만 십자가를 기꺼이 지면 하나님도 기꺼이 축복을 내려주신다. 교회의 어떤 필요가 생각나거든 “하나님! 이 필요를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리더십의 허락을 맡고 이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하고 나설 때 하나님은 그 마음과 헌신을 반드시 기억해주신다. 죽는 길이 사는 길이다.

< 죽는 길이 사는 길이다 >

 본문 24절을 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죽는 것은 ‘자기 희생과 자기 부인’을 상징한다. 희생이 없는 축복은 가치도 없고 진짜 축복도 아니다. 희생과 헌신을 동반한 축복이 진짜 축복이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연하게 여기라. 삶에는 축복만 있지 않다. 기도 제목도 있어야 기도하는 성숙한 성도가 된다.

 불신자의 고난과 성도의 고난은 다르다. 불신자의 고난은 ‘당하는 것’이고 성도의 고난은 ‘행하는 것’이다. 신학 주제 중에 <The Passion of Christ(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주제가 있다. 최후의 만찬 후부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까지의 사건과 의미를 다룬 주제가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주제다. 수난이란 영어의 passion은 한국말로 ‘열정’으로도 뜻풀이된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예수님이 ‘열정적으로 맞이한 것’이란 암시다.

 성도의 고난은 어려운 환경을 수동적으로 맞이하는 것이나 순교 콤플렉스에 젖어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능동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일 새벽기도는 쉽지 않지만 정열적이고 능동적으로 매일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나아가 포용하라. 고난을 포용하고 고난당하는 자를 포용하는 것은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고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지면 신비한 축복이 따른다. 능동적인 고난은 더욱 큰 수동적인 고난을 미리 예방하게 한다. ‘당하는 수동적인 고난’을 통해 인생의 쓴 맛을 보는 삶보다 ‘행하는 능동적인 고난’을 통해 인생의 기쁨과 보람을 맛보는 삶이 훨씬 복된 삶이다. 능동적인 고난이 수동적인 고난을 막아줌을 기억하고 적극적이고 정열적으로 십자가를 추구하며 남과도 힘써 보조를 맞추라.
 
 나는 100미터 가고 싶지만 공동체와 보조를 맞추려고 50미터만 가는 것도 일종의 고난이다. 반대로 나는 10미터만 갔으면 좋겠지만 100미터를 목표로 한 사람과 보조를 맞추려고 50미터까지 나가려는 것도 일종의 고난이다. 내 처지와 기분만 생각하지 말고 남의 꿈과 비전도 힘써 생각해주고 서로 고난의 분량을 지면서 50미터 지점에서 만나려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도 그 공동체에 복을 내려주신다.

< 하나 됨을 이루라 >

 행복은 하나 될 때 주어진다. 남을 위해 나를 제한하면서 남을 행복하게 해야 내가 행복해진다. 요새 혼자서도 행복하게 산다는 사람이 많다. 그것도 좋지만 둘이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다수의 공동체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되라. 결혼할 때도 “내가 저를 통해 어떻게 행복을 얻을까?”를 계산하면 오히려 행복이 멀어지지만 “내가 저를 어떻게 행복하게 할까?”를 생각하면 오히려 내게 넘치는 행복이 따라온다.

 하나 됨을 위해 값을 치르려고 하라.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다. 하나 됨을 위해 참고 희생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되지만 하나 되지 못해서 생기는 큰 손해에 비하면 그 희생은 오히려 작은 것이다. 하나 됨을 위해 희생하고 특히 소수와 약자를 더욱 살피려고 하라. 소수와 약자가 아픔을 당하면 다수와 강자도 아픔을 당한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바른 길에 선 약자와 소수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살펴줄 때 하나 될 수 있다.

 국립 대형 정신병원에 가보면 많은 병자를 의외로 적은 사람이 관리한다. 중무장도 필요 없다. 정신이 병들면 하나로 뭉쳐 응축된 힘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이 병들면 자기가 제일인 줄 알기에 둘도 의견을 합치지 못해서 숫자가 많아도 큰 힘이 생기지 않는다. 개인적이고 자기밖에 모르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마음이 정신을 병들게 하고 하나 됨을 막는다. 결국 교만은 축복과 행복의 최대 적이다.

 늘 겸손하게 살면서 쓸 수 있는 힘이 있어도 힘을 절제하고 할 말이 있어도 말을 절제하라. 할 수 있는 일도 다 하지 말고 갈 수 있는 길도 다 가지 말라. 전체의 큰 목적과 덕을 위해 나를 절제하며 오래 참으라. 남이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훈련도 잘하라. 술 취한 남편과 싸우지 말고 술이 깰 때까지 참고 술이 깬 후 지혜롭게 말하라.

 어떤 남편은 성격이 불같다. 남이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저런 남편과 어떻게 살지?” 그런 부부도 그럭저럭 잘 산다. 왜 그런가? 남편의 미숙함을 참아주고 용납하기 때문이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상대방의 습성과 성격 그대로 일단 받아들여야 행복의 기초가 다져진다. 늘 밀알의 원리를 기억하고 힘써 자기 죽음을 실천하며 살 때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남도 산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용납하는 문화가 부족했다.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가치관이 심했다. 어느 성씨는 비천한 성씨라고 싸잡아 말했지만 사실상 훌륭한 인물 중에는 그 성씨 출신도 많다. 편견은 수고와 희생 없이 남을 깎아내리고 나를 높이려는 비열한 태도다. 불의한 편견과 자기중심적인 삶을 최대한 남의 장점을 찾아 기쁘게 하는데 조금 더 관심을 가지라. 남의 행복을 위해 나를 제물로 삼으려고 할 때 내 삶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고 은혜와 행복도 넘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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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13장 34-35절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을 주려고 하라 (요한복음 13장 34-35절)

<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라 >

 요한복음 14-16장의 다락방 강화는 예수님이 죽기 전에 하신 유언의 말씀이다. 그 유언의 말씀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의 가장 강력한 표시는 ‘사랑’이었다. 참된 사랑이 있으면 자칭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예수님의 제자라 불러준다. 내가 아무리 신기한 영성을 보여도 남들이 나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큰 문제다. 교회는 서로 사랑하며 그 사랑이 차고 넘쳐서 이웃에게로 흘러가는 사랑이 충만한 교회라야 한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라. 남이 어려울 때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어려울 때 이해받지 못한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먼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위대한 일을 하는 셈이고 위대한 인격자가 되는 요체다. 아프리카에 선교헌금 보내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위대한 일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사랑하는 것도 위대한 일이고 며느리가 시어머니 사랑하는 것도 위대한 일이다. 동서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도 위대한 일이다. 같은 직장에 있는데 친구가 혼자 진급했을 때 감사하기가 쉽지 않다. 모르는 사람이 진급하면 괜찮아도 가까운 사람이 진급하면 더 참기 힘들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더 힘든 것이고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위대한 일이다. 그 위대한 일에 도전해보라. 서로 사랑하는 모습과 관계 속에서 엄청난 파워가 생겨난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서로 깊이 사랑해서 아무 때든지 서로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조건은 표적도 아니고 형식도 아니고 사람의 숫자도 아니고 화려한 모습도 아니고 오직 사랑에 달려 있다. 참 사랑이란 너를 위해 지금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만이고 저것 좀 해주고 그것은 틀렸다.”라는 말이 많고 요구가 많은 것은 사랑이 아니다. 참 사랑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내 생명까지 온전히 바쳐서 오늘 끝나도 한이 없다는 자세가 있어야 사랑이 가능하다.  

< 사랑을 주려고 하라 >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사랑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하라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이 주려고 하라는 말이다. 기독교를 왜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가? 평범한 본능적인 사랑이 아니라 자기희생이란 차원 높은 사랑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자기희생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아가페 사랑은 자기를 조각조각 찢어 남에게 주고 자기는 없어져 버리는 이타적인 사랑이다. 서로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불행해지지만 서로 사랑을 주려고 하면 행복해진다. 불행과 행복이 의외로 내 손안에 있다.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어려운 형편으로 결혼하지 못하고 12년 동안 함께 사는 남편이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간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수술시기도 지나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얼마 동안 집에서 요양하다가 1달여 만에 다시 응급실로 들어갔는데 그 후 3주쯤 지난 후에 병원에서 그녀가 일하는 식당으로 “생명이 며칠 안 남았으니까 퇴원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눈물을 훔치고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곧 남편이 죽는데 마지막 선물은 없을까?”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 남편이 가끔 말했다. “빨리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그녀는 결혼식이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면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데 남편을 가장 기쁘게 해 줄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남편에게 얘기하고 결혼식을 준비했다. 남편의 직장 동료 택시 운전기사들이 자기 일처럼 준비해줬다. 직장 동료 부인들이 음식을 장만했고 운수회사 사장이 주례를 맡아 이틀 만에 결혼식을 치렀다.

 결혼식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형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던 그녀가 신랑의 휑한 얼굴을 보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자 진통제를 맞고 서 있던 신랑도 눈물을 흘렸다. 하객들도 그 장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흐느꼈다. 그렇게 결혼식을 마치고 38시간 만에 남편은 숨을 거뒀다. 그 후 외롭고 힘들 때마다 앨범을 꺼내 결혼식 날 남편의 모습을 보면 신비한 힘과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왜 행복이 없는가? 그 이유는 참 사랑과 희생이 없었기 때문이고 자신이 받으려고만 하고 주려고 하지 않는 것 때문일 것이다. 불행이 있다면 그 불행의 원인은 내 책임도 상당히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가장 큰 문제는 자신에게 사랑이 없는 문제임을 자각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지라. 기도할 때도 가장 우선적으로 구해야 할 기도제목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구하는 것이다. 늘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함으로 내 손안에 있는 행복을 얻어 누리고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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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3장 22-27절

22.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율법주의자의 3대 특징 (요한복음 3장 22-27절)

1. 위선

 세례 요한 당시 유대인은 “어떻게 해야 몸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라고 하며 정결예식의 형식에 대해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25절). 그처럼 종교의 외형적인 형식에만 몰두하다가 점점 위선에 빠졌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위선이다. 속은 썩었는데 겉만 화려한 것은 사람의 눈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이지 못한다. 종교적 형식은 조금 미숙해도 좋고 기도는 조금 못해도 좋다. 하나님은 외형보다 마음의 진실함을 보신다.

 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기를 힘쓰라. 진실할 때 남의 말에 잘 흔들리지 않고 기분이 업다운 되지 않는 축복을 얻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세례 요한이 위대한 선지자가 될 수 있었는가? 진실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존재였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위선의 외투를 벗어던지게 했다. 사람들이 광야로 나간 것은 그의 진실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성공 신학이나 번성 신학은 세례 요한을 대할 때마다 그 논리적인 힘이 빠질 것이다. 넓은 문으로 가는 사람은 세례 요한과의 대면을 피하고 싶을 것이고 결국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다. 세례 요한 당시에 그를 찾아 넓은 광야로 나온 사람들은 좁은 길로 가기를 작정했던 사람들이다. 진리는 달콤하지 않다. 달콤한 말은 잠깐 힘과 위로를 주지만 참된 능력과 평안을 주지 못한다. 오직 진리와 진실만이 참된 능력과 평안을 준다.

2. 질투

 당시 사람들은 광야에서 지낸 나실인이자 금욕주의자인 세례 요한과 같은 깨끗한 사람에게서 세례 받으면 더욱 깨끗해질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들 생각에는 예수님이 세례를 주면 별로 능력이 없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세례 요한보다 오히려 예수님께 더 몰렸다. 왜 그런 차이가 있는가? 그것이 외형과 진실의 차이다. 외형보다 진실이 더욱 큰 능력의 원천이다.

 세례 요한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세례 요한의 방식대로 사람을 정결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진실이 능력이다. 그 사실을 모르고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찾아 물었다.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26절).” 이 어투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에 시기와 질투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 질투심이 그들을 오히려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오늘날은 치열한 경쟁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시기와 질투를 앞세워 남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는 남을 곧 무너뜨릴 것 같지만 오히려 자기를 무너뜨리는 결과만 낳는다. 남도 무너뜨리고 나도 무너지면 그나마 덜 억울할 텐데 나만 무너지니 얼마나 손해 보는 일인가? 하나님은 시기하고 질투할 때 참된 의미의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그때 의지적인 믿음을 가지고 같이 기뻐해주는 것이다.

3. 교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거부하고 진리를 찾는 것보다 정결예식 문제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변론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왜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했는가? 결국 자신이 최고인 줄로 아는 교만 때문이다. 교만은 불행의 원천이다. 행복을 원하면 겸손하게 되라. 소극적인 사람이나 “나는 못해.”라고 하면서 몸을 사리는 사람이나 지나치게 사양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무능력하게 되라는 말도 아니다. 예수님 앞에서 겸손했던 세례 요한이 소극적이고 무능력했는가? 아니다.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헌신할 줄 아는 것이다. 어떤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려고 나서는 것이 진짜 겸손이다. 세례 요한이 위대한 선지자가 될 수 있었던 최대 요소 중의 하나가 겸손이었다. 그는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고 자기보다 더 큰 분이 오실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증언했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았고 자기 위치와 한계와 사명을 알았다.

 성도들은 지혜와 명철을 달라고 기도한다. 지혜가 남을 아는 것이라면 명철은 나를 아는 것이다. 지혜는 관찰을 통해 얻지만 명철은 성찰을 통해 얻는다. 가장 지혜롭고 명철한 삶은 언제 주어지는가?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내가 예수님의 오심을 증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다. 또한 높은 마음으로 내 뜻을 실행하려고 하기보다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려고 할 때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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