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신명기 11장 22-25절

22.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23.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24.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25.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신명기(55)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신명기 11장 22-25절)

< 굳은 믿음을 가지십시오 >

 본문에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축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강성한 나라의 축복을 약속하셨고(22-23절). 지경이 넓혀지고 무적의 영혼이 되는 축복도 약속합니다(24-25절). 때로 시련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붙잡고 나가면 시련은 오히려 축복의 촉매제가 됩니다.

 살다 보면 믿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떠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 떠나지 않으면 어떤 특정한 사람이 없어도 얼마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축복은 인맥을 통해서도 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성공 가능성도 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신 안에 이미 축복을 위해 있어야 할 것이 다 구비되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에게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가게 하라고 말하라!”고 말씀할 때 모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저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말 잘하는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그처럼 자기 비하에 사로잡힌 모세에 대해 하나님이 분노하며 말씀했습니다. “모세야!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네가 그에게 할 말을 알려줘라!” 그래서 바로에게 가는데 나중에 보면 모세도 바로 앞에서 직접 할 말을 합니다. 아마 그때 모세도 자신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했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못한다!”는 거짓말을 믿지 마십시오. 어떤 분은 기도도 자기는 못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은 기도하지 않고 남보고만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가장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남에게 기도해달라고 하지만 말고 자신이 기도하십시오. 더 나아가 남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자신에게는 꿈을 이루고 축복받는데 필요한 모든 구비조건들이 다 구비되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

 남을 지나치게 의지하지 마십시오. 너무 상담하러 다니지도 마십시오. 그 시간에 하나님께 상담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은 상담 받으실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의 지혜로운 충고는 경청하십시오. 그러나 선택은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따라 자신이 하십시오. 성도는 기도를 통해 여전히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과의 직통라인이 구축되어 있는데 자꾸 사람을 통한 간접통화만 시도하지 마십시오. 남의 의견을 참고는 하되 최종결정은 하나님과 자신이 하십시오.

 어느 날, 한 예쁜 자매가 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요새 한 청년이 저를 따라다녀요. 그 청년은 하나님이 제가 그와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자매님!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할 자신이 없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파는 그런 비겁하고 무책임한 청년의 말은 그냥 무시하세요.” 그런 무책임한 언행이 영성으로 포장되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낳습니까?

 가끔 누군가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심지어 사람 바로 앞에서 방언까지 하며 말합니다. “아루아루아루... 삼바라삼바라... 하나님이 당신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해요.” 그런 무속적인 언행이 얼마나 한국 교회를 망치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한국 교회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습니까?

 지금부터 3천 5백 년 전 이전의 고대에는 신비한 영성을 가장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남의 영혼을 속박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책이 부족하고 교육과 문명이 덜 발달한 그때는 그 해악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결국 그런 언행이 영혼을 파괴하고 인간사회와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큰 해악이 됨을 알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십계명의 3번째 계명으로 “내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누군가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어요.”라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말할 때 그런 말은 조심해서 듣고 자기 영혼을 스스로 지키십시오. 어떤 일을 선택할 때는 하나님이 주신 기도의 특권을 가지고 자신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은 후에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이 마음속에 주시는 기쁜 감동과 그 감동을 뒤따라오는 지극한 평안이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입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면 오히려 하나님이 주실 최선의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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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nga0713

[이미지 출처: crosswork.com "A Prayer to Praise God"]




 

78.

 

Lord, You are the Conductor of our lives. We want to play Your song of love and grace in concert with Your children today.


주님, 주님은 우리 삶의 지휘자이십니다. 오늘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노래를 연주하기를 원합니다.

 

 

 

77.

 

Lord, when trouble comes we can pray like Habakkuk, “We have heard of your fame; we stand in awe of your deeds. Repeat them in our day; in our time make them known”(Hab. 3:2).


주님, 시련이 닥칠 때 우리도 하박국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하박국 3:2).

 

 

 

76.

 

Lord, thank You for using us to provide comfort, encouragement, and hope to others who are suffering. We praise You for all You’ve done, are doing, and will continue to do to comfort us through our own afflictions.


주님,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우리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난 중에도 우리를 위로하시려고 전에도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고, 또 앞으로 계속 하실 모든 일을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75.

 

Father in heaven, please help us to give others a small taste of the mercy and kindness You are forever offering us.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주시는 긍휼과 자비를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베풀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74.

 

Father, give me the desire to obey You and do everything for Your glory.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려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73.

 

Heavenly Father, thank You for Your faithfulness that I can always count on. Please help me to live today in a way that leaves behind a legacy of faithfulness and love.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주님의 신실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믿음과 사랑의 유산을 남기며 오늘을 살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소서.

 

 

 

72.

 

Dear Lord, it thrills us that You want to have a relationship with us! Thank You for the opportunity to learn of You through the Bible and to talk with You in prayer.


사랑하는 주님,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니 너무 기쁩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을 알게 해주시고 기도를 통해 주님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71.

 

Thank You, Father, for love that conquers sin, life that conquers death, and grace that has conquered my heart. May my life be a sweet aroma of praise to You.


하나님 아버지, 죄를 이기신 사랑과 죽음을 이기신 생명, 그리고 제 마음을 정복하신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 삶이 주님께 찬양의 감미로운 향기가 되게 해주소서.

 

 

 

70.

 

Lord Jesus, I come to You today to exchange my frenzied work for Your pathway of grace.


주 예수님, 오늘 내 열심으로만 하던 것을 주님의 은혜의 길과 바꾸려고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69.

 

Jesus, thank You for valuing us and using us to build up others.


예수님, 우리를 소중히 여겨주시고 다른 이들을 세우기 위해 우리를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68.

 

Lord, direct my focus always toward You and teach me to follow You in obedience and love.


주님, 항상 주님께 저의 초점을 맞추게 하시고 순종과 사랑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가르쳐주소서.

 

 

67.

 

Heavenly Father, this life can be so hard and painful. But You! . . . You are right there with us, loving us, keeping us, holding us! And You promise never to leave us or forsake us.


하나님 아버지, 인생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하나님이 바로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켜주시고 붙잡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거라고 약속해주십니다.

 

 

 

66.

 

God, we praise Your everlasting love and faithfulness! You protect and guide us, and we trust You with our lives.


하나님,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니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깁니다.

 

 

 

65.

 

Dear Lord, thank You for Your grace and Your offer of salvation and forgiveness through Christ. Thank You for this free gift that is not based on anything I can do.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용서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행위와 상관없이 거저 주시는 이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64.

 

Heavenly Father, thank You for loving me and pursuing a relationship with me. Help me to be a joy to You by drawing near to You.


하나님 아버지, 저를 사랑하시고 저와의 사귐을 원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게 하소서.

 

 

 

63.

 

I turn to You, the Author, to teach me as I read Your Word today. I want to hear from You, to know You, and to grow closer to You.


오늘 주님의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의 저자이신 주님께 의탁하오니 가르쳐주소서. 주님께 듣고, 주님을 알고,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62.

 

Lord, You said You came to give us life to the fullest, but so often we have our own agenda and the wrong goals in mind. Please forgive us, and help us desire what You want.



주님, 주님은 저희에게 충만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저희는 자신의 계획과 잘못된 목표를 마음에 둘 때가 너무 많습니다. 저희를 용서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저희도 원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61.

 

Heavenly Father, You will keep in perfect peace those whose minds are fixed on You. Help us to trust in You forever, for You are our Rock eternal.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들을 완전한 평강으로 품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언제나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60.

 

Help me, Lord, to obey you fully and with my whole heart. Thank you for being my firm foundation.


주님, 전심을 다해 온전히 주님께 순종하도록 도와주소서. 저의 단단한 기초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9.

 

Loving Father, I want to bring You joy by having a humble and repentant heart today.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겸손히 회개하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58.

 

Grant me the strength this day, O Lord, to persevere, to return honor to Your name where I am serving. My desire is to give myself in selfless devotion because of Your love for me.


주님, 제게 힘을 주셔서 오늘 제가 섬기는 곳에서 인내하며 주님의 이름을 높여드릴 수 있게 하소서.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제 자신을 드리며 이기심 없이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57.

 

Lord, in our dysfunctional lives we turn to You for restoration and strength. Thank You for Your amazing grace and love!


주님, 우리의 역기능적인 삶(또는 기능 불능의 삶)에서 회복되고 힘을 얻기 위해 주님께로 향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56.

 

Lord, You have given us life and the promise of life eternal if we trust in You as our Savior. For that-and so many other blessings-we give You praise!


주님, 주님은 우리에게 삶을 주시고, 주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을 때 영생의 약속까지도 주셨습니다. 그것과 또 다른 많은 주신 복들로 말미암아 주님을 찬양합니다!

 

 

 

55.

 

Lord, help us to gaze on You, to study You, to know You. Transform us into Your image by what we say, how we love others, and how we worship You. May others see Jesus in us.


주님,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에 대해 배우고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말하는 것,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 주님을 경배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를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소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게 하소서.

 

 

 

54.

 

Thank You, God, for using surprising metaphors to help us understand You better. Thanks for guarding us just as the eyelid guards the eye.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놀라운 비유들을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꺼풀이 눈동자를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를 지켜주시니 감사합니다.

 

 

 

53.

 

Father, Son, and Holy Spirit, I worship You. You are holy, just, kind, and loving. You are God alone.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의로우시며, 온유하시고, 사랑이 많으십니다. 주님만이 홀로 하나님이십니다.

 

 

 

52.

 

Thank You, Lord, for Your promise to be faithful to me and provide a way out whenever I face temptation. I praise You that You are willing to give me all the strength I need!


주님, 제가 유혹 받을 때마다 제게 신실하시고 유혹을 벗어나게 하겠다고 약속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기꺼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51.

 

Father in heaven, we seek Your wisdom and guidance to prepare the children we know and love to walk with You in faith.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도록 준비할 수 있게 주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50.

 

Lord Jesus, through Your saving death on the cross we can find acceptance and love. May we receive this gift for Your glory.


주 예수님,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 위에서의 주님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용납과 사랑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 선물을 받게 하소서.

 

 

 

49.

 

Dear God, give me the strength to continue to trust in You when I am discouraged. Help me to experience Your never-ending love and stay close to Your side.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좌절할 때 하나님을 계속해서 신뢰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경험하며 주님 곁에 가까이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8.

 

Jesus, teach us to be a friend of people as You are with us. Give us eyes to see others and their needs and to take the time to listen. Help us to take them to You, the source of life.


예수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주소서.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고 그들에게 귀 기울일 수 있게 해주소서.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께로 그들을 인도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47.

 

Lord, thank You for giving us the gift of Your eternal Spirit, who secures our hope in Your everlasting promises as He helps us understand Your Word.


주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바로 알도록 도움을 주시며, 주님의 영원한 약속을 향한 우리의 소망을 지키는 당신의 영원한 성령의 은사를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46.

 

Lord, today I want my life to sow good seeds in those around me. Help me to give out what You have put into me.


주님, 지금 제 인생에서 제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좋은 씨를 뿌리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제게 주신 것을 나눌 수 있게 도와주소서.

 

 

 

45.

 

O Lord, our majestic Maker, our hearts turn toward praise when we see snapshots of Your beautiful world. Thank You for creating us! Help us to rule Your world with wisdom.


오, 웅대한 창조주이신 주님, 우리가 주님의 아름다운 세계를 순간순간 볼 때에 우리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우리를 만드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세상을 지혜로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4.

 

Heavenly Father, You sent Your Son to save us and Your Spirit to comfort and convict us. May we bring You glory as we thank You for Your goodness and love.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죄를 깨닫게 해주시려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감사할 때 주님 영광 받으소서.

 

 

 

43.

 

Lord, when times are tough, help me to find joy. Help us to live in the tough times of this world with happiness while looking ahead to something “better by far.”


주님, 힘들 때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앞에 있을 “훨씬 더 좋은 것”을 바라보며 이 세상의 힘든 시간을 기쁨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2.

 

Lord, thank You for being near me even when I cannot see You. Please comfort me with Your presence.


주님, 제가 주님을 볼 수 없을 때라도 주님이 제 곁에 계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함께 계셔서 저를 안위해 주소서.

 

 

 

41.

 

Listen to my cry for help, my King and my God, for to you I pray. [Psalm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 5:2]

 

 

 

40.

 

May the favor of the Lord our God rest upon us; establish the work of our hands for us -- yes, establish the work of our hands. [Psalm 90: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시 90:17]

 

 

 

39.

 

You are always worthy of praise, Lord, even when I don’t feel like praising You! Help me to learn to praise You more and more.


내가 주님을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라도 주님은 언제나 찬양받으실 만한 분이십니다. 주님을 더욱 더 찬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38.

 

Lord, help us give our grievances to You so that You may turn them into something good. Make us ready to forgive completely and earnestly. Give us Your spirit of unity.


주님, 주님께서 우리의 불평거리들을 선한 것으로 바꾸실 수 있도록 그것들을 주님 앞에 내어놓게 하소서. 온전히, 또 진심으로 용서하게 하시고 주님의 화합의 정신을 갖게 하소서.

 

 

 

37.

 

Father, thank You for Your plans for us, and for the future that awaits us in Your love.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으로 인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36.

 

Teach me to be aware of Your presence, Lord, and to talk to You freely and often.


주님, 주님의 임재하심을 알도록, 주님께 자유로이 자주 얘기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소서.

 

 

 

35.

 

Father, thank You for using the story of Jacob to show us that the glory of Your unseen presence and goodness is far greater than we could imagine.


하나님 아버지, 야곱의 이야기를 사용하셔서 선하고 보이지 않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34.

 

Lord, we want to show the fearless love You showed when You walked this earth.


주님,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보여주신 두려움 없는 사랑을 베풀기를 원합니다.

 

 

 

33.

 

Lord, help me to trust You even when I don’t understand why certain things have happened. I am reaching out to You for the peace I need.


주님, 제가 왜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당신을 신뢰하도록 도와주세요. 내게 필요한 평화를 위해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32.

 

Father in heaven, the words of others can wound us deeply. Your words to us heal and comfort, and You assure us that we are loved forever.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우리가 깊이 상처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치유하고 평안하게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확신을 주십니다.

 

 

 

31.

 

Father, thank You for Your promise to walk with us through all of life. In moments of doubt, help us to have the confidence You are in control and we can trust You.


하나님 아버지, 일생 동안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의심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30.

 

Dear God, Please help me to manage my anger in a way that does not lead me into sin. Give me self-control through the power of Your Holy Spirit.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죄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저의 분노를 잘 다스릴 수 있게 도와주소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저에게 자제력을 허락해주소서.

 

 

29.


Show us, Lord, what is important to others. Help us to think of their interests first, and allow opportunities to speak about the love of Jesus.


주님,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소서. 그들의 관심을 먼저 생각하게 도와주시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소서.

 

 

28.

 

Father in heaven, please help us to see ourselves and one another in that desperate man-and in the merciful eyes of Your Son who reached out and touched him.


하나님 아버지, 그 절망적인 사람의 마음과,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신 주님의 자비로운 눈길로 우리 자신과 서로의 모습들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7.

 

Father in heaven, we ask for hope and perseverance to continue reaching out to others.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소망과 인내로 다른 사람을 계속해서 도울 수 있게 해주소서.

 


 

 

26.

 

What shall I render to the Lord for all his benefits to me? . . . I will offer to you the sacrifice of thanksgiving(Ps. 116:12, 17 ESV).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시편 116:12, 17)

 

 

25.


Dear God, give me a desire to grow spiritually. I want to honor You with my life and experience the joy of the Spirit’s work inside of me.


사랑하는 하나님, 영적으로 자라가고자 하는 열망을 제게 주소서. 제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제 안에서 기쁨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소서.


 


 

24.


Lord, thank You for the many ways You bless us. Forgive us for so often taking Your goodness for granted. Show us what we have that we might use to bless someone else today.


주님, 여러 면으로 저희에게 복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너무나 자주 주님의 선하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을 용서해주시고, 저희가 가진 것 중에 오늘 누군가를 축복하는 데 쓸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보여주소서.

 

 

23.

 

Lord Jesus, You gave Yourself that we might be free. Help us to love You wholeheartedly.


주 예수님, 주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저희도 온 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도록 도와주소서.

 

 

22.


Lord Jesus, thank You for Your example of prayer alone with Your Father. Give us wisdom and determination to make rest a priority as we follow You.


주 예수님, 주님께서 홀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기도하는 본보기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을 따르면서 휴식을 우선으로 할 수 있는 지혜와 결단을 주소서.

 

 

21.


Lord, I can always use help with the way I talk. For this day, help me to speak words of hope and encouragement to build up others.


주님, 제가 말하는 것에 언제나 도움을 구하오니, 오늘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는 희망과 용기의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0.


I enjoy the world You have created with its variety and color. You and what You have made are awesome, Lord!


하나님께서 여러 빛깔로 다양하게 창조하신 이 세계를 즐겁게 누립니다. 주님과 주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이 너무도 놀랍습니다!

 

 

19.


Father, Your unfailing love and faithfulness guide us in every choice we make. May our lives speak well of You and honor You today.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에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이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잘 증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소서.

 

 

18.

 


Lord, we give thanks for Your knowledge of our circumstances and Your care for us. Today we want to walk with You and honor You in all we do.


주님,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이해해주시고 우리를 돌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주님과 함께 걸으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원합니다.



17.


Help me, Lord, to stop trying to hold everything in my hands, but instead to trust my needs and concerns into Your perfect care.


주님, 제 손에 모든 것을 담으려고 애쓰지 말고, 대신 제 필요와 근심들을 주님의 온전한 돌보심에 맡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16.


Father, may I leave a good spiritual inheritance to my family as You use me to show Your everlasting love.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게 하신 것처럼, 저도 우리 가족들에게 훌륭한 영적 유산을 남기게 하소서.


 

 


15.


Gracious Father, I recognize today my desperate need of Your love, wisdom, and grace. Search me and know me. Pour out Your grace and mercy in my life to bring healing to my heart.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그리고 은혜가 절실히 필요함을 인정합니다. 나를 살펴 나를 아시고,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내 삶에 부어 내 마음을 고쳐주소서.

 


 


14.


Jesus, thank You for bearing the pain and isolation of the Garden of Gethsemane and the cross for us. Thank You for giving us a way to live in communion with the Father.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고통을 감당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며 살아갈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13.


Search me, O God, and know my heart. Try me and see if there be any offensive way in me. Lead me in the way everlasting(Psalm 139:23-24).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23-24

 




12.


Lord, even as we call to You for help today, please help us to keep walking with You when this crisis is over.


주님, 우리가 오늘 주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이 위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주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11.


Lord, may the record of Your life be written on our minds and hearts so that we may have ever-increasing faith in You.


주님, 주님의 삶을 담은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새겨져서 우리 믿음이 주님 안에서 계속 자라게 해주소서.

 




10.


Heavenly Father, I thank You for being the Shepherd of my life. I praise Your faithfulness.


하나님 아버지, 내 삶의 목자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9.


I'm not sure, Lord, how my neighbors would describe me. But I want to be close to You and to be a light in my corner of the world.


주님, 내 이웃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주님과 가까이 있기 원하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빛이 되길 원합니다.

 




8.


Lord, You are the One who never changes, and You are so good to us. Calm our hearts today with the grace and peace that come only from You.


주님, 주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유일한 분이시며 우리에게 너무 좋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으로부터만 오는 은혜와 평강으로 오늘 우리의 마음을 평온케 해주소서.

 




7.


Lord, forgive us for those things we turn to that show our hearts are not focused on You. Show us what we need to give up, and replace it with the presence of Your Holy Spirit.


주님, 우리 마음을 주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다른 것들로 향하는 우리를 용서해주소서.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를 보여주시고, 그것들을 성령님의 임재로 바꾸어주소서.

 




6.


Thank You Father, for Your Word in our hearts and our minds—our last thought at night as we rest securely in You.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간직된 말씀이 잠자리에서 우리의 마지막 생각이 됨으로 하나님 안에 안전히 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5.


Your compassions never fail, Father. May we mirror Your heart by showing compassion to others.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은 결코 다함이 없습니다.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게 하소서.




4.


Lord Jesus, thank You for being trustworthy as You orchestrate our days according to Your perfect plan, which includes every person, every generation, and every moment until You come again.


주 예수님,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모든 사람, 모든 세대, 모든 순간을 포함하는 완벽한 계획에 따라 우리 시대를 조율하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3.


Lord Jesus, thank You for Your promise of mercy, pardon, and eternal life. I acknowledge my failures and receive Jesus as my Savior today.


주 예수님, 자비와 용서와 영생의 약속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나의 죄를 자백하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2.

Lord God, Your dwelling place will be with Your people, and You will be our God, wiping away our tears and banishing death. May it be so!


주 하나님, 주님의 거처에 주의 백성들이 함께 거하며, 주는 우리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죽음을 멸하실 것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1.

Thank You, God, for being with us in our trials, and for helping us to grow through difficult circumstances.


하나님,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함께 해주시고 역경을 통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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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신명기 11장 8-17절

8.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9.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10.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13.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14.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신명기(53) 말씀대로 사는 자의 복 (신명기 11장 8-17절)

1. 가나안을 차지하는 복

 나라와 민족이 강성해져서 가나안 땅을 얻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8절).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킨다는 것은 율법으로 규정한 세세한 규정을 100%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과 뜻을 다해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신실한 인격관계입니다. 좋은 환경보다 좋은 관계가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좋은 대인관계보다 좋은 대신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대신관계만 좋다면 거기서 영적인 가나안이 펼쳐집니다.

 가나안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나안을 지속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9절). 가나안의 복이 지속되려면 고난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쉽게 포기하면 목표에 이르지 못합니다. 대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전문가가 됩니다. 최대의 전문성은 포기하지 않는 성향입니다. 포기하면 이미 실패한 것이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아직 실패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는 선한 일에 대한 포기가 더욱 없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2. 가나안에서 돌봐주시는 복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1년 내내 불꽃같은 눈동자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세하게 살피시며 안전하게 돌봐주시고 지켜주십니다(12절).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시련과 공격과 비판을 혼자 다 막지 못합니다. 하나를 막으면 또 하나가 달려듭니다. 결국 하나님이 막아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바로 서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막아주십니다. 보복도 스스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이 가장 선하게 부작용 없이 보복해주십니다.

 가끔 어떤 불의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전혀 개입하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때 탄식합니다. “하나님! 이 불의한 현실을 보시지 않습니까? 정말 살아계십니까?”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탄식하다가 곧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를 돌봐주세요.”라는 요구하기보다 “내가 이런 불의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돌봐주자.”라는 사명적인 결심을 새롭게 했기에 인물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지속적인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어린 자녀들은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부모에 의해 희생당합니다. 그러면서 “죄송해요.”라는 쪽지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것은 ‘죄송한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죄를 짓는 것’입니다. 다만 죄송하다고 했던 그들 앞에서 더욱 죄송해야 할 주체는 사회적 안정망을 잘 가동시키지 못한 국가와 사회이고 하나님의 손과 발이 잘 되지 못했던 성도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신 복을 누군가를 지켜주는 사명으로 발전시키십시오. 욕심과 이기심이 근원이 된 외침소리들 때문에 기본 생존권 문제로 하소연하는 외침소리를 못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은 불의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손과 발과 눈이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하나의 도구가 되라고 우리를 이 땅에 두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려운 사람을 살필 줄 아는 거룩한 사회성, 즉 선교마인드를 갖추십시오.

3. 가나안에서 풍성해지는 복

 애굽 땅은 비가 잘 오지 않아 나일 삼각주 주변 외에는 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발로(by foot) 수차를 돌리거나 어깨에 물동이를 지고 날라서 파종 후 채소밭에 물을 대어 힘들게 농사했습니다(10절). 반면에 가나안 땅은 산과 골짜기의 일교차로 인해 생기는 이슬로 메마른 땅이 축축이 적셔졌습니다(11절), 또한 적절한 때에 내려주심으로 가나안 땅의 3대 산물인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얻게 하시고 가축을 위한 풀도 풍성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14-15절).

 비는 물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찬 기운으로 응고되어 물방울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지식이 없었던 고대에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이 메마르게 되고 비가 오면 땅이 축축이 젖어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었기에 비는 하늘이 내리는 은혜의 선물로 여겼습니다. 그 비가 때를 따라 적절하게 내리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생생히 느껴졌겠습니까? 그처럼 때를 따라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을 지킬 때 주어진다고 약속합니다. 그런 풍성한 축복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16-17절).

 기독교는 복의 종교지만 복이 초점이 되면 안 됩니다. 복이 초점이 된 기복주의는 다른 신을 섬기는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복에 초점을 맞추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하늘 문을 닫아 풍성한 산물을 주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풍성한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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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빌립보서 2장 12-14절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비전성취를 위한 자세 (빌립보서 2장 12-14절)

1. 헌신의 부담을 지십시오

 예전에 ‘작은 교회를 섬기는 축복’에 대해 설교하자 큰 교회로 옮기려고 했던 몇 명이 자기 교회를 떠나지 않겠다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또한 여러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그 설교를 보고 힘이 되어서 고맙다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그때 그 설교를 했던 이유는 총회에서 작은 교회 동료 목사님들의 힘든 얘기를 듣고 한국 교회가 살려면 작은 교회가 살아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큰 교회로의 수평이동은 복된 모습이 아닙니다.

 왜 성도들이 큰 교회로 옮깁니까? 큰 교회로 옮겨야 할 분명한 사명과 필요성을 가지고 옮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에 부담 없는 교회생활을 위해 큰 교회로 옮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후자의 경우처럼 부담 없는 편함을 위해 큰 교회를 선택하면 남은 인생과 천국상급을 위해 좋은 선택이 아니고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2000년 이전에는 큰 교회가 계속 성도를 빨아들여도 작은 교회들이 계속 개척되고 전도해서 그나마 한국 교회가 유지되었지만 최근에는 한국교회의 전체 성장이 멈추면서 큰 교회는 작은 교회 성도들을 흡수해 그마나 유지되지만 작은 교회는 점점 설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작은 교회가 사라지면 결국 큰 교회도 사라지게 됩니다.

 작은 교회가 사라질 때는 대개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주고 사라집니다. 그 아픔과 상처를 하나님이 안타깝게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그냥 지켜보지 말고 뜻있는 성도들은 개척을 꿈을 품고 작은 교회로 향하는 모습도 있어야 한국교회의 미래가 풍성하게 됩니다. 외국에 선교도 나가는데 그에 비해 작은 교회로 향하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성가대가 멋진 곳으로 가지만 하나님은 내 헌신을 통해 연약한 성가대가 힘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학교 시스템이 좋은 곳으로 가지만 사실 시스템에서의 누림보다 가족적인 환경을 통한 헌신 교육이 훨씬 자녀교육에 유익합니다. 구원받고 누리려고만 하지 말고 구원받고 사명을 따라 살려고 하십시오. 그처럼 예수 믿고 인물 되는 길로 가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 마음의 소원을 가지십시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기 전에 늘 먼저 주시는 것이 바로 거룩한 소원입니다. 내일의 찬란한 비전을 가지십시오. 과거에 붙잡혀 “그때 그렇게 할 걸!” 하면서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으려고 하지 말고 새롭게 다시 물을 긷겠다는 자세를 가지십시오.

 왜 두 눈이 얼굴 옆이나 뒤통수에 달려 있지 않고 앞에 달려 있습니까? 뒤를 보고 한을 품지 말고 옆을 보고 한눈팔지 말고 앞만 보고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뒤에서 주어지지 않고 앞에서 주어집니다. “그때 괜히 그 일을 시작했다! 괜히 그와 결혼했다!”라고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보아야 축복 가능성도 커집니다.

 뒤의 것이 실수이든, 실패이든, 아픔이든, 고난이든, 잘못이든 잘 잊으십시오. 더 나아가 자기 공로도 잊으십시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비전은 어떤 자산보다 귀한 자산이고 어떤 힘보다 큰 힘입니다.

 어느 날, 마하트마 간디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군사력도 없이 인도를 대영제국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까?” 간디가 말했습니다. “제게는 조국 해방의 뚜렷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 비전이 군사력보다 강한 힘입니다.” 비전은 정치력보다 더 큰 일을 하고 경제력보다 더 영향력이 있고 군사력보다 더 힘이 있습니다.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예수 믿고 인물이 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루디아와 같은 여자 집사가 되려고 하고 느헤미야와 같은 남자 집사가 되려고 하십시오. 그런 거룩한 비전을 가지면 비전성취의 길도 보이고 방법도 생각나고 지혜와 창조성과 필요도 주어집니다. 뚜렷한 비전을 지속적으로 품고 살면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천리 길에서 오백 리 길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비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원망이 없게 하십시오

 모든 일을 원망이 없이 하십시오(14절). 어떤 분은 힘들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전혀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명해주신 것에 대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해주셨구나!”라고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얼마나 복된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 하나님께 기억된 존재가 된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입니다.

 또한 모든 일을 원망 없이 하라는 말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일이 힘들어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때로 선한 목적을 가지고 힘든 과정도 허락하십니다. 비전이 금방 이뤄지지 않아도 원망하지 말고 더욱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위대한 성취는 대개 많은 연단 과정을 통해 주어집니다. 물론 어떤 일이 단번에 기적적으로 이뤄질 때도 있지만 대개는 하나님이 설정하신 모든 과정과 원칙을 끝까지 따를 때 이뤄집니다.

 이사야 40장 31절 전반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은 영어로 “Wait on the Lord(주님에게 꼭 붙어서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이 기다림은 망부석처럼 슬픈 기다림이 즐겁고 희망적이고 적극적인 기다림입니다. 포수의 총부리에 죽어 가는 사슴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며 거센 운명에 자기를 포기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성경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운명에 맡기고 가만히 있는 운명론을 결코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저주란 말을 잘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저주’란 운명론적인 단어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약화시켜서 은혜시대를 살아가는 신약 성도들에게는 좋은 어휘가 아닙니다. 반면에 이단들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 등의 용어나 “당신 그러면 저주 받아.”라는 식의 표현을 통해 ‘저주’란 말을 자주 써서 두려움과 공포를 심고 계속 그 두려움과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영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전략을 씁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에게 더 이상 ‘저주’는 없습니다. 성도는 운명에 맡겨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존재입니다. 신앙생활을 자기 각본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각본대로 따르려고 하십시오.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원망이 없이 일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비전이 이뤄질 것입니다.

4. 시비가 없게 하십시오

 일할 때 원망도 없어야 하지만 시비도 없어야 합니다(14절). 어떤 사람은 비전을 이루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비전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전을 이루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비전을 향해 나갈 때 최대한 시비가 없게 하십시오. 관계가 망가지고 영혼이 망가지면서도 목표를 이루려고 하지 마십시오. 관계가 망가지고 영혼이 망가지면 목표를 이뤄도 불행한 것입니다.

 왜 시비가 생깁니까? 자기가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는 죄성 때문입니다. 죄성을 유식으로 혼동하지 마십시오. 진짜 유식한 사람은 선악을 자기가 판단할 수 없다고 여기고 관용을 보입니다. 조금 알고 교만한 것보다는 차라리 모르고 겸손한 것이 더 낫습니다. 형제 눈의 티를 뽑고 싶은 생각이 교만 죄가 되지 않게 하려면 자기 눈의 들보부터 보려고 하십시오. “내가 알아!”고 소리치는 것은 “내가 무식해!”고 소리치는 것이 될 때가 많습니다.

 최고의 지식은 자기 들보와 무지를 볼 줄 아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은 자랑이 아닌 사랑으로 이끕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했습니다(고전 13:2). 지식을 내세우면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기에 늘 갈등이 생기지만 사랑과 온유를 내세우면 있는 갈등도 풀어집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습니다. 물질축복의 제일 원리는 온유함입니다.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참고 참으면서 끊임없이 친절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생명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함 속에서 자랍니다. 결국 온유함은 영적인 생명의 모태와도 같습니다. 항상 온유한 모습으로 시비가 없이 윈윈 전략을 가지고 나갈 때 비전성취의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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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빌립보서 1장 3-6절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범사에 감사하기 위한 삶 (빌립보서 1장 3-6절)

1. 겸손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습니다(3절). 얼마나 겸손한 고백입니까? 살면서 사도 바울처럼 고백하십시오. 부모님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배우자에게도 “여보!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해요!”라고 고백하고 자녀들에게도 “얘들아!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단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더 감사한 생각이 들고 더 행복해집니다.

 저도 성도님들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행복하게 목회하는 것은 우리 교회 성도들과 온라인 성도들의 사랑과 기도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 감사하면 삶이 얼마나 행복해집니까? 가장 성도다운 모습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언제 그런 감사가 나옵니까?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생각하고 자기의 공로를 작게 생각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자기를 작게 여기면 상대방이 크게 보이고 감사가 나옵니다. 아내는 거울 볼 때마다 점차 커지는 자신의 몸집을 보며 남편에 대한 감사가 깊어집니다. “이런 나를 찾아 밤마다 집에 와주는 남편이 고맙다.” 남편도 자기를 작게 여기면 아내에 대한 감사가 나옵니다. “나 같은 못된 남편을 보고도 계속 살아주는 아내가 고맙다. 내가 여자라면 나는 절대로 나 같은 사람과 못 살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반면에 자기를 높게 보면 생각할 때마다 불평만 넘치게 됩니다. “내가 어쩌다 저런 사람을 만나서 이런 고생을 하나? 정말 선택을 잘못 했다.” 그렇게 자기를 높게 보니까 늘 손해 본 것 같습니다. 자신에 대한 거품평가를 없애야 삶에 IMF가 없게 됩니다. 실속도 없이 자기를 높이면 감사가 없어지고 그때부터 삶이 불행해지지만 자신을 바르게 평가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최고의 자녀교육도 바로 겸손에 있습니다. 어떤 아빠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아빠가 이제까지 가장 성공한 일은 바로 너희 엄마를 만난 거야.” 그런 가정에 어떻게 불행이 찾아옵니까? 반면에 어떤 남편은 날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얘들아! 너 결혼 잘해야 돼! 앞으로 너의 엄마 같은 사람 만나면 절대 안 돼!” 그러면 어떻게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됩니까? 자기를 낮추고 상대가 고마운 줄 알아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책임지십시오

 성숙한 사람은 항상 권리보다 책임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일하고 당연히 받아야 할 봉급을 받아도 “나는 받을만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받아서 감사한다!”고 생각하면서 받고 최선을 다해 더 일하고 더 섬기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삶의 모든 순간이 오직 감사뿐입니다. 성도는 공기조차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공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영성이 무엇입니까? 철든 믿음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보면 그에게 예쁜 구석이 있음을 발견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아! 저에게 저렇게 좋은 면이 있었다니!” 그처럼 무엇이든지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면 축복을 놓치지 않지만 더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면 눈앞에 다가온 축복도 놓칩니다.

 보스턴에 사는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은 헌신적으로 살면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고 동생은 이기적으로 살다가 친구를 죽여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동생을 위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가 끈질기게 사면 요청을 했습니다. 마침내 몇 년 만에 사면장을 받고 면회를 가서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존! 앞으로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어떻게 살겠니?” 그때 동생이 말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해! 내가 나가면 나를 잡아넣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복수할 거야.” 그 말을 듣고 형은 동생이 더 큰 죄를 지을 것 같아 그 사면장을 찢어버렸습니다.

 감사는 축복을 예비하는 최고의 태도이고 원망은 눈앞에 다가온 축복을 차버리는 태도입니다. 감사는 흥하는 길이고 원망은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불행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며 원망하는 무책임한 사람을 결코 축복하지 않습니다. 남을 원망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도 원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선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원망할 것이 있어도 그 속에서 감사하는 책임적인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해주십니다.

 

3. 헌신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은 대개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왜 생각할 때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했습니까? 그들이 바울의 선교사역에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후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시로 바울에게 선교 헌금을 보냈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는 헌금과 동시에 에바브로디도 집사를 보내 옥중 수발을 들게 했습니다. 그들은 말과 기도로만 헌신하지 않고 자기 것을 드려 헌신했습니다. 어떻게 그 헌신을 잊습니까? 헌신은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고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헌신적인 삶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줍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처럼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그 상황을 이해하고 헌신하면 그 헌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어려울 때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 마음속에는 오래 좋은 영상으로 간직되어 있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설교나 글로 나올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기에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나왔고 기도할 때마다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목회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헌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의 대전제와 틀을 ‘받으려는 삶’이 아닌 ‘드리려는 삶’에 두십시오. 드리면 남에게도 유익이 되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헌신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엄청난 축복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어려울 때는 더욱 헌신하려고 하십시오. 어려울 때는 본능적으로 불평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때 서로 격려하며 도와주며 헌신하면 얼마나 힘이 됩니까? 교회에서도 서로 헌신하며 감사할 때 교회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교인도 행복해집니다.

 이 세상에 헌신하는 삶처럼 행복한 삶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크게 헌신하면서도 그 헌신을 내세우지 않고 늘 겸손함을 잃지 않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어떤 분은 자신은 월세로 살면서도 어려운 선교사님을 앞장서서 돕습니다. 그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 성공과 축복과 행복의 레이스에서 최종 승자가 됩니다.

4. 꾸준하십시오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처음 은혜를 받던 날부터 그가 편지를 쓰던 시점까지 그 사랑과 후원의 손길이 변하지 않았습니다(5절). 목회하면서 가장 감동이 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헌신과 사랑이 변하지 않는 성도들입니다. 사람들은 화끈한 것을 좋아하지만 사실상 화끈한 것보다 꾸준한 것이 더 좋습니다. 꾸준한 것은 믿음의 중요한 실체입니다. 꾸준한 모습 속에 이미 모든 축복과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에스겔서 46장 9절 말씀을 보면 성전에 들어가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북문으로 들어오면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면 북문으로 나가도록 했습니다. 즉 자기 오던 길로 돌아가면 안 되고 옆으로 새도 안 되고 오직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야든 앞으로 나아가야 발전하듯이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꾸준히 전진하는 믿음의 경주자가 결국 성공과 행복과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성도의 목표는 천국이고 이 땅에서는 최대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 목표가 이 땅에서 순조롭게 이뤄지면 좋지만 이뤄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녀 때 이뤄져도 좋습니다. 땅의 목표가 조금 늦게 이뤄진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러 이유를 대면서 뒤돌아보는 사람들은 천국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쉽게 흔들리고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한 길에서 한 가지 목표를 정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특히 꾸준히 참여하는 삶을 잘하십시오. 하나님은 독불장군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상처도 많아진다고 하면서 혼자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을 즐겨합니다. 그런 태도를 통해서 이단 교주가 나옵니다. 때로는 교회가 썩은 것 같고 교인들이 문제도 많은 것 같아도 같이 고뇌하고 다듬어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숙한 믿음이 생깁니다. 때로 교인들끼리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생겨도 같이 있기를 힘쓰십시오. 화가 난다고 자기를 분리시키면 대부분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집니다.

 가끔 가족 중에 불만을 가지고 가족 모임이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불만을 시위하는 것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더 외로워집니다. 불평이 있어도 고독하게 지내지 마십시오. 물론 때로는 조용히 혼자 기도할 때도 있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삶에 시련과 고통이 있어도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킬 때 그런 사람이 감사의 영성을 얻고 결국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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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로마서 15장 8-9절

8.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세상을 바꾸는 한 사람 (로마서 15장 8-9절)

< 세상을 바꾸는 한 사람 >

 미국에서 야구는 가장 백인 중심적인 스포츠였습니다. 1883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최초의 흑인 선수가 등장했지만 그 후 60여 년 동안 흑인들은 주로 니그로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그 인종차별의 높은 벽이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의 등장으로 깨졌습니다. 흑인 야구선수 로빈슨의 등장은 미국 사회와 미국인의 인식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로빈슨은 고등학생 때부터 만능 스포츠맨이었습니다. UCLA대학에서는 야구, 미식축구, 농구, 육상의 네 종목에서 최고 선수로 뽑혔습니다. 1942년에는 군 장교를 지원했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될 뻔했지만 복싱 챔피언 출신 조 루이스의 도움으로 장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군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번은 버스에서 뒤의 흑인 자리로 이동하라는 백인 여성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군법회의에 회부되기도 했습니다.

 전역 후 니그로리그에서 선수로 뛸 때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 브랜치 리키(Branch Rickey)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리키는 인종문제에 엄격했던 당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죽자 인종차별의 벽을 허물 때가 왔다고 여기고 그를 찾아온 것입니다. 리키는 실력과 함께 백인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학력과 인성과 어떤 모욕과 비난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을 갖춘 선수를 원했는데 그가 바로 UCLA대학과 장교 출신이었던 스포츠 천재 로빈슨이었습니다.

 로빈슨은 1946년에 마이너리그에서 타율과 득점에서 리그 1위에 오르면서 리그 MVP가 되었고 1947년 4월 15일 드리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섰습니다. 26000여명의 유료 관중 중 절반이 넘는 흑인들이 그의 첫 출장을 보려고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개막 전부터 몇몇 선수들이 로빈슨과 함께 경기에 뛸 수 없다는 탄원서를 내는 등 시련도 많았습니다.

 원정 때는 더 힘들었습니다. 협박도 많이 받았고 숙소도 따로 써야 했습니다. 신시내티와의 첫 원정 경기 때는 관중들의 심한 야유를 받았습니다. 그때 다저스의 주장이었던 유격수 리즈가 1루에 있던 로빈슨에게 가서 그와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방긋이 웃은 뒤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야유로 가득 찼던 경기장이 고요해졌습니다. 그 후 로빈슨은 무수한 시련을 극복하고 은퇴한 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나중에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이 이끄는 흑인 인권운동에도 동참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재키 로빈슨의 데뷔 50주년인 1997년 그의 등번호 42번을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2004년부터는 그가 데뷔했던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했고 2007년에는 켄 그리피 주니어가 재키 로빈슨 데이 때 42번을 달고 뛰고 싶다고 요청한 것을 계기로 2009년부터 모든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4월 15일에는 42번을 달고 뛰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물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느낄수록 인물의 꿈을 새롭게 하고 소망의 하나님을 붙잡고 나아가면 변화의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 사람을 차별하지 마십시오 >

 본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죄악 많은 세상이기에 어디서나 차별은 존재합니다. 사람간의 우열 때문만은 아닙니다. 진짜 우월적인 인격과 위치에 있으면 차별할 필요가 없어서 남을 잘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차별적인 언행이 나타날까봐 조심합니다. 훌륭한 리더나 기업가는 더욱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외모나 출신이 아닌 성품과 능력을 보고 써야 선한 영향력을 오래 미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차별하면 망하는데 망하려고 차별합니까?

 차별하는 것은 내면에 있는 열등의식의 표시입니다. 차별 프레임을 남에게 덧씌워 자기 열등감을 감추려다가 더 드러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인종감정이나 지역감정의 근본 원인 중의 하나도 열등감입니다. 꿀리는 게 많아 잠재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해 특정 집단을 일반화시켜 매도함으로 자기를 높이려는 시도가 그런 편향적인 감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꿀리는 게 없으면 그런 감정에 편승해 자기 위신을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좋은 리더는 불순종과 무책임과 게으름이 배인 사람은 분별해내지만 사람을 일반화시켜 차별하지는 않습니다. 차별과 분별은 크게 다른 것입니다. 차별은 무분별입니다. 분별할 줄 알면 차별하지 않습니다. 좋은 리더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분별력은 탁월합니다. 분별력을 기르되 차별하지는 마십시오. 바른 인격자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인격 지수가 낮아 내면에 차별하는 마음이 있어도 대개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도 부끄러운 줄 알기 때문입니다.

 나쁜 정치권력이 조직적인 차별 프레임을 씌워도 정상인은 차별적인 언행을 노골적으로 표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터넷에서는 익명으로 그런 언행을 노골적으로 나타냅니다. 익명의 댓글은 자기 인격 지수를 그대로 나타내줍니다. 열등감은 차별 프레임을 씌워 집단을 매도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거기서 편향적 감정도 생깁니다. 결국 일반화를 통한 편향적 감정의 표출은 열등감의 표출입니다. 내세울 것이 없으니까 차별 프레임을 씌워서라도 자기를 높이려고 안달하는 것입니다. 능력과 성품으로 자기를 높이면 얼마나 좋습니까?

 미국에서는 중상류층 백인들보다 하류층 백인들이 흑인에 대한 차별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합니다. 하류층 백인의 가난과 실업의 책임은 1차적으로 흑인이나 동양인에게 있지 않고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무분별과 무책임과 게으름을 탓하기보다 편견과 딱지붙이기와 프레임 씌우기를 통해 차별로 자위하는 것입니다. 비천함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려는 성향과 열등감의 표출로 남을 차별하면 점차 분별력 있는 사람에 의해 오히려 자신이 고립되고 경멸받습니다. 그것이 독일의 나치, 미국의 KKK, 요즘 한국의 ‘일베’가 경멸받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원죄로 인해 열등감이 내재된 존재이기에 어디서나 차별을 꾀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로빈슨처럼 차별의 틀에 매이지 않고 강한 멘탈로 차별적인 세상을 극복해내는 것입니다. 그처럼 차별의 틀에 매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남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태어난 곳을 따라 ‘베들레헴 예수’라고 하지 않고 자라난 곳을 따라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까? 성도는 적어도 지역감정이나 나치의식이나 일베의식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 남서쪽의 해발 433미터에 위치한 산촌으로서 당시에 차별받고 천대받는 지역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말했습니다. “나다나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는데 나사렛 예수란 분이야.” 그때 나다나엘이 말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러자 빌립이 편견을 버리라는 의미로 “와서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갔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즉시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을 보면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자 열등감에 젖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무리 중에 논쟁이 벌어져 예수님이 참된 선지자 혹은 그리스도란 말이 들리자 어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그런 논쟁 중에 의로운 바리새인으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변호하며 말했습니다. “의장! 사실을 제대로 알기 전에 심판부터 하면 됩니까?” 그때 교권주의자들이 대답했습니다. “너도 갈릴리 출신이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갈릴리에서도 선지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결국 그들은 지역편견 때문에 진리의 예수님을 놓친 인생 최대의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진리를 보는 눈이 어두워집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예수’란 사실이 얼마나 위로와 소망이 됩니까? 눈물 많은 세상에서도 예수님이 ‘예루살렘 예수’가 아닌 ‘나사렛 예수’라는 사실로 인해 큰 소망과 위로를 얻습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머십시오. ‘연약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얻게 하는 지렛대’와 같습니다. 그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가엽게 여김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십시오. 하나님은 자녀를 차별 없이 품는 ‘어머니’와 같고 물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습니다. 어머니와 바다는 속성이 유사해서 한자의 ‘바다 해(海)’ 자에 ‘어미 모(母)’ 자가 포함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진실한 성도는 사람의 차이는 인정하되 사람을 차별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내가 가는 곳마다 나 때문에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추구하십시오. 약자의 눈물과 상처를 헤아릴 줄 모르면 믿음의 축제 후에 남은 것은 허전함뿐입니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으셨던 예수님처럼 약자를 환대하고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고 편견을 버리십시오. 차별과 편견을 버리면 세상과 사람이 바로 보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도 바로 보이면서 생각을 초월하는 복된 삶도 눈앞에 보일 것입니다. 동시에 변화하는 세상에서 뒤처지거나 도태되지 않고 집단지성과 시대정신을 선도하게 될 것입니다.

< 최선의 인생을 꿈꾸십시오 >

 한때 성공했어도 과거의 패러다임만 고수하면 실패하거나 도태하기 쉽습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목회자가 각 가정을 방문하는 심방이 중요했습니다. 그때는 목회자가 심방을 자주 하고 때로는 갑자기 성도 집을 찾기도 하면서 성도 가정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 것까지 알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목회자의 잦은 심방이 사랑이 많은 징표였고 목회자의 방문을 천사의 방문처럼 여겼습니다. 요새는 그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남을 갑자기 찾아가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자기 교인이라도 갑자기 찾아가는 것은 사려 깊은 모습이 아닙니다.

 한 목회자는 심방을 좋아해서 수시로 성도들의 집과 일터를 방문하니까 성도들이 부담스러워하다가 나중에는 힘들어했습니다. 일부 교인들은 “목사님이 너무 눈치 없이 찾아오신다. 예배 때 은혜 받고 힘을 얻고 싶은데 너무 돌아다니시면서 말씀 준비에 소홀하시다.”고 불평했습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 시간계획에 따라 기도하고 묵상하고 말씀을 준비하는데 사전 연락도 없이 갑자기 누가 찾아오면 곤란하고 난처할 때가 많습니다. 결국 그 목사님은 목회를 그만두고 지금은 심방이 많이 필요한 특수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옛날에 교회건축은 비전의 확장 및 성장에 아주 유용한 수단이었습니다. 교회를 웅장하게 건축하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 지역의 대표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주후 380년에 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되면서부터 2000년까지 1620년 동안 그 원리는 거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되고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교회건축이 교회성장을 이끄는 철옹성 원리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요새 교회건축이 꼭 필요했던 경우 외에는 건축해놓고 비어가고 심지어는 이자를 내지 못해 건물이 넘어가는 교회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건물에 들어가는 이자 부담 때문에 최근에 “힘들어서 죽고 싶습니다.”라고 말 한번 잘못했다가 목회자가 어떻게 자살 얘기를 하느냐고 교인들이 들고 일어나 더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주일에 하루 쓰고 주중에는 텅텅 비워놓는 건물을 몇십 억 이상 들여서 크게 올리는 것이 콘텐츠를 중시하는 지금의 시대상에 맞지 않게 된 것입니다. 지금 전국 곳곳에 비어가는 교회, 학교, 병원 건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 건축에 나섰다가 비전도 무너지고 영적인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 상황을 보면서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문서선교 사역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약 2달 전 교회와 문서선교 사역 연혁을 정리하다가 마음에 강렬한 소원이 생겨 <월새기 영어판> 창간호를 <월새기> 창간 5주년이 되는 2019년 9월에 발행하기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재정이나 인력이나 후원 면에서 거의 준비된 것이 없지만 그렇게 강한 소원이 생기게 된 것은 지난 3년 간 <월새기> 말씀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은혜 받고 변화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책 1권을 천 원에 공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재정을 건물에 묻어두지 않고 문서선교에 풍성하게 사용하니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무수히 돌아오는 것을 목격하면서 <월새기 영어판>을 통한 세계선교의 비전을 더욱 사모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분당 인근에 큰 교회건물을 지어놓고 이자를 내지 못해 허덕이다가 결국 건물이 넘어가버리는 모습들을 많이 보면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그런 건축 재정보다 훨씬 적은 재정으로도 <월새기 영어판>을 발행해 전 세계에 있는 무수한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이끌 수 있으니 얼마나 영적인 효율이 큽니까?

 어떤 사람은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 목사님이 뭘 믿고 <월새기 영어판> 발행날짜 목표까지 세우나?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월새기> 발행 사역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은밀한 후원자의 손길을 통해 3개월 만에 창간호를 발행하고 지금까지 약 3년 간 은혜롭게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큰 은혜를 받으면 자연히 은혜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신실하게 콘텐츠만 잘 준비해놓으면 하나님께서 은혜 받은 또 다른 은밀한 후원자를 보내주셔서 <월새기 영어판> 발행도 가능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지난 3년 간 뿌린 <월새기> 말씀의 씨가 헛되지 않아서 문서를 통한 세계선교의 비전을 향해 멋지게 이륙할 날이 조만간 올 것입니다. 번듯한 건물도 없는 작은 교회가 세계를 대상으로 복음전파 사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도전이 됩니까? 콘텐츠만 잘 준비하면 그런 멋진 일을 누구나 해낼 수 있습니다. 찬란한 꿈을 품으십시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고 소프트웨어보다 콘텐츠가 중요합니다. 자기 콘텐츠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계획해 두신 찬란한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인생을 그냥 순응하며 살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현실에 순응하는 삶은 찬란한 꿈을 파괴하고 삶의 목적을 깨뜨리고 삶을 정체시킵니다. 현재 위치에 자신을 한정시키지 마십시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현재의 일터에서 자리를 유지하는 것 정도로 끝내지 말고 복의 근원이 되는 사장이나 회장의 꿈도 가져보십시오.

 지금도 사탄은 수시로 다가와 속삭입니다. “아무개야! 네 모습을 봐라. 너무 나이가 많다. 이제 기회는 다 지나갔다. 헛된 꿈을 품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아무개야! 늦었다고 여기지 말고 새롭게 시작해보라.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잉태시킨 꿈과 비전을 낙태시키지 않고 우리의 나머지 인생(the rest of life)을 최선의 인생((the best of life)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늘 붙들고 최선의 인생과 최상의 미래를 꿈꾸고 만들어가는 ‘세상을 바꾸는 한 사람’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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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열왕기상 17장 1-7절

1.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신앙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열왕기상 17장 1-7절)

< 한 사람의 중요성 >

 1645년, 단 1표 차이로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의 통치권을 장악했습니다. 1649년, 단 1표 차이로 영국 왕 찰스 1세가 처형되었습니다. 1776년, 단 1표 차이로 미국은 독일어 대신 영어를 국어로 채택했습니다. 1923년, 단 1표 차이로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당을 장악했습니다.

 가끔 우리는 한 사람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특히 역사의 혼란기에는 한 사람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라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 ‘헌신된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과거에 영국을 대영제국으로 만든 사람은 2명의 여자, 엘리자베스 여왕 1세와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나 한 명이 변화되면 가족도 살고, 교회도 살고, 나라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잘 믿으라고 하기 전에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대표성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팀 11명이 경기에서 이기면 “우리나라가 이겼다.”고 하고, 그 11명이 지면 “우리나라가 졌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영적인 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고, 반면에 예수님 한분의 헌신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처럼 나 한 사람의 죄와 헌신도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습니다.

 여호수아 7장을 보면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그처럼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나 한 사람이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주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헌신된 삶을 살려고 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이 사용하실만한 헌신된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 신앙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까요? 첫째, 연약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엘리야의 출신지 길르앗은 요단강 건너편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두만강 건너의 변방지역입니다. 그 중에서도 디셉이란 지명은 성경에 딱 한 번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시골지역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시골 출신의 엘리야를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해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둘째, 헌신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가서 말씀을 선포할 때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내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그것은 그가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기도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아합 왕 앞에서 당당하게 말씀을 선포한 엘리야에게 바로 이어서 하나님은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는 기도 굴과 똑같았습니다. 그때 기도하며 훈련을 받았기에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불을 끌어내는 능력 있는 선지자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고독한 순간을 만날 때 자기 자리와 믿음을 지키고 고독한 시간을 기도 시간으로 만드십시오.

 넷째, 인내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이끄셨을까요? 당시 그릿 시냇가는 너무 조그만 냇가여서 지금은 어딘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큰 강물이나 폭포로 인도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강물과 폭포수의 축복은 잠깐의 찬양은 줄지라도 자칫 우리의 입술에서 꾸준한 찬양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짜 축복은 큰 것에 있지 않고 꾸준한 것에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초고를 원고지 100매 정도로 쓰면 두 번째 수정원고는 80매 정도로 줄이고 세 번째 수정원고는 60매 정도로 줄이고 네 번째 수정원고는 40매 정도로 줄입니다. 그런 인내의 과정이 길어질수록 독자가 받는 말씀의 은혜도 더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이든지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단 열매는 있습니다. 어려움 뒤에는 반드시 승리가 숨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힘들다고 포기하면 축복의 열매는 얻을 수 없고 오히려 훈련기간만 길어집니다.

 살다보면 축제도 있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믿음과 노력과 인내가 있으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이제 조금 더 인내하십시오. 조급하면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야지! 빨리 성공해야지!”라고 너무 조급하게 굴면 교회와 가정의 포도원은 무너지고 결국 자신의 영혼도 무너집니다. 신앙은 주님 만나는 날까지 달려가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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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21)

 

 

 

1.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는 성공에 이르는 사람들보다 실패로 끝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성공을 원하면서도 실패로 끝나게 될까?


테레사 수녀는 말한다.

 

"작은 일들에 충실하십시오당신을 키우는 힘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삶이 성공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다음의 3가지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작은 일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둘째는 바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

셋째는 내면을 알차게 한 후에 외면으로 나가야 한다.

 

작은 일부터

기초부터

내면부터

 

알차게 다져나가게 되면 큰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큰일이 중요하다 여겨 작은 일을 미루고 큰일부터 도모하려 들지만 큰일은 작은 일들이 모여 이루어지기에 작은 일을 소홀히 한 채로는 큰일을 이룰 수 없다.

 

 

2.

 

큰 성공은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큰 실패 역시 작은 과오로부터 시작된다. 대만 최고의 부자인 포모사의 회장인 왕융친은 16살 나이에 두메산골을 떠나 도시로 갔다.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한 처지였던지라 도시로 가서 무슨 일자리든 잡아보려는 마음으로 빈손으로 도시로 나갔다. 나이로 보아서나 경력으로 보아서나 도시에서도 일자리 얻을 처지가 못되었다. 고심 끝에 구석진 뒷골목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가게를 하나 얻어 쌀가게를 열었다.

 

그러나 손님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손님이 없으면 손님이 올 수 있도록 만들자는 단순한 생각을 품고 어떻게 하면 손님이 오게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였다. 몇날며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4가지를 생각해 내어 실천하였다. 4가지 작은 실천이 대만 최고의 부자가 되는 길을 열었다.

 

첫째는 쌀에 섞인 돌과 이물질을 깨끗이 골라내어 쌀의 질을 높였다.

둘째는 쌀이 무거운 상품이므로 고객의 가정까지 배달하는 서비스를 실행하였다.

셋째는 고객들 가정에서 쌀독에 쌀을 붓기 전 쌀독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바닥에 쌓인 쌀을 퍼내고 새 쌀을 붓고는 그 위에 퍼낸 쌀을 부어 주었다.

넷째는 가난한 집에는 먼저 쌀을 배달하고 나중에 갚게 하는 외상판매의 편의를 베풀었다.

 

이렇게 실천하자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나기 시작하여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하였다. 왕융칭 회장은 작은 일, 디테일한 부분을 철저히 하여 크게 성공한 세계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3.

 

일제시대(日帝時代)의 일이다. 평안북도 한 두메산골에 가난하지만 똑똑한 청년이 있었다. 가난하여 학교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부잣집 머슴살이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면서 날마다 주인어른의 요강을 정성스레 닦곤 하였다. 머슴의 성실함을 지켜 본 주인은 머슴살이로 마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청년이라 여겨 학자금을 주어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본 메이지대학 유학까지 마쳤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내려가 오산학교의 교사가 되었다가 교사들 전원의 일치된 추천으로 교장이 되었다. 진실한 크리스천이요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였던 조만식 장로의 이야기이다. 해방 후 북한에서 조선민주당을 창당하여 당 대표로 활약하다가 소련의 힘을 등에 업은 김일성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조만식 장로는 사람들이 성공의 비결을 물을 때면 답하곤 하였다.

 

"요강 잘 닦는 사람이 돼라!"

 

작은 일에 정성을 쏟고, 작은 일을 소중히 하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 하는 사람이 큰일을 감당할 수 있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치고 성공한 예는 없다. 절대로 없다. 당신이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픈가? 지금 앞에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러면 큰 성공이 뒤따라 올 것이다.

 

 

4.

 

세계적으로 1인자의 자리에 오른 건축설계사에게 한 젊은이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최고의 설계사가 될 수 있습니까?” 설계사가 간략하게 대답하였다. “디테일( Detail)을 잘 하여야 하네."

 

우리들 한국인의 약점이 하나 있다. 디테일에 약한 점이다. 대범한 것은 좋은데 대범한 척 하다 디테일에 약하다 보니 그 대범함이 허세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있게 된다. 우리에 비하여 일본인들의 장점이 있다. 디테일에 강하고 일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잘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이런 점을 배워야 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그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공통된 한 가지 특성이 있다. 넓게 보면서도 세심한 부분 부분을 볼 줄 안다는 점이다. 그리고 높이 보면서도 기본에 충실할 줄 아는 점이다. 아테네 철학자 중 탈레스란 철학자가 있었다. 늘 하늘을 쳐다보며 우주의 본질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길을 가다가 하수구에 빠진 적이 있다.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이 점에서는 우리와는 달랐다. 신라시대 불국사 건축의 예를 들어보자. 불국사 건축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정하고 그 공사 진행의 책임자로 김대성 전직 총리를 맡겼다. 이 일을 맡은 김대성은 불국사를 지을 터에 움막을 세우고 그곳에서 일 년을 거하며 사계절의 변화 모두를 샅샅이 살폈다. 여름 장마철에 물은 어느 쪽으로 흐르는가, 겨울철 바람은 어느 곳으로 부는가, 가을철 경관은 어떻게 변하며 봄철의 변화는 여하한가?

 

김대성은 그렇게 일 년간 움막에 거하며 사계절의 변화를 디테일한 부분까지 샅샅이 살핀 후에 설계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디테일한 부분 부분을 살펴 설계하고 건축을 진행하였기에 불국사는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불국사 건축을 완성한 후에 세운 석굴암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배려하여 세운 석굴암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정교함과 치밀함과 합리성을 품고 있다. 우리는 조상들의 이런 장점을 되살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들이 개인으로나 국가로나 성공으로 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우리 모두 전체를 보되 세밀하게 살피자. 디테일의 힘을 깨달아 성공의 길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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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히브리서 4장 12-13절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말씀에 대한 4대 정의

1. 살아 있는 인격
 
 말씀은 공기를 파동 시키는 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입니다. 본문 12절에서 “말씀이 활력이 있다.”는 말은 “말씀에 실제적인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 새 창조의 역사가 생기고 놀라운 생명력이 나타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말씀에 대한 상투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출장 중에 비행기에서 식사할 때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비행기회사 사장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비행기회사 사장이 급히 보낸 정중한 사과편지를 받았습니다. 이런 편지였습니다. “손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저는 곧 그 문제의 비행기 운행을 취소시켰고 그 비행기의 모든 좌석의 커버와 카펫을 다 바꾸려고 새 것을 주문했습니다. 또한 손님에게 불량음식을 제공한 스튜어디스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다. 계속 우리 비행기를 이용해주십시오.”

 그 편지를 받고 자기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자세히 보니까 편지봉투 안에 자신이 보낸 편지도 들어있었습니다. 사장 비서가 실수로 자신의 편지까지 함께 보낸 것입니다. 그 편지를 보자 그 편지 제일 위쪽에 사장이 비서에게 쓴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친구한테 그 표준 바퀴벌레 사과편지를 보내줘(Send this guy that standard roach letter).” 그 글귀를 보고 그는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상투적인 편지임을 알고 더욱 수치와 분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새 교회부흥이 어려워지면서 교회마다 각종 묘안들을 짜내고 각종 프로그램을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교회부흥과 관련된 세미나에는 한때 목회자들로 넘쳤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달란트와 목회 상황에 맞지 않은 상태에서 세미나를 통해 배운 대로 따라 하다가 더 힘들어진 경험을 하면서 더욱 말씀에 집중하자고 다짐하는 목회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설교자들이 상투적인 말씀을 지양하고 깊은 묵상으로 새롭고 신선한 말씀을 준비하면 언젠가는 한국 교회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2. 영적인 수술 칼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도 수술하고 육신도 수술하는 수술 칼입니다(12절). 병은 육신이 원래의 질서를 잃어버릴 때 생깁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바르게 되어 영혼의 질서가 회복되고 마음에 평안이 임하면 육신도 잃어버린 질서를 회복하고 그때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혼과 육신에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고 마음의 천국을 원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말씀이 자신을 찔러 쪼개도록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말씀이 자신을 찔러 쪼개도록 하기보다 자신이 말씀을 찔러 쪼개는 것입니다.

 제자 훈련을 성경공부 중심으로 할 때 나타나는 가장 큰 부작용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찔러 쪼개다가 점점 말씀이 자신을 찔러 쪼개도록 하는 것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말씀을 신기하게 잘 해석하는 사람을 ‘말씀을 잘 쪼개는 사람’이라고 해서 최고의 부흥강사로 대접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개 종말론을 강조하고 다니엘과 요한계시록과 같은 말씀을 깊이 쪼갠다고 하면서 신기하게 뜯어 맞춰 해석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쪼개면서 동시에 얼마나 많은 교회와 가정과 영혼과 인격과 신앙을 쪼갰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쪼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종합적이고 통전적으로 보면서 말씀 앞에 자신의 심령을 쪼개야지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쪼개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가끔 성경을 보면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한 말씀들이 나옵니다. 그때 그 말씀을 깊이 파헤치고 자신이 다 아는 듯이 엉뚱하게 해석하는 것은 결코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르게 하셨으면 다 아는 척 하지 말고 모르고 넘어갈 필요도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늘 겸손하십시오. 자기가 말씀을 다 아는 것처럼 하면서 ‘말씀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찾아가는 것은 지극히 주의하십시오. 그런 태도가 교회를 죽이고 가정을 죽이고 자기를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말씀을 찔러 쪼개는 것은 사망의 길이고 말씀이 나를 찔러 쪼개도록 하는 것은 생명의 길입니다.

 요즘 한때 남보다 기도 조금 더 하고 성경 조금 더 읽으면 무엇인가 크게 변한 줄 알고 영성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처럼 조금만 남보다 무엇인가를 잘한다고 해서 마음이 높아져 영적으로 높은 사람처럼 행세하면 풍천의 안 뻐꾸기처럼 놀림감이 됩니다. 내가 말씀을 찔러 쪼갬으로 신기한 사람으로 변신하려고 하지 말고 말씀이 나를 수술하게 함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되려고 하십시오.

 

3. 영적인 엑스레이

 본문 12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살피는 엑스레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자신을 비쳐보면 자신의 연약한 부분과 병든 부분을 알게 되고 또한 말씀의 빛을 통해 자신의 내면이 밝아지고 어둠이 틈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계속 보고 들으면 영혼이 맑아지고 건강해집니다.

 때로 말씀의 엑스레이로 자신의 죄와 허물이 지적받고 들춰지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지만 그때 자존심을 버리고 회개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말씀도 때로는 요긴하게 필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강단에서 죄와 잘못을 지적하는 설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죄와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인격과 신앙은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교회 부흥을 원하면 절대 부정적인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주장한 노만 빈센트 필 박사도 “죄와 심판과 징계와 같은 마음에 찔리는 설교는 하지 말고 희망과 확신과 가능성만을 말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주장들은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면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겸손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나 노만 빈센트 필 박사님의 주장을 따르면 교회성장은 잘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교회성장이 진리는 아닙니다. 긍정의 힘은 필요하지만 죄와 잘못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긍정이 주는 힘은 잘못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말씀에 의해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도 상하게 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원하십니다.

 종말이 닥치면 자신의 물질이 자신의 삶을 더 허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현실에서도 물질 축복에 관한 말씀은 좋아하면서 죄와 잘못과 지옥에 관한 말씀을 잘 안 들으려 한다면 복된 결과를 낳지 못합니다. 때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도 잘 들으십시오.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이 영적인 엑스레이가 되어 죄를 지적하면 그 말씀에 찔리고 상한 마음을 가지면서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십시오. 그때 새롭게 되고 진짜 축복받는 길이 열립니다.

4. 하나님 자신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이 구절에서 ‘그 앞에’라는 말은 문맥상 ‘말씀 앞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씀을 보면 ‘그’는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를 지칭합니다.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는 하나님을 뜻하기에 결국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과 하나님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말씀에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까? 말씀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는 만물이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드러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다 보면 위대한 철학자나 과학자도 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자연을 이해하는 진리, 인간을 이해하는 진리, 삶을 이해하는 진리가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삶에 놀라운 변화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미국에 토끼 입술로 태어난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학교의 몇몇 나쁜 친구가 놀려서 그녀는 늘 위축된 채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청각검사를 했습니다. 그 검사는 선생님이 한 학생씩 불러서 귀에 짧은 말을 나직하게 하면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말하는 시험이었습니다. 그 시험에서 선생님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어린 딸이었으면 좋겠다(I wish you were my little daughter).” 그냥 시험으로 했던 그 말이 소녀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감 있게 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말도 그렇게 힘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귀에 속삭이십니다. “누가 뭐래도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다.” 그 말씀을 정말로 믿고 받아들이면 삶은 획기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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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무엘상 23장 15-18절

15.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16.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18.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십시오 (사무엘상 23장 15-18절)

< 실패할 때 여유를 가지십시오 >

 입시철이 되면 가끔 입시에 실패해 자살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입시를 자기 인생의 전부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입시도 중요하고 사업도 중요하고 우정과 사랑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생명입니다. 일시적인 실패에 생명을 다 걸고 “사느냐 죽느냐?” 하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길이 아니면 얼마든지 저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때도 많습니다.

 실패할 때 여유를 가지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가정과 사업과 인간관계에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는 있지만 실망하면 안 됩니다. 실패했는데 어떻게 실망이 안 됩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평소에 관심의 세계를 넓히고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의 선택을 하고 차선도 안 되면 차차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기르면 됩니다. 한쪽 세계만 보면 길이 막힐 때 길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처럼 절망적이지만 보는 세계만 넓히면 무수한 길이 보입니다.

 가끔 보면 성도 중에도 주기적인 실망감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만사형통’을 기독교의 진리로 생각하는 기복주의에 사로잡히면 자주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어려움이 있어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만사형통’만을 배운 사람은 일이 잘못될 때마다 그 잘못에 몰입하면서 결국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불공평하세요! 왜 제 기도를 안 들어주시고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불평하다가 죄책감에 빠집니다. “내가 죄가 많아서 그렇구나!” 그렇게 죄를 인정하고 눈물로 회개하면 좋지만 그렇게 자책하면서 절망에 빠지면 더욱 문제가 커집니다. 너무 만사형통을 바라지 마십시오. 만사형통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망조입니다. 항상 잘 되면 망하지 않는 영혼은 없습니다. 만사형통이란 이 세상에서는 있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처럼 있지도 않은 것을 찾으니 얼마나 허무함과 실망감도 많겠습니까?

 성공이란 많은 실패도 겪은 끝에 따르는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여유’를 가르십시오. 실패에 대한 여유를 가지는 것도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시련 중에도 내일의 소망을 가지십시오. 잠언 24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의인도 수시로 넘어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의인은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십시오 >

 어느 날, 다윗이 일곱 번째 도피처인 십 황무지 수풀에 있을 때 사울의 아들이자 친구인 요나단이 수풀로 다윗을 찾아와 그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어려운 도피생활에서 요나단의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그때 요나단은 다윗에게 3가지 영적 선물을 주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했습니다(16절). 둘째,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했습니다. 셋째, 내일의 소망을 가지게 했습니다(17절).

 하나님을 의지할 때 대충 의지하지 말고 힘 있게 의지하십시오. 믿음은 또 다른 믿음을 낳습니다. 그런 믿음의 파급효과를 계속 경험하다 보면 보편적으로 믿음이 체질화됩니다. 그처럼 믿음이 몸에 배여 있는 것은 중요한 행복의 요건입니다. 믿지 못하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믿으면 천국이 됩니다. 믿지 못하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없습니다. 부부관계에서나 친구관계에서 한번 믿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집니다.

 남편을 전적으로 믿는 아내는 남편이 늦게 올수록 사랑의 수은주가 올라가면서 진심으로 남편을 위하는 걱정을 하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얼굴이 환해집니다. 반면에 믿지 못하는 아내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의심의 수은주가 올라갑니다. “어디로 샜나? 누구를 만나 무슨 수작을 하나?” 오만가지 추측을 하고 그 추측한 대로 믿습니다. 원래 몽상가는 사실보다 꿈을 더 확실한 것으로 믿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내 육감은 못 속여!”라고 하면서 자기 육감을 지나치게 믿습니다. 얼마나 피곤하고 고통스런 삶입니까?

 사회도 믿음이 없으면 지옥이 됩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가해자는 한명도 없고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서로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모든 불신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나옵니다. 사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기적들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믿음의 기초가 잘 형성되겠습니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려면 두 가지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첫째, 자신이 인격 장애가 있는 무능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가능성이 있는 무한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의 근원은 주님을 힘 있게 의지하고 사는 것에 있습니다. 진정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음침한 밤이 지나 유쾌한 아침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수많은 축복의 길이 보일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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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nga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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