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요한복음 21장 7절

7.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사랑하면 영안이 열린다 (요한복음 21장 7절)

< 사랑하면 영안이 열린다 >

 열왕기하 6장에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이 나온다. 그때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으러 도단성으로 군사를 보냈다. 아침에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 군대가 성을 둘러싼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있자 엘리사가 말했다. “걱정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다.” 그리고 엘리사가 기도하자 사환의 눈이 열려 불 말과 불 병거가 보였고 반대로 아람 군사의 눈은 닫혔다. 결국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다. 영적 전쟁에서 중요한 승리 요건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이다.

 문제만 보지 말고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과 돕는 천사들을 보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라. 영안이 열렸다는 것은 신기한 것을 본다는 것만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봐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신비로 감춰진 부분도 있어야 진짜 사랑이 생긴다. 사랑 자체가 신비다. 다 벗겨버려 신비가 사라진 사랑은 환멸이 될 수 있기에 하나님은 다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영안이 열린 것의 더 중요한 의미는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다.

 본문에서 제자 중 제일 먼저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은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제자 요한이었다.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흥분된 소리로 “주님이시다!”라고 소리쳤다. 왜 7명의 제자 중 요한이 제일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았는가? 시력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언제 영안이 열리는가? 예수님을 많이 사랑할 때다. 사랑하면 얼굴도 빛나고 언어도 따뜻해지고 표정도 밝아지지만 무엇보다 영적인 시력이 좋아진다.

 교회를 사랑하면 교회에 떨어진 휴지와 꺼진 전등과 후미진 곳의 거미줄이 잘 보이면서 조용히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 배우자를 사랑하면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잘 알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고 평범한 곳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 썬다 싱은 꽃을 보다 하나님을 만났다. 영안이 열리면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된다. 가시덤불에서도 하나님의 솜씨를 느끼고,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도 없이 무엇을 본다고 하면 무서운 사람이 된다.

 고린도전서 13장 2절에는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란 말씀이 있다. 대단한 성경 지식과 영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다. 왜 교단과 교회가 분열되는가? 그 역사를 추적해 보면 대개 ‘사랑이 없는 지식’이 문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하지만 사랑 없이 아는 것은 병이다. 사랑이 없으면 모르는 것이고 영안이 닫힌 것이다. 사랑이 있어야 영안이 열리고 비로소 내 곁에 계신 주님을 볼 수 있다.

2. 좋은 꿈은 이뤄진다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님이시다!”라고 외쳤을 때 얼마나 흥분했겠는가? 그 한 마디에 예수님을 향한 그리움과 사모함이 다 들어 있다. 드디어 제자들은 그토록 사모하던 예수님을 만났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뵙고 싶다는 꿈을 품고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왔는데 결국 그 꿈이 이뤄진 것이다.

 죄 많은 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 만남을 위해 예수님이 오작교가 되어주셨다. 그 사랑을 생각하며 좋은 꿈을 품고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라. 좋은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 힘들고 어려워도 꿈을 붙들고 사명의 자리를 지키면 꿈이 이뤄지는 환상적인 때는 반드시 온다. 사람은 자기의 꿈 이상 크지 않는다. 꿈이 없는 인생은 망할 인생이다. 꿈이 없으면 동행자도 얻기 어렵고 고통도 크게 보인다. 반면에 꿈이 있으면 고난이 작게 보이고 충분히 견딜 수 있다.

 남을 탓할 시간이 없다. 환경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사람에 대해서나 일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라.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면 “꿈이 희미해졌구나.” 하고 각성한 후 다시 꿈을 새롭게 하라. 꿈이 있어야 살맛도 난다. 꿈이 크면 지칠 것 같지만 사실상 인생을 지치게 하는 것은 꿈이 없어 새로운 자극을 못 받는 것이다. 운전할 때 1단 기어로만 가면 답답하다. 시간이 지나면 2단, 3단, 4단으로 점점 올려야 답답하지 않다.

 권태는 꿈을 품고 도전하지 않아 잠재력이 사장되기에 생긴다. 잠자는 잠재력을 깨우라. 도전하고 성취할 때 만족이 있다. 권태에 빠지는 것은 도전도 없고 성취도 없기 때문이다. 늘 꿈을 새롭게 하고 아름답고 찬란한 꿈을 꾸라.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의 비전과 크신 프로젝트를 이루는 일에 동참하는 꿈을 꾸고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라. 능력 있는 사람은 어려워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면 때가 되어 반드시 꿈은 이뤄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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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Lord, help me to turn to You in the midst of my busyness and life’s distractions. Thank You for always being here, ready to catch me.

주님, 바쁜 생활과 혼란 속에서도 주를 향하게 하소서. 언제나 바로 옆에서 저를 붙잡을 준비를 하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68. Dear God, remind me of my need for Your daily bread of presence.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 제게 매일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소서.

 

 

67. Lord, we have so many questions about life and its unfairness. You have shown Yourself good to us. Help us to trust You for what we cannot understand.

주님, 우리는 인생과 삶의 불공평함에 대해 많은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선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주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66. Thank You, Lord, for being my guide through troubled waters. Help me to trust You even when the journey is wild and scary.

주님, 거친 풍파 속에서도 저를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여정이 험하고 두려워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65. Heavenly Father, all of the time I have is in Your hands, a gift from You.

Please show me how to use it to bring glory and honor to You.

하나님 아버지, 제게 있는 모든 시간이 주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영화를 돌리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소서.

 

 

64. Thank You, Father, for walking with me on this difficult journey and hearing me when I cry out to You.

하나님 아버지, 이 힘든 여정에 저와 동행해주시고 저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63. Lord, help me to tackle everything on my plate today with grace, enthusiasm, and joy, knowing that my attitude may affect others in ways I’m not even aware of.

주님, 저의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저도 모르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제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은혜와 열정과 기쁨으로 해낼 수 있게 도와주소서.

 

 

62. Lord, thanks for demonstrating Your endless love to Your people, in our lives and through the words You preserved in Scripture.

주님, 우리의 삶과 성경에 보존하신 말씀을 통해 주님의 백성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61. Father, we ask You to fill our hearts with Your love for others. We hold up to You and beg for them to see the truth about Your Son Jesus.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들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주소서. _________를 주님께 올려드리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있게 하소서.

 

 

60. When life overwhelms me, Father, help me to remember that You are powerful and You care. May I, like Elijah, cling to You in faith, knowing that You work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You.

삶이 나를 억누를때, 아버지의 강하심과 도우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심을 기억하며 엘리아와 같은 믿음으로 당신에게 굳건히 붙어 있게 하옵소서.

 

 

59. Father, You have made me to give to others just as You have given to me.

Teach me to give so that I can truly reflect Your character and be more like You today.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처럼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베풂으로 주님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더 주님을 닮을 수 있게 해주소서.

 

 

58. Dear God, help me to explore the depths of Your love. I want to give to others what You have given to me.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의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게 도와주소서. 주님께서 제게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57.

Lord, help us know how to encourage others who need a spiritual boost from us.

주님, 영적인 활기를 찾아야 할 사람들을 어떻게 격려할 수 있을지 가르쳐 주소서.

 

56. Father, help us not to remain trapped in our sin and despair. Help us turn to You with our burdens, trusting Your love and power to write a new story of healing and transformation.

하나님 아버지, 죄와 절망에서 우리를 나오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으며 우리의 짐을 주님께 내려놓고 치유와 변화의 새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도와주소서.

 

 

55. Father in heaven, we are awed by Your love for us that never changes, never fails, and never ends. We praise You for demonstrating Your limitless love for us through Jesus our Savior and Lord.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변함없고 그침 없고 끝도 없는 사랑은 놀라울 뿐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을 보여주심을 찬양합니다.

 

 

54. Heavenly Father, we can’t thank You enough for the radical love of Your Son, who drew all of us outcasts and moral failures to Him, and made the way for us to come to You in joy and boldness.

하나님 아버지, 버려진 자들이요 도덕으로는 실패한 우리 모두를 당신께로 가까이 불러주시고, 기쁨과 담대함으로 당신께 나아갈 길을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에 다함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53. Lord, please equip me with Your strength to persevere and finish the tasks You’ve given me. May my labors bring You glory.

주님,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인내로 계속하며 끝마칠 수 있도록 주님의 능력을 주소서. 저의 수고가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52. Lord God, thank You for being the light in the darkness. Bring hope when I’m sad and confused, and help me to see Your glory.

사랑하는 하나님, 어둠에서 빛이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슬프거나 혼란스러울 때 소망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51. Father, thank You for loving us so much more than even the best father here ever could. Help us to do as Jesus said with everything that’s on our hearts; to ask, seek, and knock in our relationship with You.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서 최고의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과의 관계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소서.


 

 

50. Lord, please help us trust Your abundant love and generosity, so we can give to others as You so faithfully give to us.

주님, 주님의 넘치는 사랑과 너그러움에 의지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신실하게 베푸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베풀게 하소서.

 

 

49. hank You, Father, for the acts of others You use to lift us up, and for calling us to do the same.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이 하는 일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또 우리에게 같은 일을 하라 하시니 감사합니다.

 

 

48. Lord, so often we exchange the joy and freedom of life with You for the burden of relying on ourselves. Help us to humbly rely on You instead. Help us to grow ever-deeper roots in Your love.

주님,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는 삶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자신을 의지하다 고생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겸손히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47. Dear Lord, thank You for knowing us so well and for providing what we need most. Give us eyes to see You and a heart to understand Your Word.

사랑하는 주님,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고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볼 수 있는 눈과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46. Lord Jesus, thank You that there is nowhere I can go that is outside of Your loving gaze. Knowing You see me, help me to honor You with my words and actions.

주 예수님, 제가 어디를 가든 당신의 사랑의 눈길이 머물지 않는 곳이 없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저의 말과 행동으로 주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45. Lord Jesus, You conquered sin and death forever through Your cross and empty tomb! Help me to live and thrive in the forgiveness only You can give.

주 예수님,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을 영원히 이기셨습니다!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용서 안에 거하며 자라가게 도우소서.

 

 

44. Dear Lord, I thank You for heaven, my eternal home.

사랑하는 주님, 나의 영원한 집인 천국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43. Father, teach us who You are. Increase our trust in You. Fill our minds with Your perspective.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가르쳐주소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주소서.

 

 

42. Lord, thank You for being so trustworthy. I need no other promises but Your word. Help me to trust You more and more each day.

주님, 당신의 신실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말씀 외에는 그 어떤 약속도 필요 없습니다. 매일 매일 주님을 더욱 더 신뢰하게 하소서.

 

 

41. Thank You, Lord, that You always know where I am and how I am doing. You know me inside and out. I’m thankful I can count on You to care.

제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항상 아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저의 안과 밖을 다 아십니다. 돌보시는 주님을 의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40. Lord, sometimes the struggles we face in life seem so big. But You are bigger. Help us to cling to Your promise of comfort in fearful moments and to experience Your loving provision as we trust You.

주님, 삶에서 부딪치는 일들이 때로는 너무 커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크십니다. 두려울 때에 평안 주시는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주님을 의지할 때에 사랑으로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하소서.

 

 

39. God, thank You for welcoming us into Your family and the community of faith. Give us hearts and homes that welcome others too.


하나님, 우리를 당신의 가족으로 신앙의 공동체로 맞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38. Father, when things change in my life, help me not to be anxious but to trust You and find contentment in You alone.

하나님 아버지,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 걱정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찾게 하소서.

 

 

37. Heavenly Father, thank You for not valuing people based on outward appearances but instead by looking at our hearts. Help me to take the time to see beyond simply what my eyes can see in order to discover true and lasting beauty.

하나님 아버지,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보시고 사람을 평가하시니 감사합니다. 진실하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찾아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것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게 하소서.

 

 

36. Praise God! Praise You, Lord, for the wonder of the earth You created.

하나님을 송축하라! 주님, 주께서 창조하신 이 땅의 경이로움을 인하여 찬양 드립니다.

 

 

35. Lord, thank You that You are making all things new. Help us to live in the hope of the day we will live with You, pure and blameless, on a new earth in Your presence forever and ever.

주님,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새 땅에서 영원히 주님 앞에 순결하고 흠이 없이 함께 살게 될 그날을 소망하며 살게 하소서.

 

 

34. Thank You for watching over our loved ones and us, Lord.

주님, 우리와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33. Father in heaven, may we honor You today by loving others and speaking gently and respectfully to them when they ask about the hope we have in You.

다른 사람들이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게 하소서.

 

 

32. Lord, thank You for the gift of salvation and Your promise to enter when we open the door. Please help me to respond to this gift and open the door for You today.

주님, 구원의 선물을 주시고 우리가 문을 열면 들어오신다는 약속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이 선물을 받고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도록 도와주소서.

 

 

31. Lord, let us not love just in words, but in actions and in truth. Teach us to be obedient to Your call to love.

주님, 우리가 말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게 도와주소서. 사랑하라는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도록 가르쳐주소서.

 

 

30. 주님, 제가 전심으로 주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Lord, help me to seek You with all my heart.

 

 

29. Lord God, You have released us from our chains of unbelief and given us words to praise You. May we share this freedom with others for Your glory.

주 하나님, 주님은 우리를 불신의 멍에에서 풀어주시고 주님을 찬양할 말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른 이들과 이 자유를 나누게 하소서.

 

 

28. Lord, forgive me for sometimes revisiting my past and forgetting that You have washed away my sins. Thank You for taking my burden and setting me free to enjoy living for You.

주님, 때로 과거로 돌아가 주님께서 제 죄를 깨끗게 하신 것을 잊어버리는 저를 용서해주소서. 저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고 주님 위한 삶을 자유롭게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27. Thank You for Your gift of life eternal. May we acknowledge and honor You throughout this day.

주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 내내 주님께 감사하며 경외하게 하소서.

 

 

26. Heavenly Father, we all come from families that are broken in one way or another. Thank You for loving us in that brokenness and for showing us what real love looks like.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는 모두 여러 모양으로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런 깨어짐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참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25. Lord, forgive me for chasing after things that matter far less than my fellowship with You. Thank You that You stand ready to enrich my life with Your presence and power.

주님, 주님과 교제하는 것보다 훨씬 덜 중요한 일들을 쫓아다녔던 저를 용서해 주소서. 당신의 임재와 능력으로 언제나 제 삶을 풍성케 해주시려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4. Father, You have given us all the time we need to accomplish what You have given us to do. May we use our time in ways that honor You.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성취하도록 모든 시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우리 시간을 사용하게 하소서.

 

 

23. Lord, grant me the strength to serve You with every breath I take, so that every moment of my remaining days matters to Your Kingdom.

주님, 살아 숨 쉬는 매순간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남은 모든 순간이 주의 나라에 의미 있게 하소서.

 

 

22. Heavenly Father, please help me be quicker to console or encourage, and slower to judge someone else.

하나님 아버지,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은 속히 하고, 판단은 더디 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21. Lord, so often we feel trapped by our mistakes, thinking there’s no future left for us. Remind us that you are the God of Jacob, the God who will never give up on Your purposes for us.

주님, 우리는 자신의 실수에 발목 잡혀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은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목적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분이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20. Dear Father, thank You for being my Rock and my safe place.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19. Lord, thank You for the promises in Your Word that assure us You’ve planned our path and remain with us and for us, no matter what comes our way.

주님,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주님이 우리의 길을 계획하셨고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18. Lord, hard things in our lives can tempt us to believe we are unlovable. But You say otherwise. Please help us to receive the life-transforming gift of Your everlasting love for us.

주님,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가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영원한 사랑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소서.

 

 

17. Thank You, Lord, for hearing my discouragement and being my defender. Help me to evaluate the good and bad in the criticism, to trust You, and to continue in my work wholeheartedly.

주님, 저의 낙담을 들으시고 제 보호자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판 속에서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잘 가려서 듣고 주님을 의지하여 온 마음으로 일을 계속해 나가게 도와주소서.

 

 

16. Beautiful Savior, I am Your servant. Please help me to live in Your love and be a blessing to someone today.

아름다우신 구주여,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오늘도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게 하소서.

 

 

15. Loving Father, living Jesus, comforting Holy Spirit, thank You that You know me completely, and that You love me unceasingly.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살아계신 예수님, 위로의 성령님, 나를 완전히 아시고 끊임없이 사랑하심을 감사드립니다.

 

 

14. Lord, thank You for guiding and caring for us every step of the way. Help us to trust in You daily.

주님, 우리의 발걸음마다 인도하시고 돌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하루하루 신뢰하게 도와주소서.

 

 

13. Lord, help us to represent You to others. Guide us to show hospitality in a way that will show others Your love.

주님,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드러내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도록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게 하소서.

 

 

12. Lord, thank You for being a Father we can always count on.

주님, 우리가 항상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11. Lord Jesus, I want to be more like You each day. Help me to cooperate with the work You want to do in my heart.

주 예수님, 매일 주님을 더 닮기 원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 안에 역사하실 때 나도 함께 힘쓸 수 있게 하소서.

 

 

10. Dear Lord, help me to work with others, side by side, by showing love and pointing others to Jesus.

사랑하는 주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때 사랑을 보여주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게 하소서.

 

 

9. Father, open the eyes of my heart to clearly see who Jesus is and what He can do.

하나님 아버지, 제 마음의 눈을 열어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잘 볼 수 있게 하소서.

 

 

8. Dear Lord, as I read Your Word, open my eyes that I may discover the wonders of Your revelation.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의 놀라운 계시를 발견하게 하소서.

 

 

7. Dear God, help me to find my rest in You.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6. Jesus, we again stand in awe at Your sacrifice. We kneel in Your presence and with gratitude acknowledge what You did for us on the cross. Thank You for making it possible to have fellowship with the Father forever.

 

예수님, 우리는 주님의 희생에 다시 한 번 경외감을 표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감사를 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토록 교제가 가능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 Abba, Father, thank You that I can come to You without fear of having to get my words just right. Help me to keep company with You today.

하나님 아버지, 말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Father, in the midst of troubles, help me to focus on Your promises.

하나님 아버지, 환난 때에 주님의 약속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3. Lord, we thank You for those who serve their communities as First Responders. We humbly ask You for their safety.

주님, 응급요원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는 분들을 보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시기를 주님께 겸손히 간구합니다.

 

 

2.

Lord, You are my friend when I feel alone. Thank You for being with me in the dark caves of life.

주님, 내가 외롭다고 느낄 때 주님은 나의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삶의 어두운 동굴에서 나와 함께 계시니 감사합니다.

 

1. Father, open our eyes today to what’s beautiful. Teach us to meditate on You.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름다운 것들에 우리의 눈을 열게 하소서. 주님을 묵상하도록 가르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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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prayer, 기도

 

[이미지출처: SNS선교사 "사람 낚는 어부"]

 

 

 

 

 

 

본문말씀 : 요한복음 21장 6절

6.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순종이 가장 복된 자질이다 (요한복음 21장 6절)

< 순종은 축복의 제일 통로다 >

 예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순종했다. 그러자 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흘러나오게 하는 수도꼭지와 같다. 순종하면 능력이 흘러나오고, 순종하지 않으면 능력은 그친다. 사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명령에서 ‘오른편’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는데 그 장면에서도 ‘깊은 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다.

 예수님이 왼편으로 가라고 하면 왼편으로 가고 얕은 곳으로 가라고 하면 얕은 곳으로 가는 순종이 중요하다. 순종하는 만큼 축복받고 순종하는 자녀가 더 사랑받는다. 편애는 나쁘지만 순종하는 자녀가 더 사랑받고 반항하는 자녀가 덜 사랑받는 것은 ‘편애’가 아니라 오히려 ‘정의’다. 예수님도 12제자 중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더 사랑했다. 순종은 축복의 제일 통로다.

 인간은 똑똑한 것 같지만 어리석은 존재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었는데 더 쇠약해져서 종합 진찰을 하자 보약이 체질에 맞지 않아 간이 녹아버린 것이었다. 결국 보약 먹고 2개월 만에 죽었다.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약하다. 아무리 건강해도 병균 하나로 죽을 수 있고 아무리 강건해도 눈짓 하나, 말 한 마디로 마음이 무너질 수 있다. 강해보이는 사람도 때로는 한없이 약해진다. 나폴레옹도 귀가하면 고독과 외로움으로 아내 앞에서 종종 무릎 꿇고 울었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지만 만물 중에 가장 순종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예수님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했을 때 그 음성을 제자들뿐만 아니라 디베랴 바닷가의 큰 물고기들도 들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 오른편으로 몰려들었고 제자들이 그물을 내리자 그 물고기들은 “주님! 우리는 죽도록 충성할래요.”라고 외치듯이 너도나도 그물 속으로 먼저 들어가 예수님 말씀이 부도 맞지 않게 순종했다.

 사람은 순종하기 쉬운 말씀도 많이 부도낸다. ‘자유의지’라는 가장 복된 선물을 가지고 가장 순종도 못한다. 그런 본능을 역류해 하나님께 힘써 순종하면 하나님의 남다른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조치와 섭리에 순종하면 약함은 강함이 되고 약점은 장점이 되고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다리가 된다.

< 순종이 가장 복된 자질이다 >

 자녀가 복된 자녀가 되길 원하면 순종하는 자녀로 기르라.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교회에서도 순종하고 하나님께도 순종한다. 순종하면 복도 받지만 ‘순종의 자질’도 얻는다. ‘순종의 자질’은 험한 세상에서 시험을 물리치고 문제를 극복하고 승리의 나무로 오르게 하는 가장 위대한 자질이다. 자녀들이 순종할 때 부모가 가장 기뻐하듯이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녀를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

 옛말에 ‘애가승무노인탄(哀歌僧舞老人歎)’이란 말이 있다. 조선시대 숙종이 밤에 민정시찰을 할 때 한 오두막에서 노인의 울음소리와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렸다. 왕이 문틈으로 보자 한 노인이 밥상 앞에서 울고 있었고 아들은 장구 치며 노래하고 있었고 며느리는 중처럼 머리를 깎은 채 춤추고 있었다.

 그 광경이 기이해서 사연을 물어보니 그 날이 노인의 생일이라 가난한 며느리가 머리를 잘라 팔아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렸다. 그리고 별로 해드릴 것이 없던 아들 내외가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아들이 장구 치며 노래하고 며느리는 그 장단에 맞춰 춤추자 그 효성에 감격해 노인이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왕이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일 과거 보러 가는데 당신도 나와서 과거를 쳐보라.”

 아들이 과거 시험장에 가자 그때 출제된 문제가 ‘애가승무노인탄(哀歌僧舞老人歎, 슬픈 노래를 부르는데 중은 춤추고 노인은 탄식한다)’이란 문제였다. 다른 선비들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노인의 아들은 감동적인 글을 써 장원급제를 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축복의 씨앗이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 공부도 잘하듯이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성도가 축복도 받는다. 때로 고난이 와도 변함없이 순종하면 그 고난은 숱한 유익과 열매를 남기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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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21장 5-6절

5.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생각의 전환을 꾀하라 (요한복음 21장 5--6절)

< 예수님이 없으면 나도 없다 >

 한 증권회사 간부가 자살하며 유서를 남겼다. “얘들아! 사랑한다. 아빠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았다. 누구보다 빨리 승진했고 빨리 돈을 벌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아빠는 너무 허전하다. 삶의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 먼저 간다. 너희는 아빠처럼 살지 마라.” 빨리 성공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예수님 없이 빨리 얻으면 그만큼 빨리 잃는다. 대박을 노리고 도박을 하면 대개 쪽박을 찬다.

 한 청년이 가게를 열었다. 엄청난 손님이 찾으면서 전국에 30개 지점을 내며 대박을 쳤다. 그러다 선배와 강원랜드에 갔다가 도박에 빠졌다. 결국 도박 빚으로 사기를 쳤다가 쪽박을 찼다. 잘 나갈 때가 겸손해야 할 때다. 젊고 잘 나갈 때는 큰소리친다. “나는 늙어서 절대 자식 의지하지 않겠다.” 노인의 고독의 큰 고통을 모르기에 그렇게 말한다. 늙으면 그때는 자식이 한번 찾아와 주고 한번 전화해주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곧 그런 때가 온다. 자신을 자신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욥기를 통해 무엇을 배우는가? 첫째, 돈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돈은 순식간에 날아간다. 둘째, 배우자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헤어진 부부도 한때는 행복하게 살았다. 셋째, 자식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자식이 나보다 먼저 갈 수 있다. 넷째, 친구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참된 친구를 얻는 것은 늘 어렵다.

 마지막으로 건강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건강을 자신하던 사람이 먼저 갈 때도 많다. 아무리 바쁘고 귀찮아도 가끔 건강진단을 받으라. 자동차도 1년에 몇 번은 점검하는데 더 중요한 몸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나 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국력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소중한 생명을 귀찮음 때문에 소홀히하지 말라. 욥기를 통해 배우는 결론은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예수님이 없으면 시체다. 예수님이 없으면 나도 없다.

< 생각의 전환을 꾀하라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얘들아”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이디온’이라고 하는데 ‘철없는 애들’을 뜻한다. 가장 철없는 행동은 예수님이 없이 고기를 잡으려는 행동이다. 예수님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위로가 있고 응답이 있고 문제해결이 있다. 예수님을 만나면 신비한 평화가 임하고 치유와 회복의 역사도 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예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는 “왼편만 고집하지 말고 생각의 전환을 꾀하라.”는 암시도 있다. 살다 보면 생각을 전환해야 할 때도 많다. 그 중에 가장 위대한 생각의 전환은 “나는 의인이 아니구나. 회개할 것이 많구나. 모르는 것도 많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장래 목표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생각의 전환이 있을 때가 진짜 사람이 되는 때다.

 그 외에 바꿔야 할 생각이 많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닌 ‘열심히 배우려는 사람’이고 가장 강한 사람은 ‘남을 이기는 사람’이 아닌 ‘나를 이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또한 가장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닌 ‘많이 나누는 사람’이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만사에 형통한 사람’이 아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고 가장 복된 사람은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남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나 중심적인 생각과 습관을 버리고 남을 최대한 이해하고 배려하라.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남에게 비수가 될 때도 많다.

 행복하게 사는 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 생일에 남편이 물었다. “여보! 당신 생일에 무슨 선물을 해줄까요?” 아내가 말했다. “다른 선물 말고 두 시간 동안 내 말을 들어주는 선물을 주세요.” 그래도 선물을 말해보라고 했지만 아내는 자기 말을 기쁘게 마음을 열고 들어만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하자 아내가 처음 만날 때부터 속상했던 일과 고마웠던 일을 죽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남편이 눈물을 흘렸다. 얘기가 끝나자 남편이 아내 손을 잡고 말했다. “여보! 그때 농담으로 한 말로 그렇게 며칠이나 잠을 못 잤는지 몰랐소! 앞으로 조심할게요.”

 내가 무심코 한 말이 남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하지만 늘 완벽하게 말할 수 없기에 더 중요한 것은 말 한 마디로 상처받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주어도 상처를 받지 않는 늠름한 모습이 필요하다. 누가 시기하는 말을 하면 넉넉히 여기고 오히려 기뻐하라. 못났다면 시기도 없었을 것이다. 남으로부터 부정적인 말을 들어도 처음에는 화가 나지만 찬찬히 겸손하게 생각하면 그 말에 맞는 부분도 있다. 부정적인 말도 잘 소화하면 회개와 성숙의 기회가 된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기쁨과 행복과 평안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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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2장 24-30절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좋은 변화를 꿈꾸라 (창세기 32장 24-30절)

< 작은 변화부터 추구하라 >

 2000년에 한 신학교 제자가 “목사님! 목사님 글은 사장시키기 아까워요. 보다 많은 사람이 보도록 인터넷 말씀 사역을 해보세요.” 컴퓨터를 잘 못한다니까 그가 게시판 6개가 딸린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게시판에 설교 원고와 칼럼을 올리기만 하라고 했다. 사이트 주소도 그의 제안으로 ‘요한복음 3장 16절(요삼일육)’을 나타내는 john316.or.kr로 정했다. 지금은 신실한 믿음을 나태는 기독교 암구호로 John316이 꽤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표현이었다.

 그때부터 홈페이지에 거의 매일 설교와 글을 올렸다. 당시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의 다양한 SNS가 없어서 지금보다 홈페이지 방문자가 훨씬 많았다. 그렇게 방문자가 많아지면서 강해에 더 정성을 쏟았고 그 과정을 통해 강해가 체계적으로 축적되어 지금까지 성경 80% 가까이 끝낼 수 있었고 그 강해를 바탕으로 <온새기(온라인새벽기도)>와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도 할 수 있었다.

 필자의 홈페이지 방문자와 <온새기> 메일 회원은 상대적으로 목회자가 아주 많다. 일반인은 열성적인 회원도 몇 년 후에는 점차 사라지는데 목회자는 설교 준비에 참고하려고 계속 방문하는 편이다. 주 독자층이 목회자이기에 더 말씀 준비를 잘하려고 하고 파급력도 느낀다. 일반인 5천 명이 말씀을 보면 5천 명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목회자 5천 명이 말씀을 보면 그 목회자의 말씀을 듣는 성도가 평균 100명이면 일반인 5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목회자를 통한 말씀 선교의 파급력을 느끼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선교의 비전도 가능하겠다고 여겨 2004년에 한때 영어로 인터넷 말씀 사역을 했다. 그때 미국 기독교 웹사이트 방문 랭킹 순위에서 꽤 높은 순위까지 올라갔었다. 그러나 영어로 글을 쓰고 댓글과 메일에 반응하고 사람을 관리하는 것 등에 시간이 많이 들어서 결국 1년쯤 후에 영어 말씀 사역을 포기했다. 그래도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2014년에 은밀한 한 후원자의 손길로 <월새기>가 창간되었다. <월새기>는 큐티 책과는 달리 재정이 많아도 쉽게 발행할 수 없다. 큐티 책은 <성서공회>에 성경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큐티 본문에 쓸 간단한 주석과 예화 저작권료를 저자에게 지불한 후 몇 개의 묵상 질문을 담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월새기>는 바른 신앙과 신학을 바탕으로 알찬 내용의 꾸준한 성경 강해가 준비되어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새기>는 <온새기>를 통해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축적된 연속 성경 강해가 있었기에 발행이 가능했다.

 <월새기>는 생각을 초월해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의 역사를 크게 일으켰다. 발행 권수도 단기간에 크게 늘었지만 반응도 뜨거웠다. 그러나 일반 책은 많이 읽히면 돈을 더 벌지만 <월새기>는 많이 읽힐수록 돈을 더 잃는다. 그런 손해가 은밀한 손길에 의해 극적으로 채워지면서 지금까지 발행될 수 있었다. 그 <월새기>의 파급력을 보고 “이것이 세계선교의 멋진 도구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성도의 궁극적인 비전은 세계선교가 되어야 한다. 그 꿈에 직간접적으로 크게 기여하면 얼마나 멋진 인생이 되겠는가?

 결국 2017년 초에 <월새기> 창간 5주년인 2019년 9월에 <월새기 영어판> 창간호를 발행하는 비전을 세웠다. 그 비전이 이뤄지려면 발행 1년 전인 금년 8월 말까지는 재정이 준비되어야 할 것 같아서 간절히 재정을 위해 기도했다. 너무 귀한 사역이기에 하나님이 주실 것이란 믿음이 강했다. <월새기 영어판> 발행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도 많았고 실제적으로 여건이 되면 헌신하겠다는 사람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 준비되지 못했다.

 최근 1-2주 동안 <월새기 영어판> 창간호 발행을 2021년 9월로 2년 늦추는 문제로 계속 기도했다. “하나님! 아직 재정이 없어 발행 연기를 선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의 감동을 주셨다. “이 목사야! 때와 시기는 내게 맡겨라. 2019년 발행도 아직은 늦지 않았다. 너는 재정이 있어야 팀도 꾸리고 사무실 공간도 확보하고 번역도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너는 이미 <월새기 영어판> 발행 준비를 시작한 셈이다.”

 요새 John316 <영문 홈페이지>에 필자의 설교와 글이 속속 번역되어 채워지고 있다. 둘째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역에 동참하면서 매일 필자 글의 전부 혹은 일부를 영어로 번역해 홈페이지를 채워가고 있다. 아직 홈페이지 프레임에 수정할 부분이 있어 정식 공개는 안했지만 눈치 빠른 사람은 홈페이지의 영어판 메뉴로 클릭해 들어가 보았을 것이다. 또한 <월새기 영어판> 사역에 도움이 될 인스타그램도 이미 만들었는데 회원도 외국인이 더 많다.

 필자는 재정이 준비되면 그때부터 “이제 <월새기 영어판> 사역을 시작한다.”고 선포하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사실상 <월새기 영어판> 사역은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 필자의 강해와 글이 매일 하나 이상 영어로 번역되어 차곡차곡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강해가 하나씩 쌓이면서 마침내 <월새기>가 발행되었듯이 영어로 강해가 하나씩 번역되어 쌓이면 때가 되어 <월새기 영어판>도 발행될 것이다. 그때가 예정대로 2019년 9월이 될 수도 있지만 만약 그때 시작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시작하게 하실 것이다.

 무엇이든지 비전을 성취하려면 매일 글을 더하든지 땀을 더하든지 선행을 더하든지 해서 작은 변화를 만들고 쌓아가야 한다. 작은 변화가 쌓여 큰 변화가 되고 작은 변화가 모여 극적인 변화를 낳는다. 극적인 변화는 맑은 하늘에 천둥처럼 갑자기 생기지 않고 작은 사전 변화의 조짐들이 이미 소리 없이 쌓여 있다가 마침내 생길 때가 많다. 극적인 변화가 이뤄지기를 원하면 지금부터 매일 작은 변화를 이뤄내라. 선한 변화를 저축하는 것은 돈을 저축하는 것보다 더 큰 역사를 이룰 때가 많다.

 요새 상위 계층으로 오르는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말이 많다. 그런 현실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 쉽지 않아도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고 작은 변화를 조금씩 만들고 쌓으라. 꾸준히 예배하고 기도하고 땀을 흘리라. 그 변화들이 쌓여 상위 계층으로 올라서는 극적인 변화의 때가 예비된다. 그렇게 해서 상위계층으로 올라가지 못해도 이미 그는 과정에서 승리한 자로서 하나님 보시기에는 상위 계층으로 오른 것과 같다.

 인생과 가정과 교회에 극적인 변화의 때가 오기를 원하면 매일 작은 변화를 만들고 쌓으라. 매주의 예배와 교제, 매일의 성경읽기와 기도와 묵상과 공부와 땀, 그리고 한 번의 친절과 격려와 웃음과 미소와 손길 등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마음의 각인되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도 되지만 현실에서 작은 변화도 만들어낸다. 그런 변화들이 계속 모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극적인 소원성취의 대 변화가 생긴다.

< 야곱이 언제 변화되었는가? >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다. 특히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존재로서 변화된 세상을 꿈꾸며 만들어가는 것이 기독교의 가장 큰 매력이다. 본문에도 극적으로 변화된 한 인물이 나온다. 바로 야곱이다. 야곱이 언제 변화되었는가?

1. 홀로 남았을 때

 형 에서가 수하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에서에게 선물로 주려고 염소 220마리, 양 220마리, 낙타 30마리와 새끼들, 소 50마리, 나귀 30마리를 택하고 그 짐승들을 몇 떼로 나누어 가게 했다(13-16절). 선물로 에서의 한 맺힌 마음을 풀려는 의도였다(20절). 그 다음에 밤에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해서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한 후 모든 소유도 건너가게 한 후 자신만 홀로 남았다(21-24절). 그때 야곱은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쓸쓸히 바라보며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자신이 빈손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야곱은 평생 소유에 집착했지만 결국 빈손이었다. 어머니 배속에서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지만 먼저 태어나지 못했다. 팥죽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샀지만 형 대접도 못 받고 곧 집에서 쫓겨났다. 결국 라반의 집으로 피신해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외삼촌과 사이가 나빠져 몰래 도주했다. 그리고 거부가 되어 귀향했지만 금의환향하지 못하고 형인 에서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결국 얍복 나루에서 모든 가족과 소유를 다 보내고 혼자 남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 변화될 수 있었다.

 때로는 빈손으로 홀로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때 하늘을 보고 나를 돌아보며 남도 생각하며 인생의 교훈을 얻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독할 때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또한 빈손일 때 하나님의 필요성을 깨닫고 모든 위선의 옷을 벗고 솔직한 자기 모습을 되찾는다. 야곱은 가면 쓴 모든 배우가 퇴장하고 얍복 나루라는 무대에 홀로 남았을 때 비로소 자신이 빈손임을 깨닫고 변화될 수 있었다. 문제 속에서 자신이 빈손임을 발견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통과해야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

2. 간절히 기도했을 때

 본문 24절을 보라.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이 구절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고 “야곱이 씨름했다.”는 말은 “야곱이 기도했다.”는 말이다. 그때 하나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자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다(25절). 그래도 야곱은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을 붙들었다. 나중에는 하나님이 “날이 새려 하니까 나로 가게 하라.”고 했지만 야곱이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고 생사가 걸린 사람처럼 하나님을 붙들었다.

 다급한 상태에서 기도할 때는 생사가 걸린 듯이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라. “기도는 노동이다.”란 말이 있다. 사생결단의 기도는 사실상 노동보다 힘든 것이다. 그런 기도를 2시간 하는 것은 설교를 2시간 하는 것보다 어렵다. 뜨거움과 간절함과 마음을 쏟아 부음이 없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기도로는 돌아서는 하나님을 붙들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기도할 때 성경을 강해하듯이 길게 강해 기도를 한다. 간절히 뜨겁게 기도하라고 해서 큰 소리로 오래 기도하라는 말은 아니다. 조용히 짧게 기도해도 간절히 진실하게 기도하면 된다. 잘하지 못하고 투박하게 해도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다 받아주신다. 세상에는 내 힘으로 못할 일이 많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하되 내 힘으로 못하는 일은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하며 맡기라. 그러면 언젠가 반드시 변화의 역사가 나타난다. 기도는 먼저 자신을 변화시켜서 환경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도구다.

3. 이름이 변했을 때

 본문 27-28절을 보라.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은 하나님과 기도의 씨름을 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사기꾼’이란 뜻의 야곱이란 이름 대신 ‘하나님을 이긴 자’란 뜻의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새로 받았다. 그때부터 야곱은 더욱 깊은 믿음의 경지로 들어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 우리 이름을 알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새로운 이름을 기억하며 그 이름에 걸맞게 살라는 뜻이다. 필자에게는 2가지 이름이 있다. 하나는 ‘한나라의 별’이란 뜻을 가진 ‘한규’란 이름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을 따라 사는 자’란 뜻을 가진 ‘크리스천’이란 이름이다. 후자의 이름이 훨씬 소중한 이름이다. 그 이름에 합당한 모습으로 성도답게 살려고 할 때 변화의 역사도 나타난다.

 1961년 5.16 이틀 후 당시 군사정부는 서울에서 깡패와 거지 1500명을 붙잡아 강원도 탄광으로 보냈다. 그때 한 거지의 이름이 ‘김백억’이었다. 취조 경관이 말했다. “임마! 너는 금이 백억이나 되는데 왜 거지 생활을 해.” 그 김백억의 모습이 성도의 모습이 되면 안 된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고 그 이름답게 살아서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되었듯이 우리도 성도답게 살 때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4. 하나님과 대면했을 때

 본문 30절을 보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이 변화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족한 존재도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체험하면 더 나은 존재로 변화될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성경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로 변화되는 꿈을 가지라. 가장 복된 삶은 변화의 주인공이 되는 삶이다. 스스로 변화되면 고통이 감면되지만 강제로 변화되면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변화시킬 때 처음에는 점잖게 말씀으로 가르치신다.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정신 차리라고 실패와 낙심의 순간을 겪게 하고 자녀나 가정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게 하면서 깨달으라고 흔드신다. 그래도 옛 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확실히 깨달으라고 큰 환난을 겪게 하고 치명적인 질병이나 큰 실패도 겪게 하시면서 아프게 때리신다.

 사랑하는 자녀를 끝까지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손길이 없다면 성경은 사생자요 친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히 12:8). 하나님은 사랑하는 친 아들을 변화시키려고 필요한 경우에는 징계의 손길도 펴신다. 그 손길로 인해 야곱은 허벅다리에 문제가 생겨 절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오히려 변화된 성숙한 인물의 삶을 살 수 있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꾸준히 만나면 최상의 나로 변화될 수 있다. 좋은 변화를 꿈꾸라. 그런 변화를 통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더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복된 인물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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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21장 5절

5.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예수님만이 희망이다 (요한복음 21장 5절)

<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곁에 이미 계신 하나님을 느끼고 생각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다. 그때 낙심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곁에 와 계서도 알아보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몰라주면 섭섭함을 느끼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님을 몰라주었어도 더 가까이 다가와 그들에게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질문하셨다. 낙심해서 열패감에 빠진 제자들에게 와서 하신 예수님의 첫 질문은 이렇게 단순했다.

 사람은 그 상황에서 “너희가 왜 옛날로 돌아갔느냐? 그렇게 나를 실망시키면 되느냐?”고 했겠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질문하면 제자들이 더 낙심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질책은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함을 아셨다. 사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미 질책도 다 들어 있다. 그 질문은 제자들이 고기를 잡았는지 확인하려고 물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 아무것도 잡지 못한 사실을 아셨다.

 그때 예수님이 그렇게 질문하신 것은 “나 없이 너희의 경험과 지식과 능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우쳐주시려는 의도가 있으셨을 것이다. 그 질문을 하나님은 내게도 하신다. “아무개야! 네게 고기가 있느냐?” 삶을 평가하는 가장 위대한 기준은 이 질문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내가 사는 가장 위대한 목적은 영혼의 고기를 많이 얻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늘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을 추구하며 살라. 그 질문에 제자들이 “없습니다.”라고 했듯이 나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인생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없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은 한 세대도 유지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없어도 있는 척 하고 모르고도 아는 척 한다.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하라. 하나님 앞에서 높은 마음으로 “있습니다.”라고 하면 하나님은 없게 만드시고 반대로 낮은 마음으로 “없습니다.”라고 하면 하나님은 있게 만드신다.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 줄 알 때 참된 은혜가 시작된다. 그때 제자들이 다시 사명을 받게 된 것은 “예수님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이다. 인간의 능력이 끝난 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시작된다. 성공으로 가는 첫째 관문은 “없습니다.”라는 고백의 관문이다.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인정할 때 기적의 하나님을 만난다. 가장 복된 인생은 “하나님! 하나님이 없으면 저는 하나도 없는 인생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인생이다. 하나님 안에서 철저히 무너질 때 능력 있는 삶이 펼쳐지고 위대한 존재도 된다. 그때 놀라운 자의식도 생긴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나’는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 예수님만이 희망이다 >

 예수님 안에서는 실패도 유익한 것이다. 그때 육신의 눈은 닫히고 마음의 눈이 열린다. 그때 사랑과 용서의 눈도 열린다. 하나님과 깊이 만나면 판단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악인은 ‘보다 큰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때 사랑하는 마음과 인자함과 자비가 생기고 막힌 담이 헐린다. 하나님과의 막힌 담, 사람과의 막힌 담, 그리고 내 마음과의 막힌 담이 헐린다. 바로 그때 육신의 막힌 혈관과 신경도 뚫리고 건강을 막는 각종 질병이 사라지고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리고 변화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희망이고 복음이 희망이다.

 아프리카 잠비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중범죄 교도소가 있다. 그곳에는 최고의 악질 죄수들만 수감되어 있고 감옥은 온통 굵은 철망으로 뒤덮였고 교도소 안에 있는 사방 5미터 크기의 작은 운동장에서는 하루 1시간만 나와 몸을 풀 수 있었다. 변기도 없어 식기에 똥과 오줌을 받아 내니까 아프리카의 뜨거운 열기와 구역질나는 냄새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인간 지옥이었다. 그곳에 무명의 전도자가 복음을 전했다. 얼마 후 그곳 수용자 120명 중 80여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중 35명은 사형수였다.

 복음이 악질 사형수들을 무수히 변화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교도소 선교사로 유명한 찰스 콜슨 박사가 특별 면회를 갔다. 그가 교도소 안으로 들어서자 80여명이 우르르 일어서서 신호에 맞춰 4부로 찬양을 불렀다. 지옥 같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을 듣고 그는 꿈꾸는 것 같았다. 그때 죄수들을 바라보는데 그들 뒷벽에 어떤 그림이 보였다. 숯검정으로 정교하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그려 놓은 것이었다. 바로 그때 그는 그들과 함께 서 계신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지옥과 같은 환경에서도 찬양이 나온다. 놀라운 변화의 역사도 일어난다. 그래서 예수님이 희망과 기쁨과 능력이다. 예수 안에서 가장 복된 삶을 살 수 있다. 위대한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고백했다. “예수님만이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 고백이 내 입술에서 끊이지 않을 때 내 삶에 감동과 감격과 감사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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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21장 4절

4.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 (요한복음 21장 4절)

< 바라보는 것이 인생을 결정한다 >

 가끔 비전이 무너지고 나를 실망시키는 사람을 만난다. 그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침착하게 대처하면 한때 실망시켰던 사람이 멋지게 일어나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된다. 인생의 성패는 “실망시키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실망시키는 사람을 분노로 대하면 더 실망스런 일을 만나지만 그를 따뜻하게 격려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면 그는 다시 일어나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이다. 질책보다 격려가 더 중요하다.

 밤새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상심한 제자들에게 새벽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인 줄 알지 못했다. 낙심이 믿음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낙심될 때 남은 최후의 힘과 의지로 가장 먼저 할 일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이다. 본문 4절을 깊이 묵상하면 예수님은 새벽에 갑자기 찾아오시지 않고 이미 한참 전부터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초라한 모습을 해도 하나님은 나를 외면하지 않고 여전히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신다. 그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라. 바라보는 것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미국에 윌튼 라이트 목사는 설교할 때 자주 “하늘을 바라보고 꿈꾸며 살자.”고 했다. 그 설교에 가장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두 아들이었다. 두 아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높이 나는 꿈을 꾸었는데 그들이 비행기를 최초로 발명한 라이트 형제다.

 좋은 것을 계속 바라보면 좋게 되고 나쁜 것을 계속 바라보면 나쁘게 된다. TV에서 사랑의 나눔 프로를 보면 사랑을 배우게 되고 잘못된 드라마를 보면 잘못된 욕망과 허영심이 생긴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앞날과 사람됨과 행복이 결정된다. 미래를 어둡게 보면 불행해지지만 미래를 찬란하게 보면 행복해진다. 불행한 사람은 환경을 보며 ‘환경 변화’가 없음을 불평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보며 ‘자기 변화’를 이루려고 애쓴다. 특별한 일을 보아야 행복을 느끼면 불행해지지만 평범한 것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면 행복해진다.

<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 >

 전능하신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눈을 들어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늘 바라보면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예배 시간은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님만 바라보는 시간이다. 나를 바라보면 삶이 한심한 것뿐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삶이 감동과 감격으로 넘치게 된다. 예배 때 연약한 설교자를 바라보면 가끔 실망된다. 몇 년 이상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권태가 느껴질 때도 있다.

 다른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면 펄펄 나는 목사도 자기가 섬기는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은 가장 힘들어한다. 너무 서로를 잘 알기에 피차에 실망할 수 있는 인간 대 인간의 상황 속에서도 예배에 은혜와 감격과 감사가 있는 이유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삶이 풍성해진다. 그때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삶의 모든 순간을 통해 감사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믿음으로 보면 모든 사물과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믿음의 눈길에 사랑의 손길이 보인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때 인생은 크게 변한다. 요새 인맥과 연줄을 성공의 제일 요소로 생각한다. 유력한 사람과 친분을 유지하면 성공에 큰 도움이 되지만 사람은 궁극적인 바라봄의 대상이 아니다. 인맥보다 신맥이 중요하고 연줄보다 기도줄이 중요하다. 사람을 의지하면 그만큼 부작용도 커진다.

 예전에 A 대학에 채플을 인도하러 갈 때 길을 잘 몰라 고민하는데 한 지점에서 갑자기 눈앞에 그 대학 스쿨버스가 나타났다. 그 뒤를 좇아가 길은 쉽게 찾았지만 문제도 있었다. 그 스쿨버스가 뿜는 매연 때문에 그 뒤를 바짝 좇아가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사람을 좇아가면 어느 정도 도움도 받고 길도 열리지만 사람이 풍기는 냄새도 각오해야 한다. 때로는 그 냄새로 인해 믿음이 떨어질 수 있다.

 목회자를 바라봐도 안 되고 교인을 바라봐도 안 된다.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사람이 좋을 때는 좋지만 싫어질 때도 많다.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은 쉽게 변한다. 사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삶처럼 허무한 것은 없다. 가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 당황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다. 사방이 다 막혀도 위는 언제나 열려 있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 반드시 길이 보이고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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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21장 4절

4.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빈손이 오히려 축복이다 (요한복음 21장 4절)

< 새벽의 승리자가 되라 >

 제자들은 소중한 사명과 비전을 버리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그때 신기하게도 능숙한 어부들이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것도 기적이다. 사실상 하나님의 자녀의 실패는 기적이다. 기대가 무너진 상태에서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얼마나 그 마음이 허탈했겠는가? 그런 허탈함도 필요하다. 그래야 동트는 새벽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아무 소득 없이 제자들은 새벽을 맞았다. 새벽 시간은 어둠이 물러가고 새날이 시작되는 신비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는 시간이다. 새벽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사람이 가장 깨끗해지는 시간이고 첫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시간이다. 한 사람이 보내는 새벽 시간은 그의 사람됨과 성품과 장래를 잘 보여준다. 새벽 시간을 잘 보내면 하루를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큰 인물 중 잠이 많은 사람은 별로 없다.

 새벽 시간의 승리자가 하루를 승리하고 그 승리들이 쌓여 인생 전체의 승부에서도 승리한다. 특히 새벽 시간을 잠자는 시간이 아닌 기도 시간으로 만들면 큰 복이다. 새벽에 말씀 묵상 후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 오늘도 아무 사고 없이 지켜주세요.”라고 기도를 마치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넉넉해진다.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하면 영혼의 각종 어둠이 물러간다. 그때 어두운 마음과 생각이 물러가고 가정과 영혼의 걱정 근심도 물러가고 예수님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만나게 된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빈손의 제자들을 새벽에 찾아주셨다(4절). 그것이 예수님의 속성이다. 사람들은 풍요한 사람은 찾고 부족한 사람은 멀리하지만 예수님은 풍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멀리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가까이 하신다. 세상은 힘을 정의로 보지만 주님은 사랑을 정의로 본다. 주님은 내가 잘 나가 마음이 높아지면 더 이상 은혜로 함께 하지 않지만 내가 부족한 줄 알면 은혜로 함께 하신다.

 사람이 힘이 있을 때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힘이 없을 때는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급히 찾아오신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신앙이 부족하고 신앙생활이 부끄러우면 하나님이 나를 멀리할 것 같지만 그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내 곁에 계신다. 내가 여러 번 실패해도 하나님은 결코 내 사명을 빼앗아가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때 나를 찾아와 주시고 다시 안아주시고 사명을 주신다. 그런 의미에서 빈손이 오히려 축복이다.

< 빈손이 오히려 축복이다 >

 본문 4절을 묵상하면 예수님은 어디 가셨다가 새벽에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그 전에도 계속 지켜보셨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때는 예수님이 계신 줄 몰랐다. 자기 힘으로 열심히 고기를 잡아보려고 할 때는 주님이 보이지 않았지만 고기가 안 잡히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때 예수님은 나타나셨다. 혼자 열심히 살려고 몸부림 칠 때는 주님이 잘 보이지 않지만 고기도 안 잡히고 낙심되고 내 힘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느낄 때 주님이 보인다.

 술 먹고 젓가락 두드릴 때는 주님은 보이지 않지만 술이 깨서 허탈함을 느낄 때쯤 주님이 보인다. 노름을 열심히 할 때에는 주님은 보이지 않는다. 새벽 1-2시까지는 주님 없이도 돈을 따는 것 같지만 새벽 5시쯤 되면 자신이 빈털터리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길이 없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이 보이고 주님의 음성이 뚜렷하게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빈손이 되는 것도 오히려 축복이다.

 빈손도 축복이다. 빈손일 때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신다. 실패와 빈손은 정지 신호가 아니라 방향 전환 신호다. 그때 방향을 주님 중심적으로 잘 바꾸면 오히려 그때부터 훨씬 복된 인생이 펼쳐진다. 실패는 주님을 바라보라는 표지판이다. 실패해도 주님을 바라보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고 성공이다. 반면에 성공해도 자기 의를 드러내면 그것은 실패이다.

 간증도 조심하라. 잘못하면 간증이 자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전락된다. 물론 처음의 간증은 순수했다. 그러다가 유명해지고 강사비도 두둑이 생기면서 직장과 일을 그만두고 전문 간증집회 강사로 나서면 재미있는 말, 환상적인 얘기, 모험적인 무용담이 더해지면서 결국 자기를 높일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옛날에 극적인 변화 얘기를 가진 한분이 처음에는 간증을 많이 다니다가 나중에는 간증을 다니지 않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순수했는데 간증하다 보니까 자꾸 자기 의가 드러나고 조금씩 무용담이 첨가되는 것 같아 간증집회를 사양한 것이다.

 내가 잘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사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때로는 힘든 때도 있지만 그때 빈손으로 주님을 더욱 붙잡고 이해되지 않아도 그 일을 통해 주어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나의 실패와 고통과 낙심과 좌절의 순간을 통해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만나주시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신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이해’보다 ‘실패 중에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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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21장 3절

3.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꿈이 있어야 미래도 있다 (요한복음 21장 3절)

< 친구는 자신의 거울이다 >

 미국의 한 집사가 앵무새를 길렀다. 그 앵무새는 딱 한 마디 말만 했다. “내게 키스해 줘요(Kiss me, please).” 그런데 근처의 목사 집에도 앵무새가 있었다. 그 앵무새는 목사 집을 방문한 집사를 보고 말했다. “우리 기도합시다(Let's pray).” 그 소리를 듣고 집사는 목사의 평소 언행이 어떤 모습인지를 짐작하며 목사가 너무 훌륭하게 보였다.

 그 집사는 자기 앵무새가 좋은 말을 배우도록 목사 집 앵무새를 빌려갔다. 두 앵무새가 만났다. 목사 앵무새가 집사 앵무새에게 먼저 말했다. “우리 기도합시다.” 집사 앵무새가 대답했다. “내게 키스해 주세요.” 그때 목사 앵무새가 흐뭇해서 말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제 기도에 응답 주셨군요.”

 이 꾸며낸 얘기가 주는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는 “사람이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친구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면 미래에 내 인생은 좋아질 확률이 많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면 미래에 내 인생은 나빠질 확률이 많다.

 좋으신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많은 것은 가장 큰 성공이고 그 시간이 적은 것은 가장 큰 실패다. 무엇이든지 주님을 멀리하게 하는 것은 저주이고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은 축복이다. 성공해서 주님과 멀어지면 그 성공은 저주이고 실패해서 주님과 가까워지면 그 실패는 축복이다. 때로는 실패한 빈손이 축복이 될 수 있다. 성공적인 세일즈맨은 거절당하는 순간부터 진짜 판매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의 문제보다 “실패자가 되느냐? 성공자가 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실패해도 실패자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단순히 성공하는 것보다 성공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패자에게 거침돌은 성공자에게 디딤돌이 된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빈손으로 예수님을 확실히 붙잡을 수 있다면 빈손도 축복이 된다. 본문은 빈손도 축복이 될 수 있음을 잘 말해준다.

< 꿈이 있어야 미래도 있다 >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뵈려고 갈릴리에 온 제자들은 처음 며칠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면 기다리는 순간조차 황홀해진다. 그러나 기다림이 길어지자 그들은 낙심했다. 결국 조금 더 인내하지 못하고 다 물고기 잡으러 나갔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3절 하반부 말씀을 보라.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 밤은 소득 없는 밤이 되었다. 인내가 없으면 소득도 없다.

 2차 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한 유대인 의사가 있었다.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로 떠나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목격하면서도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매일 면도를 했다. 남들은 인생을 포기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오후 처형자들을 골라낼 때 나치는 삶의 의지로 불타는 그의 잘 면도된 턱을 보고 차마 그를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독일 패망 후 스페인으로 가서 유능한 외과 의사가 되었는데 그가 말했다. “하나님의 도움은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성급히 포기하지 말라. 어려워도 인내하며 기다리면 기적과 변화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우연히 생기는 기적은 없다. 대개 기적은 절망의 순간을 믿음과 기도로 버틴 사람에게 주어진다. 인내는 쉽지 않지만 인내하면 많은 것을 얻는다. 성급하게 결정하면 후회하고 후퇴한다. 그러나 인내해서 후회될 일은 없다. 가끔 너무 힘들면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라고 생각하지만 꿈과 사명만 잃지 않으면 끝난 인생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이다. 꿈을 버리지만 않으면 찬란한 내일은 반드시 주어진다. 살다보면 힘든 일도 있다. 상처를 줄 때도 있고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그 상처만 생각하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 상처를 급속히 치유하는 보약이 있다. 그것이 비전이다. 역사는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의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라. 꿈이 있어야 미래도 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꿈을 내 꿈으로 삼는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꿈만은 잃지 말라. 굳은 심지를 가지라. 힘들어도 비전에서 후퇴하지 말라. 등잔의 심지가 곧으면 빛이 나오지만 심지가 옆으로 누우면 연기가 난다. 꿈을 포기하면 연기만 나는 인생이 된다. 눕지 말고 처지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남에게 원칙을 강요하는 원칙주의자는 되지 말되 내가 좋은 일을 끝까지 지키려는 원칙주의자는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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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신명기 18장 1-8절

1.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으니라 3.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4.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5.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6.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에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7.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8.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가 조상의 것을 판 것은 별도의 소유이니라

사람에게 구걸하지 말라 (신명기 18장 1-8절)

<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

 A 선교사는 신실하고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사역해서 선교지 현지인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가 4년 전에 배가 아파 귀국해 종합검진을 받았다. 그때 위암 판정을 받았다. 그 사실을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병원에도 입원하지 않고 평소처럼 조용히 선교지로 떠났다. 활동에 어려움이 없었기에 암이 믿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로도 변함없이 선교지에서 힘써 사역하면서 자신도 병을 잊고 살았다.

 며칠 전, 그가 너무 몸이 아파 급히 귀국했다. 평소에는 숙소로 직접 버스를 타고 왔는데 이번에는 몸이 아프다고 공항 픽업을 부탁했다. 위암 판정을 받고도 씩씩하게 선교지로 보낼 물건을 몇 보따리 들고 가면서도 한 번도 픽업 부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그런 부탁을 해서 “정말 많이 아프구나.” 하고 생각했다. 선교지에서 몇 달째 식사를 잘 못하고 너무 아파하니까 선교지 성도들이 “선교사님! 한국에 가서 치료받으세요.”라고 사정하다시피 해서 귀국한 것이었다. 몸무게는 평소보다 20킬로그램 이상 빠진 상태였다.

 도착 다음 날 다른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위암이 췌장까지 전이되어 위에서 그 아래로 음식물은 전혀 내려가지 못했고 물도 거의 내려가지 못했다. 며칠 전 의사가 검진 결과를 설명하면서 이전 병원의 진료 기록도 보고 말했다. “4년 전에 암 판정을 받았네요. 지금까지 산 것이 기적입니다. 빨리 수술하세요.” A 선교사는 그 얘기를 하면서 마치 처음 그 사실을 안 것처럼 말했다. “목사님! 제가 4년 전에 이미 암 판정이 났었다고 하네요.”

 그때 내가 물었다. “선교사님! 암 판정받은 사실도 모르셨어요?” 그가 대답했다.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한데 그냥 잊고 살았어요. 그때도 수술해야 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해요.” 암 판정을 받고도 크게 아프지 않으니까 그냥 선교지로 떠난 것이었다. 아마 최후까지 선교지에서 영혼을 구하다가 조용히 천국에 가려는 마음도 있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염려를 끼치지 않고 하나님과 단 둘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편하게 말했다. “다른 데는 다 좋아요. 그런데 배가 아파서 잠시 한국에 쉬러 온 거예요.” 여전히 씩씩했다. 처음에는 계속 수술도 거부했다. 교만한 마음으로 “내가 믿음으로 고치리라.”고 하면서 수술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대화해보니까 실제적인 이유는 수술비용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지 않아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고 종합검진 비용도 공제 없이 제 값을 다 내야 했다.

 이번에 선교지 성도들이 한국에서 치료받으라고 상당히 많은 병원비 헌금을 했다. 그것이 쉽지 않다. 선교사가 선교지 주민들을 위해 헌금하는 경우는 많아도 선교지 주민들이 선교사를 위해 헌금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자기들을 위해 희생한 선교사가 병든 것을 알고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병원비 헌금을 했는데 그 헌금이 상당히 많아서 선교사님이 선교지 성도들을 사랑으로 잘 목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헌금도 의료보험이 없어 수술비용에 많이 모자란 것이다. 그래서 수술을 안 받겠다는 것을 간신히 설득해 곧 수술 받게 되었다. 비용 문제를 생각하면 동료 목회자들에게 사실을 알려야 하지만 선교사님은 부담을 준다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래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그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에 감동해 더 은밀히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도 감동하셔서 수술비도 채워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이다.

 A 선교사의 알리지 말아달라는 부탁은 당연히 수용해야 하기에 그가 누구인지를 추정할 수 있는 사연과 정보는 다 감췄다. 수술이 잘 되고 치유되면 적절한 때에 이름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언뜻 “그런 기도제목은 널리 알려서 기도를 부탁해야지 왜 감추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단 둘이서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싶어 하는데 옆에서 “그 기도제목을 많이 알리세요.”라고 할 수는 없다.

 전쟁에서 장수가 죽으면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다. 병사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내 병을 알리지 말라.”는 신실한 사역자의 부탁은 그대로 따라주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병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려는 태도는 좋은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다. 그 만남은 대개 다른 사람이 다리를 놓기보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일대일 만남을 통해 이뤄진다. 영적인 리더에게는 그런 만남이 더욱 필요하다.

< 레위인에 대한 규례 >

 제사장이란 헬라어 ‘폰티넥스’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란 뜻이다. 제사장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잘 놓으려면 먼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헌신해야 한다. 그러나 헌신적인 사람도 일단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하나님은 제사장의 먹고사는 문제도 세심하게 배려하셨다. 그래서 레위인 제사장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성별된 존재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인간적인 필요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백성들이 제사장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레위인에 대한 규례를 세우셨다. 어떤 규례인가?

1. 분깃과 기업이 없었다

 레위인 제사장과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중 분깃과 기업이 없어서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으라고 했다(1절). 그들이 기업을 가지지 않은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이다(2절).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생계를 책임져주신다는 뜻이다. 특권이 있을 때 더 겸손해지고 자기의 정당한 몫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필요를 채워주신다. 반면에 특권이 있다고 특권의식을 가지고 위세를 부리면 더 소중한 것을 잃는다.

 요새 기무사 개혁 얘기가 나온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가? 특권의식이다. 제가 군에 있을 때 다른 군인들은 매일 극한 훈련을 할 때 보안부대 사병들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심지어는 가르마까지 한 채 부대 내에서 남들이 다 보는 곳에서 버젓이 일과 시간에 족구를 했다. 나라를 손에 거머쥔 사람의 직속 부하라고 사병들도 안하무인이었다. 일반 사병에게 중대장은 하늘처럼 높이 보였지만 중대장이나 심지어는 대대장도 일과 시간에 부대 내에서 남들이 보는 상황에서 버젓이 족구를 못했다.

 당시 40세도 안 된 보안사 영관급 장교가 친구 공무원에게 “내가 승진시켜 줄게. 좋은 자리로 보내줄게.”라고 하면 정말 그대로 되었다. “그때는 재벌들이 내 앞에서 벌벌 떨었다.”라고 무용담처럼 말하는 보안사 장교들도 많다.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특별 수사권을 가졌으면 보안사령관은 자기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보안사 요원에게 이렇게 명령해야 했다. “ 특권을 가졌기에 더 겸손히 국민을 섬기라. 본 업무에 충실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지 말라.” 그런 정신교육만 잘 했다면 사람들의 평판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때는 보안사 영관급 장교만 해도 지금 돈으로 100억 원대 재산을 못 모으면 바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기무사 개혁은 예고된 것이었다. 특권이 있으면 특권의식을 더 내려놓아야 추락도 없다. 레위인에게는 제사장이란 특권이 주어졌기에 특권의식을 버리라는 뜻으로 분깃과 기업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살아갈 길은 마련해주셨다. 욕심을 내려놓게 하시고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2. 받을 몫을 지정해주었다

 제사장이 받을 몫은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다(3절). 또한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처음 깎은 양털도 제사장에게 주라고 했다(4절). 처음 깎은 양털은 제사장의 의복을 위해 드리게 했다. 민수기 18장에는 제사장 몫이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그렇게 제사장 몫을 자세히 규정한 것은 불평과 논란 없이 정당한 몫을 제사장들에게 돌리고 반대로 제사장이 정당한 몫 이상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규례는 실제로 잘 시행되지 않았다. 그 규례를 어겨 사회적 지탄은 받아도 특별한 제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일반 레위인이 많았다. 하나님이 레위인에게 일정 몫을 떼어준 것은 그들이 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라는 뜻이었다(5절). 또한 그렇게 해서 레위인이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다는 오해와 불평이 없게 하셨다. 하나님은 레위인이 얻는 몫이 공짜 특권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한 대가로 인식시켜 그 일에 더 충실하게 했다.

 당시 어떤 일반인은 이런 생각을 하며 십일조를 등한시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하는데 레위인은 일도 별로 안 하고 일주일에 안식일 하루와 일 년 중 절기 때만 바쁜 것 같은데 우리처럼 누리며 살면 되겠는가?” 그러나 성전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잘 인도하려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가끔 불순종하는 백성을 만나면 심한 내상을 입는다. 레위인의 일이 때로는 일반인의 일보다 더 뼈 빠지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도 안 하고...”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어떤 성도는 생각한다. “목회자가 전체 교인을 위한 설교는 주일에 한번 하는 데 왜 그렇게 사례비를 많이 받는가?” 그러나 목회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일주일 내내 지키는 것도 주일의 설교만큼 중요하다. 목회자가 교회를 비우면 이상하게 교회에 문제도 많이 생긴다. 그때마다 목회자가 교회를 지키는 것 자체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야가 열릴 때 성도도 목회자가 받을 몫에 기쁘게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그런 사랑과 배려가 교회와 교인의 축복으로 나타날 것이다.

3. 거주 이전의 자유를 주었다

 지방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6개의 도피성을 포함한 48개 성읍에 흩어져 살면서 종교와 교육 업무를 수행했다. 그들이 중앙 성소에서 봉사하고 싶은 소원이 간절하면 그 소원대로 중앙 성소로 오게 해서 중앙 성소의 인맥 독점화로 인한 부작용을 막았다(6-7절). 그때 지방에서 올라온 레위인도 중앙 성소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처럼 대우해주라고 했다(8절). 하나님의 일꾼은 기본적으로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의미로 말하면 목회자는 사역지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도시 목회, 시골 목회, 한국 목회, 이민 목회, 선교지 목회, 찬양 목회, 특수 목회 등 얼마든지 자기 소원대로 사역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소원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넓고 화려한 문으로만 들어가려고 하면 안 된다. 문제는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가장 기초적인 두 말씀은 마태복음 6장 33절에 나오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과 누가복음 13장 24절에 나오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은 “좁은 문 안에서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면 신기하게도 앞날에 넓은 삶이 펼쳐지지만 넓은 문만 찾으면 앞날에 좁은 삶이 펼쳐진다. 결국 ‘좁은 문’이 ‘좋은 문’이다.

4. 개인 재산 소유가 가능했다

 지방에 있던 레위인이 중앙 성소에 올라가 봉사하려고 소유한 집이나 물건을 팔고 얻은 돈은 개인적인 소유가 가능했다(8절). 레위인은 땅은 기업으로 받지 못했어도 거주할 성은 받았고 그 성 안에 있는 자기 집이나 가재도구는 남에게 팔 수 있었다. 그렇게 생긴 돈은 중앙 성소에서 봉사하고 받는 몫과 상관없이 자기 소유로 삼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소유를 정죄하지 않으셨다. 문제는 제사장이 돈과 소유를 불의하고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2장에서 왜 예수님은 분노하며 성전 청소를 하셨는가? 제사를 이용해 돈을 추구하고 형식적으로 헌신한 위선 때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에 올 때 양이나 비둘기 같은 죄 사함의 제물을 가져와야 했지만 멀리서 제물을 가지고 오기가 귀찮으니까 성전 앞에서 급히 제물을 사서 형식적으로 바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을 이용해 장사꾼들이 성전 앞에서 제물을 팔고 환전상들이 환전을 해주며 폭리를 취했다. 그때 제사장들은 뒷돈을 받고 그 행위를 눈감아 주었기에 예수님이 분노하신 것이다.

 헌금은 하나님의 큰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구체적인 증거로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를 잊으면 형식적인 제사와 헌금이 된다. 그런 타락의 일차 책임은 제사장에게 있었다. 요새도 물질 문제로 시험 드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사역자의 부실한 물질생활 때문이다. 사역자는 물질에 초연해야 한다. 사역 동기가 안정된 삶이나 명예가 되면 안 된다. 사역 동기가 부패해지면 교회도 부패해진다. 돈은 필요한 것이지만 목적으로 삼을 것은 아니다. 돈이 목적이 되면 인생길을 잃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에게 구걸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하라. 없어도 당당하게 사는 모습이 보는 사람에게 깊은 안정감을 주고 결국 그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은 감동을 낳는다. 그때 하나님도 감동하셔서 그 필요를 넉넉하게 채워주신다.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도 매월 재정적인 마이너스가 크지만 늘 당당했기에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로 필요가 채워져 지금까지 발행될 수 있었다.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왕 같은 제사장의 길을 당당하게 가는 복된 심령들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Posted by manga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