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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감사해야 은혜가 간직된다

by manga0713 2024. 4. 24.

[ 호상근 작가 : 그녀의 여전한 버릇 ]

 

 

 

본문말씀 : 시편 50편 22-23절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참된 은혜의 실체 >

 어느 날 한 아내가 남편을 은혜 받게 하려고 교회로 데려갔다. 그때 목회자의 웃기고 재밌는 말씀을 통해 자기는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남편은 그런 좋은 말씀에도 졸기만 했다. 너무 속상해서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좋은 말씀에 은혜도 못 받아요?” 남편이 말했다. “여보! 은혜 받으면 어떻게 되는데? 당신처럼 되는 것이 은혜를 받은 거라면 나는 그런 은혜 안 받아.”

 말씀을 들을 때 걸쭉한 사투리와 만담과 농담으로 재미있게 된 것을 은혜 받은 것으로 오해하면 참된 은혜는 멀어진다. 설교학에서는 사투리도 주의해서 쓰라고 가르친다. 설교자는 모두를 품는 공인으로서 언어도 치우치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걸쭉한 사투리를 쓰면 재미있어 하고 더 나아가서 욕 비슷한 말을 들으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말을 듣고 여러 번 웃은 것을 은혜 받았다고 할 때도 많다.

 현대 사회는 쾌락과 재미를 추구한다. 영화와 방송도 작품성보다 재미와 시청률을 더 따진다. 그러나 교회는 재미로 다니지 말라. 재미로 따진다면 사이비 교주가 가장 재미있다. 매번 코미디 같은 쇼를 하니까 재미있고 또한 자기들만 구원받을 것처럼 하는 달콤한 말은 어떤 쾌락보다 더 쾌락적이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재미와 쾌락을 따르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의 뜻을 이룰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병이 낫고 문제가 풀리고 원하던 것을 얻는 것만이 은혜는 아니다. 진짜 은혜는 말씀을 듣고 생각과 말과 삶이 변해 선한 열매를 많이 맺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100가지의 재밌고 감동적인 말씀을 듣고 그냥 끝나는 것보다 한 가지의 말씀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은혜 받은 것이고 또한 평범한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진짜 은혜 받은 것이다.

< 감사해야 은혜가 간직된다 >

 가끔 “언제 어디서 은혜 체험을 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그때 거기에만 있었겠는가? 한 성도가 말했다. “은혜를 체험하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은 은혜가 없다는 말인가? 사실상 지금도 삶의 곳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미쳐 있다. 현재 있는 은혜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재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마치 은혜가 없는 것처럼 새로운 은혜 체험만 사모하면 하나님이 먼저 큰 시련과 고통과 병을 겪게 한 후 은혜를 체험하게 할 수도 있다.

 은혜는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가 부족한 줄 알면 모든 것이 은혜임을 깨닫는다. 자기가 작아지면 은혜는 커진다. 이미 주어진 은혜를 깨달을 때 더 은혜가 주어진다. 또한 현재의 은혜를 깨닫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현재의 은혜를 지키는 것이다. 어떤 교인은 치유되었다고 자랑하면서 은혜의 주인공처럼 행동하다가 얼마 후에는 그 은혜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행동한다. ‘은혜 체험’도 중요하지만 ‘은혜 간직’은 더 중요하다.

 어떻게 해야 은혜가 간직되는가? 범사에 감사할 때 은혜가 최고로 간직된다. 받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은혜 체험을 하고 싶다.”라고 하는 것은 현재 감사하는 삶이 부족하다는 암시다. 반면에 현재 주어진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그 은혜를 간직하면 현재의 환경이 모질고 힘들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결국 “환경이 어떠냐?”보다 “감사가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먼저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감사하면 어디가든지 결국 길이 열린다. 반면에 감사하지 않으면 어디가든지 결국 길이 막힌다. 행복과 축복은 감사할 때 주어진다. 최고의 예배는 감사가 넘치는 예배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극적으로 바꾸고 최고로 영광 돌리는 삶도 감사하는 삶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