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5장 16-21절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 >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란 어떤 삶인가? 첫째, 육체의 욕심을 좇지 않는 삶이다(16-17절). 흔히 속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은 불행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는 무책임한 사람이 잘 써먹는 말이다. 속았다는 말을 하기 전에 속았던 이유가 내게 없었는지 살피고 그 이유가 나의 무지와 욕심 때문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라. 무엇인가 잘못된 일이 닥치면 먼저 나의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닌지 성찰하고 욕심을 힘써 버리라.
둘째, 율법 아래에 있지 않는 삶이다(18절). 율법을 무조건 배척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잘못된 영성주의자는 율법을 지키는 삶을 형식주의라고 하면서 무조건 배척하고 기존 교회의 질서도 배척한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율법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은 율법을 존중하지만 율법 아래에 매여서 남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진리를 거부하지 않는다.
가끔 은혜를 내세워 불법을 합법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일전에 한 교단 총회에서는 이미 불법으로 판명된 어떤 교회의 문제를 사탄에게 속지 말고 은혜롭게 처리하자면서 합법화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때로는 없는 법도 만들어 불법을 합법화시키기도 한다. 율법 아래에 있지 말라는 말씀은 불법을 합법화하는 불법을 저질러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을 힘써 존중하는 삶을 바탕으로 은혜와 사랑을 펼쳐 가라는 뜻이다.
셋째, 육체의 일에 빠지지 않는 삶이다(19-21절). 사도 바울은 ‘육체적인 죄에 빠진 삶’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16가지의 죄를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성적인 죄 3가지를 언급했다. 성령 충만을 막는 핵심적인 죄는 성적인 죄라는 뜻이다. 어떻게 그 죄를 이기는가? 다른 죄는 맞서 극복하되 성적인 죄의 경우에는 이기는 최적의 방법이 성적인 죄의 현장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음행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하는 것이다(고전 6:18).
< 성령 충만한 삶의 증거 >
율법에서 해방된 후에는 감사함과 책임감 가운데 율법을 힘써 지키라. 율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나 도덕과 윤리에서 탁월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성도가 죄를 멀리하는 문제는 책임감의 문제이고 사랑의 문제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나의 자유를 희생하고 반납하려는 삶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삶이다. 말씀을 들을 때 모두를 위해 기록된 말씀인 로고스가 나를 위해 들려진 말씀인 레마가 되려면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도로 살아가면서 특히 중요한 문제는 남에 대한 미움을 극복하는 용서의 문제다. 어떻게 미워하는 마음을 이기는가? 성령님이 도와주시면 미워하는 마음을 이길 수 있다. 우찌무라 간죠가 했던 “당신이 미움의 총을 쏠 때 나는 사랑의 대포를 쏘겠습니다.”라고 한 고백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고백이다.
성령 충만은 말로만 ‘성령 충만’을 내세우며 영적인 우월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3가지 능력인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능력이 내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믿음의 능력이 있으면 기쁨이 넘치게 된다. 사랑의 능력이 있으면 사람이 예쁘게 보인다. 소망의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의 일로 바빠진다. 결국 성령의 능력이 있으면 ‘기쁘다. 예쁘다. 바쁘다’의 ‘삼쁘다’의 증거가 나타난다. 그런 증거가 있는 성령 충만한 믿음의 증인이 되라.
사도행전 1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땅 끝이란 말은 지역적인 의미에서는 ‘멀리 있는 지역’이란 뜻이지만 영적인 의미에서는 ‘가장 힘든 현실’이라는 뜻도 있다. 큰 고난과 시련 중에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증인의 삶을 잃지 말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손해와 죽음도 불사하는 성령 충만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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