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골로새서 2장 16-17절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율법주의를 버리라 >
믿음생활을 하다 보면 은혜와 율법에 대한 많은 오해가 생긴다. 특히 초대교회 때 거짓 교사들은 복음과 더불어 어떤 율법적인 행동이 있어야 구원받는다고 했다. 그것은 복음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훼손하는 잘못된 신앙이다. 당시 율법주의를 내세우는 거짓 교사들은 먹고 마시는 문제와 유대인들의 절기나 성일을 지키는 문제로 신앙과 구원여부를 저울질하며 판단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율법주의로 복음 신앙이 흔들리지 말라고 했다.
왜 율법을 지키는 문제로 구원여부와 신앙여부를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가? 율법은 그림자이고 진짜 실체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17절). 실체인 그리스도가 오셨기에 율법주의의 그림자에 매달리면 안 된다는 뜻이다. 물론 성도에게 행위가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도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율법주의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 구원받은 사람다운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행위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은혜주의이다. “은혜롭게 하자!”는 말은 “적당히 하자!”는 말이 아니다. 성도에게도 바른 행위가 있어야 한다. 즉 구원받은 후에는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행위를 부정하면 잘못된 은혜주의가 된다. 율법주의자가 ‘믿음이 없는 행위’를 강조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처럼 헛된 은혜주의자가 ‘행함이 없는 믿음’만 강조하면 그것도 잘못이다.
교회가 건축할 수 없는 논을 사서 그 논에 건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철야기도를 하거나 불법으로 무허가 건물을 지어 놓고 철거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철야기도를 하면 안 된다. 교회가 법도 안 지키면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처럼 은혜와 믿음을 강조하면서 행위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율법적인 행위와 신앙적인 행위에는 2가지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율법적인 행위는 어떻게 행동해야 구원받는다는 것이지만 신앙적인 행위는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으니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율법적인 행위는 자랑이 따르고 신앙적인 행위는 자랑이 없다. 결국 삯을 받는 종처럼 자기 행위를 자랑하면 율법주의자이고 구원에 감사한 아들처럼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 않고 당연히 여기면 복음주의자이다.
헌금할 때도 율법주의자가 거금을 헌금하면 교회는 어려워진다. 교회에 대주주가 생기기 때문이다. 큰 헌금을 하고도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교인이 복된 교인이다. 헌금하고 생색내면 더 큰일이기에 하나님은 소리 없이 조용히 드리는 사람을 기뻐한다. 교회는 여러 명이 모였기에 한 사람이 자기를 드러내면 흔들린다. 크게 헌신하고도 새벽이슬과 같은 심령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는 삶이 복된 삶이다.
율법적인 행위는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만 신앙적인 행위는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 자랑한다. 생명을 다 드려도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드리는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나누는 사람’이다. 부부관계에서도 주면 그 이상 얻지만 안 주면 그 이상 빼앗긴다.
하나님이 “네 몸을 내게 드리라!”고 한 말씀은 “내 몸을 네게 주겠다.”는 약속이다. 부활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은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를 사랑한다는 고백이다. 사랑관계에서는 질문이 고백이고 달라는 요구는 주겠다는 뜻이기에 “드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주겠다.”는 암시이다. 그처럼 성도에게는 자신의 몸과 삶을 다 드리고도 더 얻게 되는 기쁨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의무적인 어떤 행위가 있어야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율법주의는 버려야 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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