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민수기 14장 10-18절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3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14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15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16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17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응답을 부르는 중보기도 >
10명 정탐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 통곡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 어떤 사람도 군중들의 흥분을 잠재울 수 없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무서운 번개가 치는 것으로 추정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회막 위에 나타나 백성들의 분노가 공포로 바뀌면서 모세의 리더십이 극적으로 회복될 수 있었다. 또한 모세의 중보기도도 그의 리더십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모세의 기도처럼 응답을 부르는 중보기도를 드리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1.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회막 위에 영광으로 나타나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0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의 믿음은 장벽 앞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믿는다고 해도 어려움이 닥치면 믿음으로 그 상황을 극복할 줄 모른다. 믿음이 있는 것 같지만 믿음이 없는 것이다. 믿음이란 어려워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두려워하면 두려움의 지배를 받지만 믿음으로 기도하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사탄이 공격해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 사탄은 성도에게 종이호랑이로써 위협만 할뿐이지 삼킬 수 없다. 삶에 큰 위기가 닥쳐도 그 위기를 기도하는 기회로 삼고 이겨내면 더 큰 복이 펼쳐진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인생 전쟁도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결국 승리한다.
2.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하라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에 최대 관심을 두고 기도했다(13-16절). 하나님을 내가 높일 때 하나님이 나를 높여 주신다. 나를 높여 주시는 은혜는 명예나 신분을 높여 주시는 것으로도 나타나지만 참된 자유를 주시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출애굽 했다고 자유인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야 참된 자유인이다. 자유를 잘 쓰지 못하면 참된 자유인이 아니다. 돈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부분적으로 주지만 돈을 잘 쓰지 못하면 돈 때문에 불행해진다. 불행을 낳는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다.
남과 공동체는 생각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는 무책임한 이기주의자는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처럼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쳐서 얻는 것은 더욱 무서운 억압이다. 하나님의 품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참된 자유가 펼쳐지고 하나님을 높일 때 대 자유가 펼쳐진다. 또한 기도할 때도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하면 기도 응답을 통해 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은혜가 펼쳐진다.
3. 말씀을 앞세워 기도하라
모세는 말씀을 앞세워 주의 크신 권능을 나타내달라고 기도했다(17절). 어떤 말씀인가?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셔서 죄와 허물을 사하시지만 형벌 받을 자는 결코 사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이다(18절). 이 말씀을 보면 “가문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라는 주장도 맞는 것 같은데 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자주 이단 시비에 걸리는가? ‘조상의 저주’를 너무 강조하기 때문이다.
왜 무속인들이 조상의 저주, 조상귀신 얘기를 자주 하는가? 사람들의 영혼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해 자신을 의지하게 해야 더 복채를 받기 때문이다. 영혼에 두려움을 심는 것은 사이비 종교인의 핵심 수단이다. 무속인의 집을 보면 주위 환경부터 소름끼치게 만든다. 두려움으로 사로잡기 위해서다. 두려워하면 나쁜 존재에게 사로잡힌다. 조상의 저주 얘기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많이 말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놀라운 축복이 주어지는 것에 대해 더 말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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