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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자연 만물이 주는 교훈

by manga0713 2023. 7. 31.

[ 외젠 부댕 : 도빌의 바닷가 ]

 

 

 

본문말씀 : 욥기 38장 8-24절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12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13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14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16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19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20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21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 22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23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 24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 극단적인 삶을 경계하라 >

 한 여자가 철저히 자연인으로 살겠다고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다. 그녀의 가족들은 한때 TV에도 나와 도시인들이 동경하는 삶을 선보였다. 야생 나물로 넘치는 식사, 맑은 공기, 전기와 전화도 없는 고즈넉한 산골의 삶은 공해와 소음과 일에 찌든 도시인들이 부러워할만 했다. 그러나 남편과 16세 이하의 자녀 5명을 남기고 그녀는 산골로 들어간 지 7년만인 45세에 의료 혜택도 못 받고 병사했다.

 남편은 한때 대학교수였고 그녀는 약사였지만 문명과 양약을 거부하며 자연 요법 치료만 추구했다. 그러나 대체의학과 자연 요법은 현대의학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수단으로만 활용되어야 한다. 자연을 좋아하는 삶이 문명을 거부하는 삶을 낳는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자연주의다. 문명을 거부하고 간단한 질병에도 허무하게 죽는 모습은 결코 복된 모습이 아니다.

 꾸밈이 없는 자연적인 삶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꿈과 비전과 사명이 외면되면 순수함도 복된 것은 아니다. 산골에서 순수하게 살면 선해지는가? 순수한 것과 선한 것은 다르다. 아담은 태초에 가장 순수한 환경인 에덴에서 죄를 지었다. 순수하다고 저절로 선해지지는 않는다. 무엇이든지 극단주의는 죄를 낳는다. 특히 자녀까지 문명적인 혜택과 교육 기회를 박탈한 것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다.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해 자녀를 희생시키지 말라.

 사람이 현실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현실을 무시하면 무책임한 인생이 된다. 대책이 없는 삶을 순수한 삶으로 오해하면 정말 대책이 없다. 도시인이 자연이 싫거나 자연을 누릴 줄 몰라 도시에 사는 것이 아니다. 또한 도시의 삶이 산골의 삶보다 악한 삶은 아니다. 물론 산골에서 7년 살다가 병으로 죽은 삶도 무조건 비난하면 안 된다. 그녀에게는 그 7년이 행복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극단주의에 빠지지는 말라. 자녀들에게는 그 7년이 불행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흔한 휴지도 없어 배설 후 손수건으로 그곳을 닦았고 제대로 소독 처리도 없이 그 손수건을 계속 빨면서 썼다. 산골의 삶이 부모에게는 자발적인 선택이어서 행복했을 수도 있지만 자녀들에게는 강요된 선택에 가까웠기에 행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결국 문명과 문화는 피할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하면서 추구할 것이다.

 자연을 벗 삼으며 물질문명을 잘 관리하라. 도시생활에 염증난다고 완벽한 자연인으로 살겠다고 하지 말라. 물론 불편한 1년의 행복한 삶이 편한 100년의 불행한 삶보다 나을 수 있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잘못된 것은 도시와 시골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다. 도시와 자연의 관계는 일과 휴식의 관계와 같다. 자신의 가치 실현과 자신의 사명 성취를 위해 열심히 살면서 적절하게 자연을 누리며 살라.

< 자연 만물이 주는 교훈 >

 표절은 나쁜 것이지만 한 가지 표절만은 필요하다. 하나님의 만드신 자연을 표절하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이 창조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 자연을 표절한 것이다.” 왜 여행과 캠프가 좋은가? 미지의 세계와 자연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자연을 누리지만 말고 자연을 통해 배우라. 자연 만물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

 본문 8절을 보라.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이 구절에서 비유적으로 모태는 ‘땅속 깊은 곳’을 뜻하고 문은 ‘해안선 경계’를 뜻한다. 즉 땅속 깊은 곳에서 지하수가 터져 나와 바다를 이룰 때 바다의 경계를 정하신 분은 하나님임을 반문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바다의 한계를 정해서 문빗장을 지른 것처럼 파도가 높아도 바다 물결이 경계를 넘지 못하게 하셨다(10-11절).

 하나님이 바다의 한계를 정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경계를 최대한 존중하라는 뜻이 있다. 또한 자연의 경계가 정해져 있듯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온전히 순종하라는 뜻도 있다. 안다는 것과 가졌다는 것과 영성이 있다는 것이 때로는 벽이 되고 심지어는 병이 된다. 참된 지식과 소유와 영성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할 때 나타난다.  

 본문 15절을 보라.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늘 겸손하기를 힘쓰라는 반어법적인 말씀이다. 광대한 자연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결코 교만할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예상치 못한 사고로 순식간에 이 땅을 떠날 수 있다. 왜 사고가 생기는가? 핵심 원인은 부주의다. 육적인 부주의도 문제지만 영적인 부주의는 더 큰 문제다. 특히 교만을 다스리지 못한 부주의는 반드시 문제와 사고를 낳는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교만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 겸손한 기도로 하나님과 내적인 대화를 하면서 모든 상황을 잘 극복해 내라. 일이 안 되거나 답답하거나 짜증나는 상황에 처해도 기도를 통해 호흡을 잠깐 고르고 한 번 더 참고 한 템포 늦추면서 조급한 마음을 잘 이겨내면 문제와 사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고 하나님의 은혜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2.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라

 본문 19절을 보라.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사람 앞에는 두 길이 있다. 광명의 길과 흑암의 길이다. 본문 20절을 보라.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광명의 길로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반어법적인 표현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알고 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때 나타나는 핵심적인 삶의 모습이 있다. 자기 스타일과 주장을 공동체와 큰 뜻 실현을 위해 양보하는 삶이다.

 남의 생각과 스타일을 존중해 주라. 하나님이 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셨듯이 나도 남을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면서 그에게 선한 작은 변화라도 있기를 원하면 인내하고 기도하고 배려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삶의 모범을 조용히 보여 주라. 나의 배려하는 삶을 통해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작은 변화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 행복이다.

 제비족의 계산적인 배려는 끝내 준다. 그 배려에 넘어가 몸과 마음과 물질을 다 털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성도는 제비족 이상으로 비계산적인 배려가 끝내 주어야 한다. 영화를 보기로 했으면 그 영화에 대해 사전에 미리 연구해서 사려 깊게 대화를 잘 이끌면 생각이 깊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 작은 부분까지 사려 깊게 살펴서 상대를 기쁘게 하려고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고 연구하라. 비계산적인 세심한 배려가 잘 훈련되면 좋은 만남과 좋은 인맥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대비하라

 본문 22절을 보라.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이 눈을 곳간에 쌓아두고 우박을 창고에 쌓아두셨음을 반문을 통해 강조한 말씀이다. 왜 그렇게 쌓아두셨는가? 마지막 때에 눈과 우박과 같은 자연 현상을 심판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다(23절). 하나님은 종종 자연의 거대한 힘과 신비한 자연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경고하신다. 가끔 자연재해를 접하면 그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대비하면서 예수님의 재림 준비를 위해 세계 선교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지라.

 필자는 어렸을 때 늘 세계를 꿈꾸며 사회과 부도에 나오는 세계 지도를 수시로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헌신한 후부터는 해외 선교사의 비전을 품고 세계 선교로 유명한 미국 얼라이언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C&MA(기독교선교연맹, 미국성결교) 소속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음식 문제 등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귀국해서 C&MA 교회를 개척했다.

 해외 선교사의 꿈은 막혔지만 한국에서 사역할 때도 계속 세계를 꿈꾸면서 일단 필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문서 선교를 준비했다. 설교를 준비할 때도 설교 자체가 정제된 글이 되도록 힘써 준비했기에 마침내 때가 되어 <월새기(월간새벽기도)>를 발행할 수 있었다. 앞으로 또 한 번 때가 되면 <월새기 영어판>도 발행되어 세계 선교에 일조할 것이다. 지금은 나이도 꽤 들었고 몸은 한국에 있지만 여전히 세계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요새도 쉬는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구글 지도를 보는 일이다.

 가끔 빨리 은퇴해서 하나님과 자연을 묵상하며 낭만과 여백의 삶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금방 생각을 되돌린다. 그런 낭만적인 삶이 얼마 후에는 곧 지루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기 사명을 인식하고 그 사명대로 살지 않으면 금방 공허해진다. 앞으로 세계와 자연을 꿈꾸면서 세계 복음화의 꿈도 품고 예수님을 다시 만날 날까지 힘써 선교하며 살라.

 사명적인 삶과 여백적인 삶의 균형을 잘 갖추라. 사명을 따라 산다면서 휴가를 통한 누림을 외면하면 사명을 오래 지속시키기 힘들다. 치열하게 사명을 따라 살면서 동시에 안식의 삶을 통해 자연을 누리면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낄 때마다 열심히 살라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귀를 기울여 그 음성을 들으면서 힘들 때는 용기를 내고 잘 나갈 때도 겸손을 잃지 않음으로 인물이 되어 마지막 때의 선교 사명을 멋지게 이뤄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