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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죄 문제부터 해결하라

by manga0713 2018. 11. 30.

 

 

 

 

본문말씀 : 요한복음 21장 25절

25.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죄 문제부터 해결하라 (요한복음 21장 25절)

< 샛길이 더 막힐 수 있다 >

 인간은 다 약하다. 강하다는 사람도 다 약하다. 어떤 스턴트맨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세 번이나 떨어져 내리고 살아서 매스컴이 ‘죽음을 정복한 사나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가 뉴욕 시내를 걷다가 꼬마가 먹다 버린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사망했다. 세상에 아무도 자기 인생을 자신할 사람은 없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도 막히는 길을 만난다. 내가 잘해도 남이 막는다.

 가끔 자동차 사고 때문에 도로가 꽉 막힌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남이 사고를 치면 내 길도 막힌다. 나이 많은 회사원들은 가끔 이런 소리를 듣는다. “아직 안 미쳤어요?” 위에서는 호시탐탐 자르려 하고 밑에서는 밀치고 올라오니 속상한 일을 많이 당한다. 그냥 다니자니 속이 썩고 안 다니자니 처자식이 운다. 앞길이 잘 안 보이니까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머리 빠른 사람들은 정상적인 길로 가면 안 되는 줄 알고 요령을 피우고 샛길을 찾는다. 그처럼 너도나도 샛길을 찾으니까 나중에는 샛길이 더 막힌다.

 지금 곳곳에 길이 막혀 있다. 왜 길이 막히는가? 근본 원인은 죄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하고 좋은 사상을 발굴해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람에게는 길이 없다. 공산주의도 처음에는 화려하게 등장했다. 산업혁명 후 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리며 품값이 크게 떨어졌다. 근로자는 노예처럼 일해도 살기 힘들었고 조금만 불평하면 그냥 쫓겨났다. 마르크스는 그 모습을 보며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겠다고 공산주의를 주창했다.

 그렇게 출발되었기에 겉으로 보면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인간미가 더 있어 보임으로 급속히 많은 사람들을 그 사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는 경제적 불행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죄 때문이다. 죄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도 행복을 줄 수 없고 공산주의도 행복을 줄 수 없고 인간이 만든 어떤 종교나 윤리나 사상도 행복을 줄 수 없다.

< 죄 문제부터 해결하라 >

 인간의 모든 절망의 원인을 계속 추적하면 결국 만나는 것은 죄다. 왜 예수님이 소중한가? 십자가의 피로 죄 값을 치러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해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목적을 위해 세상에 오셨고 예수님이 하신 가장 위대한 일은 죄 문제를 해결하신 일이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행복을 줄 수 없다. 소유의 기쁨은 잠시뿐이다. 가장 어리석은 일은 세상 것으로 영혼을 채우려는 모습이다.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만 채워진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는가? 착한 행위만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기독교는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다. 정성과 착한 일로 하나님을 움직일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랑으로 이미 먼저 움직이셨다. 그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영혼의 참된 자유를 주신다. 사람들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원하지만 죄 위에 쌓여진 부와 명성과 권력은 허무하고 오히려 저주가 된다. 부와 명성은 얻지 못해도 죄의 문제를 처리해 구원받고 영혼의 자유를 얻으라. 예수님은 구원과 영혼의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통해 그 일을 기필코 이루셨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이 너무 많아 다 기록할 수도 없지만 사실상 다 알 필요도 없다. 한 가지만 분명히 알면 된다. 그것은 “주님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잘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주님이시다. 요한복음 21장 전체를 보면 주님의 용서의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음을 느낀다.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삶은 용서하는 삶이다. 용서와 화해를 모르면 아무리 잘나가는 인생도 결국 불행한 인생이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요란한 큰 소리’는 없지만 조용한 가운데 곳곳에 주님의 사랑이 펼쳐져있다. 특히 갈릴리 바닷가에서 있었던 사랑의 비치파티는 제자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은혜 받은 장소였다. 그때 제자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허기진 영혼을 채웠다. 그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행복도 결코 없다. 사람들은 행복이 소유에 있다고 생각한다. 약간은 상관있지만 행복과 더 상관이 있는 것은 인격과 마음이고 가장 상관이 있는 것은 신앙이다. 행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