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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축복에 대한 바른 관점

by manga0713 2019. 7. 5.

 

 

 

 

본문말씀 : 창세기 10장 1-20절

1.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2.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5.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6.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축복에 대한 바른 관점 (창세기 10장 1-20절)

1. 다수가 꼭 축복은 아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노아가 술 취했을 때 그의 세 아들 중 셈과 야벳은 그 허물을 덮어줌으로 축복의 말씀을 받고 함은 드러냄으로 저주를 받았다. 그렇다면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 기록에서 함의 후손은 점차 사라지고 셈과 야벳의 후손은 점차 많아져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 70명 중 야벳의 후손은 14명, 함의 후손은 30명, 셈의 후손은 26명으로서 함의 후손이 제일 많다. 다수가 꼭 축복은 아니라는 뜻이다.

 내면을 못 보는 숫자놀음에 빠지지 말라. ‘사람이 많은 것’보다 ‘희망을 주는 사람이 많은 것’이 중요하다.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이 되어 바른 길로 인도하는 등대 성도가 많아져야 한다. 어디에 가든지 존재 자체가 빛과 희망이 되는 등대 성도가 되라. 인생길을 가면서 수많은 절망적 환경에서도 희망을 품고 다시 용기 있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있는 등대 성도 때문이었다. 많은 교인보다 있는 처소에서 빛을 뿌리는 적은 등대 성도가 어둔 세상의 진짜 희망이다.

 삶이 힘겨울 때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때마다 가족을 생각하면 미안함 때문에 마음속으로 주체하기 힘든 눈물을 흘리다가 눈물 후에 찾아오는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끼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더 나아가 십자가에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같이 비참해지기보다 오히려 신비하게 삶의 용기가 생긴다. 그때 예수님이 이런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 같다. “내가 네 형편을 다 보고 있고 네 심정을 다 알고 있단다.”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있어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예수님만 내 옆에 있어주시면 된다. 아니면 내가 예수님 옆에 서면 된다. 나를 아시는 하나님 품에 안기면 삶이 나를 속여도 좋고 세상이 나를 몰라줘도 좋다. 숫자가 많은 것보다도 평안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하나님 한분을 가진 것이 좋고 예수님 믿는 사람 한 사람을 가진 것이 좋다. 나의 존재 이유는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줌에 있다. 숫자가 많은 것이 축복이 아니라 부지런하게 찾아오는 낙심을 극복하도록 도움이 되는 한 사람을 가진 것이 축복이다.

2. 확장이 꼭 축복은 아니다

 본문 10-12절에 나오는 니므롯의 지경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그 지명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지 못해도 그의 나라가 매우 크고 강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큰 성을 건축하는데 사람들을 도구로 이용했다. 또한 함의 후예 중 니므롯 이상으로 지경을 넓힌 사람이 있었다. 가나안 족속의 조상인 가나안이다(6절). 가나안은 함의 여러 아들 중 가장 지경을 넓게 확장시킨 아들이었다(15-19절). 일시적인 지경 확장도 꼭 축복은 아니라는 암시다.

 오늘날도 니므롯이나 가나안처럼 자기 지경을 확장하려고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잘못된 영웅이 많다. 특히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켜 성장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대형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희생은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 희생의 목적이 넓은 땅을 사고 바벨탑처럼 화려한 건물을 짓기 위한 희생이라면 그것은 중세 교회를 비판하고 종교개혁을 해서 생긴 개신교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즉 종교개혁의 주체가 오히려 종교개혁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거룩한 지경을 넓히는데 힘쓰되 바벨탑 쌓기를 천국 확장으로 오해하지 말라. 교계에서도 영웅에 버금가는 목회자 중 니므롯 같은 위험한 영웅도 있다. 요새 니므롯의 방법론과 교회경영론 및 교회성장론 등이 세미나의 가장 인기 있는 주제다. 교회성장 세미나를 가면 거룩한 목적을 내세우면서 최종 목적은 니므롯의 영광인 경우가 많다. 저주받은 함의 자손 중 니므롯이란 영웅이 출현한 사실은 영웅에 대한 관점을 교정해야 함을 잘 보여준다.

 잘못된 영웅 신화에 사로잡히지 말라. 외적인 성장과 성공으로 축복 유무를 저울질하지 말고 말씀과 기도를 앞세워 예수님의 삶과 하나님의 관점에 더 익숙해지라. 지금은 부족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목표로 삼아 계속 순례 길을 가면 숫자나 외형에 휘둘리지 않는다. 내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내 주변 사람의 마음에도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빛이 임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변화되어 낮은 곳에서 바탕 역할을 해주고 긿 잃은 자의 등대 역할을 해주는 소수가 다수보다 더 중요하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