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출애굽기 16장 31-32절
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2 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라 >
출애굽기 16장은 만나와 관련된 여러 사실이 기록된 ‘만나장’이다. 만나는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31절). 반면에 민수기 21장 5절에는 40년 광야생활이 거의 끝나는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며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했다. 감격과 감사를 잃어버린 뻔뻔하고 어리석고 복 없는 모습이다. 왜 기복주의가 나쁜가?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을 낳기 때문이다.
기복신앙이 단순히 ‘복을 기원하는 신앙’이라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복을 기원하는 것은 신앙의 중요한 내용이다. 왜 기복신앙이 잘못된 것인가? 이기적인 탐욕으로 복만 찾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복신앙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욕심으로 복을 구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복을 구하는지 그 속마음을 너무 잘 아신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면 자기 보신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보신은 ‘편안’은 주어도 ‘평안’을 줄 수는 없다. 반면에 헌신은 ‘편안’을 주지 못해도 ‘평안’을 준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은 ‘편안의 복’이 아닌 ‘평안의 복’이다. 기복신앙이 추구하는 복은 ‘보신을 위한 편안의 복’이지만 참 신앙이 추구하는 복은 ‘헌신을 아는 평안의 복’이다. 하나님은 받은 복으로 헌신하길 원한다. 보신만 아는 기복적인 신앙은 타락 위험성이 있고 결국 타락한다. 그러나 헌신적인 참 신앙은 잠깐의 시련과 흔들림은 있어도 다시 굳게 선다.
헌신을 모르고 받는 축복에만 익숙해지면 축복에 대한 감격과 감사를 잃는다. 결국 불평과 원망만 남게 된다. 얼마나 복 없는 모습인가? 살면서 감사와 감격을 잃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지 말고 나눔을 통해 얻는 기쁨과 보람을 추구하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서 축복의 지경을 넓히는 삶 자체를 포기하는 평균인이 되지는 말라. 축복은 많이 얻되 그 축복을 나눔으로 평균인이 되라.
<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만나를 오멜에 채워서 후손을 위해서 간수하게 했다. 그것은 출애굽 할 때 광야에서 먹은 양식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32절).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만나를 내려주시는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살라.
난생 처음 미국행 비행기를 탄 한 시골 할머니가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가 식사를 줄 때 필요 없다고 했다. 이상해서 스튜어디스가 왜 식사를 안 하느냐고 묻자 자기는 돈이 아까워서 안 사먹는다고 했다. 그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할머니! 비행기 표 값에 식사 값도 다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냥 드셔도 돼요.” 그제야 할머니가 식사를 받았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 그 구원의 은혜에는 이미 삶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도 포함되어 있다.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이 그 양들의 필요를 채워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인생의 구체적인 공급자로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도 꾸준히 책임져주실 것이다. 기적의 하나님은 한꺼번에 넉넉한 식량을 주실 수도 있지만 매일 정한 시간에 하늘의 만나를 내려주셨다. 사실 그것이 축복이다. 만나를 통해 매일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일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풍성하신 하나님이다. 가끔 겪는 궁핍은 하나님의 목적 있는 시련이다. 그 시련으로 감사를 잃고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하지 말라. 그들의 주특기가 원망인데 원망은 ‘원 없이 망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대부분 광야에서 원 없이 망했다. 반면에 하나님이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필요한 때마다 넉넉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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