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회복의 때는 온다

by manga0713 2018. 9. 28.

 

 

 

 

본문말씀 : 호세아 1장 1-11절

6.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회복의 때는 온다 (호세아 1장 1-11절)

< 심은 대로 거둔다 >

 어느 날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음란한 매춘부와 결혼하라고 했다((2절). 이스라엘의 영적인 음행을 경고하려고 하나님이 그의 삶을 활용하셨다. 그 명령대로 호세아가 고멜과 결혼하고 둘 사이에 첫 아들이 생기자 하나님은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짓게 했다(3-4절).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으로 바알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쳐서 널리 흩으실 것임을 경고하려고 주신 이름이다.

 그 후에 고멜이 잉태해 딸을 낳자 하나님은 그 딸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지으라고 했다(6절). 루하마는 ‘긍휼히 여기다’는 뜻인데 ‘로’는 영어로 ‘노(No)’를 뜻하기에 로루하마는 ‘긍휼이 여기지 않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바알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주셨다. 그처럼 북 이스라엘은 무섭게 심판하지만 남 유다에 대해서는 구원의 약속을 주셨다(7절).

 같은 민족인데 왜 하나님이 차별하는가? 이스라엘은 차별한다고 하겠지만 사실상 못하는 사람과 잘하는 사람의 차이를 두는 것이 오히려 의롭고 공평한 것이다. 인간사회에는 어디서나 차별이 있다. 그러나 차별이 크지 않은데 자격지심으로 차별이 큰 것처럼 느끼면 누구도 그 감정을 달래줄 수 없다.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차별이 아니고 오히려 무조건 차이를 두지 않으려는 것이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는 것이 사실상 공평한 것이고 그것이 정의다.

< 회복의 때는 온다 >

 로루하마를 젖 뗀 후 고멜이 잉태하며 또 아들을 낳았다(8절). 그 아들 이름을 하나님은 ‘로암미’라고 지으라고 했습니다. 암미란 ‘내 백성이다’란 뜻입니다. 역시 이 단어에서도 ‘로’는 영어의 ‘노(No)’를 의미하기에 로암미란 ‘내 백성이 아니다’란 뜻이다. 하나님은 바알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란 속상한 심정을 담아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셨다.

 ‘로루하마(내가 긍휼히 여기지 않으리라), 로암미(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곧 이어서 하나님은 본문 10-11절에서 다시 이스라엘의 회복과 축복을 약속했다. 그처럼 하나님은 때로 사람이 되라고 때리시기도 하지만 곧 다시 그 상처를 싸매주신다. 그 하나님에 대해 호세아는 본문 10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생생하게 체험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필자는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선교하는 교회를 지향해서 ‘나눔’을 최상의 가치로 두었다. 우리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선교사들과 더 어려운 교회를 위해 고린도전서 8장 3절 말씀처럼 힘에 지나도록 나누었다. 교회가 어려워 다른 지출을 줄일 때도 선교와 나눔은 줄이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잠깐 한국에 방문하면 물심양면으로 최고로 환대하고 섬겨드렸기에 동료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은 필자 교회가 굉장히 부자 교회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최상의 나눔을 실천하기까지는 수많은 눈물의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

 믿음으로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나갈 때 길이 막힐 때도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신기하게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다. 특히 은혜 받은 몇몇 온라인 새벽기도 회원들의 기도와 후원도 선교사역 지속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신기한 체험을 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생생하게 느낀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 당장에 돈을 벌지 못하고 당장에 소원을 이루지 못해도 결코 믿음이 흔들리지 말라.

 바울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기의 약한 것과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했다. 그 투박한 고백 속에 바울이란 거인의 비밀이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다. 십자가의 길은 한가한 산보가 아니라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힘겹지만 일단 그 길을 걸으면 생각을 초월한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생기고 때가 되면 놀라운 회복과 축복의 은혜가 펼쳐진다.

 본문 11절을 보면 하나님이 시련 후에 회복의 은혜를 주실 때 분열되었던 남 유다 자손과 북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강대국의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마침내 이스르엘의 때가 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을 가진 이스르엘은 부정적으로는 망해서 흩어지는 뜻도 있지만 긍정적으로는 번성해서 흩어지는 뜻도 있다. 하나님 붙잡고 살 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과 번성의 때를 허락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