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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공동체 의식을 가지라

by manga0713 2023. 1. 4.

[ 조르주 드 라투르 : 성 요셉 앞에 나타난 천사 ]

 

 

본문말씀 : 사사기 21장 8-12절

 

8 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9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 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11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

 

 

< 섣부른 맹세를 주의하라 >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베냐민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 큰 소리로 울며 말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십니까?” 이스라엘은 야곱의 12아들의 후손인 12지파로 이뤄진 언약 공동체인데 베냐민 지파가 사라지면 언약 공동체의 의미가 크게 상실된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뚜렷한 해결책이 없자 크게 운 것이다.

 이튿날 백성이 일찍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때 그들은 미스바 총회에 참석치 않은 사람은 반드시 죽이겠다고 맹세한 것을 기억해냈다. 물론 언약 공동체로서 자신의 기본책임을 회피한 것은 응징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들이 공의를 실현하려는 순수한 동기가 아닌 베냐민 지파의 멸절 문제를 해결하려고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응징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지파의 명맥을 이어주려고 림몬 바위에 남은 600명의 베냐민 지파 생존자들에게 아내를 붙여주는 문제를 고민했다. 즉 남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자기 딸들을 주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지만 자기 딸들을 베냐민 지파의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한 맹세를 지켜야 했기에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 맹세에 참여하지 않은 동족을 찾아 그들의 딸을 베냐민의 남은 자들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서둘러 조사해서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을 찾은 결과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총회에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8-9절). 그래서 1만 2천 명의 군사를 보내 길르앗을 치고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죽이라고 했다(10-11절). 마침내 이스라엘 군사들이 야베스 길르앗 성읍을 쳐들어가 그곳 주민들을 죽인 후 처녀 400명을 베냐민 지파 보존용도로 실로 진영으로 데려왔다(12절).

< 공동체 의식을 가지라 >

 총회에 한번 참석하지 않았다고 12000명의 군사를 동원해 동족인 길르앗 야베스 거민을 진멸하겠다고 내린 결정은 너무 감정적이고 지나친 결정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장면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본인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자꾸만 회피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구성원들에게 낙심을 주는지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책임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삶을 도전받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왜 가끔 교회 생활에 혼란과 불만이 생기는가? 약한 공동체 의식 때문이다. 교회를 내 가정처럼 생각하고 같이 기도하는 사람을 함께 천국을 향하는 내 동료와 친구처럼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비전을 이뤄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꿈을 가지면 교회생활이 재미있게 될 것이다. 그런 가족 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동참해야 교회를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갈 수 있다.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데 장애가 되는 한 가지 큰 오해는 목사가 열심히 뛰면 교회가 잘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 함께 열심히 뛰어야 한다. 목사만 뛰면 오히려 교회가 약해진다. 목사는 감독과 같고 성도는 선수와 같기에 목사와 성도가 같이 뛰어야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목사들이 선수처럼 뛰면 오히려 부흥도 뜻대로 안 되고 결국 탈진한다. 성도는 지켜보는 관중이 아닌 뛰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축구를 할 때 선수들을 다 관중석으로 몰아넣고 감독들만 모아서 팀을 만들어 경기하면 경험과 지략으로 다 이길 것 같지만 오히려 큰 점수 차로 질 것이다. 결국 세상을 정복하는 교회를 만들려면 목사와 성도가 함께 뛰어야 한다. 거룩한 공동체에서 이탈하면 큰 화가 미치지만 어디에 가든지 책임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란 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통해 복된 인물이 나오는 역사를 허락하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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