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시편 39편 1-7절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 홀가분하게 살라 >
불행의 원인을 남 탓이나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말라. 불행의 근본 원인은 욕심이다. ‘지나친 것’이 ‘모자란 것’보다 더욱 큰 불행의 원인이다. ‘지나침’은 조만간 다가올 ‘떨어짐’의 뚜렷한 전조다. 세상 것에 너무 미련을 두지 말라. 홀가분하게 떠나는 연습을 하라. 나누려는 선교마인드가 없어서 불행하고 구차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복음이 주는 큰 선물은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집착은 영혼의 감옥이다.
나눔 훈련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복도 가져다주지만 온갖 집착에서 해방되는 복도 가져다준다. 십자가에 죽었다면 싸울 일도 없고 근심에 지배당할 일도 없다. 예배가 무엇인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로 살겠다고 새로 각오하는 것이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영혼은 하늘에 속하게 되고 세상적인 것 때문에 울지 않는 영적인 깊은 놀이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사람의 날 때와 죽을 때를 보면 묘한 교훈을 얻는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난다. 그리고 살면서 권세와 지식과 돈을 하나씩 쥐면서 살아가지만 떠날 때는 누구도 예외 없이 저절로 손을 쫙 펴고 죽는다. 그처럼 저절로 손이 펴져서 그 쥔 것을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놓게 되기 전에 자기 손에 있을 때 자기의 선한 의지를 담아 선한 일을 위해 거룩한 인심을 많이 쓰라.
천국행을 잘 준비하려면 다 벗어버릴 줄 알라. 손에 다이아 반지라도 끼어있으면 자신이 죽을 때 겉으로는 울어도 속으로는 “저 다이아 반지를 어떻게 내가 가질까?”라고 계산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욕심이 사람의 정감까지 상실하게 만든다. 그처럼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지만 속으로는 계산하게 만드는 그런 비참한 죽음의 대상이 되지 말고 자기 존재만 남기고 다 벗어버릴 준비를 하라. 그때 진정한 인격적인 만남과 행복이 주어진다.
<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라 >
나그네 인생길에서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일은 힘들 때 편히 쉬어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곳이 바로 교회다. 교회를 주님의 몸처럼 사랑하고 교회의 필요에 최우선의 관심을 가지고 힘을 보태라. 어렸을 때는 주로 사랑을 받다가 철이 들면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남을 생각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성숙의 증거다. 넘치게 주기를 주저하지 말라. 사랑에는 낭비적인 요소가 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던 마리아에게 가룟 유다는 “왜 향유를 낭비하느냐?”라고 화를 냈다. 낭비적인 사랑의 깊은 의미를 알면 마리아처럼 되고 알지 못하면 가룟 유다처럼 된다. 어려운 형편 중에도 교회의 필요를 살피고 힘써 부족함을 채우려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전부 낭비하셨다. 사랑은 논리와 손익계산을 초월해야 할 수 있다.
참된 사랑은 잃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잃고 손해 보고도 행복한 것이 사랑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기에 뭔가를 잃어버리고 손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신앙의 진수를 아는 사람이다. 교회를 위해 눈물과 재물, 젊음과 시간, 그리고 피땀과 에너지를 낭비해 본 체험이 있는 사람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교회는 세상을 잘 극복하게 만드는 영적인 진지다.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리면 영혼이 강건해진다.
특별히 교회생활을 잘하려면 언어생활을 잘 관리하라. 마귀가 교회를 깨뜨리려고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말들을 유포하는가? 외적의 침입보다 내적인 분열이 더욱 무서운 적이다. 외적인 공격을 받으면 더 뭉치지만 내적으로 “그것은 틀렸다. 그는 틀렸다!”고 하면 자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는 부정적인 말을 가급적 삼가고 어려운 현실 중에도 힘써 서로의 꿈과 비전을 일깨워 주고 격려해 주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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