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되게 하는 5대 덕목 >
사람마다 체질이 다른 것을 이해해야 인간관계가 아름답고 조화롭게 되고 또한 그런 체질 차이를 잘 극복해서 하나가 되면 더욱 풍성한 삶과 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체질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 구절을 보면 하나 되게 하는 기본 덕목 5가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모든 겸손
‘모든 겸손’이란 ‘온전한 겸손’이란 뜻으로서 하나가 되려면 최대한 겸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 사이에 의견 차이와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의견 차이와 갈등이 있는 것에 놀라지 마십시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더 나아가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십시오. 겸손하게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면 하나가 되어 작은 힘으로도 큰 힘을 발휘하지만 교만해서 하나가 되지 못하면 큰 힘이 있어도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정신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병자 100여명을 무장하지 않는 3명이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3명이 100여명을 충분히 다스리는 이유는 병자들이 하나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이 병들면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를 제일로 여기면서 두 사람도 의견과 행동을 합치지 못하니까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뭉치는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알지만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존재가 되지 말고 자신을 낮추고 남을 인정해주는 겸손한 심령을 가지십시오. 거기서 진정한 하나 됨이 시작됩니다.
2. 모든 온유
‘모든 온유’란 역시 ‘온전한 온유’란 뜻으로서 외적인 부드러움을 넘어 내면에 넘치는 최상의 온유를 뜻합니다. 온유란 자기 힘과 말을 전체 공동체와 덕을 위해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 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다 가지 않습니다. 또한 공동체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자기 책임을 더 생각하고 남에게 폐가 되기보다는 남을 위해주고 자기보다 남을 더 배려해줍니다. 그런 온유한 사람들이 넘치면 공동체의 하나 됨이 얼마나 견고해지겠습니까?
예전에 한 신문에 전국의 수해로 농사를 망친 농부가 시름에 젖어 논에 앉은 사진 바로 옆에 사치품을 살려고 길을 줄게 선 사진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국가적인 재난의 때에 사치를 부린다고 감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의 아픔을 헤아려 조금이라도 절제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지혜롭게 절제할 줄 알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힘을 절제할 줄 아는 온유함을 통해 하나 됨이 견고해집니다.
3. 오래 참음
하나 됨은 그냥 되지 않고 양보와 희생도 필요하고 인내와 시간도 필요합니다. 냉철하게 ‘하나 되지 못해서 생기는 큰 손해’와 비교하면 ‘인내와 희생을 통해 생기는 작은 손해’는 충분히 감수할 만합니다. 참지 못해서 가정과 교회가 깨지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잠깐 좋다가 큰 아픔과 상처와 고통과 고독이 밀려오는 자유는 복된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을 알면 웬만한 고통과 상처는 참고 희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상대가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남편이 술 먹고 정신이 없으면 싸우지 말고 술이 깰 때까지 참으십시오.
한 여집사가 불같은 성격을 가진 못된 남편과도 그럭저럭 잘 살아갔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아니, 그런 남편과 어떻게 살아요?” 동정하듯이 말하면 그 여집사가 대답했습니다. “그저 막내아들 하나 더 둔 셈 쳐요.” 심리학적으로 남자는 여자 앞에서 네 살이라고 합니다. 네 살배기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오래 참는 마음이 그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미숙한 자에게는 최대한 참아주면서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인내하면 언젠가 하나 됨이 이뤄질 때가 옵니다.
4. 서로 용납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는 말은 “남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라.”는 뜻입니다. 찬송가에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라고 하듯이 못된 성격 그대로 용납하고 거기서 작품을 만들어내십시오. “하나 되자.”는 말은 의견과 태도와 행동을 획일적으로 만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하나 되자.”는 말도 나와 다른 의견과 행동과 태도에 충격을 받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하나 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의 체질과 행동과 태도와 의견을 이해하고 용납해야 하나가 됩니다.
부부가 서로 똑같이 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부자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생각이 자기 생각과 똑같기를 바라지 말고 자녀도 부모의 생각이 자기 생각과 똑같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서로의 생각과 영역을 인정해 주고 같이 미래를 지향해 나아가야 하나가 됩니다. 하나 되는 기적은 행동과 의견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려고 시도할 때 생기지 않고 행동과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할 때 생깁니다.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다양성 속에서 일체를 이루는 것이 성경에서 권고하는 하나 되는 축복입니다.
5. 성령 충만
본문 3절에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란 표현은 하나 되게 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성령 충만이란 뜻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바다와 같은 수용성을 가지고 모든 상황을 수용하기에 하나 됨을 잃지 않습니다. 또한 성령으로 내면이 충만해지면 외적인 지위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실체에 대한 안목이 생기기에 어떤 상황에 처하거나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남의 몇 마디 말에 평안을 잃고 얼굴이 어두워지거나 살기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남이 뭐라고 해도 세상에 자기보다 자기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더욱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됩니다. 나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남의 말은 일종의 참고용으로만 듣고 그런 말 한마디에 결코 무너지지 마십시오. 성령 충만으로 평안함 가운데 바다와 같은 수용성을 가지고 나아가면 공동체에서 하나 되는 존재로 오래 지낼 수 있습니다.
< 교회사랑 10계명 >
사도 바울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한 후 본문 4-6절에서 “교회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고, 주도 한 분이고, 믿음과 세례도 하나이고, 하나님도 한 분이라.”고 ‘하나 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하나인 곳에 임하시는 님’이십니다. 성도다운 삶의 핵심적인 모습도 하나가 되려면 모습입니다. 교회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가 되려고 힘쓰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큰 기쁨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특히 교회의 직분자들은 교회를 위해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려고 하십시오. 구체적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분당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초창기에 연합 구역예배 때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한 ‘교회사랑 10계명’을 말씀과 기도 가운데 정해서 성도들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10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교회사랑은 ‘경외하는 사랑’의 의미를 포함함을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따뜻하고 편안한 것이지만 동시에 ‘경외함’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경외란 ‘경건한 두려움’을 말하는데 따뜻한 사랑과 경건한 두려움은 늘 공존해야 합니다. 교회는 영혼의 안식처이기에 서로 편하게 대하기도 해야 하지만 늘 조심스러움을 잃지 않는 예절 바른 모습도 갖추십시오.
둘째, 교인 간에 친소관계의 현실은 인정하되 남을 무시하거나 배타하지는 마십시오. 공동체 생활을 하면 가까운 사람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친소관계가 있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 3명의 애제자, 12명의 제자, 전도대 70인(눅 10장), 120문도(행 1장), 500여 형제(고전 15장)가 있었습니다. 그런 친소관계의 현실은 인정하되 뚜렷한 이유 없이 남을 편애하며 배타하지는 마십시오.
셋째,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시험 문제에는 해답이 있지만 교회 문제에는 ‘해답’보다는 ‘긍정적 해석’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교회 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늘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하십시오.
넷째, 남의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하기를 힘쓰십시오. 자기 변화는 없이 남만 변화시키려면 하면 문제 해결이 어려워집니다.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하고 없는 자는 있는 자에게 못된 마음을 고치라고 하면서 남만 탓하면 문제 해결이 어려워집니다. 자기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참된 문제 해결 방법입니다.
다섯째, 교회의 부족한 면이나 부정적인 면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희망을 죽이는 4가지 살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가? 우리의 미비점이 무엇인가? 우리의 걱정거리는 무엇인가?” 그런 질문에 대답을 얻으려고 골똘히 생각하면 교회생활이 힘들어지고 죽음의 길이 열립니다. 그런 살인적인 질문으로 다가오는 사탄의 수법에 걸려들어 자존감과 자기 특성을 상실하지 마십시오.
여섯째, 교회의 고객으로 출발했어도 교회의 주인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고객은 교회를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곳으로 생각하면서 원하는 서비스를 받으려 합니다. 처음에 고객형 교인으로 출발했어도 점점 교회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주인형 교인이 되십시오. 교회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채움 받으려고 하는 고객의 삶에서 교회가 원하는 것을 내가 채워주려는 사명자와 봉사자의 삶으로 변해야 교회가 더욱 힘을 얻고 영향력 있는 공동체가 됩니다.
일곱째, 교회와 교인의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정보 유출을 힘써 통제하십시오. 누군가의 비밀을 가려주는 것은 은폐가 아니라 양육과 보호를 위한 일종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기도제목도 가려주어야 할 비밀을 드러내는 기도제목은 나누지 않는 것이 교회생활의 지혜입니다. 좋지 못한 정보의 유출을 막고 누군가의 약점과 비밀을 지켜주고 통용시키지 않으려고 하면 간혹 오해도 받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언젠가 진실은 드러납니다.
여덟째, 한 사람이나 소수보다 교회 전체를 늘 먼저 생각하십시오. 한 사람이나 소수가 소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나 소수도 소중하지만 전체 공동체가 더 소중합니다. 교회에서 자기 힘의 기반을 만드는 데 신경 쓰면 교회의 영적인 힘이 고갈됩니다. 교인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교인들을 자기 의견이나 위치를 지지하도록 만들려고 하거나 교회 및 교회 리더십과 대립되는 자기 우군으로 만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아홉째, 하나 됨을 어떤 불화나 반대가 전혀 없는 상태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갈등과 반대는 늘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화해를 찾아가는 자세입니다. 의견의 차이를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말고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지 마십시오. 떠나거나 이별할 결심이 확고하지 않으면 “떠나겠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부부관계에서 아무리 화가 나도 “그래, 헤어지자.”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 말 자체가 상대에게 오래도록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깁니다.
열째, 그리스도의 전사가 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십시오.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작은 일로 자주 싸우려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진리를 구현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 의를 내세우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봉사를 하든지 혹은 회의를 하든지 늘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는 만드는 데 앞장서십시오. 사랑이 넘치는 교회와 교인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핵은 작은 입자지만 그 안에 엄청난 폭발력을 가졌듯이 현재의 모습이 연약한 성도나 교회도 그 안에 성령의 불이 임하면 세상을 놀랍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가는 곳마다 은밀한 사랑과 섬김으로 그곳을 선하게 변화시키게 하소서.” 교회와 교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려면 하나 되려는 마음이 내면에 넘쳐야 합니다. 어느 공동체에 가든지 유익이 되고 하나 되려는 데 힘을 보태고 특히 교회에서 더욱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인정도 받고 사람의 인정도 받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