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2장 6-10절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 능력 있게 사는 길 >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한 삶을 통해 능력 있는 삶을 살았다. 바울처럼 능력 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철저한 독립의식을 가지라
바울은 초대 교회의 유력한 사도들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역했다(6절).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갔다. 그처럼 남의 힘을 너무 의지하거나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말라. 남이 나를 인정해야만 자신감을 얻지 말고 남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 안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 독립적인 삶은 책임적인 삶을 낳는다. 약속을 지키면서 자기 책임을 다할 때 존중도 받고 능력 있는 삶도 펼쳐진다. 물론 독립심이 너무 지나쳐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거나 기존 질서와 체계를 너무 배타하려고 하지 말라.
기존 질서와 체계도 명백히 잘못된 것이 아니면 힘써 존중하고 특히 하나님께는 최대한 의존적으로 살라. 나의 죄와 허물과 약점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 사람을 불의하게 의지하지 않고도 누구보다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 독립심을 오해해서 남의 호의나 대접을 너무 거부하지 말라. 그것은 독립심이 강한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가 강한 것이고 자존심을 너무 내세워 인색하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성공한 사람은 될 수 있어도 행복한 사람은 되기 힘들다.
크게 성공했는데도 행복한 삶이 결핍된 것은 독립심을 개인주의로 오해한 결과다. 독립심을 가졌다는 것은 의존적으로 살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함께 살려는 것이다. 남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되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려고 하지 말라. 독립심을 가지면서도 사람은 서로 의존하며 사는 존재란 현실을 겸손하게 인식하고 특히 하나님께는 더욱 철저히 의존하려는 좋은 의미의 의존성을 갖추라.
2. 친화적 인간관계를 가지라
바울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서 자기 멋대로 하지 않았다. 자기는 무할례자인 이방인의 사도로 생각해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베드로는 할례자인 유대인의 사도라고 하며 베드로의 영역을 인정해 주었다(7절). 당시 유대주의자들은 베드로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대상이 다른 것이라면서 베드로의 사역을 인정했다.
바울처럼 하나님과의 수직관계도 잘 하면서 사람과의 수평관계도 잘 하라. 즉 수직적인 독립성과 더불어 수평적인 사회성도 좋은 성도가 되고 수직적인 계시성과 종교성이 탁월하면서도 수평적인 현실성과 윤리성도 탁월한 성도가 되라. 수직적인 절대관계와 수평적인 상대관계가 다 좋을 때 능력 있는 삶이 나타난다.
당시에 바울이 뚜렷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힘 있게 사역하자 초대 교회에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청하며 서로의 사역 영역을 존중해 주었다(9절).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고 게바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였고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 받는 제자였다. 그처럼 위대한 사도들이 서로를 인정했기에 초대 교회에 능력이 나타날 수 있었다.
혼자 해야 할 일은 혼자 하되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굳이 혼자 하지 말고 같이 하려고 하라.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혼자 다 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잘하는 일은 내가 하고 내가 잘할 수 없는 일은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적절하게 맡기는 사람이다. 나밖에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하고 적절한 시점에 일을 넘기는 지혜와 리더십을 갖추라. 함께 일하면서 일과 비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아갈 때 성공도 얻고 행복도 얻는다.
친화적인 인간관계를 이루려면 공동체를 생각하고 공동체의 법과 질서와 상식도 존중하라. 법을 엄하고 무서운 것으로 여기지 말고 나를 보호하는 사회적인 안전장치로 여기고 어떤 틀 안에서 친화성을 발휘해야 복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또한 친화적인 인간관계를 이루려면 질투와 미움을 버리라. 잠깐 미워하고 질투할 수는 있지만 최대한 빨리 미움과 질투를 털어버리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잠 16:32).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아는 것이 능력이다.
3. 거룩한 사명의식을 가지라
바울은 하나님이 베드로를 유대인의 사도로 삼으시고 자기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고 믿었다(8절). 그런 사명의식이 뚜렷했기에 온갖 시련과 오해를 극복하고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삶의 목적을 인간적인 성공보다 하나님 안에서의 성공에 두면서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물질과 지위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물질과 지위의 복도 주실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찬란한 꿈과 비전을 현실 속에 파묻고 살지 말고 늘 나의 사명을 생각하며 살 때 책임적인 삶과 복된 삶도 극대화된다. 특히 나의 삶 자체를 사명으로 여기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소중히 여기고 살피라. 하나님은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라고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 그런 사명의식을 잃지 말라. 세상 영광을 너무 추구하지 말고 내가 왜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를 기억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늘 성찰하며 살라.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에 있고 하나님이 하게 하신 일을 하는 것이 능력이다. 건강하게 오래 잘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왜 애완동물이 대부분 주인보다 일찍 죽는가? 주인은 애완동물이 없어도 자기를 지킬 수 있지만 애완동물은 주인이 없으면 자기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을 사랑으로 지켜주려는 사람이 생명력이 넘치고 장수한다는 암시다. 반대로 미움으로 공격하려는 사람은 생명력이 고갈되면서 장수 가능성이 줄어든다.
하나님의 어떤 신묘한 뜻이 있어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일찍 천국으로 옮겨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사랑이 넘치면 생명력도 넘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만은 늘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삶을 살고 나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를 살리는 데도 힘쓰라. 그처럼 다른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지 말고 남의 땀과 남의 몫을 가로채지 않으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 능력 있는 삶이 펼쳐진다.
4. 나누려는 마인드를 가지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영역을 존중해주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가난한 자들을 잘 돌봐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는데 사도 바울은 자기도 가난한 자를 돌보는 데 본래부터 힘썼다고 했다(10절). 예수님은 가난한 약자를 긍휼히 여기셨다. 영생의 진리를 추구하던 부자 관원 청년에게는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다(마 19:21). 그런 가르침을 따라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가난한 자를 잘 돌보라고 했고 바울도 가난한 자의 구제에 힘썼다.
삶에서 두 가지 편견을 버리라. 첫째, 부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 부자를 무조건 좋게 생각해도 안 되지만 무조건 나쁘게 생각해도 안 된다. 정당한 부는 존중되어야 한다. 둘째, 빈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 빈자를 무조건 편들어도 안 되지만 무조건 나태한 존재로 여겨도 안 된다. 바른 판단과 편견 없는 태도를 가지고 가난하지만 의의 길로 가려는 사회적 약자를 힘써 돌보라.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인 약자를 돌보는 삶이 빠지면 믿음생활과 말씀생활과 교회생활의 핵심 부분이 빠진 셈이 된다.
예수님이 꿈꾸신 세상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으로 가는 길이 먼 것 같아도 낙심하지 말라. 갈 길을 찾았다면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나누려는 마인드를 가지고 거룩한 길로 가는 사람과 늘 동행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외모나 조건을 보지 말고 가난하고 의로운 약자를 힘써 도우면서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산다면 누구나 능력 있고 감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미국의 한 가난한 청년이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학교 근처 농장에서 일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남들은 다 도시락을 꺼내 먹는데 그는 도시락을 싸올 형편이 못 되어 헛간 뒤로 가서 앉아 있기를 반복했다. 며칠 후 인부 조장이 점심 식사 시간에 큰 소리로 벌컥 화를 냈다. “이 놈의 마누라가 내가 돼진 줄 알아. 이렇게 많이 싸 주다니. 누구 내 도시락 좀 먹어 줄 사람 없어?” 청년은 귀가 솔깃해졌다. 부끄럽게 얻어먹는 것도 아니고 남는 것을 먹어주는 것이기에 당당하게 그는 조장의 남은 음식을 먹어 주었다.
그 후 거의 매일 인부 조장이 비슷한 말로 소리쳐서 청년은 아무 부담 없이 조장의 남은 음식을 먹어 주었다. 한 달 후 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그가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농장을 그만 두면서 조장 내외에게 감사 표시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넓은 농장에서 조장을 찾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경리 직원에게 조장과 조장 부인에게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해 달라고 하자 그 직원이 말했다. “조장님 부인이요? 그분은 몇 해 전에 돌아가셨어요.”
남을 도울 때는 가급적이면 도움 받는 대상의 자존심을 지켜 주면서 내가 가진 범위 내에서 힘써 도우라. 왜 주는 삶이 없이 인색하게 사는가? 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는 기쁨을 몰라서다. 없을 때의 나눔은 더 큰 감동이 되고 인생의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삶의 감동이 없는 것에 대해 핑계를 삼가라. 지금 형편에서도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을 살면 누구나 감동적으로 살 수 있다. 그런 감동과 능력이 넘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복된 미래를 예비하고 천국 생명책에 이름을 영원히 남기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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