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장 20-22절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점치는 복술자를 ‘예언자’로 오해한다. 하나님은 점치는 복술행위를 가증이 여기셔서 구약 시대에 현장에서 돌로 쳐 죽이는 3대 죄목 중 하나가 복술행위를 하는 죄였다. 요새는 “예언 받으러 간다.”는 말은 “점치러 간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어떤 사람은 그저 심심풀이로 점치러 간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큰 죄로 여기신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예언 받아도 안 믿으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거짓 예언에 이끌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신다.
어느 날 젊은 자매가 기도원에 갔는데 기도원 원장이 예언을 해주었다. “내년 봄에는 꽃이 피겠어.” 그 말을 듣고 부모는 내년 봄에 시집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4년이 지나도 시집을 못 가자 그때부터 그녀의 부모는 그 기도원 원장을 가는 곳마다 욕하고 다녔다. 그런 예언은 성경적인 예언이 아니다.
성경적인 예언은 무엇인가? 브루스(Bruce)란 유명한 신학자는 성경적인 예언을 ‘하나님의 마음을 타인에게 선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즉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은 말씀을 타인에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성경적인 예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 중에 선포되는 말씀도 일종의 예언이다.
어떤 교인은 자기를 높여주는 설교를 하면 턱이 떨어질 것처럼 “아멘!” 하지만 자기 생각과 기분에 맞지 않으면 그 말씀을 내친다. 그러나 때로는 받기 어려운 단단한 말씀도 먹을 줄 알아야 성숙해진다. 가끔 어떤 교인은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는 말씀이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 들으라는 말씀이란 의식이 강한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목회자가 기도하며 준비한 말씀은 성령님이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지고 그런 말씀을 멸시하지 말라.
< 모든 모양의 악을 버리라 >
말씀을 멸시하지 말라고 해서 아무 말씀이나 맹목적으로 받으라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했다. 먼저 범사에 잘 헤아리라.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인용해 설교해도 무조건 “아멘!” 하지는 말라. 이단들도 많고 잘못된 동기를 품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잘 헤아려서 악한 것을 가려내라. 그리고 악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악을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은 결국 선을 행하는데 힘쓰라는 말이다. 악행은 영혼의 기쁨을 빼앗는다. 악을 행하고 기분 좋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결국 악행은 남을 괴롭히는 것이면서 동시에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악행의 화살은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을 쏘게 만들어 자신을 정신적인 장애인으로 만든다.
어떻게 악을 최대한 멀리하는가? 악한 것의 목록을 많이 만들어서 그 목록에 나오는 악한 행동을 행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최대한 순종하며 살려는 자세다. 말씀을 잘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힘써 순종하라. 주어진 말씀의 감동대로 실천하며 살 때 말씀은 능력이 되고 축복의 원천이 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성령님이 가끔 어떤 일에 대한 감동을 주실 때가 있다. 그때 바로 그 일을 실천해야 악이 틈타지 않는다.
어떤 교인은 말한다. “목사님, 하긴 하겠지만 차차 할게요.” 그렇게 차차 하겠다고 하다가 나중에 “아차차!” 하고 후회할 때가 온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향유를 가지고 나타났지만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와서 향유를 부었다. 얼마나 그 의미가 다른가? 시간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곧 인생의 밤이 찾아온다. 성령님이 마음에 선한 감동을 주셔서 무엇을 할 것을 요구하면 그때 즉시 결단하라. 그렇게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사는 것이 결국 모든 모양의 악을 버리는 삶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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