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민수기 22장 1-20절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 미혹에 사로잡히지 말라 >
하나님은 종종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에게 들려주신다. 그 음성은 귀에 신비하게 진짜로 들리는 음성보다는 대개 마음속에 생각이나 깨달음으로 주어진 음성이다. 그 음성은 일상생활 중에도 주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추구해도 하나님이 특별한 음성이 주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때인가? 어떤 문제에 대해 성경에 명백한 지침이 기록된 때다. 또한 어떤 일이 명백한 의무일 때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이나 명백한 의무나 거룩한 양심에 반하는 특별한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는다.
이단 교주가 미래를 다 아는 것처럼 확언하고 자기 공동체가 선택받은 공동체처럼 확언해도 그 말이 성경이나 거룩한 상식과 배치되면 배제하라. 이단 교주는 자신이 구원을 줄 특별하고 확실한 지식을 가졌다고 선전한다. 거짓이라도 확신에 차서 말하면 독립심이 부족한 사람은 잘 믿는 경향이 있다. 즉 이단 교주가 확신 가운데 자신이 제시한 길이 구원과 복의 길이라고 단언하면 상처가 많고 삶에 지친 사람은 그 길이 죽음과 멸망에 이르는 길임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그냥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삶의 문제와 의견 피력에서는 적절한 여백과 여지를 두라.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든 것을 단정적으로 말하면서 여백과 여지를 두지 않는 태도를 경계하라. 좋은 부모는 자녀를 키울 때 절대 선으로 이끌려고 고집하기보다 때로는 방황하고 의심할 여지도 준다. 확신하며 내세워진 잘못된 교리에 미혹되면 더 위험하다. 이단 교주가 확신에 찬 말을 해도 정의와 거룩한 상식과 땀 흘림과 피 흘림을 기피하게 하면 그 말에 미혹되지 말라.
< 미혹에서 벗어나는 길 >
살다 보면 영혼을 미혹하는 수많은 음성과 상황을 맞이한다. 그런 미혹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두려움과 번민을 버리라
40년의 광야 생활이 끝날 무렵 이스라엘이 여리고 맞은편에 위치한 모압 평지에 진을 쳤다(1절). 그즈음에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자신보다 강한 아모리 남 왕국 시혼과 아모리 북 왕국 옥을 정복한 것을 보고 심한 두려움과 번민에 빠졌다(2-3절). 그때 발락은 점술가로 추정되는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스라엘 군대가 자신들의 땅을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듯이 폐허로 만들 것이라고 하소연했다(4절). 그러자 미디안 장로들은 당시 점술 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메소포타미아의 점술가 발람을 위기 극복의 해결사로 추천했을 것이다.
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진 왕이 지혜자의 말을 듣기보다 점술가를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은 무책임한 일이고 백성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왜 발락이 그런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는가? 지나친 두려움과 번민 때문이었다. 이단 교주가 영혼을 미혹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이 무엇인가? 종말 얘기, 전쟁 얘기, 귀신 얘기, 가문의 저주 얘기 등으로 영혼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한 후 자신을 의지시키는 방법이다.
영혼에 두려움이 주입되어 믿음의 기반이 흔들리면 쉽게 미혹되어 사탄이나 사탄의 종에 사로잡힐 가능성도 커진다. 나는 잘 미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라. 미혹되거나 사기에 당하는 사람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닌 대부분 멀쩡한 사람이다. 악은 의외로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누구나 광기에 사로잡힐 수 있다. 언제 그렇게 되는가? 대개 두려움과 번민에 빠질 때다. 그러므로 굳센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과 번민을 마음에서 몰아내라.
2. 돈 욕심을 버리라
두려움과 번민에 휩싸인 발락이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의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심했다(5절). 마침내 모압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전했다(7절). 그 말을 듣고 발람이 말했다.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8절).” 이 말만 보면 발람이 여호와의 선지자 같다. 그러나 그는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여호와를 내세워 영성을 과시하면서 은근히 복채를 더 뜯어내려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던 거짓 선지자였다.
발람이 참된 선지자라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말을 듣는 즉시 그들을 물리쳤을 텐데 왜 유숙시켰는가? 전후맥락을 보면 돈 욕심 때문이었다. 종교인에게는 무엇보다 돈 욕심이 없어야 한다. 돈 욕심에 사로잡히면 길과 판단력을 잃고 결말이 안 좋게 된다. 돈을 외면하지는 말라. 돈을 잘 쓰면 하나님의 일과 의미 있는 일을 잘 할 수 있다. 돈을 잘 쓰려는 목표와 사명감을 가지고 정당하게 돈을 많이 벌려고 하라. 다만 돈 욕심에 사로잡히지는 말라.
돈 욕심에 사로잡히면 미혹되기 쉽고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결국 인심을 잃고 친구를 잃고 공동체에서 점차 소외되고 나중에는 정신마저 잃는다. 반면에 돈 욕심과 인색함을 버리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드리고 나누고 베풀기에 힘쓰면 하나님이 사탄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복과 행복과 인간관계와 교회생활도 지켜 주실 것이다.
3. 저주하는 말을 버리라
모압 귀족들이 유숙했을 때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9절).”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었다.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10-11절).”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이 발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12절).”
하나님은 때로 불신자를 통해서도 진리의 말씀을 전하신다. 발람에게 주어진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성도를 저주하지 말라는 교훈과 성도를 저주하는 사람과 함께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아무리 속상한 일을 겪어도 내 입에서 저주하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라. 내 입술로 잘못된 정보나 유언비어를 함부로 전하지 말고 남을 모함하거나 시험 들게 하거나 남에게 미움과 증오를 유발시키는 연성 살인에 가담하지 말라. 하나님이 내 말을 다 듣고 계심을 기억하라.
옳고 그른 문제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서 나의 판단력이 부족함을 인정하라. 그러면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판단이 줄어드는 큰 복이 주어진다. 거짓된 중상모략에는 결코 가담하지 말라. 남의 불행을 보면 “그렇게 하니까 그런 일을 당하지.”라는 말을 삼가고 예수님처럼 말하라. “아버지, 잘 몰라서 저렇게 하는 그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의 말에 저주의 냄새가 아닌 축복의 향내가 풍기게 하라. 불의한 현실로 인한 고통이 너무 심하면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당신의 의가 속히 이 땅에 이뤄지게 하소서.”
사람은 대개 자기가 말한 대로 행복과 불행의 집을 짓는다. 말할 때 늘 겸손하게 남에게 복이 되는 말을 하라. 원수를 위해서도 복을 빌어주라. 말씀을 많이 듣고 배우고 훈련했어도 원수에게 축복의 말을 하고 그를 위해 축복 기도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성령 충만이 필요하다. 성령 충만함을 통해 혀를 잘 통제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이 내 입술에 넘치게 해서 미혹의 영을 잘 이겨내라.
4. 하나님의 말씀만 준행하라
밤에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발락의 귀족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13절).” 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전했다.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14절).” 발락은 자신의 복채를 거절하는 발람을 더 신령하게 보고 이전에 보낸 사람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냈다(15절). 그리고 발람에게 최고의 부와 권세를 약속하면서 자기에게 와서 자기를 위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했다(16-17절).
그때 발람은 발락의 신하들에게 발락이 많은 은금을 주어도 여호와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다고 했다(18절). 그렇다면 그들을 즉시 과감히 떠나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을 밤에 유숙하라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19절). 처음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면 되는데 또 다시 하나님이 새로운 말씀을 더 주실지 알아보겠다고 한 것은 결국 돈 욕심 때문이었다.
결국 그날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왜 하나님은 전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다가 다시 가라고 하셨는가? 발람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해서 가고 싶은 마음을 가졌기에 그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용납하신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잘못된 길로 고집스럽게 가는 것을 교육적인 목적으로 용납하실 때도 있다.
사람은 실수하고 실패하고 고난을 당한 후 다시 순종의 길로 들어설 때가 많다. 그러면서 깊은 깨달음을 얻기도 하지만 진짜 복된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는 삶이다. 말씀대로 힘써 살려고 할 때 내 주변 환경과 상황도 점차 바르고 복되게 펼쳐진다. 자녀 문제나 미래 문제도 너무 염려하지 말라. 진짜 염려해야 할 것은 “내가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산과 유산은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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