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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믿음으로 사는 삶

by manga0713 2021. 5. 27.

[ 베로세네 : 예수와 백부장 ]

 

 

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3장 23-29절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 믿음으로 사는 삶 >

 율법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부각시켜 주는 것이다. 본문 24절을 보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초등교사는 이전 <개역한글> 성경에는 ‘몽학선생’이라고 표현되었다. 몽학선생이란 원어 파이다고고스는 ‘어린이를 돌보는 노예 교사’란 뜻으로서 교사를 뜻하는 디다스칼로스보다는 한 차원 낮은 신분의 교사였다.

 고대에 각 가정에서 파이다고고스는 운동과 예법도 가르치고 때로는 길잡이나 보호자 역할을 했다. 바울은 율법이 예수님보다 낮은 차원의 교사임을 생생하게 인식시키려고 율법을 파이다고고스로 표현했다. 즉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그것을 지적하고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율법이다. 바울은 율법이란 초등교사를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라고 도전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어떤 삶을 뜻하는가?

1. 확신하는 삶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라(26절). 사실상 내가 누구라는 자기 신분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그 신분에 합당하게 살기 힘들다. 사람들의 궁극적인 문제는 내가 누구이고 어디로 갈 것이냐의 문제다. 그 문제에 대답을 추구하는 것이 철학이다. 그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최상의 축복으로 알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적은 다른 어떤 기적보다 가치가 있고 그 축복은 다른 어떤 축복보다 소중한 기본적인 축복이다. 그 축복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감사할 때 믿음이 견고해진다. 사실상 구원 이후의 삶은 덤의 삶이다. 구원 이후의 축복도 덤의 축복이라고 여기라. 기본적인 구원의 축복만 가지고도 최상의 감사를 드리는 삶이 진짜 복된 삶이다.

2. 은혜로운 삶

 본문 27절에 언급된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표현은 세례 받았다는 표현으로서 나는 죽고 예수님의 삶을 구현하며 살아야 한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죽음을 선포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베풀며 너그럽게 살아야 한다. 각박한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십자가의 은혜다. 십자가의 은혜가 넘치는 너그러운 삶이 믿음이 넘치는 삶이다.

 어떤 교인은 목사가 실수하면 매우 좋아한다. 비판하려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한 목사를 더 잘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고 좋아하는 것이다. 요즘 교인들은 예전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어서 목사가 너무 완벽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거부감을 가진다. 그처럼 실수를 덮어줄 줄 아는 삶이 복된 삶이다. 남이 실수하면 그 실수를 기회로 그를 깎아 내리기보다 그 실수를 나의 너그러움과 여백의 삶을 나타내는 기회로 삼으라.

3. 하나 되는 삶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기를 힘쓰라(28-29절). 하나 됨을 똑같은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하나가 되라. 또한 하나 되라는 말은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평가는 필요하다. 은행에서는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고 리더는 직원들을 평가한다. 적절한 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일로 남의 전 인격을 평가하지 말고 나의 평가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도 말라.

 때로는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도 생긴다. 심지어 부모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그때 겸손함을 잃지 말라. 겸손함을 잃고 교만하게 평가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어떻게 평가하든지간에 평가 속에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모습이 없게 하고 상대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하고 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소중한 덕목이 빠진 채 어떤 다른 축복을 얻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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