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민수기 31장 25-54절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수령들과 더불어 이 사로잡은 사람들과 짐승들을 계수하고 27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여 그 절반은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주고 28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은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의 오백분의 일을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29 곧 이를 그들의 절반에서 가져다가 여호와의 거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고 30 또 이스라엘 자손이 받은 절반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나 각종 짐승 오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라... 48 군대의 지휘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나아와서 49 모세에게 말하되 당신의 종들이 이끈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 50 우리 각 사람이 받은 바 금 패물 곧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들을 여호와께 헌금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51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그들에게서 그 금으로 만든 모든 패물을 취한즉 52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여호와께 드린 거제의 금의 도합이 만 육천칠백오십 세겔이니 53 군인들이 각기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이니라 54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천부장과 백부장들에게서 금을 취하여 회막에 드려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을 삼았더라
< 복 받은 성도의 책무 >
하나님은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만큼 축복하신다(눅 6:38). 심은 대로 거둔다. 많이 심고 그 심은 것을 금방 잊어버리라. 심은 것을 나는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펌프에 물을 붓지 않으면 펌프질이 소용없듯이 드림이 없으면 받음도 없다. 복 받고 끝나면 복도 끝나지만 복 받고 드리면 복이 계속된다. 성공과 승리의 복을 받았으면 그 복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활용하라. 복 받은 성도에게는 어떤 책무가 있는가?
1. 공평히 나누고 베풀라
본문 앞에는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정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얻은 전리품은 사람들과 짐승들과 물건들이었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전리품의 절반은 참전한 군인들에게 나눠 주고 나머지 절반은 일반 회중들에게 베풀어 주라고 하셨다(25-27절). 당시 20세 이상 싸울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약 60만 명인데 그중에 약 50분의 1인 12,000명이 참전했기에 결과적으로 참전한 군인은 보통 사람보다 전리품을 약 50배 받게 되었다. 목숨 걸고 참전한 군인에게 더 많이 나눠 주는 것은 공평한 것이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많이 심어서 많은 얻은 사람에 대해 시기하거나 불평하지 말라. 많이 심으면 많이 얻게 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다. 가끔 불평이 생기는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많이 심은 것 같은데 왜 이리 적게 거둘까?” 그러나 정말로 많이 심었다면 현재는 적게 거두어도 언젠가는 많이 거둘 것이다. 현재의 모습만 보면 이해되지 못할 일도 언젠가는 이해된다.
언젠가 믿음의 시각으로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놀라운 일을 음지에서 멋지게 펼치셨음을 깨달을 것이다. 과거의 그 순간에는 공평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늘 공평하셨다. 현재 잘못되고 낙심되는 상황으로 인해 하나님의 공평을 의심하지 말라. 지금은 의와 공평이 희미하게 보여도 언젠가 뚜렷하게 그 실체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속성을 따라 의와 공평을 이루기 위해 나누고 베푸는 삶에도 앞장서라.
2. 감사의 예물을 드리라
하나님은 참전한 군인들이 받은 전리품의 오백분의 일을 여호와의 거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게 했다(28-29절).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백성들이 받은 전리품의 오십분의 일을 성막 봉사를 하는 레위인에게 주게 했다(30절). 전리품을 참전 군인에게 나눠 주고 일반 백성에게 베풀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게 한 것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로 드리게 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감사의 제사를 기뻐하신다. 사람도 감사할 때 기쁨과 행복이 넘치게 된다. 이 세상의 어떤 일도 자기 뜻대로만 되는 일은 없고 아무리 좋은 것도 얼마 후에는 대개 사라진다. 뜨거운 교회 사랑도 3년 넘게 지속되기 힘들다. 그 다음부터는 담담하게 사랑을 펼쳐가라. 그렇게 담담하게 사랑을 펼쳐가면서도 행복과 보람을 잃지 않는 것은 평범함 속에서 감사를 찾아가며 살기 때문이다.
감사의 제사를 넘치게 드리라. 하나님의 의로운 보상과 보응을 믿고 고난 중에 너무 흔들리거나 비틀거리지 말라. 범사에 감사하며 힘써 감사의 예물을 드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천국을 확장시키라. 말과 생각으로만 감사하지 말고 몸과 물질로도 감사하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드리려고 비운 주머니는 나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 채워지는 영적인 주머니로 변하고 동시에 내적인 평안과 외적인 평화도 넘칠 것이다.
3. 새로운 승리를 꿈꾸라
당시 전리품은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을 제외하고 양 675,000마리, 소 72,000마리, 나귀 61,000마리였고 남자와 동침하지 않아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도합 32,000명이었다(32-35절). 전리품의 절반 곧 참전한 군인들이 받은 양, 소, 나귀, 사람 중 500분의 1을 여호와께 공물로 드렸는데 그 드린 것을 모세는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었다(36-41절). 또한 일반 백성들이 받은 양, 소, 나귀, 사람의 50분의 1을 취해 여호와의 장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었다(42-47절).
성경이 전리품 숫자까지 상세히 밝힌 것은 미디안과의 전쟁이 확실한 역사적 사실임을 잘 말해준다. 그 많은 전리품을 생각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전쟁 전에 사기가 크게 올랐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가나안 정복 전쟁 전에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게 하신 것은 가나안 정복 비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처럼 작은 승리에 만족하지 말고 새로운 더 큰 승리를 꿈꾸며 나아가라.
작은 승리에 만족해서 마음이 늘어지는 태만에 빠지거나 마음이 높아지는 교만에 빠지면 그 순간부터 인생길을 잃는다. 일시적인 승리에서 만족하지 말고 궁극적인 승리를 추구하라. 성공의 신기루를 쫓다 공허의 수레바퀴에 깔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 뜻을 포기할 줄도 알라. 성공을 추구하되 성공을 추구하는 목적이 영혼 구원과 세계 선교임을 잊지 말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면서 미디안의 작은 승리에 머물지 말고 가나안의 큰 승리를 지향함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예수님의 빛을 확대시키며 살라.
4. 십일조 이상을 드리라
미디안과의 전쟁 후 군대 지휘관들이 군인을 계수하자 이스라엘 군사가 한 명도 죽지 않았다(49절). 완벽한 승리에 감격해서 군대 지휘관들은 큰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신들의 죄인 된 모습이 더 깨달아지면서 속죄를 위해 여러 귀금속들을 여호와께 드렸다.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도 그 모습에 감격해서 그 금을 취해 회막에 드려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을 삼았다(54절). 그때 지휘관들이 회개하면서 하나님이 바치라고 한 것보다 자발적으로 더 바침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는 더 하나가 되고 사기가 크게 올랐을 것이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십일조 이상을 드리면 나 자신도 행복감이 넘치게 되고 내가 속한 공동체도 복을 받을 것이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마음의 회심과 정신의 회심과 지갑의 회심의 3가지 회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언젠가 사람은 자기 것을 다 빼앗길 날이 온다. 그처럼 빼앗기기 전에 먼저 드림으로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잃지 않도록 하라. 억지로 인색하게 드리면 나도 나를 응원하지 않아서 공허와 자책이 생기지만 기쁨으로 풍성하게 드리면 나도 나를 응원하면서 보람이 넘치게 되고 하나님의 복도 넘치게 된다.
가끔 누군가 내게 묻는다. “요새 물가가 치솟는데 월간새벽기도 한 권에 1,000원의 후원금을 받고 택배비도 안 받으면서 어떻게 사역이 가능한가요?” 그것이 가능한 것은 가끔 등장하는 소리 없는 후원자로 인해 매월의 마이너스 상황이 극적으로 커버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어렵게 살면서 가끔 크게 후원한다. 그를 보면 마음이 아파 때로는 역설적인 기도를 한다. “하나님! 그분에게 후원의 감동이 더 이상 안 생기게 하소서. 만약 그 감동을 계속 주시려면 복도 주소서.” 아마 하나님은 복 주는 선택을 하실 것이다.
< 십일조 생활을 체질화시키라 >
물질적인 헌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존재 자체를 전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가? 또한 그렇게 다 드리면 나는 어떻게 사는가?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의 십일조만 드려도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드린 것처럼 여겨 주시겠다는 것이 십일조의 원리에 내포된 뜻이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주신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의 뜻과 일과 교회를 위해 드리는 삶을 체질화시키라.
시간의 십일조 생활에도 충실하라. 일주일의 총 168시간 중 최소한 17시간은 말씀생활과 기도생활과 교회생활에 쓰라. 사람은 훈련된 만큼 유능해지듯이 시간의 십일조 훈련은 나를 상상 이상의 존재로 만들 것이다. 물론 일주일에 17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꼼꼼하게 시간까지 재면서 시간의 십일조 훈련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주일성수를 하고 하루의 첫 시간을 말씀과 기도로 보내면서 삶으로 예배를 드리며 생활 중에 수시로 짤막하게라도 기도하는 삶을 살면 대략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는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십자가를 지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희생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그 결심을 이루지 못했다.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십자가를 지면서 기쁨과 즐거움이 희생되기는커녕 더 넘쳤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자랑과 과시를 삼가고 교회에서 허리를 굽혀 남을 높여 주면서 쓰레기를 하나라도 주우면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된다.
하나님을 믿을 때 축복을 더 얻겠다고 안달하며 믿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은혜를 더 받겠다고 안달하며 사랑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 외에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라. 그리고 하나님과의 복된 동행을 위해 하나님께 나를 먼저 드리라. 나를 드리는 증거로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리고 더 나아가 십일조 이상을 드리라. 하나님이 내 마음에 없을 때 내가 얼마나 허무하고 무기력한 존재임을 안다면 십일조 생활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나 귀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며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내 삶에서 더 이상 임재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슬플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처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십일조 생활의 체질화를 통해 더욱 사랑거리와 감사거리가 넘치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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