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마태복음 3장 13-17절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1)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1)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1)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2)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세례 받은 자의 삶 >
본문에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는 장면이 나온다. 본문이 주는 교훈으로써 세례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예수님처럼 낮아지라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 예수님이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으로 가셨다(13절).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서였다. 왜 예수님이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는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죄 안에서 육신이 죽고 하나님 안에서 다시 새롭게 산다는 상징적인 표식으로 받으셨다.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 낮아지셨다. 성도도 그처럼 낮아져야 한다. 무속적이고 기복적인 종교는 낮아지면 손해라고 하지만 기독교는 낮아질수록 오히려 은혜를 입는다고 한다.
기도할 때 자신만 무조건 좋게 해달라는 기복적인 기도는 응답이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집 백 채를 사 놓고 집값이 오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다. 사는 집보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 부동산 가치의 폭등은 절대 다수의 은행에 내는 이자가 많아지게 한다. 그러면 은행은 부유해지고 다수가 가난해지다가 언젠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더 많은 다수가 한탄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나의 기도가 남의 눈물과 공동체의 어둠을 확대시키는 기도가 되지 않도록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저의 집값은 떨어져도 부동산이 안정을 찾아 나라 경제가 한꺼번에 추락하지 않게 하소서. 지금 위태합니다. 힘든 사람들이 더 힘들어질까 염려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며 사랑과 긍휼의 기도를 은밀히 드리는 사람이 곳곳에 있으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기도할 때 손해와 희생과 낮아짐과 죽음을 각오하고 기도하라. 그런 의로운 기도가 최선의 응답을 가져다준다. 요새 많은 사람이 믿음의 기도를 오해한다. 내용적으로는 기복적인 기도를 드리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을 믿음의 기도로 오해한다. 그런 기복적인 기도는 더 응답이 없다.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희생하는 사람의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다. 낮아지기를 각오할 때 더 높아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2.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당시 세례 요한은 백성들 사이에 몇 백 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로 여겨질 정도로 추앙받았다. 그런 그가 세례 받으려고 오신 예수님을 보는 순간 상상을 초월한 고결함과 위엄에 압도되어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왜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오시느냐고 말했다(14절). 그때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15절).”
왜 예수님은 자신이 세례 받도록 허락하라고 하셨는가? 그렇게 해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그 뜻대로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다. 성도가 모든 의를 이루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율법과 도덕 기준에 완벽하게 맞춰 살아야 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힘써 사는 삶이 모든 의를 이루는 삶이다.
예수님이 “내가 세례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의를 이루는 것이다.”라는 의미로 말씀하자 세례 요한도 어쩔 수 없이 예수님에게 세례 주는 것을 허락했다. 예수님은 물론 세례 요한도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살면 세례 요한처럼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를 잘 말해 준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가? 일상의 기도를 체질화시키라. 진실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이 점차 알아진다.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최고의 기도 응답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힘써 순종하려고 하라. 내 권리를 하나님께 드리고 내 자녀와 사업과 성격과 취미와 물질까지 하나님께 드리려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뜻이 알아진다. 그리고 그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삶에 기쁨과 평화와 행복이 넘치게 된다.
3. 성령 충만하게 살라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다(16절).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린다는 표현은 성령님이 내리는 모습이 비둘기가 내려앉는 모습이라는 해석, 성령님의 모습이 비둘기 같은 모습이라는 해석, 성령님이 내릴 때 실제로 예수님의 머리 위에 비둘기가 날고 있었다는 해석 등이 있다. 어느 해석이든지 그 표현이 도전하는 삶은 세례 받은 성도는 성령 충만하게 살아야 하고 성령 충만한 삶의 핵심 내용은 비둘기처럼 평화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삶은 율법적이고 경직된 형태의 거룩한 삶을 의미하기보다 천국 기쁨과 찬란하고 거룩한 비전과 열정이 넘치는 삶이다. 시인 워즈워드는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마음이 뛰논다고 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뛰논다. 젊음과 늙음의 차이는 나이 차이보다 오히려 비전 차이가 크다. 앞날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찬란한 비전을 향해 나아가면 젊은 것이다.
사람이 성령 충만하게 되면 어린아이처럼 꾸밈이 없고 꿈이 있게 되면서 창조성과 지혜가 넘치게 되고 생명 감수성도 넘치게 된다. 왜 사람에게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도 필요한가? 생명 감수성을 넘치게 하기 때문이다. 식물을 키우거나 동물을 기르는 것도 생명 감수성을 넘치게 한다. 여행을 통해 자연을 음미하는 것도 생명 감수성을 넘치게 한다. 그중에서 성령 충만할 때 가장 생명 감수성이 넘치게 된다. 사람은 비둘기 같이 임하는 성령 충만을 체험할 때 생명을 존중하면서 참된 행복도 얻는다.
4. 하나님의 기쁨이 되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님이 임하신 것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면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셨다는 암시다. 구약시대에 기름 부음을 받는 사람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다. 결국 예수님이 세례 받고 성령님이 임하신 장면은 예수님의 대관식 같은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인 메시야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런 영광스러운 대관식 후에 하늘로부터 이런 말씀이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17절).” 이 말씀은 세례 받은 성도에게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져야 할 말씀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군의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부소부재하신 하나님’ 등으로 불렀다. 그가 어느 날 갈라디아서 2장 끝부분을 읽다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깊이 젖으면서 밤새도록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음이 되었다. 하나님은 나의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진짜 아버지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가장 좋은 길을 허락하시며 때로 내가 잘못된 길로 가면 고난을 통해 바른 길로 이끌고 결국 복을 주신다.
사람이 처음 원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떠날 때 하나님은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이다. 그 후로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역사는 하나님의 마음에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 아픈 역사를 끝내려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의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죽음의 십자가를 지고 공생애를 끝내셨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해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라.
< 더 나은 세상을 꿈꾸라 >
인류 역사상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한 분이 있다. 바로 예수님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하늘의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많은 일을 행하시면서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소외된 사람을 제자로 삼고 낙심한 사람을 일으키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그런 일을 행하시기 전에 이미 예수님은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셨음을 본문은 가르쳐 준다.
앞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뤄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려고 하기 전에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라. 내 주변에 있는 신실한 교우도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여기고 그를 소중히 여기고 섬겨 주라. 그리고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십자가를 지라. 그러면 더욱 멋지고 복된 길이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그것이 이익이다. 나의 헌신과 사랑은 결코 헛되지 않다.
심은 대로 거둔다. 더 나아가 심은 것 이상으로 거둔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라. 주일에 교회에서 영적인 짧고 깊은 스킨십을 끝낸 후에는 주중에 세상으로 나아가 세계를 지향하며 최선의 땀을 흘려 하나님의 기쁨이 되라. 비록 내일이 불투명해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의롭게 심판하시고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을 기억하셔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믿고 열심히 선의 씨앗을 뿌려서 좋은 열매를 맺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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