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사무엘하 18장 1-8절
1 이에 다윗이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찾아가서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들 위에 세우고 2 다윗이 그의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휘하에 넘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니 3 백성들이 이르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읍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하니라 4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왕이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6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7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하매 그 날 그 곳에서 전사자가 많아 이만 명에 이르렀고 8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 거짓말을 힘써 삼가라 >
요새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이단 관련 다큐멘터리가 한국 사회에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단 교주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똑똑하고 멀쩡한 사람이 미혹되느냐고 어이없어 한다. 그만큼 인간은 본질적으로 연약하다. 그래서 한 쪽 말만 계속 들으면 세뇌되어 그 말을 무조건 진짜라고 믿기 쉽다. 그래서 이단 교주가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 다른 곳을 바라보지 못하게 장벽을 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이단 교주의 거짓말에 사로잡혀 영혼이 농락당하는 일이다.
이단 교주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농락당하는 또 다른 이유는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교주의 성경 왜곡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한국에 유난히 이단 교주가 많이 생기는 이유는 ‘모략, 모사’라는 성경 표현을 왜곡해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좋은 의미로 사용된 모사는 ‘충고자, 상담가, 지략가’의 뜻이지 ‘모략꾼, 계략꾼, 거짓말쟁이’의 뜻이 아니다.
이단 교주가 특히 많이 이용하는 성경 구절인 이사야 11장 2절에서 <개역한글> 성경은 여호와의 신을 ‘모략과 재능의 신’이라고 표현했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여호와의 영을 ‘모략과 재능의 영’이라고 거의 똑같게 표현했다.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쉽다. 결국 성경에 나오는 ‘모사, 모략’이란 표현을 내세워 이단 교주는 영혼을 구하려는 선한 목적을 가지면 거짓말을 해도 좋다고 추종자들을 세뇌하고 심지어는 기존 교회에 침투해 거짓말과 속임수로 교인들을 빼내가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죄의식을 못 느끼는 것이다.
종교적인 거짓말은 가장 사악한 거짓말이다. “거짓말로 복음을 전파한다.”라는 형용 모순적인 표현을 앞세워 아무런 죄의식 없이 거짓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 거짓말로 영혼을 훔치는 사기에 넘어가면 인생 전체가 도둑맞는다. 사람이 완벽하게 진실할 수 없지만 참된 성도는 거짓말을 힘써 멀리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해야 한다.
거짓말을 의도적이고 상습적으로 하면서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받는다는 거짓 교리에 넘어가지 말라. 뻔한 거짓말에도 의문을 가질 줄 모르는 맹목적인 신념은 악이다. 믿음은 맹목적인 신념이 아니다. 잘 믿으면서도 잘 성찰하라. 거짓 계시와 거짓 선택과 거짓 영성에 넘어가 이성과 경험을 무시하지 말라. 참된 종교는 이성과 경험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성과 경험을 무시하라고 하지 않는다. 말씀의 기반 위에 이성과 경험도 사용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그 뜻을 욕심 없이 겸손하게 수행하는 삶이 참된 성도의 삶이다.
이단 교주는 근거 없는 심리적인 승리에 취한 집단 연극배우들의 감독과 같다. 그러므로 집단 지성을 잃고 집단 극화에 빠지지 않도록 나 자신만이라도 깨어 있어서 말씀과 진리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라. 거짓을 앞세운 승리는 최대한 삼가라. 살다 보면 크고 작은 패배 상황이 수시로 생긴다. 승리했다가 곧 바로 패배의 나락으로 얼마든지 떨어질 수 있기에 승리가 일시적인 승리가 아닌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승리가 되도록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 승리의 은혜를 입는 길 >
본문에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왕궁에서 쫓겨나 급히 요단 동편의 마하나임으로 피신했던 다윗이 거기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이 주는 교훈으로서 승리의 은혜를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함께하는 마음을 가지라
다윗이 피신할 때 함께했던 사람들은 다윗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진짜 친구들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다윗은 새로운 힘과 용기가 생겨났을 것이다. 목사들은 개척 때나 힘들 때 자신과 함께해 주는 성도들을 보면 고맙고 힘이 나고 그때 헌신한 성도들은 평생 잊지 못한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때 다윗은 함께한 백성을 찾아가 조직 정비를 위해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들 위에 세웠다(1절). 그처럼 조직적인 전시 체제를 구축한 후 백성을 전장에 내보낼 때 3분의 1은 요압의 휘하에 두고 3분의 1은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의 휘하에 넘기고 3분의 1은 잇대의 휘하에 넘겼다(2절). 그리고 자신도 전쟁터에 함께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윗의 그 말은 백성들의 사기를 크게 높여서 결국 반역을 진압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 말씀하셨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많은 숫자보다 함께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함께할 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선한 목적을 가진 창조적이고 전략적인 고독은 필요하지만 의미 없는 고독은 피하라. 즉 전략적으로 사람을 멀리할 때 외에는 왕따가 되지 않도록 나의 기분만 생각하거나 나의 뜻과 원칙만 고집하지 말고 섬김과 봉사에 힘쓰면서 자기 성찰과 회개에 탁월한 존재가 되라.
혼자 살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사람은 더욱 그렇기에 하나님은 만남을 허락하셨다. 내가 누구를 만나든지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라고 붙여주신 것이다. 왜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는가? 혼자 지내며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의 뿌리가 얽히지 않으면 성공해도 조만간 쓰러진다. 남을 행복하게 해야 나도 행복해진다. 그처럼 하나님이 붙여 주신 사람과 함께하려고 해야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기도도 능력 있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도 넘치게 될 것이다.
2. 사명감과 전략을 갖추라
다윗 왕이 전쟁터에 함께 나가겠다니까 백성들이 사기가 오르면서 오히려 왕을 아끼는 마음으로 말했다.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하거나 절반이나 죽어도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것입니다.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읍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십시오(3절).” 그때 다윗도 감동하고 군사들도 감동하면서 “이 한 몸을 바쳐서라도 반란군을 반드시 토벌하리라.”라고 다짐했을 것이다.
결국 다윗은 백성들의 요청을 수용해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마하나임 성문 곁에 서서 백성들이 백 명씩 천 명씩 편대를 짓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4절). 그때 사기가 충천한 백성들을 보면서 다윗은 전쟁의 승리를 직감하고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백성들이 다 듣는 상황에서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라고 부탁했다(5절). 아버지를 죽이려는 패륜적인 아들을 철없게 여기고 살려 주려는 다윗의 모습만 봐도 그 전쟁은 다윗 군대의 승리가 예고된 전쟁이었다.
마침내 다윗 군대가 이스라엘 반군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반군들을 패퇴시키자 그날 그곳에서 전사자가 이만 명에 이르렀고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기에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다(6-8절). 그때 다윗 군대가 숫자와 전력이 월등했던 압살롬 반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앞세워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사명감과 용기와 사기도 중요하지만 조직력과 전략도 필요하다. 기도할 때는 용기와 함께 전략도 달라고 기도하라. 무작정 기도만 하지 말라. 계획과 전략도 없이 무조건 “믿습니다.”라고 소리치고 나갔다가 패배의 나락에 빠져 믿음을 의심하는 모습이 없게 하라. 아무런 전략이 없이 나가서 거룩한 꿈이 한여름 밤의 허무한 꿈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지혜를 발휘하라.
3. 사랑을 해결책으로 삼으라
당시 다윗 왕과 백성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은 군사력의 열세를 딛고 승리하는 기반이 되었다.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반역을 했지만 아버지 다윗은 그런 압살롬에 대해 군장들에게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고 부탁했다. 그런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역사와 환경을 움직인다. 사랑은 문제의 최대 해결책이고 인생 승리와 인생 역전의 최대 발판이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은 이성과 이상을 짓밟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으로서 남에게는 환상적인 오락 게임이지만 내게는 무서운 현실이다. 내가 전쟁의 당사자가 되고 내 가족과 친구가 전쟁 피해자라면 전쟁은 피맺힌 절규를 낳는다. 전쟁은 대개 애국심의 이름으로 치러지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이란 고급 오락에서 인간 영혼은 장기판의 말처럼 무의미해진다. 전쟁은 일부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희망을 무섭게 약탈해 가는 것이다.
호전적인 정치인이 자신의 수많은 거짓이 진짜임을 증명하려고 수많은 사람을 전쟁으로 내모는 시도를 막고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공포 마케팅을 하며 증오심을 유발하는 모습을 경계하라. 그것을 위해 나 자신부터 호전적인 마음과 미움을 버리라. 인생 전선을 이상 없이 지키려면 각종 편견을 버리고 사랑을 다짐하고 실천하라.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상대편을 무찔러야 할 적으로 보는 태도도 버리라.
서로에게 총을 쏘려고 하지 말고 전쟁과 미움을 향해 총을 쏘려고 하라. 인간을 찌르는 칼을 버리고 찢어진 인간성을 감싸주는 붕대를 손에 쥐라. 모든 사람을 사랑 대상으로 삼고 심지어는 악인도 ‘더 사랑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라. 쉽지 않아도 그런 마음을 잃지 말아야 인생 전선과 축복 전선에 이상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성도답게 사랑의 실천에 앞장서서 가족과 이웃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나를 실망시키는 사람에게도 너그럽게 대함으로 참된 승리를 예비하며 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기억하고 싶은 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족을 얻기 Catching Contentment (0) | 2023.03.20 |
---|---|
모든 막대기는 2개의 끝을 가지고 있다 (0) | 2023.03.20 |
형제 사울 Brother Saul (0) | 2023.03.19 |
쓸모없는 것은 없다 (1) | 2023.03.19 |
죄를 솎아내기 Weeding Out Sins (0) | 2023.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