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다니엘 3장 28-30절
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원에 금 신상을 세우고 절하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다 그 신상에 절했지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단호한 믿음을 보고 분노한 느부갓네살은 풀무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여 그들을 풀무불에 던졌지만 그들은 타 죽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이 자세히 보니 신들의 아들과 같은 한 사람과 함께 세 친구들이 풀무 가운데에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불 속으로부터 불러내 살려주고 하나님을 찬양했다(28-29절). 결국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였다(30절).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면 하나님은 더욱 높여 주신다. 때로 어려움이 다가와도 낙심하지 말라.
갈라디아서 6장 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성도는 절대절망에서도 절대희망을 얘기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떳떳하게 살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건져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 있게 살면 사는 방식이 달라진다.
성도는 부러워할 것도 없고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성도가 이 땅에서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 안에서 얻은 놀라운 것에서 한 눈을 팔고 잠시 눈이 어두워진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나는 예수 믿는 것 한가지로 족하다.”라는 고백을 하면서 주어진 길을 끝까지 제 코스로 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위대한 사람이다. 십자가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십자가를 지면 반드시 부활의 은총이 있다.
< 절대 신앙을 가지라 >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절대 신앙을 가지라. 신앙을 논쟁거리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확신하면 “저는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논쟁을 끝내라.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면 토론이 필요 없다. 상대적 가치가 아닌 절대적 가치 문제에서는 더욱 그런 단호함을 갖추라. 논쟁을 통해서는 얻을 수 있는 유익도 없고 전도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때때로 하나님이 큰 시련을 허락하고 “노(No)!”라고 하실 때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
대학에서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한 한 자매가 있었다. 그녀는 자동차 사고로 중화상을 입고 겨우 살아나 이런 글을 썼다. “저는 짧아진 8개 손가락으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남은 엄지손가락을 통해 글을 쓰고 생활하면서 엄지손가락을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눈썹이 없어지니까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막대기 같이 된 오른팔을 쓰며 팔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망가진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내 작은 고통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100만분의 1이라도 알게 되었고 비천하고 초라한 사람의 기분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 고통이 아니었다면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라고 하지만 ‘네. 이러고도 행복하게 삽니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건져내시겠고”라고 하는 믿음만 강조하면 기복주의가 된다. 하나님이 건져내주신다는 믿음과 함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라. 복되게 살려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 보자.”라는 신념의 고백도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는 절대 믿음의 고백이 더욱 필요하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할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절대 은혜와 절대 기적도 따라온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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