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에스겔 17장 11-24절
... 18 그가 이미 손을 내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20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 21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22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23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24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 천국 세상을 만드는 길 >
자세히 보면 시체에도 표정도 있다. 어떤 시체는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있지만 어떤 시체는 얼굴이 화난 표정이다. 그 얼굴 표정에 천국의 삶과 지옥의 삶이 어느 정도 그려져 있다. 천국이 약속된 사람은 죽을 때도 평안하다. 천국에 갈 때를 잘 준비하라. 그러나 그 전에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라. 어떻게 해야 세상을 천국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가?
1.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은 종종 난해한 수수께끼와 비유로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은 1-10절의 비유를 11-21절에서 해석해 주셨다. 그 해석에 의하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야긴 왕과 고관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어갔다(11-12절). 또한 택한 왕족 중 하나인 시드기야에게 언약을 세우고 충성 맹세를 시킨 후 왕으로 세우고 반역을 꾀하지 못하도록 고관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갔는데 시드기야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해서 느부갓네살을 배반했다(13-15절).
당시 하나님의 뜻은 유다가 잠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었는데 시드기야가 애굽을 의지하려다가 결국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가 거기서 죽을 것이라고 했다(16절). 그때 유다가 어떻게 패망하는가? 바벨론 군대가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워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원병으로 온 애굽 군대가 철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17절, 왕하 25:1-7). 결국 유다 패망의 핵심 원인은 시드기야가 애굽을 의지하며 느부갓네살과 한 충성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었다(18절).
애굽을 의지하는 삶은 사람을 의지하는 삶을 상징한다. 사람을 의지하면 결국 실패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하나님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주시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주시고 필요한 동역자도 붙여 주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만 의지하면 내게서 누군가가 떠날 때 축복하며 보낼 수 있다. 아직 할 일이 많고 일꾼이 적은 상황에서 믿음직한 사람이 떠나면 싫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상황도 기꺼이 받아들이라.
왜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는가? 애굽의 가치관을 가지고 잘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잘 사는 것을 소유가 많고 능력과 권세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 말라. 진짜 잘 사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극복하고 육신적인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다. 자신을 극복하고 천국 가치관을 따라 살면 어떤 부족한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다 허락하신 상황이다. 현재의 부족함만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라. 때가 되면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복을 많이 찾아서 쓰게 하실 것이다.
2. 사람과의 언약을 지키라
당시 하나님은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에게 한 충성 맹세를 하나님께 한 충성 맹세와 동일시하셨다(19절). 아마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에게 충성 맹세를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과 한 맹세와 언약을 깨뜨림으로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수많은 백성은 죽거나 사방으로 흩어졌다(20-21절). 그 사실은 사람과의 언약을 하나님과의 언약처럼 중시하라는 암시다.
어떤 목사는 거부 성도가 은혜를 받아 교회에 등록하려고 하면 오히려 말린다. 거부가 교회에 등록하면 재정적인 도움이 되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하는가? 그 성도가 등록하려는 것이 순간적인 뜨거운 감정에 의해 등록하려는 것인지를 테스트하면서 동시에 그의 겸손한 태도를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그런 연성 관문을 두어야 등록하고도 겸손하게 교회생활을 복되게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등록은 쉽게 할 것이 아니라 어느 언약보다 더 중시해야 할 언약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거부가 싫어서 말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부의 영혼을 소중히 여겨서 그 영혼이 진심으로 잘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기 교회에 등록한다는데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는가? 그래도 교회 등록이 언약적인 의미를 가진 진중한 일임을 인식시키려고 처음에 가급적이면 등록을 말리고 더 나아가 거부는 더 말리는 것이다. 왜 거부의 교회 등록을 더 말리는가? 거부가 언약의 의미대로 교회 생활을 책임적으로 하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48절에서 말씀하셨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그 말씀대로라면 많은 물질을 받았다면 많이 드려야 한다. 그래서 많이 버는 자가 그 많은 십일조를 드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한 교회에 등록하며 교회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거부 성도에게는 교회 등록을 더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말리는 것이다. 엄청난 십일조를 감당할 온전한 믿음을 가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식 상장으로 1조 원을 번 사람이 1000억 원을 십일조로 선뜻 드리겠는가? 신실한 성도조차 순수하게 드리는 대신 재단을 만들어 자신이 주도적으로 쓰려고 할 것이다. 그처럼 거부의 순결한 헌신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마 19:24).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책임적으로 언약을 지키는 기적적인 믿음을 가진 부자가 간혹 있다. 그런 사람을 통해 거룩한 비전은 멋지게 이뤄질 것이다.
2주 전에 한 성도가 주중에 찾아와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영어판> 발행에 얼마나 비용이 드느냐고 물었다. 그동안 <월새기>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월새기 영어판> 비전을 위해 기도하다가 사업이 잘 풀리자 돕고 싶은 감동이 생겨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쉽게 약속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비용은 말하지 않고 그냥 기도만 해 달라고 잘 말해서 보냈다. 그의 마음을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받았지만 약속을 쉽게 하지 말고 더 신중히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그냥 보낸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약속을 했다가 그 약속을 못 지키면 약속을 못 지키는 얘기를 하도록 만든 자신도 책임이 있다. 리더는 팔로워가 지킬만한 약속을 하도록 잘 이끌어야 한다. 누군가가 거창한 약속을 하면 약속이 앞서지 않도록 그냥 기도만 해 달라고 하라. 거창한 약속으로 희망을 주었다가 실망하게 만드는 것은 언약을 경시하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에게 속으로 약속하고 때가 되어 약속을 말없이 실천하는 모습이 복된 모습이다.
필자는 <월새기 영어판> 비전이 하나님의 때에 은혜롭고 자연스럽게 이뤄지길 원한다. 그 하나님의 때가 1년 후나 10년 후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필자의 사후가 될 수도 있다. 필자가 그 비전을 이루지 못하면 필자의 제자나 후대가 더 멋지게 이루면 된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공명심이 없이 마음속의 신중한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는 손길을 통해 <월새기 영어판> 비전은 이뤄질 것이다. 그처럼 사람과의 약속도 하나님과의 약속처럼 잘 지키려는 사람을 통해 천국 세상은 멋지게 이뤄질 것이다.
3.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본문 23절에서 각종 새가 아름다운 백향목 아래에 깃들이고 그 가지 그늘에 산다는 말은 언젠가 메시야가 통치하실 때 모든 성도를 차별 없이 보호해 주실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을 소중히 여기신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앞날을 선택하게 하신 것으로서 사람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 표식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존중하신다면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말라. 더 나아가 약자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기억하고 혹시 그가 예수님의 화신이 아닌지를 생각하고 대하라.
어느 날 한 사람이 일에 몰두하는데 거지가 와서 구걸하자 자기도 모르게 귀찮다는 듯이 그를 쫓아냈다. 거지가 돌아서서 나갔다. 그 나가는 뒷모습을 언뜻 보는데 예수님의 뒷모습 같았다. 그는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지갑을 챙긴 후 뒤따라 나갔지만 거지가 어느새 사라졌다. 주변을 샅샅이 살펴봐도 거지의 흔적이 없었다. 그때 그가 생각했다. “내가 사람을 차별적인 마음으로 너무 가볍게 대했구나.” 그때부터 그는 힘없는 약자도 혹시 예수님의 화신이 아닌지를 생각하면서 존중심을 가지고 대했다.
차별 받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내라.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말라. 사람의 어떤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도 사람 자체를 경시하지는 말라. 특히 굴욕적이고 차별적인 말로 무형의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 무엇인가가 있거나 많이 가졌다고 해서 영혼과 정신의 계급이 높은 줄 여기지 말라. 천국에서는 겸손한 사람이 진짜 계급이 높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낮추고 겸손한 사람은 높이며 있는 사람은 없게 하고 없는 사람은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24절)
얼마 전에 고급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서민 아파트 단지 아이들이 와서 놀지 못하게 아파트 입구를 막았다는 기사가 났었다. 그것은 저주스러운 행동이다. 잠언 17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차별하는 마음이 없어야 형벌도 줄어든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점차 이 땅에 천국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 천국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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