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시편 42편 6-8절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 인간의 고귀한 가치 >
필자는 34살에 첫째 딸을 얻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이름을 ‘은혜’라고 지었고 2년 후 얻은 둘째 딸은 성경에서 가장 예쁜 이름이라고 여긴 ‘한나’라고 지었다. 필자에게 두 딸은 천하보다 귀해서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두 딸의 손가락 하나도 잘라줄 수 없다. 더 나아가 필자에게 “두 딸은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표현으로도 성이 차지 않고 “두 딸은 내 생명보다 귀하다.”라고 여기고 있다.
모든 정상적인 부모는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마음은 그래도 실제로 사람은 그렇게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길 만큼 사랑하셨다. 더 나아가 “너는 내 생명보다 귀하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죄로 인해 죽게 된 나를 온전히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 즉 하나님은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기에 나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주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내어 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창조하셨기에 사람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천하에는 없다. 하나님은 ‘영혼’이란 잔을 너무 크게 만드셨기에 천하를 다 얻을 수도 없지만 다 얻어서 영혼의 잔에 넣어도 그 잔을 채울 수 없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전 1:7).”
솔로몬에게 물이 바다로 흘러들듯이 부귀영화가 흘러들어 왔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영혼은 채워지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영혼의 바다를 채울 수 없다. 하나님이 영혼의 용량을 천하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물질로 영혼을 채우려는 일이다.
< 하나님을 깊이 만나라 >
어떻게 거대한 용량을 가진 영혼의 바다를 만족시키는가? 시인은 고백했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7절).” 고라 자손이었던 시인은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는 고백을 통해 독자들에게 두개의 깊은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영혼이란 깊은 바다’와 ‘하나님이란 깊은 바다’이다.
‘하나님의 바다’는 끊임없는 사랑으로 ‘영혼의 바다’를 찾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한 영혼의 구원을 그토록 기뻐하신다. 또한 ‘영혼의 바다’도 끊임없는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바다’를 찾는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왜 영혼이 그토록 하나님을 찾는가?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에 행복을 주는 절대 조건은 하나님밖에 없다. 환경과 처지가 어떻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행복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불행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체득했던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왜 부족함이 없었겠는가? 다윗에게도 부족한 것이 많았다. 그러나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런 행복한 고백이 내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행복이란 많이 가진 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부자들은 그 진리를 잘 안다. 부자들이 그 사실을 잘 아는 것은 부자 체험을 해봤기에 깨닫는 특권이다. 그처럼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지혜로운 부자들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라. 행복의 파랑새는 부자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물질은 행복을 위한 최저의 가능성을 제공할 뿐이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을 깊이 만날 때 주어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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