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엄마!'라고 소리쳐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임종의 순간에 말이란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엄마에 대한 내 부채감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텐데…..
그렇게 엄마를 떠나 보낸 한 여인에게, 슬픔이 세월에 덮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한 여인이 슬픔 속으로 찾아 듭니다.
어쩌면 살아가야 하는 산 사람으로서의 삶이 부담스러웠을 그 여인에겐 또 다른 한 여인에 대한 의문에 뛰어 드는 것이 엄마에 대한 부채감의 해소였을지도 모릅니다.
하나씩 풀려가는 관계의 고리, 엄마와 딸과 아빠의 여인.
이 고리 속 여인들의 이야기를 숨가쁘게 따라가는 동안 영화 '미친 흑인 여자의 다이어리 Diary of Mad Black Woman' 중의 대사가 떠 올랐습니다.
"신은 여자를 살아 남게 만드셨다."
엄마는 기만적인 겉모습뿐인 남편과 살았습니다. 그는 '책임' 이라는 책무에만 충실하다 아이 둘 만 남기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신이 살아 남게 만드신 엄마는 "이겨내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 을 아이 둘과 함께 살아냈습니다.
아빠의 여인, 그녀의 삶은 전업 방랑자와 같았습니다. 그녀도 '책임' 과 '사랑' 의 외줄 공연자인 아빠를 사랑했습니다. 머리와 심장을 화해 시키느라 굴곡진 나날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아빠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떤 중독보다도 더 쌘, 사랑의 교차점에 딸이 서 있습니다.
그녀의 삶도 그리 밝지 않습니다. 사랑했었던 남편을 떠나 보내고 사랑했었던 날들의 열매인 사랑하는 아들과 남아 있습니다.
"신은 여자를 살아 남게 만드셨다."
신께서 엄마를 살아 남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께서 아빠의 여인을 살아 남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께서 살아가게 하실 딸의 삶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천재 이야기꾼답게 작가는 여인들의 입을 통하여 독자들의 길을 인도합니다. 여인들의 사랑을 통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바라보게 합니다. 여인들의 살아 냄을 통하여 사랑은 지켜냄 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인 것이지요.
다음은 이 책의 밑줄 친 부분 입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이 우울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사람들은 망자의 관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속으로 언젠가 거기에 누울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게 될 것이다. 장례식은 산 사람들의 의식이다. 사람들은 망자를 위해 우는 게 아니라 언젠가 그렇게 될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에 우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부모는 자식의 생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자식은 결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공통적으로 남기는 유산이다. 부모는 어디에 있건 결코 자식의 손을 놓지 않는다.
마음만 있었던 것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거야.
'사랑해요, 엄마!'라고 소리쳐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임종의 순간에 말이란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엄마에 대한 내 부채감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텐데…..
작고 커다란 슬픔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게 바로 인생이 되는 것이지. 사람들은 그 모든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거야. 생에서 슬픔은 필수적이야. 슬픔이 우리에게 생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지. 신이 술을 인간에게 부여해준 건 생의 필연적인 비극성 때문일지도 몰라.
누구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좋은 직업을 갖고,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만족스런 여가를 즐기고자 한다. 온갖 잡지에는 맞춤형 인생을 만들어가는 거짓 전략들이 무수히 넘쳐난다. 그러나 현실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있다. 다만 가능성을 주도적으로 개척할 경우에만 그랬다.
우는 게 정답은 아니란다. 우는 건 자기 연민일 뿐이지. 자기 연민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해.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 가져다 준 상실감의 요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틈새를 메울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
누구나 사랑을 하면 열다섯 살로 돌아가지. 그런 까닭에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근사하면서도 위험한 일이야. 근사하다는 건 사람에게 사랑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위험하다는 건 사랑에 눈이 멀 경우 엄청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 수도 있다는 뜻이야.
한두 번 정도, 사랑에 빠지면 처음에는 마냥 황홀한 느낌이지만 사랑의 행로란 마음먹은 대로 펼쳐지지 않아. 사랑에 모든 희망을 거는 순간 위험해지게 되지. 사랑 때문에 가슴을 베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머리와 심장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까?
감성은 살리되 감상적인 부분은 없어야 한다.
처음에는 사랑이 나를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 기대했다. 사랑이 내 불완전한 면을 보완해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아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아픔을 들춰내고 들쑤시는 경험일 뿐이었다. 사랑은 온갖 감정의 모순들로 가득 찬 허구의 세계일 뿐이다.
나는 사랑이 내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보완해주길 기대했지만 결국 나와 상대 모두에게서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나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 인간은 원래부터 모순이 많은 존재라는 걸 간과했다. 진작 인간에게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많다는 걸 감안했더라면 이토록 상처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런 끔찍한 충격을 다 이겨내며 살았죠?"
"서서히 회복했어요. 이겨내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분노는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선택은 우리를 정의합니다. 선택은 우리의 진면목 - 우리의 열망, 두려움, 윤리적 기질 - 을 대면하게 합니다.
전업 방랑자
사람들은 비극을 두려워하며 산다. 비극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비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비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성벽을 쌓으며 평생을 보낸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비극의 침입을 막아낼 수는 없다. 비극은 뚜렷한 목표도 없고, 우발적이며, 무차별적이다. 비극이 밀어닥치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는다. 왜 자신이 끔찍한 비극을 겪어야만 하는지 따져본다. 비극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인생에는 대면하기 싫은 일들이 있다. 진실을 목도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지독히 분명한 상황으로 치닫는 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모르핀 주입기를 열었다. 열흘이 지나가면 이 침대에서 일어나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다만 그 순간까지는 모르핀이 가져다 주는 현실 부정 상태에 빠져 지내고 싶었다.
아무런 욕망이 없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구속 받을 일이 없었다.
아이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 사실은 어른이 되어도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우리의 삶에서 그 어떤 것도 마음먹은 대로 잘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대개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주변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때마다 다시 시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다시 시도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도전은 하루하루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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