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민수기 23장 1-30절
1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2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27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28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에 이르니 29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제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30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행하여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 발람의 제사가 주는 교훈 >
민수기 23장에는 모압 왕 발락에 의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초청된 발람의 제사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계산적인 예배를 주의하라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이 오자 잔치를 벌여 대접했다. 다음 날 아침에 발락이 발람을 인도해 바알의 산당에 오르자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의 진 끝까지 보고 제사를 준비시켰다(1절). 그리고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제물을 드렸다. 그때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셔서 발람이 말했다.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4절).” 발람은 제물을 드린 것을 과시하며 내세웠다. 제물로 하나님을 움직여 보겠다는 계산적인 마음이 있었다는 암시다.
계산적인 예배를 주의하라. 계산적인 마음을 잘 극복하려면 평소에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을 힘써 훈련하라. 좋은 일을 할 때 무엇을 얻겠다는 마음으로 하지 말라. 복을 많이 받으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기에 복을 구하되 복을 많이 받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앞세우라. 그래야 기복주의의 빠지지 않는다.
받기보다 주기를 힘쓰면 바보처럼 퍼준다는 소리도 듣고 계산적인 사람은 그를 속칭 호구처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잘 나누는 삶은 사람 생각으로는 호구의 길로 가는 삶 같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호박을 넝쿨째 얻는 길로 가는 삶이다. 바르고 지혜롭게 주는 삶에는 결코 손해가 없다. 드릴 때는 더 얻으려는 계산적인 마음으로 드리기보다 순수하게 드리라. 그때 하나님이 그가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
2. 바른 말씀을 왜곡하지 말라
발람이 제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해 말하자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발락에게 그 예언을 전하며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칭송했다. 발락이 “원수를 저주하라고 데려왔는데 오히려 축복했다.”라고 항의하자 발람이 대답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방인 점술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으려고 했다. 성도는 더 말씀을 왜곡하면 안 된다.
사람의 말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왜곡된 말이 남을 죽이고 남의 상처와 아픔을 깊게 한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고 왜곡된 말을 하기도 하고 왜곡된 말에 당하기도 한다. 나중에 왜곡 사실이 밝혀져도 이미 당한 사람은 회복이 힘든 큰 피해를 입은 상태가 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왜곡된 정보로 영혼과 인생이 농락당하지 않도록 지혜와 지식과 침착함과 담대함과 밸런스를 갖추라.
사회에서는 왜곡된 정보로 사람을 음해하지만 사탄은 바른 말씀을 교묘히 왜곡해 영혼을 속박한다. 남의 영혼을 속박하고 싶은 본능에 이끌려 말이나 말씀을 왜곡하지 말고 나 자신도 왜곡된 말씀에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특히 상처와 불안이 심한 영혼은 왜곡된 말씀에 더 잘 미혹되기에 평소에 균형 잡힌 말씀을 많이 접하고 왜곡과 음해를 일삼는 사람을 멀리하며 바른 말씀으로 상처와 불안을 잘 극복하라.
3. 보이는 것에 좌우되지 말라
발락은 발람이 이스라엘 진영의 웅대한 모습을 보고서 저주보다 칭송을 한 것으로 여기고 이스라엘의 끝만 보이는 소빔 들로 이끌어서 이스라엘을 작게 보이게 한 후 거기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했다(13-14절). 발락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한 시각 효과로 발람의 저주를 유도하려고 했다. 사탄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영혼을 미혹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에 좌우되지 말고 내면을 보는 능력을 키우라.
눈앞의 것만 보면 균형 잡힌 시각을 잃고 장점보다 단점을 보기 쉽지만 멀리 보면 단점이 잘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랜드캐니언을 멀리서 보면 웅장하게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땅이다. 행복을 원하면 근시안적인 사고를 버리고 보이는 환경에 좌우되지 말라. 또한 내가 선 자리를 사명의 자리로 여기고 현실은 어려워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으로 살라.
보이는 것에 좌우되지 않도록 초라한 것이나 초라하게 보이는 사람을 경시하지 말라. 가까이 있는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주로 보라. 그리고 단점은 극복하도록 돕고 장점은 발휘하도록 도우면서 미래의 복된 날까지 기다려 주라.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전13:7). 보이는 것에 좌우되지 말고 보이는 것을 주관하며 살라.
4.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라
소빔 들에서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하나님은 약속대로 실행하시는 진실하고 변함없으신 분이란 뜻이다. 또한 신실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고 끝까지 함께 계신다는 예언도 전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부족한 사람의 핵심 갑옷이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 때 사람 취급도 못 받던 포졸, 갖바치, 백정 같은 천민들이 교회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때 교회는 천민을 장로로 세우는 파격도 감행했다. 신실하게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을 최고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었고 그렇게 신실하게 하나님과 교회를 섬긴 자의 후손은 나중에 큰 복을 받았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섬기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은 죄와 허물이 많은 나를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지금까지 업어 날라 주셨다. 나는 신실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셨고 나는 하나님을 잘 믿지 못했어도 하나님은 나를 믿어 주셨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복된 인생길의 길양식이다. 나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께 나를 온전히 맡기면 하나님은 나의 짐을 맡아 주시고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뤄 주실 것이다.
5. 점술과 복술을 멀리하라
계속해서 발람이 예언했다.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23절).” 점술은 비상식적인 상황 분석으로 점치는 것이고 복술은 비상식적인 거짓 계시로 점치는 것이다. 그런 점술이나 복술로 하나님이 크신 은혜로 지켜주신 이스라엘 백성을 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도가 가장 멀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점이다. 하나님이 펼쳐 가실 미래를 사람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점은 맞지 않지만 성도에게는 더 맞지 않다.
점치는 사람이 자기 문제를 가지고 무당을 찾아와 무당 앞에서 한숨을 쉬면 무당이 묻는다. “왜 그래? 안 좋은 일이 있어?” 그때 한숨을 푹푹 쉬면서 자기 얘기를 하면 무당이 쯧쯧쯧 하면서 알쏭달쏭한 말을 한다. “숨겨놓은 게 있어. 동쪽이야, 동쪽.” 그때부터 사소한 것도 동쪽과 연관시켜 생각하면서 영혼이 점차 약해지고 중독된다. 그런 점과 거짓 예언의 가스라이팅 속성을 알기에 선한 목자는 자기를 의지하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시킨다.
교인이 예언과 위로를 받으려고 목사를 찾으면 목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의존적인 헛된 믿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자신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러나 돈과 영혼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있는 교주는 자신의 영성과 은사를 과시하며 자신을 더 찾고 의지하게 만든다. 아무리 위대하게 보여도 사람을 의지하는 순간 망하는 길로 들어선다. 선한 목자가 가리키는 하나님과 성경을 보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기도해야 반전의 역사가 나타난다.
6. 불신적인 긍정주의를 멀리하라
발람이 이스라엘을 계속 축복했어도 발락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로 또 말했다.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27절).” 발락은 자신의 끈질긴 노력과 정성으로 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모습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라는 불신적인 신념과 불신적인 긍정주의다.
신념과 신앙은 다른 것이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라는 신념보다 “하나님 안에서 하면 된다. 하나님 안에서 할 수 있다.”라는 신앙을 가지라. 한때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많은 사람이 찬란한 꿈을 가지고 경제적인 성공도 이뤘다. 그러나 부정직하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이 ‘하면 된다’는 사상의 표상으로 높여지면 실력과 창의력보다 술 상무의 주량이 더 통하는 사회가 되고 능력과 인덕보다 지연과 학연과 혈연이 더 통하는 사회가 된다.
‘하면 된다’는 사상은 ‘넓은 문의 사상’이다. 넓은 문으로 쉽게 들어가서 얻은 성과는 수명이 짧아 부작용이 커지면서 결국 부작용이 성과를 압도해서 결국 파멸한다. 그처럼 넓은 문을 통과해 들어선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좁아지고 마침내 막다른 골목을 만나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 반면에 어려워도 좁은 문을 통과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 길은 넓어지고 계속 희생과 헌신으로 그 길로 가면 마침내 길이 다 사라진 대도무문의 축복 경지에 이를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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