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여호수아 2장 8-11절
8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 선행보다 선택이 중요하다 >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숨겨주는 장면은 하나님의 역사와 손길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결단하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믿음은 그저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민한 영적 안테나를 가지고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다. 성도는 라합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영적 안테나가 민감해야 하고 그 섭리에 따라 단호하게 믿음으로 선택하고 결단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라합의 태도가 무슨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떻게 수많은 난관을 극복했는지에 대한 명성을 듣고 여리고를 점령하면 죽을 것이 두려워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히브리서 11장 3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라합의 믿음은 여호수아의 믿음에 못지않다. 그 행위는 목숨을 건 행위였기 때문이다.
믿음의 크기는 “얼마나 헌신을 하느냐?”와 관련이 있고 “얼마나 목숨을 내놓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으면 라합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현재는 비천한 모습이었지만 내일의 찬란한 비전에 도박을 걸었기에 라합은 ‘그녀의 선행’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선택’으로 구원을 받았다. 인생에서 선행도 중요한 것이지만 선택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선한 선택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다.
나중에 여리고 성이 몰락할 때 라합 가정만은 구원받았다. 결국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준 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자신을 위한 것도 되었다. 그처럼 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고 헌신하는 것은 교회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복을 예비하는 것도 된다. 현재의 모습이 비천해도 바른 선택을 해서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 선택과 결단을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
어떻게 라합이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었는가? 그녀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안다.”라고 했다(9절). 왜 그런 지식이 생겼는가? 광야에서 하나님이 하신 기적적인 일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수많은 기적적인 역사를 소문을 통해 들으면서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처럼 말씀을 많이 듣고 들은 대로 바르게 믿는 것이 복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성경도 없었지만 라합은 자기가 들은 것을 순수하게 믿고 더 나아가 놀라운 고백까지 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11절).” 요새 성경을 가지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볼 때 그녀의 믿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순수한 믿음인가? 지식적으로만 많이 아는 것이 온전한 믿음을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더 많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알려고 하라.
‘믿는 것’은 영혼의 구원과 관련이 있지만 ‘아는 것’은 구원받은 영혼의 성숙과 관련이 있다. 구원의 믿음을 가진 후에는 더 많이 알려고 힘쓰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늘어날수록 믿음이 커진다. 더 많이 성경을 보고 성경 말씀에 대해 더 많이 들어서 더 알려고 하라. 물론 듣는 것 자체만을 즐기면 안 된다. 어떤 교인은 여기저기 집회를 순례하면서 재밌는 얘기를 들으면 은혜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말씀을 재밌게 들으면 은혜 받은 것 같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공허한 은혜다.
믿음의 깊이는 듣는 자세와 큰 관련이 있다. 학생이 강의를 듣는 자세를 보면 대략 그 학생의 성적이 미리 추정된다. 그처럼 말씀을 들을 때는 청력으로 가볍게 듣지 말고 마음으로 집중해서 들으라. “설교 잘하나 보자!” 하고 듣지 말라. 말씀을 전하는 자가 젊어도 우습게 여기지 말라. 예수님은 서른 살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면 젊은 사람의 말도 잘 들을 줄 알라.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성숙도 들음에서 생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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