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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속사람의 변화를 이루라

by manga0713 2024. 3. 18.

[ 박영환 작가 : 함께 살아가는 것 ]

 

 

 

본문말씀 : 마가복음 7장 1-23절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경건한 사람에게 없는 것 >

 경건이 무엇인가? 딱 꼬집어 정의하기 힘들지만 경건한 사람에게 없는 것을 통해 경건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다. 경건한 사람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가?

1. 전통에 집착하는 태도

 어느 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않은 부정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다(1-2절). 당시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손을 씻은 후 음식을 먹었다(3절). 그런 전통들은 서기관들에 의해 점차 모세 율법과 버금갈 정도로 권위가 부여되었지만 사람들의 건강과 믿음 생활에 유익되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종교 기득권자들의 영성 과시를 통한 자랑 도구로 활용되는 부정적인 측면이 컸다.

 손을 씻는 정결 규례는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서 손을 씻는 것에서 유래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의식이 반복되면서 규례와 전통이 되고 그 전통을 지키면 정결해진다고 오해하게 되었다. 그처럼 음식 정결 규례의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은 가상하지만 그런 전통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사실상 불경건한 것이고 오히려 해가 된다. 성도와 교회는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한다. 그런 대 명제를 잊어버리면 누구나 바리새인처럼 될 수 있다.

2. 형식에 집착하는 태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습니까(5절).” 그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그들이 장로들의 전통은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고 하셨다(6-9절). 당시 교권주의자들이 계명을 교묘하게 회피하면서 기득권 유지와 영성 자랑을 위해 장로들의 세세한 전통을 내세우고 의식과 형식에 집착했다는 말씀이다.

 형식은 필요하다. 적절하다면 형식도 힘써 지키라. 형식을 형식주의와 혼동해 형식을 존중하는 것을 형식주의로 몰지 말고 형식을 타파하는 것을 무조건 좋게 여기지 말라. 이단 교주는 대개 기존 교회의 형식주의를 타파한다면서 영혼을 미혹한 후 나중에는 더욱 심한 이단적인 형식주의를 강요한다. 기존 형식의 타파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절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잘 세워진 형식은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단 교주는 십일조를 구약 시대의 율법이니까 타파하라면서 물질적인 욕심이 없는 것처럼 진리와 개혁의 가면의 쓰고 영혼을 미혹한다. 그래서 십일조는 내게 하지 않지만 특별 은혜와 특별 선택을 보장한다고 세뇌시킨 후 인생과 가정과 부동산을 통째로 빼앗아 간다. 그런 수법을 주의하라. 예수님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행하고 십일조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마 23:23). 형식도 존중하라. 다만 형식에 집착하지는 말라.

3. 명예에 집착하는 태도

 예수님은 장로의 전통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태도의 한 실례로써 부모 공경에 관해 언급하셨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당시 교권주의자들은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고르반으로 삼았다고 하면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전통을 세웠다(10-11절). 그런 전통은 부모 부양에 대한 책임 회피와 교권주의자들의 헌금 독려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고르반 서원으로 부모 공양을 회피하지 말라는 미쉬나 규정이 생겼지만 당시 교권주의자들은 고르반 서원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려갔다.

 왜 당시 교권주의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폐했는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배를 불리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영성 자랑과 명예욕을 위한 목적도 있었다. 성도로서 명예심은 가지되 명예욕은 버리라. 어떤 사람은 현재 자랑할 것이 없으면 몇 백 년 전 조상이 정승을 지냈다는 자랑까지 한다. 진짜 자랑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다. 자리와 명예를 위해 파당을 짓거나 음해하지 말고 내용과 실력과 능력을 구비하라. 명예에 집착하지 않아야 참된 명예와 참된 경건을 얻는다.  

< 속사람의 변화를 이루라 >

 참된 경건이 무엇인가? 그에 대한 교훈을 주시려고 예수님은 주변에 있던 무리를 다시 불러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고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다(14-16절). 그리고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17절). 그때 예수님은 밖에서 들어가는 음식물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음식물이 깨끗하다고 하셨다(18-19절). 반면에 사람 마음에서 나오는 각종 악한 생각과 행동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20-23절).

 결국 경건은 속사람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변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한다. 마음과 생각을 잘 지키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입과 눈과 귀의 3대 요충지를 잘 지켜야 한다. 즉 잘 말하고 잘 보고 잘 들어야 한다. 그처럼 입과 눈과 귀의 3대 요충지를 잘 지킬 때 속사람이 변화되고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강력한 영혼의 힘을 얻는다(사 40:31).

 성도는 경건한 독수리 성도를 꿈꾸어야 한다. 독수리의 힘은 죽은 사체를 뜯어먹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 적절히 먹는 다이어트 능력에서 나온다. 성도의 힘도 불결한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 다이어트 능력에서 나온다. 또한 잘못된 음식을 입으로 먹지 않는 것만큼 잘못된 장면을 눈으로 들이지 않고 잘못된 말을 귀로 들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의 운명은 무엇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늘 부정적인 말을 하고 뒤에서 험담과 가십을 하는 사람은 지혜롭고 적절한 구실을 대고 피해야 복된 운명으로 가는 단계가 높아진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자부심으로 살라. 눈과 귀를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통로로 삼지 말고 입술을 쓰레기를 투척하는 통로로 삼지 말라. 남들이 내게 던지는 쓰레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말라. 누군가가 막돼먹은 말을 하거나 막돼먹은 행동을 하면 가만히 있지 말고 부드럽고 지혜롭게 그 말과 행동을 막되 잘 안 되면 조용히 그로부터 멀어지라. 그처럼 악한 것 앞에서 반응과 행동 없이 그냥 가만히 앉아있지 말라.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면 누군가가 노래하면서 “이 노래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어요.”라는 멘트와 함께 누가 자신을 떠났고 어떤 일이 상처가 되어 외롭고 더 이상 갈 곳과 친구도 없고 석양을 보면 서럽다는 멘트를 주절주절 했다. 계속 그런 말을 들으면 자신도 우울해지고 식사할 때 체한다.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서서히 죽이는 그런 음식물들을 거부하라. 긍정적인 믿음의 기운을 받아야 건강도 돌아오고 친구도 돌아오고 자신의 복된 인생도 돌아온다.

< 경건한 삶을 추구하라 >

 사람은 맑고 밝고 좋은 것을 계속 받아들여야 경건의 능력이 커진다. 독수리처럼 날기를 원하면 잘못된 것을 내 안에 받아들이지 말라. 물론 이 세상에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곳은 없다. 살다 보면 이상한 소리가 수시로 귀에 들린다. 중요한 것은 내게 그런 소리를 차단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 좋은 것이 들어오도록 입과 눈과 귀를 잘 지켜야 경건한 삶의 가능성이 커진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경건한 삶인가? 3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충성된 삶이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삶은 경건하지 못한 삶이다. 아무리 경건한 언행을 보여도 충성이 없는 삶은 경건한 삶이 아니다. 충성이란 말에서 한자 ‘충(忠)’ 자는 입 구(口) 자의 가운데를 뚫고 내려와 마음 심(心) 자가 아래에 붙은 한자다. 즉 입과 마음이 일치하는 것이 충성이다. 표리부동하지 않고 충성하는 삶이 경건한 삶이다.

 둘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폐하지 않는다. 왜 예수님 당시 교권주의자들이 고르반 서원 전통을 세웠는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5계명을 폐해서 부모에게 드릴 것을 교묘하게 가로채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즉 하나님께 고르반으로 드리면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전통을 만들어 헌금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얄팍한 계산, 합리화, 핑계, 무책임은 경건과는 거리가 먼 악덕들이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다. 예수님은 당시 교권주의자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고 하셨다. 왜 사람들이 외식에 빠지는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에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타나는 핵심적인 삶이 있다. 그것은 시키는 삶을 버리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세상에서 시키는 위치에 있어도 교회에서는 섬기는 위치에 서서 자기 극복을 이루어 내라. 나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나님이 나를 끔찍이 아껴 주시고 복 주실 것이다.

 무엇에든지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라. 외적인 관리도 힘쓰면서 내적인 마음 관리에 더 힘쓰라. 어떤 전통이나 어떤 사람에게 너무 매달리지 말라. 그럴수록 진리와 멀어진다. 어디에 가든지 충성된 사람이 되기에 힘쓰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힘써 순종하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앞세우는 경건한 삶을 통해 복된 교회의 일원이 되고 천국 확장과 세계 선교에 크게 일조하는 인물 성도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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