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4장 12-15절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 상대를 이해하라 >
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썼는가? 잘못된 복음을 수용하는 일부 갈라디아 교인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사람을 바로 잡기란 매우 힘들다. 완전히 바꾸는 혁명은 오히려 쉽지만 바로 잡는 개혁은 훨씬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으려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모습을 보면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진실한 사랑은 무엇인가? 상대처럼 되어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12절).
사랑의 가장 위대한 표시는 상대방처럼 되는 성육신이다. 남이 입장이 되어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자녀들을 사랑하면 언어까지 자녀들처럼 변한다. 필자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젓가락에 이상한 장식을 하고 마술봉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마술봉을 흔들며 아빠에게 소리쳤다. “죽어라! 얍!” 그러면 여지없이 죽는 척하고 쓰러졌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기에 아이들 수준으로 같이 놀아주었다. 상대방과 같아지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게 같아지면 비로소 상대방이 이해된다.
남편은 아내가 백화점 좋아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남편은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아내에게 살림의 추구가 상당히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면 비로소 이해된다. 반면에 아내는 남편의 자존심을 이해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남편의 잘못을 확실히 지적해도 남편의 자존심만은 지혜롭게 살려주어야 한다. 명예와 자존심을 짓밟고는 좋은 열매가 나올 수 없다. 남편의 자존심과 명예를 높여줄 때 남편의 조종도 수월해진다.
사역자와 성도 관계에서도 이해가 필요하다. 사역자는 자기가 평신도였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성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성도도 사역자의 심정을 최대한 이해해주어야 한다. 사역자 경험은 없어도 이제까지 살면서 리더의 위치에 있었던 때를 한번만 되돌아보아도 리더의 고충이 이해된다. 내편이 아닌 상대편의 입장에서 보는 이해의 깊이가 바로 사랑의 척도다. 바른 사상도 사랑과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 약점을 덮어주라 >
사도 바울에게는 일설에 간질과 안질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를 업신여기거나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천사나 예수님처럼 영접했다(13-14절). 그리고 더 나아가 할 수 있었으면 그들의 눈이라도 빼어주려고 했다(15절). 상대의 약점과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 덮어 주는 사랑이 온전해지려면 내게 참된 회개를 선행시키는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한 게시판에서 진영 간에 큰 말다툼이 벌어졌다. 한 성도가 보다 못해 그 게시판에 성경 말씀을 게시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예수쟁이, 제발 신성한 게시판을 더럽히지 말라.” 그 글을 보고 마음이 심히 불편해졌다. 그래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도 지혜롭지 못한 태도가 있었음을 깨닫게 하셨다. “아, 그렇구나. 불신자들에게 내 어투가 너무 교만하게 들려 거부감을 줄 수도 있었겠구나. 진리도 중요하지만 진리를 잘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구나.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자 불편한 마음이 사라졌다.
남이 잘못하는 것을 덮어줄 때도 교만한 낌새가 없게 하라. 자신에게는 하나도 잘못이 없다는 투로 덮어준다고 하지 말라. “나는 잘못이 없지만 당신을 덮어줄게.”라고 하면서 덮어주면 부작용이 있다. 회개를 앞세우고 덮어줄 때 온전히 덮어줄 수 있다. 또한 그때 인간관계에 감동적인 변화도 따르게 한다. 배우자를 어떻게 감동시키는가? 꽃을 사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분위기를 맞춰주면 순간적인 감동만 주지만 그의 잘못으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허물을 진심으로 덮어주면 그 덮어주는 마음에 오래 감동한다.
어떤 인격적인 남편은 밥을 먹으면서 돌을 씹으면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아내가 모르게 조용히 처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는데 아내가 이웃에게 수다를 떨며 자랑했다. “저는 이제까지 한 번도 밥에 돌을 넣어본 적이 없어요.” 그 말을 언뜻 들으면서 남편이 흐뭇해했다. 얼마나 훌륭한 인격인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남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배려하고 덮어주며 타인 감수성을 발휘하는 것이 사랑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기억하고 싶은 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째깍거리는 시계 The Ticking Watch (0) | 2021.02.11 |
---|---|
비전의 사람으로 (0) | 2021.02.11 |
희망을 갖고 기다리기 Waiting in Hope (0) | 2021.02.10 |
무용한 기도 (0) | 2021.02.10 |
[온라인새벽기도] 복된 자녀를 만드는 교육 (0) | 2021.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