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민수기 4장 46-49절
46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레위인을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다 계수하니 47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 봉사와 메는 일에 참여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48 곧 그 계수된 자는 팔천오백팔십 명이라 49 그들이 할 일과 짐을 메는 일을 따라 모세에게 계수되었으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이 계수되었더라
< 적극성을 갖추라 >
본문 47절에 언급된 ‘참여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란 표현을 보면 하나님은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하기를 원하셨다. 소극적으로 주어진 일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좋은 일에 참여하라. 모든 일에 다 참여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 한계와 주제를 모르고 모든 일에 다 참여하면 모든 일이 다 부실해진다. 어느 일이 하나님이 자기 사명으로 주신 것 같은 감동을 주실 때 그 일에 적극 참여하라.
믿음은 적극적인 참여를 낳는다. 일할 때 기본 전제를 ‘할 수 없다’는 것보다 ‘할 수 있다’는 것에 두라. 생체 연령과 마음 연령은 비례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고 할수록 마음 연령은 늙어지지만 할 수 있다고 할수록 마음 연령은 젊어진다. 정확한 상황 인식에 믿음을 더하라. 할 수 없을 것 같아도 믿음을 더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
말씀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일할 때 환경과 세상이 조금씩 변한다. 특히 복음 전파를 위한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 참여하라.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인 복음 전파의 명령을 나의 첫 번째 사명으로 삼으라. 위대한 인물은 자기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참여해야 부작용도 적다. 회색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적극 참여하면 분위기도 밝아지고 희망이 넘치게 된다.
다윗은 맡은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생명의 위협이 넘칠 때도 적극적인 믿음과 비전 고백을 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 57:7-8).” 어두운 밤에도 희망을 품고 새벽을 깨우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임하면 밝은 빛이 삶의 현장에 비치고 길이 보이고 열리기 시작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결국 머리가 된다.
< 신실함을 갖추라 >
레위인들은 할 일과 짐을 메는 일을 따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계수되었다(49절). 그들은 성막이 머물러 있는 때는 제사장 업무를 도와 봉사했고 이동할 때는 각자 맡은 성막의 짐을 운반했다. 영적인 레위인인 성도도 교회의 안정기에는 교회 봉사자로서 참여하고 교회 변혁기에는 교회의 짐을 지는 자로서 참여해야 한다. 즉 언제 어디서나 환경이나 상황의 변화에 상관없이 신실함을 보이라.
한 학생이 대학선교회 활동을 할 때 외부에서 매주 간사가 성경을 가르치러 학교 캠퍼스로 찾아왔다. 그 학생은 그 모임에 꼭 참석했다. 그 이유는 신앙심이 깊어서나 성경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간사가 멀리서 성경을 가르치러 오는데 학교 안에 있으면서도 모임을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간사의 가르침’보다 ‘간사의 수고함’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신앙심은 깊지 않았어도 신실함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나중에 그를 목회의 길로 이끄셨다. 신앙심과 신실함은 관련이 깊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진실함을 증명하려면 사람에게도 믿음을 주는 모습을 갖추라. 예수님을 전부로 아는 믿음은 복의 최대 원천이고 예수님을 전부로 아는 목회는 가장 복된 목회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하려면 신실한 눈물을 앞세우라. 성경은 희생의 눈물을 바탕으로 기록되었다. 눈물의 희생이 값진 열매와 진리의 말씀을 낳는다. 하나님은 희생의 눈물을 모르는 부실한 사람에게는 잘 말씀하시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다. 첫째,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신실한 성도에게 신실하시다. 둘째, 회개하지 않은 죄를 용서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이용해 죄를 맘대로 짓지 말라. 셋째, 용서한 죄는 다시 기억하실 수 없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성도의 신실한 믿음의 바탕이다. 늘 신실하게 십자가를 앞세워 나아가면 조만간 부활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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