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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하나님 손에 붙잡히라

by manga0713 2022. 6. 17.

[ 디에고 벨라스케스 : 채찍 맞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영혼 ]

 

 

본문말씀 : 전도서 1장 5-8절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 주일 중심적인 삶의 복 >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지금 떠오르는 인생도 얼마 후에 지게 된다(5절). 고대 사람들은 해를 대단하게 생각해서 당시에는 해가 숭배대상 1호였다. 옛날에는 6일간 일하고 해의 날인 일요일(日曜日)에 쉬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여기며 일요일 중심적인 삶을 살았지만 솔로몬 왕은 일요일 중심적인 삶의 허무함을 고백했다.

 어떻게 해야 인생이 허무해지지 않는가? ‘일요일 중심적인 삶’을 ‘주일 중심적인 삶’으로 바꾸라. 세상 사람들은 쉬는 날을 ‘일요일’이라고 말하지만 성도는 쉬는 날을 ‘주일’이라고 말한다. 일요일이란 해 아래서 사는 사람들의 용어이고 성도는 해 아래서 살지 않고 주 아래서 살기에 일요일이란 말 대신에 주일이라고 말한다. 성도는 태양의 은혜로 살지 않고 주님의 은혜로 산다.

 이 땅의 것은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 세상의 것으로는 사실상 영혼에 참된 만족이 없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여전히 마음이 공허해서 솔로몬 왕은 쾌락을 얻고자 술을 마시고 궁녀들의 치맛자락 속에서 향락에 빠져도 보았지만 모든 것이 헛된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바로 해 아래서 사는 삶의 실상이다. 그러므로 해 아래서 살지 말고 주 아래서 살려고 하라.

 모세는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간다고 했다(시 90:9). 인간의 죄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도 해의 은혜가 아닌 주님의 은혜로 살아서 주일의 기쁨을 맛본 자들은 다윗처럼 이렇게 고백했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 118:24).” 주일은 여호와의 정하신 날이고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날이다. 또한 축복과 저주가 갈라지고 구원과 심판이 갈라지는 날이다.

< 하나님 손에 붙잡히라 >

 솔로몬은 수많은 미인들도 거느려 보고 모든 부귀영화를 누려 보았지만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을 깨달았다. 세상의 영화는 다 사라진다. 결국 하나님과 관계된 것만 영원히 남는다. 그러므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살고 교회에 충성하고 매일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라. 또한 말씀을 대할 때마다 열린 마음과 감격으로 대하고 그 감격을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연결시키라. 그러면 그의 앞에는 반드시 복된 삶이 펼쳐질 것이다.

 요새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의 분야까지 문제가 없는 분야가 거의 없다. 밤에 길을 가다 보면 가끔 술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본다. 그 모습과 표정에 절망과 외로움이 담겨있다. 현대인들은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 아무리 새로운 것을 찾아도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 잘사는 사람들조차 삶을 힘겨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들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 아래서 살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은혜 아래서 살려고 하라.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사막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어떻게 생명을 말리고 죽이는 사막이 아름다운가? 어린 왕자가 계속 말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수가성의 고독한 여인은 사막 같은 환경에서 살았지만 생수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만나 복된 존재가 되었다. 멋진 인생을 사는 비결은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것’에 있다.

 사람은 별 차이가 없다. 성경을 보면 믿음이 좋던 사람도 다 넘어진 전력이 있었다. 위대한 불의 선지자 엘리야도 죽음의 위협을 받고 광야로 도망가 자살을 생각했었다. 그것이 사람의 실상이다. 사람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하면 결국 하나님 손에 붙잡힌다. 그러면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멋지게 쓰임 받을 수 있다. 결국 하나님 손에 붙잡혀 사는 인생처럼 복된 인생은 없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