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출처: 인터파크 도서 ]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그 소망에 대한 자신의 삶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함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이 책은 이런 우리의 소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즉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의식적인 노력을 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감사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생활 수칙'을 세우고 실천하는 법을 알려준다.
다음의 예처럼 말이다.
'심플'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2015/07/02 - [책 이야기] - [빌 하이벨스] 심플
다음은 이 책의 밑줄 친 부분이다.
1부 사방에서 내 시간을 달라고 아우성친다
-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여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이룬 것은 빈둥대다 갑자기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의식적인 노력을 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받은 은사를 갈고 닦았기 때문이다. 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성령이 주도하시는 생활 수칙, 예수님을 환영하고 그분께 반응하게 해 주는 활동 습관을 갖추고 있다.
- 영적 삶의 성장은 '주로' 하나님의 역사다.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절대 그리스도의 인격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 하지만 하나님은 이토록 연약한 우리가 자신의 변화에서 한 몫을 하도록 불러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하고 말씀하신다(빌 2:12-13).
-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에 따르면 은혜는 '노력'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어 내는 것'(earning)에 반대한다. 우리 노력으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얻을 수 없다. 그 삶은 전적으로 선물이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더욱 힘써 …..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한다(벧후 1:5-7).
- 우리가 우리 삶에서 성령의 바람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성령의 바람이 불 때를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 의도적 '훈련'을 통해서만 마라톤을 완주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
- 내 친구 엘리자베스 아처 클라인 ~ '노력'은 내일은 다를 거라고 말하지만 낡은 패턴에 계속해서 머무는 것이다. '훈련'은 자신이 실질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행동이나 습관의 의도적 패턴을 정하는 것이다. ~ 열쇠는 '점점 더 세게' 훈련하는 것이다. 다음번 경주에서는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은 반복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점점 더 세게 훈련하면 점점 더 빨라진다.
- 간호사 게일은 ~ 하나님은 제게 하루를 얼마나 꽉 채우느냐보다 관계가 열쇠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 영적 훈련은 우리 안에 예수님과의 동행을 즐길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영적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영적 훈련을 '은혜의 수단'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 이상적인 수도사의 삶은 각 영역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할애하는 삶이다.
- '균형 잡힌 삶'이 아니라 '예수 중심의 삶'
- 생활 수칙을 세우는 목적은 '균형 잡힌 삶'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든 일의 중심에 모시고서 사는 것이다.
-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 다니엘은 바벨론 문화의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어떻게 다니엘은 그토록 적대적인 환경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한 가지 수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당신만의 생활 수칙을 세우라: 뿌리 수칙 - 관계 수칙 - 회복 수칙 - 사명 수칙
- 생활 수칙의 여덟 가지 중요 가이드 라인
1. 간단하게 시작하라
2. 천천히 세우라
3. 주기적으로 가지치기하라
4. 에너지에 신경을 쓰라
5. 인생의 단계를 고려하라
6. 유연함을 유지하라
7. 재미를 위한 시간을 내라
8. 공동체를 포함시키라
- 생활 수칙의 핵심은 삶에 더 많은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수도원 삶은 포기와 버림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 뭔가를 버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실감과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한 뜻에 따라 가지치기를 하면 슬픔 가운데서도 더 깊은 평안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 생활 수칙에는 인생의 단계가 반영돼야 한다. ~ 싱글을 위한 수칙과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의 생활 수칙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
- 생활 수칙은 공동체 안에서 실천해야 한다.
2부 영적 환경을 정돈하다
- 시간 속의 성소, 안식일
- 안식일 준수는 생활 수칙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 안식일을 준수하라는 건 단순히 균형 잡힌 삶을 영위하기 위한 좋은 조언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 질서의 일부다.
- 바쁘다는 뜻의 한자 "忙"은 마음(心)과 죽음(亡)에 해당하는 두 상형문자를 합친 것으로 바쁨이 마음을 죽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 대개 우리가 바쁜 것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 물론 안식일을 지킨다고 해서 일적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고 그분의 신실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 무엇이 '일'인지 자신에게 솔직하라
- 당신을 소생시키는 활동은 무엇인가? 살아 있는 기분을 선사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 주는 여가 활동을 선택하라.
- 안식일은 평소와 다른 음식을 먹고, 낮잠을 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나누고, 자연이나 스포츠와 음악을 즐기고, 다른 이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이 주신 생명의 선물을 기뻐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해야 할 일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소생시키는 손에 우리를 맡기는 날이다.
- 온전한 쉼을 누리려면 자기 비난의 목소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 예배는 안식일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생활 수칙들의 중심이다.
- 보통의 순간들을 신성하게 바꾸는 힘, 기도 - '내 안의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
- 관계는 시간이 걸린다. 하나님과 관계 맺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분과의 관계가 깊어지기를 원한다면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리듬을 길러야 한다.
-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흔히 우리가 '기도'라고 부르는 것은 삶의 모든 부분을 지탱해 주는 격자 구조물의 또 다른 '뿌리'다.
- 영적 삶에 관한 통찰력이 뛰어난 작가 고든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가장 먼저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원칙은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깨달았다. 여기서 '가장 좋은' 시간이란 가장 정신이 맑아서 하나님께 가장 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 몸의 자세는 기도의 자세에 영향을 미친다. ~ 육체적 움직임은 불안한 에너지를 날려 버려 보다 기도에 집중하는 마음 상태를 만들 수 있다.
- 디트리히 본회퍼는 <말씀 아래 더불어 사는 삶>이란 책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자매와 함께 기도하며 우리의 "공동 탄원, 공동 감사, 공동 중보"를 하나님께 "기쁘고 확신 있게" 아뢰라고 말했다. 함께 기도할 때 같은 신자들의 기도가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 혼자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을 더욱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다.
- 성경의 다른 책들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지만 시편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보여 준다.
- 시편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솔직히 표현할 언어를 제공한다.
- 솔직한 표현은 모든 관계의 성장에 꼭 필요한 요소다.
- 마음에 있는 것들을 기도하는 것이 기도의 좋은 출발점이다. 기도는 우리 염려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우리의 염려는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 카를로 카레토는 이런 말을 했다. "기도는 사랑과도 같다. 처음에는 말이 쏟아진다. 그러다가 좀 더 조용해져 짧은 말로 기도한다. 힘든 순간에는 말을 비롯해서 아무것도 없이 그저 몸짓만으로 충분하다. 사랑이면 충분하다. 그러다가 말이 아예 불필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 영혼이 메마름과 고통 가운데서도 사랑의 눈길만으로 하나님과 대화한다."
- 기도의 '말'이 기도의 길을 방해할 때가 있다.
-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안다. 이는 기도의 목적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점점 더 깊이 의식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가진 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다.
- 말씀 묵상 - 삶으로 소화될 때까지 성경을 먹다.
- 우리가 어떤 영적 음식을 소화시키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가 달라진다.
- A. W. 토저는 <하나님을 추구하라>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님에 대한 친밀하고도 만족감을 주는 지식으로 이끄는 수단이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그분 안으로 들어가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즐거워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
- 기록된 말씀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연합하게 도와준다.
- 성 베네딕토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라고 부르는 성경 묵상의 실용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을 ~ 컴퓨터 매뉴얼이 아닌 깊이 음미하고 싶은 개인적인 편지처럼 다루는 방법이다. 렉시오 디비나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독서가 묵상으로, 묵상이 기도로, 기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즐기는 것으로 이어진다.
- 말씀 묵상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그 안의 진리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공부에서 기도로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은 성경 묵상의 또 다른 방식이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개인적인 말씀인 것처럼 내 마음을 열어 그 안의 진리를 내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 성경 구절을 외우면 내면에 끊임없는 묵상을 위한 일종의 도서관이 만들어진다.
- 말씀대로 살기 위해 읽는 것이다.
- 알면 행동으로 이어져 삶의 건전한 기초를 쌓을 수 있다.
-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은 행동은 하지 않고 정보를 수동적으로 저장하기만 하는 것이다.
- 머릿속에 성경에 관한 지식을 가득 채우고 실제로 그 지식에 따라 살지 않으면 영적으로 살만 쪄서 굼뜰 수밖에 없다. 심지어 말씀의 깨우침에 점점 무뎌져서 말씀을 듣기만 할 뿐 삶은 전혀 변하지 않는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 성경 구절을 묵상하고 입으로 말하고 기억 속에 저장하고 행동으로 옮겨 '마음으로' 배우면 그 구절은 단순히 핥을 수 있는 뼈 이상의 것이 된다.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을 채워 주는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3부 더불어 자라 가다
-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 성령 이렇게 세 위가 하나의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분이다. 즉 우주의 중심에는 관계가 있다.
- 우리가 사랑으로 다른 이들과 건전한 관계를 맺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 우정은 사랑, 충성, 인내, 용기라는 경건한 품성들이 자라는 이상적인 환경이다.
- 12세기 시토회 수도사인 리보의 엘레드는 Spiritual Friendship이란 책에서 진정한 친구의 특징은 그러기 힘든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편에 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하나님은 예술가시라는 점을 기억하게. 하나님은 자네가 누구의 것도 모방하기를 원치 않으시네. 이 교회만을 위한 하나님의 독특한 비전을 찾게."
- 자신의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영혼의 친구를 사귀려면 시간이 걸린다.
- 영적 우정의 목적은 자신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 눈에 맹점이 있는 것처럼 영혼에도 자기는 볼 수 없는 맹점이 존재한다. 영적 친구는 맹점을 찾아 사랑으로 지적해 준다.
- SNS는 영혼의 정크 푸드로 변해버리기 쉽다. ~ 진짜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없는 거짓 친밀감만 싹틀 수 있다.
- 생활 수칙의 본질은 뭔가에 "예"를 하기 위해 다른 뭔가에 "아니요"를 하는 것이다.
- 우정은 시간과 땀, 희생을 필요로 한다.
- 생활 수칙을 통해 우리가 먼저 예수님과 깊은 우정으로 나아가면 다른 이에게 진정한 우정을 선사할 수 있게 된다.
- 우리는 관계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를 품고 있다.
- 에로스(eros; 에로틱 erotic의 어원)는 성욕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본래 아름다움이나 관계적 친밀함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를 지칭한다. 인간의 성에 대한 성경의 개념도 단순한 성행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 에로스의 광범위한 정의에 따르면 성관계를 하든 하지 않든 우리 모두는 성적 존재다. 그래서 우리 삶은 성적 에너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 로널드 롤하이저의 Holy Longing(거룩한 바람)에 따르면, 성적 에너지는 모든 불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좋으며 가장 위험하다.
- 우리의 성을 이끌어 주는 건전한 생활 수칙은 성적 에너지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분출시켜 다른 이들과 더 깊이 연결되고 그들에게 생명을 전하게 해 준다.
- 성은 지고한 연합
- 다른 사람에게 성적 유혹에 관해 털어놓기가 창피할 수 있지만 시험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모든 문제를 고백할 수 있는 친구,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이다. 누구나 분별력을 상실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정신을 차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진실을 가감 없이 말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서로 붙잡아 주는 친구가 꼭 필요하다.
- 외도는 부부의 연합을 깨뜨린다. 불륜은 부부 사이에 내적 '비밀의 벽'을 쌓아 올리는 동시에 불륜 상대 사이에 '친밀함의 창'을 뚫는다.
-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더 많이 열고 더 친근하게 지내지 않는 것이 부부를 위한 건강한 수칙이다.
- 생활 수칙을 통해 건강한 영성을 얻으려면 성욕이 파괴적인 방향으로 분출되지 않도록 막아 주는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 우리의 에로스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표출하게 해 주는 적절한 경계가 매우 중요하다.
- 계속해서 성적 친밀함에 대한 지독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면 영적 삶에서 뭔가가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주체 못할 성욕은 대개 더 깊은 갈망의 증상이다. 그 갈망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사랑으로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고 소중히 여기고 받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순히 우리의 성적 욕구를 승화시키는 차원을 넘어 그 욕구를 치유하고 우리의 모든 우선순위를 바로 잡아 준다. 하나님과의 생명을 주는 관계를 떠나서는 건강한 성이 자리 잡을 수 없다.
- 사람들이 혼외정사나 포르노, 지나친 자위행위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는 성적인 욕구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친밀함과 연결의 욕구다. 영혼이 만족하고 감사하면 오히려 영혼을 더 공허하게 만드는 이런 행위에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다.
- 생활 수칙은 단순히 "아니요"를 하기 위한 "아니요"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에 "예"를 하기 위해 뭔가에 "아니요"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순례자들은 하나님께 더 온전히 "예"를 하기 위해 한동안 자발적으로 곡기를 끊는다.
- 내 진짜 인격이 빚어지는 훈련장, 가정 - 사랑으로 '나 중심주의'를 태우다.
- 가족, 짐이 아니라 복
- 가족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곧 우리 인격을 빚기 위한 하나님의 가장 효과적인 훈련장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 우리가 주도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인생의 상황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대신 정해 준다는 것이다. 당신의 가정이라는 병에서는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 가장 먼저 넣어야 할 '큰 돌'인가?
-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
- 부모들이 성경이나 좋은 신앙 서적을 함께 읽고 공부하며 성장해 가면 최소한 '가정'의 문화만큼은 바꿔나갈 수 있다.
-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다.
- 다른 이에게 복을 더해 주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결국 우리 자신이 더 행복해진다.
- 베풂과 섬김의 삶은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다.
- 가족들을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 주고 사람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더 온전히 실천하게 해 주는 수칙은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4부 보배로운 선물들, 보배롭게 쓰는 연습
- '하나님의 영'이 사시는 영적 공간, 몸 - 잘 먹기, 잘 자기, 운동하기
- 몸과 정신, 영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육체 활동이 '영적'활동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몸의 기본 필요를 잘 돌보면 하나님께 더 집중하고 남들을 더 잘 섬길 수 있다. 반대로, 몸을 방치하면 몸이 관심을 달라고 아우성치게 된다.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의 몸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셨다. 인간의 몸이 본질적으로 악하다면 하나님이 직접 그런 몸을 입으셨을 리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육신 사건은 육체의 중요성을 가장 확실히 인정하신 사건이었다.
- 더 나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은 영을 통해 우리 몸에 거하기까지 하신다.
- 우리 몸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빌린 것임을 알 수 있다.
- 식탐을 단순히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 선택에서 '너무 까다로운' 것으로 정의했다.
- 교황 그레고리오는 식탐을 단순히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비싼 음식"을 찾고 "음식을 맛있게 요리해야 할 것"을 고집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 음식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외모지상주의야말로 죄다. 잘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활력이 넘쳐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 하나님께 더 충실할 수 있다.
- SSJE의 수도사 - "몸으로 하나님께 더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 모두는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할 책임이 있다."
- 운동은 기쁨을 주고, 기도의 삶을 깊게 만들어 준다. 운동은 정신과 영을 맑게 해서 하나님과 다른 이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 회복을 위한 잠, 영양을 제공하는 음식, 활력을 주는 운동이라는 선물을 받을 때 비로소 우리의 '온' 존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살아 있는 거룩한 산제사로 온전히 드릴 수 있다. 이것은 전혀 가벼운 행위가 아니다. 예배라는 '영적' 행위다.
- 방전된 마음을 재창조하는 힘, 놀이
- 우리의 놀이는 영성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놀이 자체가 세상 속에 임하신 하나님 임재의 증거다.
- 우리가 자식이 기뻐하는 것을 보며 함께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도 기뻐하는 우리를 보며 기뻐 하신다.
- 놀이는 그 자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 뭔가를 정말 사랑해서 그것을 잘하지 못해도 상관없이 한다면 그것이 바로 노는 것이다.
- 어떤 놀이에든 너무 깊이 빠져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면 그것은 죄다.
- 어른들이 놀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의식이다. 즉, 무능한 백수처럼 보이기 싫어서 남들에게 노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우리는 한가롭게 놀면 사람들이 우습게 볼까 봐 두려워한다.
- 놀이를 기도의 한 형태로 삼으라.
- 주인이거나 종이거나, 돈 - 하나님의 셈을 믿는 믿음
- 우리를 사랑에 빠트리는 대상처럼 돈은 우리의 충성을 얻을 힘이 있다. 돈은 우리로 하여금 안전을 위해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게 만들 힘이 있다.
-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우리 삶에서 돈이 본래의 자리도 돌아간다.
- 마르틴 루터는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회심할 때 세 가지 회심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마음의 회심, 정신의 회심, 지갑의 회심이 그것이다. 사실 성령의 회심시키는 역사가 진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하나의 증거는 바로 돈에 대한 태도가 변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우리가 가진 부의 근원이 돈보다 훨씬 더 큰 만족을 준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위해서' 살수록 살기 위해 '의존하는' 것이 적어진다.
- 은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가장 강하게 임한다.
- 돈을 사용하는 모습은 우리 마음의 우선순위를 '드러낼'뿐 아니라 우리 마음의 사랑이 어디로 향할지를 '결정한다.'
- 우리 마음이 하나님, 사람,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향하기를 바란다면 그것들에 우리 마음을 쏟아야 한다.
- 드림의 좋은 출발점은 하나님께 수입의 10분의 1을 드리는 십일조다.
- 십일조가 돈에 관한 생활 수칙을 정착시키는 데 좋은 출발점이긴 하지만 신약의 강조점은 자발적인 드림, 은혜에서 비롯한 드림이다.
- 중요한 구매를 하기 전에 기도하면 '세상 재물'을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지는 데 사용할 수 있다.
5부 어둠에 끌려다니는 세상, 생명 길로 이끌라
- 창조주와 함께하는 창조 작업, 일
- 일은 인간 존재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우리는 일을 하도록 창조됐다.
- 일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공동 창조자가 된다.
- 일용직 노동이라는 힘들고 천한 취급을 받는 일을 하면서도 레이튼은 자신이 하늘 아버지와 사람들에게 유익한 뭔가를 함께 창조하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 손으로 하는 일이든 머리로 하는 일이든 유급이든 무급이든 우리의 모든 일은 "코람 데오"(coram deo) 곧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 우리도 하루 중에 틈틈이 짧게 기도하면서 우리 일의 가치를 기억할 수 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일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행위임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의식은 일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일하니 내 일이 훨씬 의미 있게 느껴졌다.
- 그리고 일이 아니어도 우리는 이어폰을 낀 채 웅크리고 앉아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하나님과 우리 안의 미묘한 변화에 관심을 쏟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홀로 조용히 기도할 시간이 없어서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지 않은 날은 한 번도 없었어."
- 하나님을 찾는 자들도 사업의 목적 중 하나가 충분한 투자 수익을 거두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수익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기업은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에 반하여 가난하고 약한 자를 억압하고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 하나님이 떠날 자유를 주실 때도 있지만 힘들어도 그 자리에서 버티라고 명령하실 때도 있다.
- 자이로베이그란 용어는 '방랑하다'와 '돌다'의 개념을 결합한 것으로, 한곳에 안주하거나 헌신하지 못하고 빙빙 도는 사람을 의미한다. ~ "그들은 항상 돌아다니며 정착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뜻과 고약한 욕망의 노예들이다."
- 하지만 주관적인 평안의 느낌은 기도, 성경, 건강한 공동체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 평안이 ~ 단순히 스트레스 상황이나 보기 싫은 사람을 떠나는 데서 비롯한 이기적인 안도감일 수도 있다. 혹은 그 평안은 단순히 돈과 영향력이 증가한 데서 비롯한 결과일 수도 있다. ~ 그리스도의 순례지들로서 우리는 안도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기쁠 때"와 "슬플 때"가 있는 결혼 생활처럼 각자 흠이 있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헌신할 때 우리 이기심과 단점이 들어나 성장과 변화로 가는 길이 열린다. 이런 헌신된 관계 속에서는 단순히 사람이 서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약이 그 사람을 지켜 준다.
- 삶의 리듬에 기도를 결합시키고,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는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께 일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켜 달라고 요청하자.
- '하나님 사랑'에 대한 최고의 화답, 섬김 - 영원히 남는 수고
- 모든 영적 훈련의 목표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에 흠뻑 취한 다음, 거기서부터 하나님과 남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죄를 '자기 자신에게로 휘어진 것'(incurvatus in se)으로 정의했다. 이 신학적 용어는 하나님과 남을 향해 밖으로 뻗어 나가는 삶이 아닌 자신을 향해 안쪽으로 들어가는 삶을 죄로 정의한 것이다.
- 남과 하나님을 사랑할 능력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한다.
- 카마이클 - "그냥 영혼만 구해서 천국으로 올려 보낼 수는 없잖아요. 영혼은 육체에 묶여 있잖아요."
- 해돈 로빈슨 교수 - "남들에 대한 섬김의 목회 이전에 우리 영혼에 대한 목회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뭔가를 하셔야 한다. 이것이 기도가 섬김의 필수적인 부분인 이유다.
- 기도는 구원의 행위다.
- 칼 바르트 - 기도는 현재 상태에 대한 도전의 행위이기도 하다.
- 우리는 기도를 통해 이 시대의 질서에 맞서고, 이 망가진 세상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역사에 참여한다.
- 눈앞의 문제에 반응해 기도할 때 우리 안에서 새로운 비전이 솟아날 수 있다.
- 우리가 세상의 문제를 목격하고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비전을 주시는 것을 느꼈다면 다음 단계는 당연히 그 비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 당신이 세상의 문제를 보고 기도하면 당신의 '한 가지'가 나타날 수 있다. ~ 당신의 '한 가지'를 찾으면 생활 수칙의 일부로서 그 명분을 구체적으로 추구할 방법을 고민하라.
- 하나님은 "내가 모든 새로운 것을 만들 것이다"가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할 것이다"(요한계시록 21:5)라고 말씀하신다.
- 내가 받은 생명을 나누는 일, 전도 - 성령으로 두드리면 성령이 여신다
-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 복음을 나누는 사람이 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주변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역사 하시리라 믿는 것이다. ~ 그리스도를 전하는 열쇠는 우리 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통한 성령의 역사다.
- 하나님의 은혜는 회심에 선행한다. (선행 은총 prevenient grace) 즉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로 의식적인 결심을 하기 '전에 온다'.
- 회심은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 '결심하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깨닫는 것에 가깝다.
- 삶, 행위, 이적, 말
- 복음을 가장 가시적으로 전하는 방법은 삶을 보여 주는 것이다.
- 복음을 전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행위'다. ~ '삶'을 통한 복음 전파라고 말할 때는 '인격'을 강조하는 것이고 '행위'는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다.
- 초대 교인들의 희생적인 행동은 질문 세례를 낳았고, 그 질문으로 인해 말로 복음을 선포할 기회의 문이 열렸다.
- 이적과 기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만의 경험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 계속해서 이적을 보여 주신다.
- 말은 우리 삶이 변한 이유, 우리 행위의 동기, 기적 이면의 힘을 분명히 설명할 수 있게 해 준다.
- 하루를 사는 모습이 곧 평생을 사는 모습이다.
- 생활 수칙의 목표: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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