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나지만 무겁게 읽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재미나지만 무겁게 읽히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가 봅니다.
'화차 火車' : 생전에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지옥으로 실어나르는 불수레
권선징악, 끝이 속시원하게 맺혀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중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돈을 빌린 당사자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 전혀 새로운 인물로 살아가는 길 뿐입니다.
그래야 "돈이라는 화차"에 실려 지옥에 버려지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인물로 산다는 것은 현재의 내 자신이 엄마의 태 속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해야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전혀 가능할 수 없는 일이기에 다른 사람으로 대신 살아갈 수 있도록 살인을 선택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왜 거기까지 왔는지, 왜 거기까지 가야만한건지 미야베 미유키는 다음과 같이 꼬집었습니다.
저기, 뱀이 탈피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탈피?"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을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성장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아니에요.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다리 따위 없어도 상관없잖아요. 뱀은 뱀이니까. 그냥 뱀이니까.
그런데도 뱀은 생각해요. 다리가 있는 게 좋다. 다리가 있는 게 행복하다고....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하는 거예요.
난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지금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아니 나는 그대로 있고 나의 상황이 변화되어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수 많은 뱀들. 어쩌면 그런 생각이 인간이기에 갖는 원초적인 염원일 수 있지만 그것에 매몰되어 가는 수 많은 뱀들. 그렇게 다리가 나오길 바라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내며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다리를 기다리는 뱀들,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들......
바로 비춰주기도 하는 거울, 다르게 비춰주기도 하는 거울, 돈.
무거웠습니다.
삶, 더 나은 삶
사람, 더 나은 사람
에너지, 거울. 돈
만족, 불만족
또다시 에너지, 거울. 돈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뱀.
어쩜 우린 그 경계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재밌는 책입니다. 꼭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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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또 다른 책]
2012/01/05 - [책 이야기] - [미야베 미유키] 가모우 저택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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