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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바람직한 교인

by manga0713 2022. 11. 21.

[ 루카 조르다노 : 동방박사의 경배 ]

 

 

본문말씀 : 고린도전서 9장 24-27절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 바람직한 교인 >

 요새 믿음이 약한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 믿음을 잃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 기도원은 더 어려워졌다. 요즘에는 여름 휴가철 외에 거의 모든 기도원이 적막에 휩싸여 있다.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은 밝지 않다. 그래도 앞날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라. 지금의 어려움은 교회 성숙을 위한 진통이다. 이 시련을 잘 극복하면 언젠가 성장의 역사가 다시 새롭게 펼쳐질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나 자신만이라도 바람직한 교인이 되어 교회 부흥의 초석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교인이 바람직한 교인인가?

1. 열심히 달음질하는 교인

 본문 24절을 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 구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을 일반 교인들이라고 하면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열심히 달음질하는 좋은 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교인이 어디에 있는가? 목사는 좋은 교인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교인들도 좋은 교인의 등록을 원하지만 좋은 교인이 와 주기만 바라지 말고 먼저 좋은 교인을 만들려고 하고 좋은 교인이 되려고 하라.

 한 젊은 목사가 시골 교회에 부임해 최선을 다했지만 큰 시련 후에 결국 사임했다. 그 후 교회 개척을 준비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심장이 약해 또 시련을 겪으면 죽습니다. 이제 다시 교회를 개척하면 뿔 없는 순한 양만 보내주시고 뿔 달린 드센 양은 큰 교회로 보내소서. 큰 교회에서 양이 뿔로 받으면 목사가 사정권밖에 있어서 덜 상처받지만 개척교회에서는 너무 상처가 됩니다.”

 그 후 그가 교회를 새로 개척하자 하나님이 그의 기도대로 순한 양들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순한 양들이 교회생활을 잘 모르고 적극성이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열정적이고 충성스런 교인이 많은 교회를 부러워하며 목회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부러움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즉 좋은 교인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임을 깨닫고 그때부터 좋은 교인 만들기에 힘써서 후일에 좋은 교회로 성장시켰다.

 좋은 교인은 바른 믿음을 기초로 열심히 뛸 때 만들어진다. 기도하면서 최선의 땀을 흘리라. 좋은 교인이 찾아오기만 바라지 말고 나부터 좋은 교인이 되면 하나님은 적절한 때에 좋은 교인도 보내 주신다. 나의 일차 관심사를 좋은 교인이 되는 것에 두라. 자녀를 위한 우선적인 기도 제목도 좋은 말씀을 듣고 좋은 교인이 되는 것에 두라. 부모가 신실한 신앙 모델이 되어서 자녀가 거룩한 비전을 가지면 인물 가능성이 커지고 그 결과로 나타난 열매는 나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2. 모든 일에 절제하는 교인

 본문 25절을 보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는 운동선수를 뜻한다. 운동선수는 최상의 몸을 만들려고 훈련하면서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등을 절제한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승리자의 머리에 씌워 주는 월계관이나 나뭇잎 화환은 얼마 후에 썩어 없어지지만 성도의 면류관은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이다.

 성도에게 절제란 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불편을 작정하는 것이다. 불편을 작정하면 불평이 줄어든다. 무엇을 절제해야 하는가?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 그 말은 좋은 일에도 절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좋은 일을 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좋은 일도 절제하며 할 때 더 빛난다는 말이다. 이해인 수녀는 노래했다. “기쁠 때는 너무 드러나지 않게 감탄사를 아끼고 슬플 때는 너무 드러나지 않게 눈물을 아끼십시오.”

 필자는 말씀을 준비할 때 가끔 하나님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말씀을 많이 쏟아 부어 주신다다. 그때 정신없이 그 말씀을 기록하면 초고 말씀이 한 시간 이상의 설교 분량이 된다. 그때부터 다시 말씀 분량을 줄여간다. 때로는 그 시간이 매우 고통스럽다. 어렵게 묵상해 깨달은 말씀을 영원히 잃을 수 있고 땀의 흔적이 배인 말씀을 조금도 빼기 싫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감히 뺀다. 그래야 더 말씀이 내실 있게 된다.

 절제하는 삶은 개인의 건강과 치유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치유는 믿음과 의술을 겸비할 때 더 온전해진다. 너무 믿음을 내세워서 의술을 경시하지 말고 너무 의술을 내세워서 믿음을 경시하지 말라. 좋은 것도 감추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감정의 절제, 음식의 절제, 행동의 절제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절제다. 겸손한 모습으로 절제된 영혼이 되면 질병 치유 능력도 생기지만 질병 예방 능력도 생긴다. 자신을 절제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해야 교회의 평화를 이루고 승리와 건강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

3. 목표가 뚜렷한 교인

 본문 26절을 보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라는 말씀이다. 누가 승리자가 되는가?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다. 누가 본문 27절 말씀처럼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게 할 수 있는가? 역시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면 결단력과 의지력도 강해지고 예수 믿고 인물이 될 가능성도 커진다.

 굳건한 결단력과 의지력이 목표를 이루게도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굳건한 결단력과 의지력을 견인하기도 한다. 목표를 뚜렷하게 하라. 어떤 것에 집중적인 관심을 두면서 어떤 것은 과감히 외면하는 판단력과 결단력을 기르라. 배려할 것은 배려하고 외면할 것을 외면하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것에 다 관심을 주면 목표가 흐려진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기에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은 희생해야 한다.

 필자가 핸드폰 문자와 카카오 톡을 하지 않는 이유는 <월간새벽기도> 집필과 <성경전권강해>라는 뚜렷한 목표에 매진하기 위해서다. 카카오 톡을 하지 않으니까 필자는 불편하지 않은데 공동체 구성원이나 상대가 불편해 해서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종종 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남들의 양해를 구하고 계속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이 선악의 가치 판단에 의한 결심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달라질 수 있지만 필자가 가진 뚜렷한 목표와 필자가 생각하는 본질적인 가치에 좀 더 매진하려고 그렇게 결심한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중시하는 본질적인 가치가 다르다. 자신에게 맞는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고 그 가치에 합당한 뚜렷한 목표를 세운 후 그 목표에 매진하라. 여가와 오락을 금하라는 말이 아니다. 본질적인 가치와 목표를 훼손하지 않는 바탕에서의 적절한 여가와 오락은 오히려 창조성을 증대시킨다. 꿈은 찬란하게 품고 목표는 뚜렷하게 가지라. 물질이 많고 덩치가 큰 삶보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이 더 인생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권위를 가져다준다.

< 뚜렷한 목표를 가지라 >

 필자는 2005년에 중학교 친구가 사 준 차를 지금까지 몰고 다닌다. 고장이 거의 없었기에 차에게 너무 고맙고 17년간 동행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사우나에 있는데 상상 속에서 필자의 차와 구두가 사랑과 충성 경쟁을 했다. 그때 먼저 차가 으스대면서 필자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물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비록 낡았어도 얼마나 주인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지 알아? 나와 오랫동안 함께한 주인님은 나 없으면 못 살아.”

 그때 필자 주변의 다른 사물들이 다 기가 죽은 채 잠잠히 있었다. 속옷은 잘해야 3년을 동행하니까 필자를 따뜻하게 품어 주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다. 양말도 잘해야 2년을 동행하니까 발밑에서 짓이기며 온갖 고생을 해도 역시 아무 말도 못했다. 양복은 가끔 멋은 내 주었지만 10년밖에 동행하지 않아서 기가 죽은 채로 있었다. 콤비는 15년을 동행했지만 군번이 약간 밀리고 자주 쓰임 받지 못하고 큰 희생을 하지 못해서 역시 잠잠히 있었다. 그 외에 다른 물건들도 풀이 죽은 채 잠잠히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필자의 구두가 차에게 소리쳤다. “나는 2004년부터 주인님과 동행했어. 어디서 등치가 크다고 소리쳐. 너는 나보다 1년 후배야. 내 앞에 빨리 고개를 숙여.” 구두는 필자와 함께한 연수도 오래 되었지만 뒷굽도 열 번 가까이 교체했고 대 수술도 2번이나 하면서 희생적으로 쓰임 받았다. 그런 구두가 갑자기 소리 치고 나타나자 차가 갑자기 기가 죽어 구두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상상을 했다.

 덩치가 큰 것보다 권위를 가진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권위는 어디에서 생기는가? 많은 물질이나 뛰어난 능력이나 높은 자리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는 생긴다. 그런데 누구나 인정하는 참된 권위는 오랜 세월의 사랑과 충성과 헌신을 통해 생긴다. 또한 거룩한 비전과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삶을 통해 생긴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면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에게 뒤처지지 않게 살 수 있다.

 성도가 가져야 할 가장 뚜렷한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살면 남들이 생각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그런 소리를 듣는 복을 추구하라. 많은 성도들이 복을 달라고 하는데 무엇이 진짜 복인가?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예수님의 삶이 내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 복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람직한 교인이 되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교회를 새롭게 만드는 초석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