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3장 6-9절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3)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
흔히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는 신약시대의 원리인 줄로 알지만 사실상 구약시대부터 있어 왔던 원리였다. 그 사실을 인식시키려고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다는 구약 성경을 인용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아야 선민이라고 여기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때(창 15:6)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때(창 17:26) 이전으로서 무할례시였다. 결국 믿음으로 구원받아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은 틀렸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행함의 조상’이 아닌 ‘믿음의 조상’이란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즉 “아브라함이 의로웠다.”라는 개념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셨다.”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이 구원받은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였지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할례 받은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여겼지만 바울은 할례 받지 않아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를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알라고 했다(7절).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았듯이 믿음을 가지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뜻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복음의 원리는 창세전부터 정해진 원리였다(8절). 그 복음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전해져 그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은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9절).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구원의 복을 받을 수 있다. 즉 행함을 가진 자보다 믿음을 가진 자가 아브라함처럼 진짜 복된 존재라는 말씀이다.
믿음으로 시작해서 나아가다가 행함으로 방향을 틀면 안 된다. ‘믿음으로’는 하나님 중심적이지만 ‘행함으로’는 자기 중심적이다. 행함과 율법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은 망하는 길이다. 율법을 칼같이 지키는 것이 율법의 목적은 아니다. ‘법대로’가 최선은 아니다. ‘법치’도 중요하지만 ‘법 정신’은 더 중요하다. 법이 모든 상황을 다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율법주의는 율법 조문을 강조하지만 그런 조문을 빠져나갈 방법은 많다. 결국 율법 조문 자체보다 ‘믿음과 사랑’이란 기초 위에 형성된 율법 정신이 더 중요하다.
<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라 >
진정 복된 존재가 되기를 원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때로 힘든 일이 있어도 기적적인 반전의 역사가 펼쳐진다. 특히 고난의 쓴물보다 쾌락의 단물이 더 믿음을 방해하기에 잘 나갈 때도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말라. 창세기 18장 27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티끌처럼 여겼기에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신앙생활은 지식과 믿음의 끊임없는 전쟁과 같다. 성경을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환경을 보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때 “지식을 따를 것이냐? 믿음을 따를 것이냐?”를 놓고 영적인 전쟁을 치러야 한다. 아브라함은 그 영적전쟁에서 지식과 감각과 이성을 따르지 않고 믿음 편을 들어서 믿음의 조상으로 우뚝 섰다.
살면서 끊임없이 환경을 바라보고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이 펼쳐진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과연 이루어 주실까? 내 기도가 정말 응답될까? 나의 비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이 아브라함에게도 있었겠지만 그는 의심을 극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아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을 믿으면 무조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기도해도 고난과 문제가 생긴다. 때로는 기도해도 더 상황이 나빠진다. 그때는 믿음의 시험 기간이다. 그 시험을 이겨내라. 시험과 문제가 생길 때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때를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로 사는 것이 기적을 일으키는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때로 힘든 일이 있어도 반드시 기적적인 반전의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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