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열왕기하 9장 27-35절
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말라 >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추장 임기가 7년이다. 그 추장은 임기 중에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 외에는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여자도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7년 후 새로운 추장이 선출되면 전 추장은 부족의 평안을 위해 반드시 죽이게 되어 있었다. 그때 전임 추장이 선정을 펼쳤으면 최대한 고통이 없이 죽였고 악정을 펼쳤으면 최대한 고통을 많이 주어 죽였다.
7년 후에는 반드시 죽는 목숨이기에 추장이 되려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너도나도 추장이 되려고 했다. 추장 출마자는 대부분 그럴듯한 사명감을 내세우지만 내면에는 참을 수 없는 권력욕이 있었기에 추장이 되려고 했다. 추장은 대개 폭넓은 활동 이력이 있는 사람이 뽑혔는데 추장이 되면 비교적 선정을 펼치고 친인척 관리도 잘했다. 죽을 때 고통 없이 죽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불의한 지주를 응징했다는 소문에 힘입어 벼락 인기를 얻고 추장으로 선택되었다. 그때부터 능력과 리더십 검증 과정도 없이 갑자기 출세한 그는 독선적이고 편파적이고 잔인한 폭정을 행했다. 심지어는 부인까지 사치와 전횡을 일삼았다. 부족민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탄했지만 7년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추장 부부의 폭정과 전횡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7년 후에는 비참하게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부족민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왜 저들이 저렇게 행동할까? 저들이 추장 임기제 법을 폐지하려고 획책할까?” 실제로 추장 부부는 강력한 권한을 활용해 추장 임기제 폐지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부족민들에게 내재된 추장 단임제 법과 전통이 너무 투철해서 그 법의 철폐는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부족민들은 또 다른 생각을 했다. “저러다가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부부가 동반 자살하려는 것은 아닐까?” 결국 그 부족민들의 예측대로 추장 부부는 임기 종료 직전에 동반 자살해서 죽었다.
사람의 권력욕은 무서운 것이다. 술, 담배, 약물, 도박처럼 권력에도 중독될 수 있다. 권력에 중독되면 비참한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권력을 휘두른다. 또한 아무리 화려하게 주목받는 위치에 서도 내면의 무의식 세계에서는 어둠의 사슬에 갇힌 사람처럼 열등감으로 신음한다. 그런 금단현상과 병든 마음은 성령과 사랑이 그 영혼을 채울 때만 치유된다. 그런 치유가 없다면 결국 비참한 인생 결말을 맞이한다. 그렇게 권력욕에 사로잡혀 거짓 선지자와 미신을 추구하며 불행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은 부부가 아합과 이세벨 부부다.
< 인생 결말을 좋게 하는 길 >
본문에는 남유다의 6대 왕인 아하시야와 북이스라엘의 7대 왕인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예후에 의해 죽는 장면이 나온다. 예후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아하시야를 죽인 후 이스르엘에 있던 이세벨에게 갔다. 그때 내시들이 이세벨을 내려던져 이세벨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었고 예후는 그 시체를 밟았다(33절). 거사가 끝나고 예후가 파티를 벌인 후 이세벨을 찾아 장사하라고 명령했는데 그 두골과 발과 손 외에는 찾지 못했다(35절). 이세벨은 한때 절대 권력을 가졌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 삶을 반면교사로 삼아 인생의 결말을 좋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우상숭배를 멀리하라
이세벨이 비참하게 죽은 핵심 원인은 아합 왕을 앞세워 권력을 남용하며 사교를 전파하고 우상숭배를 조장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우상숭배를 멀리하는가? 좀 더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일상에서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계속 가지면서 겪는 모든 경험을 배움의 기회로 여기라.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에 나를 던지는 모험이다. 왜 주일을 힘써 지키는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주중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다.
주일 오후 성경 공부 모임에 힘써 참석하라. 주일 오후 성경 공부가 재미는 없어도 내포된 의미는 크다. 어디서든지 재미보다 의미를 추구하라. 말을 재미있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지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실없게 들리거나 말실수 가능성도 커진다.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일시적으로는 분위기를 띄워주지만 프로그램을 매번 재미있게 하려다가 식상하거나 허무하게 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대개 잠시의 재미로 끝나지만 의미 있는 것은 좋은 여운이 오래간다.
흥미를 돋우는 찬양도 프로그램화되어 매번 비슷하게 하면 점차 식상해지고 일시적인 감정 터치는 되지만 영혼의 성숙에는 큰 유익이 없다. 기도 모임도 일시적으로 마음을 뜨겁게 해도 기도는 사람에게 많이 들리기보다 하나님께 많이 들려야 응답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기도의 프로그램화도 기도 제목을 나눈다는 명목 하에 민감한 개인 정보의 과다한 노출이나 자기 과시, 뒷담화와 수군거림의 소재 제공, 걱정과 두려움의 전염, 기도 제목을 적극적으로 내는 사람에게만 편중된 기도 등의 부작용이 의외로 크다.
반면에 재미가 덜하고 감각적인 터치가 없는 말씀 중심적인 성경 공부는 흥미는 덜해도 말씀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좀 더 성숙해지게 한다. 특히 성경 공부라는 틀로 전체 모임에서는 목사와의 소통과 비전 나눔이 이뤄지고 소그룹 모임에서는 교우와의 소통과 비전 나눔이 이뤄진다. 결국 주일 오후 성경 공부 모임은 생각 이상으로 매우 유익하다. 어떤 모양이든지 하나님 안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우상숭배를 멀리하는 능력이 강화된다. 그처럼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인생 결말은 점차 좋아질 것이다.
2. 좋은 만남을 추구하라
왜 아하시야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가? 아합의 아들로서 악의 길을 떠나지 않았던 요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결국 나쁜 만남이 나쁜 인생 결말을 낳은 셈이다. 인생은 만남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축복도 대개 만남에 의해 좌우된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은 큰 천부적인 복이다. 좋은 스승, 좋은 리더,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도 큰 복이다. 그 복은 내가 좋은 제자, 좋은 팔로워, 좋은 친구가 되면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처럼 좋은 만남의 복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추구하라.
영어에서 키스(kiss)는 어원학적으로 ‘스치듯 닿았다가 떨어지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반면에 임팩트(impact)는 어원학적으로 ‘깊이 푹 박히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가볍게 키스하는 만남보다 깊은 임팩트를 주는 만남이 좋은 만남이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과 수많은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가? 예수님과 스치듯 만나지 않고 깊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라. “하나님! 저에게 좋은 만남을 주시고 악을 멀리하게 하소서.”
자녀와 후대를 위해서도 기도하라. “하나님! 귀한 자녀를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녀가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게 하소서. 자녀의 믿음과 건강을 지켜 주시고 좋은 만남을 허락하소서.”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신실한 성도는 너무 이기적인 기도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죄송한 마음을 가지면서 연이어 기도한다. “하나님, 사랑하는 교우에게도 건강의 복과 좋은 만남의 복이 있게 하소서.” 교회 목사나 교우로부터 그런 은밀한 기도를 먹고 사는 영혼처럼 행복한 영혼은 없다.
왜 사람이 운명론에 빠지고 세상과 타협하는가? 대개 좋은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영혼이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 현대식 ‘번성주의 복음’이란 넓은 길을 따르지 않는다. 번성주의 복음의 넓은 길은 화려하고 매력적이지만 참된 복을 놓치게 한다. 시련과 고통이 예상되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좁은 길로 들어서서 악을 멀리하고 좋은 만남을 추구할 때 시온의 축복 대로가 앞날에 펼쳐질 것이다.
3. 힘을 과시하지 말라
이세벨의 비참한 죽음은 힘을 과시하는 삶의 비참한 결말을 잘 나타낸다. 결국 힘이 생길 때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식은 무엇인가? “모든 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라는 의식이다. 왜 하나님이 내게 힘을 주셨는가?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쓰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힘이 생기면 그 힘을 과시해서 자신의 얄팍함과 못남을 드러낸다. 심지어는 남을 무시하고 괴롭히고 억압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 최후의 결말이 예감되면서 그의 힘 과시가 부럽게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불쌍하게 보인다.
힘자랑은 육신적인 삶의 표식으로서 재앙적인 결말의 예고편이다. 폭력적인 사람에게 있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남에게 폭력으로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태도다. 그러나 칼과 폭력으로 흥하면 칼과 폭력으로 망한다. 내게 칼이 주어지면 더 조심하라. 칼이 주어질 때 본능적으로 생기는 칼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야 비참한 인생 결말을 막을 수 있다.
예전에 한 체육대학의 신입생 신고식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90도 이상 허리를 굽혀 인사하라고 교육했다. 그때 선배들은 후배들을 겁주면서 한 선배가 “하나!”라고 외치면 “개념을!”이라고 복창하게 했고 “둘!”이라고 외치면 “찾자!”라고 복창하게 했다. 쥐꼬리만 한 힘을 내세워 개념을 찾으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개념 없는 모습이다. 군대에 가면 한두 달 먼저 입대한 것을 힘의 원천으로 삼아 후임 병사를 굴리는 소인배 같은 권력 과시자가 있다. 그런 일그러진 소인배 영웅의 모습을 평생 거부하라.
돈이 쥐어졌을 때 더 조심하라. 그때 과시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돈이 없는 사람을 경시하는 마음을 버리라. 어떤 힘이 생기든지 그 힘을 과시하지 말라. 힘이 주어지면 그 힘으로 남의 짐을 덜어주고 사회와 공동체의 평화를 지켜내라. 외적인 힘을 잘 사용하면 내적인 힘을 얻지만 외적인 힘을 잘못 사용하면 내적인 힘을 잃는다. 늘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고 좋은 만남을 추구하며 하나님이 주신 힘을 잘 써서 좋은 인생 결말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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