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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놀랐지요! Surprise!

by manga0713 2011. 10. 31.

[이미지 출처 : 국민일보 쿠키뉴스 포토뉴스]



A writer for The Washington Post conducted an experiment to test people’s perception. He asked a famous violinist to perform incognito at a train station in the nation’s capital one January morning. Thousands of people walked by as he played, but only a few stopped to listen. After 45 minutes, just $32 had been dropped into the virtuoso’s open violin case. Two days earlier, this man Joshua Bell had used the same $3.5 million Stradivarius for a sold-out concert where people paid $100 a seat to hear him perform.

위 기사는 잘 알려진 내용이지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Joshua Bell)이 350만 달러나 나가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지하철 역에서 연주를 했는 데 사람이나 바이올린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었고, 바이올린 케이스에는 이 불쌍한(??) 거리 연주자를 위한 적선의 돈이 32달러가 있었다는....

이 짧은 기사의 내용과 오늘의 QT를 통해 저는 "알아 봄", 즉 "앎"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람에 대해 아는 것, 그 사람의 일에 대해 아는 것, 그 사람의 업적이나 성과에 대해 아는 것, 그 사람의 마음(의도)를 아는 것 등등

그러한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앎'에 대한 나의 생각은(특히 사람에 대해서) 일방적인 나의 느낌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결국은 나의 만족도에 따라 상대에 대한 나의 '앎'의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었더군요.

또 그 만족도를 위한 나의 노력도 (말하자면 관찰이나 뭐 등등) 나를 기준으로 나의 형편을 따라 이루어져 왔음도 깨닫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이러했는 데 우리 주님께는 어떠했을까요.
그저 얼굴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보면, 눈 앞에 보이는 사람에 비해 믿음 속에 거하는 주님에게 더 하면 더 했지 나은 것은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왜! 사랑하는 우리들, 아니 나에게 이런 '앎의 오류와 죄악된 행실'을 남겨 둔 것일까요.
나의 삶이 "'앎'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닌 '알아감'"으로 채워져야 하기 때문일까요.

단박에 깨달을 수 있도록 알려 주시면 참 좋겠는 데 주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 정말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나는 '알아 감'을 '감사함'으로 채울 수 있도록 주님을 의뢰합니다. ^^


ps : CBS 오늘의 양식 10/31자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