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마태복음 10장 26-33절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 하나님을 주목하고 시인하라 >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다. 진실하게 믿으면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병도 낫게 하신다. 그러나 병이 낫는 것 이상의 기적이 마음의 병과 인격 장애가 치유되고 변화되는 것이다. 사람의 변화는 쉽지 않다. 내 힘만으로는 사소한 악습도 잘 끊지 못한다. 남을 변화시키려고 너무 안달하지 말라. 나도 나를 쉽게 바꾸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쉽게 바꾸겠는가? 그러나 진실로 예수님을 잘 믿으면 선한 변화가 일어난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지만 사실상 기독교 믿음의 본질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기적을 믿음의 핵심 근거로 삼는다. 강신무당도 기적을 내세운다. 그러나 기독교는 믿음의 근거를 기적이 아닌 계시에 두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라는 지식에 둔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믿는다’라는 사실보다 ‘하나님’에 더 강조를 둔다. “얼마나 열심히 믿느냐?”보다 “얼마나 바르게 믿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치유의 기적은 누가 주셨는가? 하나님이다. 병자가 나았다는 사실보다 하나님이 치유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만사를 주관하신다. 그 진리는 하나님이 기적을 주신다는 사실보다 위대한 진리다. 하나님을 기적을 주시는 하나님으로만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기적 외에 나머지 평범한 삶도 방치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을 기적의 하나님으로만 제한하면 참된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 힘들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일도 주관하시고 평범한 일도 주관하신다. 즉 하나님은 기적적인 일부의 삶만 주관하시지 않고 기적 외에 수많은 평범한 삶도 주관하신다.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전인격을 맡길 때 선한 변화의 기적이 나타난다. 때로 하나님은 이미 주신 복을 빼앗아 가시기도 한다. 하나님을 무섭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왜 복을 주셨는가를 기억하라는 뜻이다. 늘 하나님만 바라보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주목하고 시인해서 하나님의 주목과 시인을 받는 것이다.
< 주님의 시인을 받는 길 >
본문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주님이 누구를 시인하고 누구를 부인하는지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주님의 시인을 받는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
박해를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문 26절을 보라.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왜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숨겨도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를 아시고 공의로 심판하신다. 결국 이 말씀은 정직하고 담대하게 살라는 뜻도 있고 은밀히 선을 베풀라는 뜻도 있다.
나의 헌신을 드러내지 말고 남이 몰라주어도 속상해하지 말라. 오히려 나의 은밀한 헌신을 나만 아는 것으로 인해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짓고 기뻐하라.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사람들이 큰 헌신을 감춘 나를 몰라주고 작은 헌신을 드러낸 남만 칭송해도 억울하거나 속상해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다 알아주시고 갚아주심을 믿기 때문이다.
<월새기> 사역을 하면서 감동할 때가 많다. 세상에서는 큰 손 고객이 직원에게 더 요구하고 더 대접받으려 하고 심하면 갑질도 하지만 <월새기> 사역의 큰 손 후원자는 저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저희 사역자들에게도 너그럽게 대하고 어쩌다 통화가 되면 요구는 없고 따뜻한 위로와 감사의 넘치게 말을 해 준다. 가끔 저희 사역자가 감사를 표현하면 자신이 더 감사하다고 한다. 그처럼 선교하고 큰 손 헌신을 하다 보면 점차 언행도 선해진다. 결국 소리 없는 헌신은 선한 인격이 체질화되는 엄청난 복도 가져다준다.
하나님의 일과 선교 사역에 소리 없는 큰 손 후원자가 되는 비전을 가지라. 크게 헌신한 나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전혀 속상해하지 말라. 그때 “이 헌신은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다른 축복의 열매를 낳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참된 헌신이고 그런 참된 헌신에 하나님이 더욱 넘치는 보상을 허락하신다. 나의 공로를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오히려 기뻐하라. 그로 인해 불의의 사고가 막아지고 하나님이 축복의 뒷문을 든든히 막아주셔서 다른 축복이 새 나가지 않게 하실 것이다.
2.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라
본문 28절을 보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라는 말씀이다. 요한계시록 21장 7-8절을 보면 성도에게 두려움은 불신과 행악과 살인과 음행과 마술과 우상숭배와 거짓과 같은 큰 죄로 언급되고 있다. 왜 두려워하는 것이 큰 죄인가? 하나님을 패배자처럼 만들고 점차 두려움이 학습되면서 결국 파멸을 낳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밤에 밖에 나가자고 떼쓰는 것을 막으려고 “지금 밖에 달걀귀신이 기다리고 있어.”라고 하면 어른에게는 장난이 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정서적인 충격이 된다. 그러면 어른이 되어도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어어, 저거 뭐야?”라고 하면 어른에게는 장난이 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정서적인 충격이 된다. 그러면 허상을 진짜로 여기면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그런 두려움이 학습되면 점차 병적인 공포로 진전된다.
한 여인이 비행기 사고로 가족을 잃고 비행기 공포증이 생겼다.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훨씬 안전하고 사고 확률이 적다는 합리적인 생각도 그녀의 두려움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처럼 과거에 만들어진 기억과 상처의 연장선상에 있는 두려움도 많다. 두려움의 대상이 실제적인 것이거나 상상의 산물이거나 상관없이 현재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사소한 두려움도 경시하지 말고 말씀으로 잘 털어내라.
3. 하나님을 더 알려고 하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믿음이 생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첫째, 하나님은 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29절). 한 앗사리온에 두 마리가 팔리는 참새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가치 없게 보이는 생명체도 돌보신다는 뜻이다. 하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제자를 돌보시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나를 돌보신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한 성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다(30절). 나보다 나를 더욱 잘 아시는 하나님은 나의 체질과 감정을 아시고 나의 형편과 슬픔과 고독까지 아신다. 나를 잘 아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몸과 삶의 곳곳에 미쳐 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나를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보증한다. 그 사실을 알고 용기를 내라.
셋째, 하나님은 나를 귀히 여기는 하나님이시다(31절). 본문에서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첫째는 선악이 다 드러날 것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26절), 둘째는 박해자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28절), 셋째는 제자는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존재이기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31절).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라. 하나님은 그 믿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영생의 복과 영향력의 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4. 예수님을 시인하고 전파하라
예수님은 승천 전에 2가지 명령을 남기셨다. 첫째,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이다(행 1:4). 그때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회복 날짜를 묻자 예수님은 그 날짜는 그들의 알 바가 아니라고 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님의 재림 날짜를 알겠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면 현실 극복 능력과 문제 극복 능력이 크게 약해진다. 하나님이 모르게 하시는 것은 모르는 상태로 놔두고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라.
둘째,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이다(행 1:8). 증인이란 헬라어는 순교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했다. 그런 고난과 박해가 예상되어도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는 가만히 기다리지 말고 일하면서 기다리라. 증거하는 삶은 인생을 활기차게 만들고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든다.
기독교는 명상의 종교가 아니라 증거의 종교이기에 진리의 실천을 중시한다. 진리가 온전하게 되려면 내가 확신한 진리가 남에게도 진리가 되도록 하라. 복음 증거는 성도의 기본 사명이다. 다 신학교에 가라는 말은 아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처음 목격한 목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체험 후에 곧 자기 일터로 돌아갔다(눅 2:20). 그처럼 무작정 신학교나 기도원에 가기보다 자기 삶의 현장에서 성도답게 사는 일부터 시작하라.
말로만 주님을 시인하지 말고 삶으로도 주님을 시인하라. 말의 시인은 있지만 삶의 시인이 없으면 남들의 냉소를 받고 주님과 교회를 오히려 부끄럽게 만든다. 차라리 말은 조금 줄이고 성도다운 삶으로 주님을 시인하라. 예수님을 어떻게 사람 앞에서 나타내느냐에 영혼의 성패가 걸린 줄 알고 삶으로 예수님을 전파하라. 예수님을 말보다 삶으로 전파하려고 하면 점차 선한 인격이 체질화되면서 다른 성공과 승리도 따라온다. 늘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을 증거하며 사는 주바라기 인생으로 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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