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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

by manga0713 2018. 4. 9.

 

 

 

 

 

본문말씀 : 이사야 65장 1-5절

1.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2.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3.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4.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5.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이사야 65장 1-5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켜드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확실히 지켜주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딴 마음을 품지 말라. 도덕적으로는 실수하거나 잘못할 수도 있다. 평생 이성 문제로 무너진 적이 없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다. 자신을 자신하지 말라. 자신의 삶을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1년 내내 찍어 공개하면 가관이 아닐 것이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려는 대중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군중들이 다 사라졌다. 사람은 다 타락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다. 그런 죄인도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중심만 확실하면 늘 회개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은 도적덕인 완벽한 삶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삶을 더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크시다. 본문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찾아오셔서 종일 손을 펴고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다(2절). 그때 패역한 백성들은 동산에서 제사하고 벽돌 위에서 분향하는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분노하게 했다(3절). 또한 죽은 사람과의 교통을 위해 무덤을 찾았고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신상 앞에서 주문을 외웠고 가증한 음식을 먹는 우상숭배 행위를 했다(4절). 하나님은 우상숭배 행위를 가장 싫어하시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일편단심의 신앙을 기뻐하신다. 인간관계에서도 두 마음을 품지 않을 때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고 은혜의 역사도 계속된다.

 A 목사와 B 선교사는 한때 의형제처럼 지내다가 나중에 원수처럼 되었다. B 선교사가 A 목사 교인들과 개인적으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몰래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A 목사는 자기를 패싱하고 교인들에게 직접 기도제목을 알린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선교후원을 끊었다. 교단의 다른 교회들도 안 좋게 보고 같이 선교후원을 끊었다. 결국 B 선교사는 교단을 떠났다. 담임목사 몰래 교인들과 직접 접촉해 후원받으려는 것은 선교사의 기본 윤리를 어긴 소탐대실이다. 담임목사에게 그런 태도는 두 마음을 품은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회가 약간만 커도 담임목사는 여러 선교사로부터 후원 기도제목을 받는다. 그때 누구에게만 후원이 집중되게 할 수 없다. 선교사들의 필요와 사정과 사역에 따라 적절히 배분하려면 개인적으로 몰래 교인들에게 직접 접촉해서 지원받으려면 안 된다. 교회 당국이 이중, 삼중으로 지원받는지도 모르고 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선교사는 더 결핍 상태가 된다. 그래서 담임목사를 패싱하고 교인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직접 후원을 받으려고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 대개 기존의 후원까지 끊길 때가 많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몰래 이중 삼중으로 지원받으려는 것은 진실하지 못한 삶이다. 하나님도 신자가 이중 삼중으로 여러 신과의 관계를 맺으려는 것을 제일 싫어하신다. 하나님도 믿고 우상도 숭배하려는 모습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속이 좁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나님만 바라볼 때 충분한 복이 넘쳐흐른다는 것을 잊지 말라. 다른 우상도 보험용으로 믿음 대상으로 삼겠다는 태도는 결국 더 많은 것을 잃게 만드는 소탐대실의 행위다.

< 영성을 과시하지 말라 >

 우상숭배만큼 나쁜 것이 거룩성과 영성을 과시하는 교만이다(5절). 우상숭배와 영성 과시는 한 통속이다. 우상숭배자는 영성 자랑도 심하다. 길에서 돈을 주우면 주인을 찾아주려고 경찰서에 갖다 주지는 않고 어떤 영성주의자는 생각한다. “하나님이 어려운 내 사정을 아시고 내게 쓰라고 주셨구나.” 양심 불량을 신의 은총으로 여기면 안 된다. 꽃밭에서 금붙이가 떨어진 것을 보면 ‘인 마이 포켓’을 하고 하나님이 어려운 자기를 위해 기적적으로 주신 것이라고 하면서 간증하면 하나님께 얼마나 수치가 되겠는가?

 도둑질을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처럼 간증하는 식의 간증도 많다. 말씀을 바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기한 삶보다 바른 삶을 앞세우고 신기한 음성보다 바른 음성을 앞세우라. 영성을 과시하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말라. 자기 수준보다 너무 높아지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높아지면 나중에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가려지는 존재가 되면서 추락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면 말년이 대개 비참해진다.

 빨리 올라가려고 하면 빨리 떨어진다. 많이 헌신해도 공로의식이 없게 하고 마음이 높아지지 않게 하라. 성도가 “목사님! 제가 건축헌금 할게요.”라고 할 때 헌금하고도 마음이 낮아지는 사람의 헌금은 받아도 편하지만 헌금하고 마음이 높아질 것 같은 사람의 헌금은 받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헌금 많이 하는 것을 목회자가 무조건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떤 목회자는 많이 헌금함으로 성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것 같으면 가급적 그 헌금을 사양한다. 헌금하고도 마음이 높아지지 않은 사람의 헌금을 받을 때 참된 평안과 기쁨이 넘치게 된다.

 헌금한 후 공로의식이 없게 하라. 이단 교주는 무조건 돈을 빼낼 목적으로 기적과 치유를 약속한 후 헌금 받은 후 나 몰라라 한다. 그는 먹고 튀는 선수다. 그렇게 헌금을 받은 후 약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당신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라고 한다. 그런 태도는 세상에서는 사기이고 기독교에서도 믿음의 남용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남용과 우상숭배와 영성 과시를 보시면 즉시 심판 모드로 들어가신다.

 성도답게 살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했다. 그런 고백을 가지고 기도하라. “하나님! 제 언어에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제 호흡에 예수님의 숨결이 뿜어나고 제 심장에 예수님의 고동이 맥박치고 제 눈동자에 예수님의 연민이 넘치고 제 걸음이 예수님의 걸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제 몸에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의 흔적이 나타나게 하소서!”

 어느 날 성 프랜시스가 산에서 조용히 성경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할 때 영광스런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면서 온몸에 십자가의 강렬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 체험은 “제게 주님의 흔적을 주소서.”란 그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 후 그는 더욱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면서 성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주님을 사랑한 상처의 흔적을 가진 삶처럼 복된 삶은 없다. 영성이란 특별하고 신기한 어떤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삶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