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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겸손의 챔피언이 되라

by manga0713 2023. 5. 24.

[ 마리사 아논 : spring florals 7 ]

 

 

본문말씀 : 여호수아 7장 1-5절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4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 깨끗해야 승리도 있다 >

 하나님은 성도가 죄와 타협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죄악의 영향력은 실체적이고 사실적인 것이다. 그 영향력은 사회와 문화뿐만이 아니라 사물과 장소에도 미쳐져 있다. 컴퓨터에도 얼마나 많은 죄악의 유혹이 있는가? 그래서 유해 사이트 차단 장치를 설치해 자녀가 악한 것을 대하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도 그런 마음으로 성도가 죄악의 영향력에 물들지 않기를 원하신다. 그 사실을 여리고 성의 진멸 사건을 통해 실감한다.

 미국에 사는 한 여인이 어느 날부터 자꾸 악몽을 꿨다. 그 문제에 대해 목회자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그때 목회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침실 벽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녀가 말했다. “목사님! 그런 질문을 할 줄 몰랐습니다. 약 한달 전만 해도 아무 것도 없었는데 요새 록뮤직 음악회 포스터를 붙여 놨어요.” 그 록뮤직 포스터에 그려진 해골, 뱀, 잔인한 장면 등의 악마적 묘사들이 그녀의 영혼에 영향력을 미친 것이었다.

 목회자가 그 포스터를 당장 태워버리라고 했다. 그대로 하자 그녀는 비로소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목회자의 그런 권면이 미신적인 조치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귀신 영화를 보고 난 후 어두운 장소에 갈 때마다 섬뜩함을 더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두려움이 많은 자녀에게 귀신 영화 보는 것을 자제하라는 것도 결코 미신적인 조치가 아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깨끗한 삶을 살기 원한다. 깨끗해야 승리도 있다. 주위 환경도 중요하다. 자신이 깨끗한 삶을 살고 싶어도 바로 옆에 사창가가 있다면 유혹 받을 가능성이 훨씬 많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악한 주위환경을 미리 제거하기를 원하셨기에 여리고 진멸을 명령하셨을 것이다. 그처럼 악한 것들이 가정과 교회와 영혼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주변 환경정리를 잘 하라.

< 겸손의 챔피언이 되라 >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작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 성 전투의 패배는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겪은 최초의 패배이자 유일한 패배였다. 그 패배는 여리고 성을 정복한 그들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패배였다. 그러나 전체적 관점에서는 꼭 필요한 패배였다. 인생에서 실패는 성공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론 모든 실패가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실패를 유익하게 하려면 실패의 원인을 깨닫고 다시는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성찰이 필요하다. 잘 성찰된 실패는 성공의 디딤돌이 된다.

 아이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패배한 제일 원인은 교만이었다. 여리고 성 전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승리했다면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좀 더 겸손해야 했는데 그들은 승리의 원인이 자신들의 능력 때문이라고 착각했다. 그처럼 여리고 전투에서의 승리에 도취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다음의 아이 성 전투에서는 하나님의 뜻도 묻지 않고 적은 수의 숫자 3000명만 보냈다. 자만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목표에 도달하면 성취감과 함께 꼭 찾아오는 것이 교만과 태만이다. 그때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워 겸손하게 살라.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스스로 자신을 ‘종’으로 여겼다. 바울이나 베드로도 서신을 쓸 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높이 우러러 본 위대한 사도들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던 것을 보면 그들은 명성이 높아져도 끝까지 겸손했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교만과 교육은 180도 반대 개념이다. 교만하면 교육이 안 된다. 인정해 주지 않으면 공격적인 사람은 불평부터 하고 방어적인 사람은 상처부터 받기 때문이다. 교만하면 상처도 잘 받고 성숙도 저해되지만 겸손하면 상처도 잘 안 받고 성숙도 촉진된다. 결국 은혜가 없는 이유는 실력의 부족 때문보다 오히려 겸손의 부족 때문이다. 겸손의 챔피언이 될 때 은혜의 챔피언이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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