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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나실인 서원 종료 율법

by manga0713 2022. 3. 7.

[ 마티아스 스톰 : 삼손과 들릴라 ]

 

 

본문말씀 : 민수기 6장 13-21절

 

13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 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14 그는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속죄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15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17 화목제물로 숫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18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19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의 머리 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20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받들어올린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21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의 몸을 구별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헌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가 서원한 대로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 끝까지 신실하게 살라 >

 어떤 종교 집단은 대중을 세뇌하려고 언론사에 기자로 입사시키고 영혼을 사냥하려고 교회에 간자를 침투시킨다. 처음에는 간자가 교회에 충성하면서 세력을 불리고 때가 되면 반란을 일으켜 목사를 쫓아내고 교회를 접수한다. 그런 행태를 남들이 비판하면 그 교주는 자신의 거짓 언행을 백색 거짓말처럼 포장하고 자신의 추종자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4,000명의 선택된 자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 거짓말은 영혼을 죽이는 사탄의 거짓말이다.

 이단 교주가 영혼을 사냥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거짓 예언을 남발해 영혼 낚시질을 하는 것이다. 그런 낚시질에 속지 말라. 사람은 심리적으로 10개의 틀린 예언은 그냥 지나치고 1개의 맞는 예언에는 잘 꽂힌다. 그래서 이단 교주는 끊임없이 예언이나 예언 비슷한 말로 거짓 낚싯줄을 드리운다. 그때 약한 영혼은 무수한 예언이 틀려도 “다 틀려.”라고 하지 않고 하나의 예언만 맞아도 “다 맞아.”라고 한다. 이단 교주는 그런 인간 심리를 이용해 수많은 예언의 떡밥을 날려 영혼을 낚아챈다.

 낚시꾼들의 핵심 금언은 낚싯대를 많이 드리워야 고기를 많이 잡는다는 말이다. 그처럼 이단 교주가 수없이 드리우는 거짓의 낚싯대 중 하나에 꽂혀 참된 예언자로 인식하면 다른 무수한 거짓은 잊고 용납하면서 영혼이 거짓 교주에게 꿰인다. 그러므로 영성과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예언이나 예언 비슷한 말을 남발하면 “저 사람이 영혼을 꿰려고 거짓의 낚싯대를 수없이 드리우는구나.”라고 지극히 경계하라. 어쩌다 맞는 예언 하나에 꽂히면 영혼이 패망의 과녁에 꽂힌다.

 어떤 교주는 수많은 거짓과 과장으로 대중을 속이며 선거 때마다 출마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단 교주의 거짓말에 무관심하다가 계속 그가 출마하면서 과장과 거짓을 남발하면 점차 거짓과 과장에 영혼이 무뎌지고 경계를 푼다. 그러면서 결국 거짓에 넘어가 영혼을 빼앗기고 돈과 시간과 노동력을 탈취 당한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다. 작은 거짓의 낌새도 주의해서 자신을 지키라. 사람이 완벽하게 진실할 수는 없음을 인식하면서도 거짓은 최대한 피하고 거짓 언행이 습관화된 사람은 힘써 멀리하라. 거짓이 상습적인 사람을 가까이하면 자신의 영혼을 사탄의 손에 넘기게 되고 자신도 거짓 인생을 살게 된다. 성도는 영적인 나실인이다. 백색 거짓말조차 힘써 주의해 살피고 영적인 나실인답게 끝까지 신실함을 잃지 말라. 신실하게 시작했다가 부실하게 끝나는 삶처럼 불행한 삶은 없다.

< 나실인 서원 종료 율법 >

 본문에는 나실인 서원을 종료하는 율법이 나온다. 나실인 서원은 멋지게 시작하는 것만큼 잘 끝내는 것도 중요하다. 나실인 서원을 종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회막 문으로 데려가라 (형식도 중시하라)

 나실인 서원 기간을 채웠으면 서원한 사람을 회막 문으로 데리고 가서 공개적으로 나실인 서원 종료를 알리는 의식을 거행했다(13절). 나실인 서원 종료에 그처럼 거창한 의식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나실인 서원 종료 의식은 요즘 개념으로는 평신도 신학원 졸업식 같아서 나실인 서원 과정을 마쳤다고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나실인처럼 살겠다는 다짐이 담긴 의식이다.

 또한 나실인 서원 기간이 끝나면 자율적으로 구별된 삶을 살면 되지 굳이 서원 종료 의식까지 가지느냐는 의문도 생길 수 있다. 물론 자율성도 중요하다. 의식이 너무 강조되면 타율적으로 변하고 눈치가 심한 수동적인 인생이 된다. 의식은 타율적으로 만들고 사랑은 자율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그러나 동시에 율법과 의식도 주셨다. 성찬식과 세례식과 결혼식 같은 의식을 경시하지 말라. 의식과 형식도 필요하다. 내용에 의식과 형식이 뒷받침되면 내용의 가치가 오래 보존된다.

2.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라 (은혜에 감사하라)

 나실인 서원 종료를 위해 여호와께 드릴 제물은 번제물, 속죄제물, 화목제물, 소제물, 그리고 전제물이었다(14-15절). 번제물은 서원 종료 후에도 계속 헌신하며 살 것을 다짐하는 의미로 드렸고 속죄제물은 죄와 허물을 사해 달라는 의미로 드렸다. 화목제물은 서원 기간에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과 계속 교제하기를 원하는 의미로 드렸고 소제물도 하나님의 은혜에 계속 감사하며 살겠다는 의미로 드렸다. 그리고 소제물과 함께 드려진 감사의 전제물은 음료수로 드리는 예물로서 보통 포도주나 기름이 사용되었다.

 나실인 서원 종료를 위해 헌물을 드리게 한 것은 하나님이 물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출 23:15). 또한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훈련하시기 위해서였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고 감사도 있다.

3. 머리털을 밀고 불태우라 (자신을 드리라)

 나실인 서원 기간이 끝나면 평범한 삶으로의 회복을 공식적으로 알리려고 머리털을 밀고 그 머리털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두어 태웠다(18절). 그것은 하나님께 자기 삶을 온전히 드리고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 가운데 있기를 원하는 다짐의 의미가 담겼다. 또한 일정 기간의 금욕생활 후 하나님 안에서 기쁘고 즐겁게 누리며 사는 것이 잘못이 아님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나실인 서원 종료 의식을 끝낸 사람은 그때부터 그동안 엄격히 금했던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다(20절). 아마 그 의식 후에 전제물로 드려진 포도주를 한 잔 마시게 하면서 나실인 서원 종료 의식이 끝났음을 공표했을 것이다. 그런 의식에 대해 “왜 술을 먹게 하지?”라고 판단한 필요가 없다. 자신을 드리는 믿음의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겉모습만 보고 혹은 율법주의로 믿음 유무를 쉽게 판단하지 말라. 시간이 지나면 본질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성도의 적절한 누림을 헌신의 결핍으로 무조건 정죄하지 말라.

4. 제물을 제사장에게 돌리라 (물욕을 극복하라)

 나실인 서원을 종료할 때 최종 의식으로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제물이 놓인 나실인의 두 손을 밑에서 받쳐 들고 여호와 앞에 요제로 앞뒤로 흔들어 드렸다(19-20절). 제물이 놓인 손을 앞으로 내미는 행동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침을 상징하고 제물이 놓인 손을 뒤로 이끄는 행동은 하나님이 받은 제물을 되돌려 주심을 상징한다. 그때 요제 제물은 화목제물로 드린 흔든 가슴 및 넓적다리와 함께 제사장 몫으로 돌려졌다.

 나실인의 서원 종료 의식에 드려진 제물을 제사장 몫으로 돌린 것은 제사 의식을 수행한 제사장들에게 수고의 대가로서 생활상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는 목적도 있지만 제사장에게 제물을 돌리면서 물질 욕심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의 중요성을 훈련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성도가 사역자의 필요를 채우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고 자신에게도 복된 일이다. 결국 드릴 줄 아는 삶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삶이다. 드리는 삶을 통해 욕심과 온갖 패배의식을 극복하고 복된 인물로 준비되라.

5. 힘이 미치는 대로 하라 (더욱 헌신하라)

 본문 21절을 후반부를 보면 나실인 율법에 관한 말씀은 이렇게 끝난다.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가 서원한 대로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라는 말씀은 마음의 감동대로 자기 경제력을 따라 율법으로 정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려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 제물은 의무제물이 아닌 자원제물이 된다. 항상 의무 이하로 헌신하기보다 의무 이상으로 헌신하라. 하나님은 물질보다 물질을 드리는 마음을 더 살피신다.

 자원제 율법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나실인 법을 수행할 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동료가 제물을 대신 내주는 관례가 생겨났다. 그리고 서원한 대로 자기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하라는 말씀은 함부로 서원하지 말고 서원했으면 힘써 지키라는 말씀이다. 약속을 함부로 하지 말고 약속했으면 힘써 지키라. 약속을 잘 지키는 것도 일종의 헌신이다. 공동체 생활에서 불문율로 형성된 규칙과 질서를 잘 지키는 것도 역시 헌신이다.

 가끔 예배드릴 때 핸드폰 소리가 울리면 예배에 방해가 된다. 그런 방해가 없도록 사려 깊게 예배 전에 핸드폰 끄는 것을 잊지 않는 마음도 헌신이다. 교회에서 소리 없이 물건을 정리하거나 청소하는 것도 헌신이다. 교회 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때 교회에 미리 사정을 알리는 것도 헌신이다. 교회의 시급한 필요를 힘써 채우려는 마음을 가진 것도 헌신이다. 충성하는 사람을 질투하지 않고 칭찬하고 세워주는 마음도 헌신이다. 그처럼 헌신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 성숙한 믿음과 내일의 복을 얻는다.

 이상과 같은 나실인 서원 종료 율법을 보면 하나님이 누구를 쓰시는지에 대한 원리를 잘 깨닫게 된다. 물론 누가 쓰임 받는지에 대한 정형화된 공식은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래도 쓰임 받게 하는 핵심 요소가 있다. 바로 거짓이 없는 신실한 믿음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신실한 성도를 어느 누구보다 기뻐하신다. 늘 영적인 나실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풍성한 은혜를 예비하며 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