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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다른 예수'를 좇지 말라

by manga0713 2021. 3. 11.

 

 

본문말씀 : 갈라디아서 1장 6-7절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 ‘다른 복음’을 좇지 말라 >

 본문에는 ‘다른 복음’이란 어휘가 반복해서 나온다. 왜 다른 복음을 사도 바울이 계속 언급하는가? 바울이 은혜의 복음을 전했을 때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에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들 중에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교인도 많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율법의 아들’로 있었기에 그 관성이 남아 은혜에 행위를 덧붙였다. 바울은 그런 태도가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심각한 태도임을 깨닫고 그런 왜곡된 ‘다른 복음’을 피하라고 했다.

 4가지 구원론이 있다. 첫째, 은혜주의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참된 복음이다. 둘째, 율법주의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거짓 복음이다. 셋째, 혼합주의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지만 인간의 행위도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다른 복음이다. 넷째, 반 율법주의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에 맘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복음의 본질을 외면한 또 다른 복음이다.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래도 율법을 전혀 필요없는 것으로 여기지 말라. 반 율법주의는 은혜의 참된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어떤 교인은 생각한다. “나를 뭐로 알아!” 그런 생각은 시험에 들기 좋은 생각이다. 은혜가 없는 자는 “나는 무엇인가 대단한 존재다(I am something).”라고 착각하지만 은혜가 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다(I am nothing).”라고 고백한다. 후자가 진짜 은혜 받은 자다.

 야고보는 은혜로 구원받았다면서 멋대로 행하지 않도록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행함은 필요하다. 그 필요성을 느낄 때 슬쩍 끼어든 사상이 갈라디아니즘으로 일컬어지는 ‘다른 복음’이다. 갈라디아니즘은 주장한다. “구원은 율법을 지켜서만도 아니고 은혜 때문만도 아니다. 사람은 은혜로 구원받고 행위로 구원이 완성된다.” 언뜻 보면 그럴듯해서 일부 갈라디아 교인이 그 사상에 넘어갔지만 사실상 갈라디아니즘에는 구원이 없다.

< ‘다른 예수’를 좇지 말라 >

 ‘다른 복음’도 문제지만 신앙생활에서 많은 성도가 ‘다른 예수’를 좇는 것도 큰 문제다.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은 할례와 율법을 강조하는 주장을 뜻하지만 지금 많은 교인들은 다른 예수를 좇는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콘스탄틴 황제 이후 기독교는 특권적인 위치에 섰다. 그때부터 예수님을 믿는다고 목숨을 걸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힘과 권력을 얻게 되었기에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거신 예수님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중세 교회는 예수님을 종교화했다.

 예수님은 삶의 변화를 가르쳤지만 중세의 힘 있는 대형 교회는 예배 의식 속에 예수님을 박제화하면서 예수님의 삶과 정신을 버렸다. 그 분위기에 편승한 신학자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과는 다른 ‘세련되고 고상하고 철학적인 예수’를 만들어내면서 낮은 사람과 어울리려고 유대 문화의 금기 사항을 깨뜨리면서 보통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던 예수님을 더 이상 보통 사람의 삶과 무관하게 만들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수의 힘에 의해 펼쳐지는 ‘새로운 종교’가 아닌 자기 내면의 변화를 통해 펼쳐지는 ‘새로운 삶’이다.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님의 내적인 치열한 진리의 삶을 회복하라. 삶의 현장에서 빚어지는 아픔과 슬픔을 껴안고 불의한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라. 그렇다고 불의에 대해 폭력으로 맞서지도 말라. 세상의 악한 세력과 맞서되 사랑의 힘으로 맞서라. 결국 십자가의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선의 힘이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지 않으면서도 어떤 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십자가의 신앙을 세상 앞에 보여주라. 예수님은 생사여탈권을 쥔 빌라도 앞에서도 조용하셨다. 힘을 자랑하는 세상 앞에서 조용히 생명의 길을 가리키며 앞서 가라.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함을 불어넣고 그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하나님의 형상이 싹트도록 영적인 물과 거름을 주면서 동시에 마음과 삶의 중심에 예수님이 머무시게 함으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